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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홍산문화의 이해」 저자 복기대 교수와 인터뷰

 

대표적인 유적지는 내몽고 적봉시 홍산 유적, 요녕성 객좌현 동산취 유적, 요녕성 건평현 우하량 유적 등이다, 홍산문화 유적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것은 내몽고 적봉시 옹우특기의 한 농가에서 발견된 C자형 옥기, 즉 옥룡이 발견되고 이어서 동산취 유적에서 중국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제사 터가 발견되었고 우하량 유적에서 여신묘가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복기대 교수는 저서에서 한국 학계가 홍산문화를 한민족의 선대문화와 연결시키고자 하고 있으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 상고사와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 하가점하층 문화는 홍산 문화와 밀접한 계승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저자인 복기대 교수와 서울 종로시내 모 음식점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Q. 우리나라에서 한민족의 기원과 관련돼 있다고 해서 홍산문화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았습니다만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주는 책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좋은 책을 내주셨습니다.
 

복기대  우하량 유적지에서 여신상과 곰 턱뼈가 발견되어 고조선과 관련 있다고 해서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홍산문화를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입장 입니다. 우리는 고고학이라고 하면 토기, 석기만을 따지는 경향이 있는데, 그건 사람들이 썼던 기물이나 공구일 뿐이죠. 그걸 가지고 당시 사람들을 완전히 해석할 수는 없어요. 그러 기 때문에 우리는 고고학을 할 때는 반드시 인류학을 먼저 이해하고 당시 사람들이 왜 저런 토기를 썼을 것인가를 연구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시각에서 토기와 석기를 가지고 연구하던 고고학은 1920~30년대 동아시아에서 했던 연구 방법입니다. 유럽에서는 1920~30년대에 그런식의 고고학을 하지 않았습니다. 호주 태생의 영국 고고학자인 고든 차일드는 이미 그 당시에 인류학과 고고학을 같이 고려하는 사회 고고학이란 콘셉트를 만들었습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고고학을 맨 먼저 도입했는데요, 그들은 기물을 중심으로 하는 1800년대의 고고학 방법론을 사용했습니다.

 

Q 우리나라는 지금도 기물 중심의 고고학을 하고 있지 않나요?


복기대  우리나라 고고학 연구는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토기 모양이란 게 만드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고 제작자가 어떤 조형미를 가지는가에 따라 다른 모양이 만들어지 는 것이죠. 문화 발전이라는 것은 ‘창조’, ‘교육’, ‘전달’이란 과정이 성립돼야 합니다. 그런 과정이 이해돼야 하는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니까. 우리나라 고고학이 계속해서 토기 모양이 어떻다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Q 복 교수님의 새로운 접근법은 어디에서 출발했나요?


복기대  학부 다닐 때 미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저의 사고 출발점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과 피타고라스와 로크의 철학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한국과 중국에서 고고학의 기본 지식을 익히면서 내가 생각했던 인류학적 접근법으로 유적들을 해석하는 작업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홍산문화를 단순히 유적과 유물로만 해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홍산문화 시기에 정말 ‘권력 체계’가 형성되어 있었을까, ‘권력 체계’란 것이 과연 기존의 주장대로 금속기의 등장으로 형성된 것일까, 라는 의문을 던져봤습니다. 저의 결론은 ‘그건 아닌 것 같다’라는 겁니다. ‘권력 체계’의 발생 여부는 그 거주지에 얼마나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또 고대 문화에서 중요한 요인은 기후 조건, 그 중에서도 강수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수량이 적으면 문화는 발생하지도 않고 발전하지 않는 것이죠. 강수량이 풍부하면 에너지와 먹거리 문제가 해결됩니다. 저는 이런 이론을 가지고 중국과 일본 등의 유적지를 돌아다니면서 확인해 왔습니다.

 

Q 강수량과 에너지는 어떻게 연결되지요?


복기대  지금과 같이 화석 연료를 쓰기 전에는 나무를 때워서 에너지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나무는 강수량과 밀접히 관련 돼 있지요. 또 나무가 있어야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나무이냐에 따라 화력에 차이가 나니까. 그릇의 종류가 달라지지요. 교목이 있어야 흙 속에 있는 광물을 녹일 수 있는 정도의 화력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화로에서 경질 토기를 만들 수 있습니다. 땔감의 화력이 약하면 연질 토기밖에 구워낼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에너지와 강수량 상태에 따라 거주지의 인구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인류학적인 접근법으로 고대 문화를 해석한 책은 국내외에서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이 책에서 부각시키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인지요?


