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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둘로 갈라진 조계종…그 운명은?!

설정 총무원장 의혹 빌미로 다시 촉발된 계파 갈등
8월26일 조계종 안팎으로 완전히 갈려져 분열
개혁 성공해 세상의 존경과 신뢰 회복할 수 있을까?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한국 불교계 가장 큰 종파인 조계종(曹溪宗)이 둘로 쪼개져 큰 내홍을 겪고 있다. 지난 5월1일 MBC ‘PD수첩’이 설정 당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다음의 일이다. 방송 이후 설정 스님은 이를 전면 부인했고, ‘은처(隱妻)’ 의혹은 받는 김 모 씨가 모습을 드러내 “‘PD수첩’에서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설정 총무원장은 이 일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해명했음에도 설정 총무원장을 둘러싼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조계종은 설정 총무원장의 퇴진을 압박하고 나섰고, 급기야 불교 종단의 정신적 최고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종정(宗正)까지 나서 총무원장의 퇴진 요구에 기름을 부었다. 조계종에서는 중앙종회의 ‘총무원장 불신임안 가결’이라는 종단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고, 22일 원로회의는 이를 인준했다. 하지만 종단은 여전히 갈등 중이다. 결국 설정 스님에 대한 의혹 제기 이면에는 조계종 내 뿌리 깊은 계파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 26일에는 둘로 쪼개져 극에 달한 종단 내 갈등이 표출되는 집회가 서울 종로구 조계사 안과 밖에서 열렸다. 두 세력은 서로를 ‘해종 세력’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종단의 혼란을 수습하고 종단을 개혁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주장했다. 불교계 ‘큰 형’인 조계종은 과연 어떻게 이 혼란을 수습하고 잃어버린 종단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8월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일주문 등 조계사를 경찰 500여명이 둘러싸기 시작했다.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재가불자 연대기구인 불교개혁행동 등 조계종 비주류가 조계사 앞에서 ‘전국승려결의대회’를 열려고 하자, 중앙종회와 교구본사 주지협의회 등 조계종 주류가 ‘참회와 성찰, 종단 안정을 위한 교권수호결의대회(이하 교권수호결의대회)’ 개최로 맞불을 놓았기 때문이다.

 

 

조계종 비주류는 ‘전국승려결의대회’를 통해 총무원장 직선제와 조계종 입법기구인 중앙종회 및 총무원 집행부의 즉각 해산, 비상종단개혁위원회 구성을 요구했고, 조계종 주류는 ‘전국승려결의대회’를 해종 행위로 규정하는 한편, 종단의 혼란 수습과 혁신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같은 날 1시간 간격을 두고 열린 집회에서 두 세력이 서로를 ‘해종세력’이라고 공격한 셈이다. 조계종 내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자칫 두 세력간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 다행히 두 세력의 집회는 별다른 충돌 없이 마무리됐지만, 조계종 내 갈등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쌓여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조계종이 이렇게 갈라져 종권 다툼을 벌인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 다툼은 5월1일 MBC ‘PD수첩’의 ‘큰 스님에게 묻습니다’가 방송된 이후 촉발됐다. ‘PD수첩’은 설정 당시 총무원장에 대해 ▲학력위조 ▲은처자(隱妻子) ▲사재축적 등의 의혹을 제기했다. 총무원장은 조계종 내 행정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조계종의 수장은 종정이지만, 예산권과 인사권 등 종단 운영의 핵심적 권한이 총무원장에게 집중돼 있기 때문에 ‘불교 대통령’이라고도 불린다.

