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 미술관·박물관 열풍이 불고 있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박물관은 이미 관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콘텐츠로 역할하여 왔다. The Art Newspaper 자료에 의하면, 2024년 세계 박물관 관람객 순위 1위는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박물관(874만명), 2위는 이탈리아의 바티칸 박물관(683만명), 3위는 영국의 대영박물관(648만명)으로, 유럽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박물관이면서 방문객 수 상위에 위치한다. 1990년대~2000년대 초반 여행사 근무 이후, 필자는 지금까지 파리 방문에서 루브르박물관을 대략 10~20회 방문 했을 것이다. 그만큼 파리 투어에서 루브르박물관은 필수 코스로 여겨진다는 의미다. 유럽의 대표적인 미술관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과 고야의 옷 입은 마하 등을 소장한 스페인의 프라도미술관, 산드로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카라바조의 메두사의 머리 등을 소장한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크림트의 키스를 감상할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 오스트리아 미술관 등 인지도가 높은 곳이 많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 라테스의 죽음과 빈센트 반 고흐의 싸이프러스 나무 등을 볼 수 있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유명하다. 프
커피가 퇴비가 되고, 퇴비가 채소가 되는 도시. 그런 도시에서는 치유와 힐링, 위기 대응 먹거리 교육, 사회적경제 활성화, 원 헬스(One Health)의 실천이 제각각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순환고리로 진행될 수 있다. 필자가 그리는 서울의 청사진이다. 서울의 도시 문제를 따로따로 보면 해법도 흩어진다. 1인 가구의 외로움은 복지 문제로, 반려동물 증가는 생활 문화 문제로, 커피박은 폐기물 문제로, 도시농업은 취미나 교육 문제로 보이기 쉽다. 그러나 이 문제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해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서울에 필요한 것은 단순한 환경 정책도, 단순한 복지 정책도 아니다. 도시민의 정서적 고립을 줄이고, 도시의 폐기물을 자원으로 바꾸며, 기후위기와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통합적 생명순환 정책이 필요하다. ◇ 외로운 서울 그 출발점은 서울의 생활 구조 변화다. 서울시가 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4 서울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서울 가구의 19.5%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반려동물 보유 가구 가운데 36.4%가 1인 가구다. 서울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비율은 39.3%로 나타났다. 더 주목할 것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어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 것입니까?” 현대 전쟁사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질문이 있다면, 2003년 이라크전 당시, 전쟁을 취재하던 기자가 장군에게 던진 이 질문이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훗날 미군 총사령관이 되는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당시 소장이었다. 질문을 던진 기자는 퓰리처상을 받은 전쟁 기자 릭 앳킨슨이다. 이처럼 전쟁의 시작은 언제나 명확하지만 끝은 늘 불확실하다. 그 질문이 다시 중동으로 되돌아왔다.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란이 맞물린 현재의 긴장은 많은 사람에게 “이 싸움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2013년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의 보수성향 칼럼기고자인 브렛 스티븐스(Bret Stephens)은 오늘(3월 10일)자 뉴욕타임스 오피니언에 기고한 글에서 네 가지 종전 시나리오를 제시했는데 불확실한 미래를 비교적 명료하게 정리하고 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민중 혁명이다. 수백만 명의 이란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현재의 억압적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란 사회 내부에는 이미 강한 불만이 축적돼 있다. 젊은 세대는 종교적 통제에 염증을 느끼고, 경제는 제재 속에서 신음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독재 정권이 외부
바닷속에는 ‘우렁쉥이’라는 생물이 있다. 흔히 술안주로 즐겨 찾는 ‘멍게’다. 이들은 굴이나 산호처럼 평생 한 곳에 달라붙어 고착 생활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유년기다. 방금 알에서 깨어난 우렁쉥이 유생은 올챙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척삭과 신경관, 그리고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원시적인 뇌와 눈이 존재한다. 입을 벌릴 수 없어 뱃속에 품고 태어난 난황의 영양분만으로 버텨야 하는 이틀. 이 짧은 시간 동안 우렁쉥이 유생은 넓은 바다를 헤엄치며 자신이 평생 머물러야 할 안식처, 즉 단단한 바위를 필사적으로 찾아 헤맨다. 과업이 완료되어 마침내 평생의 안식처에 안착하는 순간, 우렁쉥이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의 뇌와 척삭을 소화해 먹어 치운다. 더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으므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관인 뇌부터 소화해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뇌가 사라진 후에 비로소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입수공과 뱉어내는 출수공이 생긴다. 이제 우렁쉥이는 죽을 때까지 바위에 붙어 입만 벌린 채, 흘러들어오는 플랑크톤을 수동적으로 걸러 먹으며 평생을 보낸다. 신경과학자 다니엘 월퍼트(Daniel Wolpert)는 이 우렁쉥이의 일생을 언급하며 “뇌는