복기대  홍산문화 연구사를 쭉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홍산문화가 황하문화보다 앞섰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겁니 다. 홍산문화 분포지역은 사람이 살기에 무척 척박한 곳입니다. 연 강수량이 700밀리 이상인 곳에는 유적이 남아 있지 않고 주로 400밀리 이하인 지역에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유적들이 많아 남아 있으니까, 앞선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400밀리 이하에선 사람들이 살기 어렵습니다.

 

홍산문화만이 유독 앞선 문화라는 건 아닙니다. 북위 43도면 사람이 살기 어려워집니다. 북위 43도 이상에서는 서리가 안내리는 무상일수가 현저히 줄어듭니다. 무상일수가 적으면 채소라든가 농사를 짓기 어렵기 때문에 식량 생산이 현격히 감소합니다. 고추 같은 것은 서리 한 번 맞으면 끝장납니다.

 

고추는 열대식물이라서 그런 거죠. 콩은 서리가 맞아도 상관 없어요. 무상 일수가 적으면 생산할 수 있는 곡물의 스펙트럼이 확 줄어듭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맞는 곡물은 자포니카 계열의 벼, 콩, 마늘, 보리, 밀 등입니다. 대개 식물이 자라는 기간이 3개월 정도 되는데, 무상일수에 따라 그 지역의 농작물 생산량은 결정됩니다. 무상일수가 적어 일 년에 한 번만 농작물을 생산한다면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지요. 제가 보기에 북위 43도가 넘어서면 사람이 살기가 어렵습니다.

 

인류학은 제국주의 학문입니다. 인류학은 어떤 지역에 대해 역사적으로 문화DNA를 분석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미국과 중국, 일본이 한국에 대해 인류학적 연구를 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학계도 그런 연구 역량은 충분하나 아직 그런데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못하는 듯합니다.
 

Q 복 교수님은 고조선사의 전문가인데요. 그동안 새로 나온 게 있습니까?


복기대  고조선의 역사가 우리 역사 속에 꾸준히 이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백제와 신라가 일 년에 두 번씩 단군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고조선 역 사는 기록이 거의 없으니까. 고고학을 연구했고 고고학을 하다 보니까. 부족한 부분을 메우려고 인류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고조선사 연구를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고조선의 수평적 의식을 보여주는 오부·오가제 연구, 고구려의 평양 위치 문제, 일본 식민지 시대 조선사 편수회 문제 등에 천착하고 있습니다. 장수왕이 천도한 평양은 북한의 평양이 아니라 요녕성 요양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후와 연료, 질병을 중심으로 인류학과 고고학을 융합한 새로운 이론을 세워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Q 일본을 자주 방문하는 것 같은데, 학문적 목적이 무엇인지요?


복기대  ‘규슈학’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본의 규슈와 혼슈는 문화가 많이 다릅니다. 규슈는 한국과 가까워 우리와 유사한게 많습니다. 규슈와 한국 고대문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보려고 일본을 자주 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규슈에서 고인돌과 석실고분도 찾았습니다. 규슈학이란 말은 제가 처음 얘기를 꺼냈는데, 드디어 3년 전에 일본에서도 규슈학을 하겠다는 학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일본 학자들이 규슈학 연구를 위해 우리 정부에 1억5,000만원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 정부에서 지원할 듯했는데, 언론에서 떠드는 바람에 안 됐습니다. 그게 됐으면 우리 고대문화가 규슈에 전해지고 상호 교류한 역사가 반듯이 밝혀지고 정리될 수 있을 텐데 아쉽습니다.    

 

 

Q 한일 관계가 현재 최악인데, 규슈학에 대해 한국정부가 연구지원을 했더라면 여러 측면에서 좋았을 것 같은데 성사되지 못했군요.


복기대  앞서 저의 학문적 영향자로 피타고라스를 언급했습니다만 피타고라스는 증명이 안 되면 말하지 않았습니다. 학문은 예술과 문학과는 다르지요. 증거 없이 ‘그럴 것이다’라는 주관적인 주장은 학문이라고 보기 어렵지요. 학자로서 증명되지 않은 주장은 발표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글을 써왔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이 그런 입장에서 연구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MeCONOMY magazine Jun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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