 

의혹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자 7월27일 설정 당시 총무원장은 입장문을 내고 제기된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다만, 자신과 관련된 일로 발생한 종단 내 혼란과 실망에 대해 사과하며 종도(宗徒)의 뜻에 따라 진퇴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실이 아니기에 금세 의심은 걷힐 것이라 기대했고, 반드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었다”며 “그러나 사실 여부를 떠나 종도들로부터, 국민들로부터의 신뢰가 갈수록 무너져 내리는 참담한 상황을 목도했다.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좌절하는 모습에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큰 부담과 많은 번민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종단은 내부의 자율적 운영체계인 종헌종법 질서가 존재한다. 이는 종단 운영의 근간이자 공동체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공동규범”이라면서 “종단 주요 구성원분들께서 현재의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하기 위한 뜻을 모아주신다면 그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조속한 시일 내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한 길을 진중히 모색해 진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또한 <M이코노미뉴스>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이를 재확인했다.

 

설정 “제기된 의혹 사실 아니야”

 

설정 당시 총무원장은 7월30일 <M이코노미뉴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MBC ‘PD수첩’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그는 “나에게 제기되는 의혹에 대한 것은 결코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고, 의혹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분명히 해소되리라고 믿는다”며 “유전자 검사를 하면 끝이 나니까, 나에 대한 의혹을 가진 사람들 모두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을 해달라. 개인뿐만 아니라 불교계 명예가 회복되는 유일할 길이기 때문에 회피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관련해서 설정 스님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25민사부가 유전자 감정일을 지정함에 따라 지난달 7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 교실에서 유전자 검사를 위한 구강 상피세포를 채취했다.

 

 

100억원대 사재를 축적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내 형님은 대목장으로 세계유산 기능자다. 목수를 함으로써 돈을 많이 벌었고, 한국의 고건축에 대한 것을 후손들에게 전해주겠다는 의지로 사재 120억원을 털어서 고건축 건물(박물관)을 만들었다”면서 “박물관을 짓다가 빚을 졌고, 개인보다는 사찰이 그것을 관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서 수덕사에 넘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내 이름으로 가등기(假登記)를 한 것은 다른 데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다. 나는 그것을 살만한 돈이 없다”고 말했다.

 

학력위조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 총무원장 선거 때 언론인들 앞에서 공개 사과를 했다. 그것을 자꾸 들먹인다는 것은 나에 대한 흠집내기”라면서도 “그것 자체는 내 잘못이니까 솔직히시인한다”고 밝혔다.

 

설정 당시 총무원장은 선거법 개혁, 비구·비구니 스님에 대한 전면복지 등 불교개혁의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선거법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금의 종헌종법은 1994년 종단개혁에 참여해서 법제위원장으로서 내가 만든 그대로다. 시간은 없고, 종권을 빨리 넘겨야 하다 보니 신앙·계율을 바탕으로 한 종헌종법을 만들지 못했다”며 “선거로 인해서 불교는 그동안 땅에 떨어질 만큼 추락했고, 많은 폐단이 만들어졌다. 내가 (1994년 종단 개혁 당시) 법제위원장으로서 만들어놨기 때문에 더 책임감을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선거법은 화합을 깨는 근원이다. 패가 갈리기 때문이다. 화합이 안 되면 승가라고 할 수 없다”면서 “불교의 발전, 수행자와 중생만을 위해 쓰여야 하는 삼보정재(三寶淨財)가 선거를 위해, 본인의 명예를 위해 사정없이 쓰인다. 삼보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한탄했다.

 

‘은처’ 김 씨 “도현 스님 녹취, 조작된 것”

 

설정 스님에 대한 ‘은처자 의혹’이 제기되자 조계종은 숨겨진 딸로 알려진 전 씨의 친모 김 씨의 증언 영상을 공개하며 제기된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도현 하와이 무량사 주지 스님이 ‘김 씨의 딸이 설정 스님의 아이고, 자신(김 씨)은 설정 스님의 은처’라는 내용의 녹취를 공개, ‘은처자 의혹’은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그러자 지난달 1일 김 씨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총무원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도현 스님이 공개한 녹취는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설정 스님에 대해서는 “설정 스님은 (자신의 딸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저의 간청을 받아들여 입양에 관련해 도와주신 것이 유일한 일”이라고 증언했다.