유튜브 플랫폼 역사상 가장 가장 빠르게 성장한 채널은 미국의 ‘미스터비스트(MrBeast)이라고 불리는 지미 도널드슨(Jimmy Donaldson)이 운영한다. 그의 메인 채널 구독자는 약 3억 명 이상이고, 여러 언어 채널과 보조 채널까지 4억~5억 명 수준의 구독자를 거느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대부분의 국가 인구보다 많고 세계 최대 방송사 몇 곳을 합친 시청 규모와 맞먹는 수준이다. 여기에선 영상만을 만드는 게 아니다. 초콜릿 브랜드, 패스트푸드 체인 등을 운영하는 그는 유튜브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큰 개인 미디어 권력 중 한 사람이다. 최근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그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은행과 유사한 금융 앱인 스텝(Step)을 인수해 금융사업까지 뛰어들었다고 한다. 금융 앱, 스텝(Step)은 청소년과 젊은 세대가 카드 사용과 저축, 신용 관리 등을 쉽게 경험하도록 돕는 서비스로 특히 부모의 계좌와 연동해 안전하게 금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설계함으로써 미국에서는 이미 상당한 사용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내가 어렸을 때는 투자나 신용, 돈 관리에 대해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릴 때 갖지 못했던 금융 교육의 기반을 다음 세
오늘의 이란 사태를 이해하려면 ‘왜 자원 부국이 어떻게 어려운 길로 들어섰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흔히 이란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네덜란드병’이다. 천연자원 수출이 급증하면서 통화 가치가 상승하고, 제조업과 농업이 약해지며 경제 구조가 왜곡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 말은 네덜란드에서 1960년대 천연가스가 발견된 이후 나타난 경제 현상에서 유래했다. 이란 역시 석유라는 축복 속에서 비슷한 함정에 빠졌다. 1970년대 이란은 겉으로 보기에 번영의 나라였다. 석유 가격이 급등하면서 막대한 외화가 유입되었고, 수도 테헤란에는 고층 건물과 현대식 도로가 들어섰다. 당시 「모하메드 레자 팔레비」 국왕은 이란을 중동의 산업 강국으로 만들겠다며 대대적인 근대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것이 ‘백색혁명’이었다. 백색혁명은 토지 개혁, 여성 참정권, 교육 확대 등 겉으로는 매우 진보적인 개혁처럼 보였다. 그러나 토지 개혁은 농민에게 충분한 생산 기반을 제공하지 못했고, 많은 농민이 생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도시로 떠났다. 이들이 도시 변두리에 모여 살며 거대한 빈민층을 형성해 나중에 혁명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특히 석유에서 나온 돈은 사회 전체로 퍼
연일 이어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그리고 이란의 보복 소식을 접할 때마다 오래된 기억 하나가 되살아난다. 이란 혁명 10주년 행사에 이란 정부 초청으로 수도 테헤란을 비롯하여 군 수송기를 타고 이란의 유전과 남쪽 도시를 방문했었다. 당시 거리에는 호메이니의 초상, 혁명수비대의 행진, 그리고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카메라 밖에서 만난 시민들의 표정은 단선적이지 않았다. 혁명의 자부심과 피로감, 종교적 열정과 세속적 욕망이 한 도시의 공기 속에 공존하고 있었다. 오늘 자 뉴욕타임스에 토머스 프리드먼이 기고한 관련 칼럼은 복합적인 이란을 이해하고 정리하는데 유용했다. 그는 중동 전쟁에 대해 명확하게 생각하려면 여러 가지 생각을 동시에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고 했다. 종교, 석유, 부족 정치, 강대국 정치가 모든 주요 사건에 얽혀 있는 복잡하고 다채로운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흑백논리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다면 차라리 체스나 두는 게 나을 거라고까지 했다. 또 테헤란의 성직자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이번 노력이 성공하기를 바랐다. 왜냐하면 테헤란 신정정권은 자국민을 학살하고, 주변국을 불안정하게 만들며, 위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판결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무기징역은 법정 최저형으로 국민의 법 감정에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증언의 신빙성, 절차적 공정성 등에 의문이라며 항소심에서 바로 잡혀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어떤 판결이든 의견이 둘로 갈라지는 장면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기에 이러한 논쟁은 다 시 진영의 언어로 굳어가리라. ‘세상사 그러려니’ 하면서 넘어갈 법도 한데 이번 재판을 지켜보며 유독 한쪽이 쓰렸다. 왜 그랬을까? 분열에 익숙해져서거나 재판이라는 제도가 갈등을 잠재우는 마지막 판결문이 되어 공동체를 설득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1심 판결이 나온 후 필자는 마음의 평정을 얻기 위해 약 2000년 전 철학자인 에픽테토스를 떠올렸다. 노예였다가 주인으로부터 풀려나 철학자가 된 그는 로마 제국, 특히 스토아 철학이 크게 번성하던 때 활동했다. ‘세상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나누어 생각하라’고 가르친 그의 철학적 힘을 빌리면, 세상의 저울이 미세하게 기울어진 느낌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