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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평등은 무조건 선(善)인가? …도발적인 문제 제기

- <개소리에 대하여> 저자 정치철학자 프랭크퍼트

- 평등은 무조건 선(善), 불평등은 악(惡)인가?

- 불평등 자체는 도덕과 아무런 관련도 없어

- 경제적 평등주의, 자신 아닌 다른 사람 소유에만 기준

-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는 ‘충분성의 원칙’ 대안 제시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이미선 헌법재판관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이 재판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수십억 원대의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됐다. 내부정보를 이용해 큰 이익을 남겼다거나 이 재판관의 남편인 오충진 변호사가 판사 시절 근무시간에 주식 거래를 했다는 등의 관련 의혹이 제기됐지만 대부분 해명됐다. 또 이 재판관이 보유한 주식을 전량 처분했다. 결국 논란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 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마무리됐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법조인 부부가 오랫동안 주식 거래를 통해 상당한 재산을 보유했다는 사실과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다는 점만 남았다. 그러나 공직자가 수십억 원의 재산을 보유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논란이 되고, 비판을 받아야 하느냐는 의문은 생긴다. 이 재판관 부부의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하면 ‘충분한 소유’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국민의 눈높이’라고 불리는 관점이 이 재판관을 재산 보유를 평등과 불평등의 관점에서 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법률가라도 주식 거래로 그렇게 많은 재산을 벌어들인 것은 과했다는 인식이다. 그렇다면 앞선 의문은 사회학과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풀어야 할 부분이다.
 

경제적 평등주의는 과연 선(善)인가?
 

실마리는 최근 출간된 정치철학자 해리 G. 프랭크퍼트 프린스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책 <평등은 없다>에서 찾을 수 있다. 프랭크퍼트는 책에서 ‘경제적 평등주의’를 절대적인 선(善)으로 여기는 태도를 비판한다. 프랭크퍼트는 “경제적 평등주의의 근본적인 오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많이 가졌는지 그리고 각자가 자신이 가진 것으로부터 얼 마나 큰 효용을 얻었는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어떤 사람 이 다른 사람보다 더 적게 가졌는지 여부만이 도덕적으로 중요하다고 가정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프랭크퍼트는 이를 ‘오류’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소득이 적은 사람이 중요한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부유한 사람에 비해 많다는 그릇된 가정에 있다”고 강조한다. 나와 누군가의 소득의 차이는 도덕적인 개념이 개입할 부분이 아닌데, 경제적 평등주의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소득의 차이, 경제적 불평등은 ‘나쁜 것 같다’는 막연한 도덕적 바탕을 밑 바탕에 깔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프랭크퍼트는 재산이 많을 수록 정치·사회적으로 유리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프랭크퍼트는 “매우 부유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상당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며 “이런 유리함을 이용해 선거와 규제 과정에 부적절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이어 “선거와 규제의 왜곡과 악용을 막기 위한 입법 및 규제를 통해 그런 이점이 초래할 수 있는 반(反)민주적 결과들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이미선 헌법재 판관이 많은 재산을 보유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과한 점이 없지 않다.
 

불평등 해소보다 ‘빈곤’ 해소에 집중해야
 

 

프랭크퍼트는 불평등 자체는 죄가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평등에만 초점을 맞추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잘못 짚는 것이라고 한다. 프랭크퍼트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빈곤과 과도한 풍요를 모두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고, 그 결과는 분명 불평등의 축소”라며 “하지만 불평등의 축소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될 수 없다. 경제적 평등은 반드시 실현해야 할 도덕적 이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어 “우리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사회 구성원 일부는 충분한 수준 이상의 부를 소유함으로써 안락을 누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한편 다수의 구성원은 가진 것이 너무 적은 사회를 개선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을 악(惡)으로 규정하는 태도가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프랭크퍼트는 주장한다. 프랭크퍼트는 “경제적 불평등이 도덕적으로 중요하다는 잘못된 가정하에 평등에 매달릴수록 사람들은 자기 고유의 이해관계 목적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소유한 화폐량에 의거해 특정 수준의 소득이나 부에 만족하게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경제적 평등주의는 사람들이 자신이 가진 상대적인 화폐 보유량은 고려하지 않고 산정한 부를 목표로 삼게 만든다는 것이다.

 

여기서 프랭크퍼트는 ‘소외’라는 개념을 끌어온다. 즉 다른 사람들의 재산은 자신을 위해 추구하는 합리적이고 적절한 삶에 필요한 그 무엇인가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프랭크퍼트는 “다른 사람들의 상황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면 화폐와 관련된 자신의 목표들을 설정할 때 가장 결정적인 준거가 되는 기본적인 과제를 소홀하게 된다”며 “자신의 가장 참된 욕구, 이익 목적들을 효율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힘들어진다”고 말한다. 경제적 평등의 도덕적 중요성을 과장하는 것은 우리를 자신의 고유한 현실과 분리시키고, 진정으로 우리의 것이 아닌 욕망과 필요에 눈을 돌리게 만드는 소외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프랭크퍼트가 말하는 또 다른 평등주의적 사고의 해악은 소유의 개념에 대해 혼란을 주는 것이다.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대체로 어떤 사람에게 무엇이 어느 정도 있으면 충분한가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평등한 몫’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이 훨씬 더 간단명료하다. 충분한 소유보다는 평등한 몫의 소유가 개념상으로도 이해하기 쉽다. 이 때문에 평등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충분성의 이론을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프랭크퍼트는 경제적 평등주의가 널리 받아들여지면서 ‘충분한 소유’라는 개념이 제기하는 분석적이고 이론적인 쟁점들을 체계적으로 탐구하는 중요성이 가려졌다고 한다.
 