 

 

김 씨는 “도현 스님이 공개한 녹취는 1999년 자신과 도현 스님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해 1주일에 걸쳐 만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에 따르면 김 씨는 절에 머물던 당시 한 거사(居士)와의 사이에서 원하지 않던 아이를 갖게 됐고, 아이가 태어난 후 적절한 입양 가족을 찾지 못하던 중 설정 스님의 도움으로 아이를 설정 스님의 가족에 입양하게 됐다. 몇 년 후 입양 문제가 다시 불거져 자신의 딸이 파양될 위기에 처하자 김 씨는 설정 스님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지만, 당시 설정 스님은 건강상 문제(췌장암)로 하와이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때는 이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던 김 씨는 설정 스님을 수소문하던 과정에서 알게 된 도현 스님의 제안으로 ‘거짓 녹취’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도현 스님은 김 씨에게 “(설정) 스님을 찾아갈 때에 딸을 같이 데리고 가서 기념으로 사진을 한 장 찍자고 유도해 어쨌든 사진을 한 장 찍어달라. 스님이 안 찍겠다고 하면 딸을 이용해 스님 무릎에 앉게 해서 사진을 찍으라”, “설정 스님의 필체를 연습해 편지를 하나 만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김 씨는 “당시에는 제가 처한 문제 때문에 판단력이 흐려졌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한 마디로 범죄행위였다”며 “설정 스님이 저로 인해 종교적·사회적 불신을 받아 엄청난 명예훼손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애초에 문제를 야기시킨 당사자로서 정신적 압박을 받았고, 책임감을 통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도현 스님이 지금에 와서 저와 딸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세상에 욕보이는 것은 저로서는 믿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느낌”이라면서 “도현 스님의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이며 비인간적인 행동에 대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씨는 유전자 검사 한 번이면 ‘은처자 의혹’을 끝낼 수 있지만, 지금 딸과 전혀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이기 때문에 유전자 검사를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밀운 “說만 갖고 원장 스님 물러나게 하는 것 부당”

 

MBC ‘PD수첩’의 의혹 제기에 대응하기 위해 6월11일 꾸려진 ‘조계종 교권자주 및 혁신위원회’ 밀운 스님(당시 혁신위원장)도 설정 스님에 대한 의혹은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설(說)에 불과하다며 사부대중의 자중을 당부했다.

 

 

밀운 스님은 지난달 6일 총무원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장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장으로서 종헌종법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며 “총무원장은 종헌종법에 의해 적법하게 당선됐다. 여론재판에 밀려 퇴진한다면 종법이 무너진다. 유전자 검사에 의한 판결이 있을 때까지는 자리를 보전해야 종단의 권위가 바로 설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 보살(김 씨)이 얼마 전에 협조를 하겠다고 해서 2시간 반짜리 동영상을 찍어 가져왔고, 방영도 했지만, 우리는 어떤 것도 확정해서 말할 수 없다”면서 “이왕이면 딸의 머리카락이라도 가져 왔으면 좋았을 텐데, 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엄마는 알았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위원회는 끝까지 사실을 규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정 진제 스님 “총무원장, 종단제도권 내 명예롭게 퇴진해야”

 

‘도현 스님의 녹취는 조작됐다’는 김 씨의 증언과 ‘사실확인이 먼저’라는 밀운 스님의 기자회견 이후 잠잠해지는 듯했던 설정 스님의 퇴진을 둘러싼 종단 내 혼란은 종전 진제 스님의 교시 이후 급격하게 확대됐다. 종정의 교시는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절대적 명령 및 복종의 의미를 갖는다.

 

진제 스님은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항간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 사실유무를 떠나 종단의 화합과 안정을 위해 용퇴를 거듭 표명했다. 종단제도권에서 엄중하고도 질서 있는 명예로운 퇴진이 동시에 수반돼야 한다”며 “우리 승가는 율장 정신을 받들어 종헌을 준수하고 종헌종법 질서 속에서 사부대중과 국민 여망에 부응해 여법하게 선거법에 의해 차기 총무원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제기된 의혹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퇴하겠다고 했으니 사퇴하라는 것이다. 설정 스님은 앞서 임시중앙종회가 열리는 8월16일 이전 사퇴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진제 스님의 교시에 밀운 스님은 혁신위원장에서 사퇴했다. 밀운 스님은 “총무원장이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 종정 스님의 교시는 아무 내용이 없다”면서 “나는 종정스님의 기자회견을 반대했다. 그런데도 이런 발표를 했고, 결국 내가 어른 말씀에 불경죄를 저지른 것이다. 사표를 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설정 스님, 선거법 개정·재정투명화 등 종단 개혁 공식화

 

하지만 종정의 교시에도 설정 스님은 총무원장직에서 사퇴하지 않았다. 오히려 종단의 개혁을 공식화하고 선거법 개정과 재정투명화, 승려에 대한 전면 복지를 약속하며, 종단 개혁의 단초를 마련하기 위해 올해 12월31일까지 총무원장직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설정 스님은 8월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진실 여부를 떠나 종단의 안정을 위해 스스로 사퇴하고자 했으나, 종단 내부의 뿌리 깊은 기득권 세력에 의해 은밀하고도 조직적으로 견제되고 조정되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사퇴만이 종도를 위한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종단 개혁은 권한을 가진 혁신위원회를 새롭게 발족시켜 추진하고, 그동안 불교를 위한다고 했던 많은 단체들이 있었던 만큼 위원회는 그들이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의견을 엮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퇴 일자를 12월31일로 못 받은 것에 대해서는 “종권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는 배수의 진”이라면서 “이 기간 동안 저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 명백히 밝혀 한 점 부끄러움을 남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종앙종회, 총무원장 불신임안 가결…원로회의 인준

 

설정 스님이 개혁의 단초를 마련하고 12월31일 물러나겠다고 사퇴 날짜까지 못을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종회는 8월16일 임시회를 열어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설정 스님은 21일 오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4층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잘못된 한국 불교를 변화시키기 위해 종단에 나왔지만, 뜻을 못 이루고 산중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설정 스님은 이 자리에서 일부 기득권 세력들이 종단을 망치고 있다고 비판하고, 종단 개혁을 위한 사부대중의 의식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종단을 소수 정치권승들이 위로부터 아래로부터 철저하게 붕괴시키고 있다”며 “관승들에 의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종단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사부대중이 주인이 되는 종단을 만들기 위해 종도들의 의식 전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정 스님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면 여기 나오지 않았다”면서 “여론몰이에 의해서 제가 훼손될 때 나를 염려하고 걱정해주는 사람도 많았느나, 진실로 나를 보호해주고 지켜줘야 할,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해 둔 그 당사자들은 그렇게 열정을 보이지 않았다”고 서운함을 표했다.

 

일부 언론의 확인되지 않은 사실 보도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설정 스님은 “MBC PD, 적어도 내가 당사자인데, 거기에 펴려면 나한테 한 마디 들었어야 한다. 요새 또 ‘신자 아무개가유전자 검사 확인 결과 친자로 확인됐다’ 어느 방송이 그랬다. 그런 사람도, 사실도 없는데, 소위 논설위원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서 “대체 그게 뭔 짓인가?”라고 일갈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설정 스님은 수덕사로 내려갔다. 다음 날인 22일 원로회의는 중앙종회에서 가결된 총무원장 불신임안을 인준했다. 종단 최초로 총무원장이 탄핵된 것이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진 스님은 브리핑에서 “총무원장 설정스님의 사직은 인정되나 사직에 대한 법적 대툼을 종식시키고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해 불가피하게 총무원장 불신임 인준을 ‘만장일치’로 가결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 결과 원로회의에서는 찬성 12표, 반대 7표가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이미 제기된 의혹들…종권 다툼의 빌미일 뿐

 