‘평등의 원칙’보다는 ‘충분성의 원칙’

 

결국 프랭크퍼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평등의 원칙’ 아닌 ‘충분성의 원칙’이다. ‘충분성의 원칙’에서 ‘충분’의 개념은 기준을 충족시켰다는 의미에 가깝다. 어떤 사람이 충 분한 돈을 갖고 있다는 말은 그가 많든 적든 지금 가진 돈에 만족하거나, 지금 가진 돈에 만족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미다. 삶이 불만족스럽더라도 그 원인이 돈에 있지 않다. 다만 여기서 충분은 ‘입에 풀질하는 수준’은 아니다.

 

충분성의 원칙의 핵심에 대해 프랭크퍼트는 “돈의 분배와 관련한 유일한 도덕적 고려사항이 사람들이 경제적 궁핍을 면할 만큼의 돈을 갖고 있느냐 하는 점”이라고 말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경제적 평등주의, ‘평등의 원칙’은 다른 사람이 얼마나 가졌는지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현실을 잃어버리게 만든다고 했다. 하지만 ‘충분성의 원칙’은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만큼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결정이다. 자신의 현재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바랄 수 있는 대안을 남과 비교하는, 외재적 비교가 필요하지 않다. 대신 자기 삶에 대한 내재적 평가에만 힘 쓴다.

 

프랭크퍼트는 자신의 현재 상황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합리적이지 않다거나 부적절하다는 평등주의 옹호론 의 비판에 대해 반박하기도 한다. 프랭크퍼트는 “불평등은 결국 순전히 형식적인 특성일 뿐이며, 양자 관계가 바람직하거나 가치 있는지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는다”며 “진정한 도덕적 관심사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것”이라고 확신한다.

 

프랭크퍼트는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에 만족해할지 아닐지 알고 싶거나 자신의 복지 수준을 평가하고 싶을 때, 정말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개인적인 평가”라며 “자신의 삶의 과정이 자신의 개인적 능력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 자신의 특정한 필요를 얼마나 잘 충족시키는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얼마나 잘 실현하는지 등에 대한 현실적인 추정치를 토대로 평가를 내릴 것”이라고 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다른 사람의 상황과 비교해 자신의 상황을 평가하는 것은 핵심적이지 않다.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는 건 ‘존중’

 

 

프랭크퍼트는 평등 그 자체로는 도덕적 중요성이 전혀 없다고 단언하며, 평등주의의 도덕적 중요성을 과장하는 경향이 존중에 의한 대우와 평등한 대우 간의 차이를 오해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즉 존중에 의한 대우와 평등한 대우는 같지 않고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과 존중의 근본적인 차이는 초점과 의도와 관계가 있다. 관심의 대상에 대해 평등은 각자가 타인과 동일한 것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일 뿐이지만, 존중은 좀 더 개인적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을 존중을 갖고 대우한다는 것은 그의 특정한 인격이나 상황에서 해당 문제와 직접 관련되는 측면들에 기초해서 대우한다는 것이다. 존중을 갖고 누군가를 대한다 는 것은 그들에게 특별한 혜택이나 손해를 부여하는 것을 배제한다.

 

예를 들어 케이크를 10명이 1/10씩 나누는 이유가 프랭크퍼트는 케이크를 평등하게 나눠주거나 불평등하게 나눠 줄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단순히 평등이 불평등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랭크퍼트는 특별한 이유 없이 사람들을 똑같이 대우하게 만드는 것은 평등과 선제적인 도덕성이 아니라 존중과 공정성의 도덕적 중요성이라고 주장한다.

 

프랭크퍼트는 “우리 삶에서 평등에 대한 요구는 존중에 대한 요구와 매우 다른 의미를 갖는다”며 “평등의 욕구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주장이 없다. 단지 타인들과의 평등에 대한 관심 때문에 자신의 특성이나 자신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과는 다른 고려들에 따라 자신의 목표를 정한다” 고 지적한다. 다른 사람과의 평등에 대한 관심은 자신의 진정한 꿈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프랭크 퍼트는 “진정한 꿈은 타인들의 생활 조건이 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의 특징에서 나온다”고 확신한다.

 

프랭크퍼트는 세상에 널리 퍼져있는 평등이 그 자체로 중요한 도덕적 이상으로서 근본적인 가치를 갖는다는 믿음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근본적인 도덕적·사회적 가치를 지닌 것들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라고 강조한다.

 

MeCONOMY magazine Ma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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