사실 설정 스님에 대한 의혹은 지난해 총무원장 선거 당시 제기가 됐었다. 하지만 총무원장에 당선됐다. 이를 두고 불교개혁행동 등은 총무원장을 두 번이나 지낸 자승 스님을 주축으로 하는 종단 내 부패세력이 설정 스님의 당선을 도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설정 스님을 총무원장으로 세워 종단을 자신들의 뜻대로 좌우하려고 했는데, 여의치 않자 제기된 의혹을 이를 빌미로 총무원장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다른 사람을 심으려고 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결국 설정 스님에 대한 사퇴 압박 뒤에는 조계종 내 지속돼 온 계파 갈등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계종 내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종회 재적의원 75명 중 자승 전 총무원장과 같은 세력은 5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승려결의대회’에서 총무원장 선거의 직선제와 중앙종회 해산 등을 요구한 배경이다.

 

26일, 화합 말하면서도 완전히 둘로 갈라진 조계종

 

8월26일 조계종은 완전히 둘로 갈라졌다. 조계사 앞 우정국로를 사이에 두고 조계사 안팎은 조계종 비주류, 소위 개혁파들이 주도하는 ‘전국승려결의대회’와 이에 대한 맞불 성격으로 기득권 세력이 주도하는 ‘교권수호결의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종단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한 데 참회하고 앞으로 새롭게 환골탈태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서로를 ‘해종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징계를 입에 올리고, 해산을 주장하는 등 수행자로서 볼성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또한 비슷한 시간대에 집회를 벌이는 바람에 조계사 주변은 상당히 혼잡해졌고, 일대를 지나는 많은 시민들은 교통과 통행에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전국선원수좌회와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재가불자 연대기구인 불교개혁행동 등 개혁파들이 주축이 된 ‘전국승려결의대회’에서는 종단 내 적폐를 청산해 ‘청정승가’를 만들자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관련해서 불교개혁행동은 자승 전 총무원장의 ‘멸빈(滅擯, 무거운 죄를 저지른 수행승을 영원히 승단에서 추방함. 일종의 사형선고)’을 결의하기도 했다.

 

승려대회 봉행위원회는 “지난 수년간 개혁세력이 주장한 적폐청산의 핵심내용은 종권을 사유화하고 종헌종법 질서를 무력화한 자승 전 원장을 중심으로 한 종권 카르텔의 해체였다”며 “종단 적폐의 본질을 드러내고, 혁신하기 위해 국민들과 불자들의 공감대 형성을 위해 결의대회를 봉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현진 스님(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은 고불문을 통해 “세력과 금력이 있으면 부패의 바라이승도 무죄가 되는 참담한 현실의 조계종이다. 난파선 같은 조계종의 비법적 처연한 현실에 누가 비분을 느끼지 않겠는가”라면서 “갈기갈기 상처나고 찢겨진 조계종의 상흔 위에 흩뿌리는 백금 같은 희망의 빛줄기를 엎드려 고하나이다. 부패한 종단의 적폐를 씻어 부처님의 숨결로 가득한 바른 교단을 세우는데 승가로 하여금 신명을 다하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말했다.

 

월암 스님(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은 봉행사에서 “이제 구악을 청산할 때가 됐다. 살을 도려내는 아픔 속에 새 시대, 새 불교를 만들기 위한 몸부림으로 누적된 적폐를 청산하고 청정승가를 이뤄 승가공동체 회복을 다짐하는 바”라며 “여기 모인 사부대중의 발심과 원력으로 감히 조계종과 한국 불교의 개혁을 선언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전국승려결의대회’는 ▲총무원장 직선제 ▲재정통합관리 및 투명화 ▲승가복지 실현 ▲승가제도 개편 ▲총무원 해산 및 대국민 참회 ▲중앙종회 해산 ▲비상종단개혁위원회 구성 ▲승려대회 개최 등을 결의했다.

 

 

한편, ‘교권수호결의대회’가 열렸던 조계사 주변은 경찰 500여명의 경계와 함께 호법부 스님이 조계사 진입로를 막고 벽을 만들어 지키는 등 삼엄한 모습이었다. 중앙종회 등 기득권 세력은 ‘전국승려결의대회’를 ‘해종 행위’로 규정하고, ‘해종행위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 ‘전국승려결의대회’를 주도하고 참여한 승려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기로 했다.

 

‘교권수호결의대회’에서 원행 중앙종회 의장은 봉행사에서“불교를 걱정하게 한 잘못, 부끄러운 민낯을 보인 잘못, 부처님 가르침대로 행하지 못한 잘못에 대해 수행자로서 그리고 종단의 소임자로서 소납부터 깊이 참회한다”면서 “부처님 법대로 살아왔는지,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길러왔는지, 정법을 실천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는지 우리는 뼈를 깎는 자세로 조고각하(照顧脚下, 발 밑을 살피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소 더딜 수도 있다. 조금 불만족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부끄럽지 않은 불교가 되도록 위법망구(爲法忘軀, 법을 위해 몸을 잊다)의 정신으로 다시 정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전국승려결의대회’에 대해서는 “지금 다른 한편에서는 종법 질서를 지키자는 종도들의 뜻을 외면한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겠다고 서원한 불제자라면 불교를 비방하고 자주권을 훼손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며 “불교는 그 자체로 존엄하고 우리에게 불법(佛法)은 견줄 데 없이 수승하다. 외부 세력에 기대고 의존하는 어떠한 변명도 용납할 수 없다. 우리에게 진리의 숨결을 불어넣어 준 부처님 법을 따르겠다는 서원과 실천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진우 총무원장 권한대행은 “종단이 처한 위중함의 원인이 우리 공동체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그 결과 종도와 국민 여러분께서 우리 수행자에게 바라던 기대와 희망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무거운 마음으로 마주하고 있다”면서 “종단의 청정한 변화를 위해 서로가 발 딛고 있는 위치에서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 인내하고 양보하는 넉넉한 품으로, 갈라진 서로의 마음을 개혁과 혁신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나가는 길만이 우리 종단의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는 뚜렷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기득권 세력이든 개혁 세력이든 서로 자신이 옳고 상대방은 잘못됐다고 비방하며 분열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조계종. 화합을 말하지만 뭉치지 못하고, 개혁을 말하지만 제 길만이 맞는 길이라고 주장하며 맞서는 상황에서 과연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 개혁에 성공해 세상의 존경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MeCONOMY magazine Sept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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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심판만 1만 건을 청구한 ‘악성 민원인’이 실제 있다고요?
행정심판에 낭비된 우편료만 3년간 7,200만 원에 달해 중앙행심위 “악성 민원인 청구권 남용으로 선량한 국민의 권리구제 방해” 행정기관으로부터 부당한 처분을 받아 권리나 이익이 침해될 때 행정소송과 별도로 행정심판을 통해 이를 구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ㅇ씨의 경우 지난 3년 동안 특정인에 대한 비난과 욕설이 대부분인 행정심판을 1만 건 이상 청구하였고, 그때마다 기각처리되었지만 청구를 멈추지 않았다. ㅇ씨는 소위 악성민원인이다. 반복적인 행정심판 처리 과정에서 지출된 우편료만 3년간 7,200만 원에 달했다. 국민권익위원회(위원장 유철환)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이하 ‘중앙행심위’)는 이 악성 민원인에게 중앙행심위의 행정심판 업무를 방해한 사유로 형사고소했다고 밝혔다. 중앙행심위는 "ㅇ씨는 청구한 사건이 백이면 백 각하되어 적법한 청구가 아님을 알면서도 불필요한 행정심판 청구를 멈추지 않았고, 이로 인해 중앙행심위는 막대한 행정력과 국민의 혈세인 예산을 낭비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중앙행심위 박종민 부위원장은 “악성 민원인의 행정심판 청구권 남용으로 다른 선량한 국민의 신속한 권리구제가 방해받는 것을 막기 위해 향후 형사 고소는 물론 손해배상 소송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