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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한국의 자랑스런 예(禮) 정신을 살리는 방법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7)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우리나라는 유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예 정신이 돈독했다. 중국으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 받았을 정도로 조선 선비들의 예절 지킴은 각별했는데, 오늘날에는 그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자랑스런 우리 예 정신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전통의 예 정신이 어떻게 사라졌는지, 회복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였다고 말한다. 성리학이란 안으로는 덕을 닦고 밖으로는 예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 덕과 예는 손바닥의 양면과 같다. 조선은 덕과 예로서 백성을 다스리려는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덕은 수양을 중시하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수양 정신은 참으로 대단했다. 예는 존비와 귀천, 장유, 친소의 차별성으로 나타났다. 이 ‘차별성’이 결국 문제가 되고 말았다. 고조선 이래 우리나라가 건강하게 간직하고 있던 예 정신이 법전화된 중국 예제가 들어오면서 흔들리게 된 것이다.  

 

예학 연구가 김시황 선생의 저서 「한국예학연구논고1(동양 예학회 간)을 보면 조선 시대 예속의 뿌리를 이룬 「주자가 례」는 고려 말에 전래됐다. 「주자가례」는 남송의 주자가 편찬한 책이다. 이것은 고려말 안향이 성리학과 함께 들여 온 것이라 한다. 고려사절요 공양왕조에 보면 ‘지금부터는 일체 주자가례를 따라서 대부 이상은 3세까지 제사를 지내고, 6품 이상은  2세까지, 7품 이하에서 서인에 이르기까지는 그 부모만 제사를 지내도록 하며, 깨끗한 방 한 칸을 가려서 감 실을 만들어 신주를 간수하되 서쪽을 윗자리로 삼을 것이며 초하루와 보름에 반드시 술잔을 드리고 밖에 나가고 집에 들어올 때에 고하고, 철을 따라 새로 나는 음식물을 올리며 기일에는 제사를 지내고 매년 세 명절과 한식을 맞아서는 조상을 추모하는 풍속을 행하게 할 것이며 이를 어기는 자는 불 효로 논죄하십시오’라고 왕에게 아뢴 소가 기록돼 있다. 제 사상에 오르는 음식까지도 벼슬의 직위에 따라 구분돼 차리도록 정해졌다.

 

고려 충렬왕 시절 ‘판전농시사’를 지낸 윤구생이 집에 사우를 짓고 3대 제사를 지내는 등 주자가례를 잘 했다 해 나라에서 효자비를 세우고 조세와 부역을 면제 받았다는 기록도 고려 사의 기록도 있다. 고려 말에 일반 사람들도 부모 상중 28개 월간은 정해진 날에 제사를 지냈으며 3년 상중에는 혼사나 잔치를 할 수 없었다.
 

주가가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일상생활에도 주요해져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국가의 기초를 세운 조선에 들어와서 주가가례는 본격적으로 보급돼 후기로 갈수록 일상생활의 주요 부분이 됐다. 한국국학진흥원 박종천 박사가 최근 펴낸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글항아리 간)에서 예와 관련된 원문 구절을 참고해 인용한다.
 

“예라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옛것을 닦아서 그 시초를 잊지 않는 것이다.”(예기)
 

“나라에는 네 밧줄이 있다. 한 밧줄이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 밧줄이 끊어지면 위태로워지며, 세 밧줄이 끊어지면 뒤집히고, 네 밧줄이 끊어지면 멸망한다. 기우는 것은 바로 잡을 수 있고, 위태로운 것은 안정시킬 수 있으며, 뒤집히는 것은 일으킬 수 있으나, 멸망하는 것은 다시 손댈 수 없다. 무엇을 네 밧줄이라고 하는가? 첫째는 예, 둘째는 의, 셋째는 염(廉), 넷째는 치(恥)이다. 예는 절도를 넘지 않는 것이고, 의 는 스스로 나아가지 않는 것이며, 염은 악을 덮어두지 않는 것이고, 치는 그릇된 것을 좇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절도를 넘지 않으면 윗사람의 자리가 평안해지고, 스스로 나아가지 않으면 백성들이 교묘하게 속이지 않으며, 악을 덮어두지 않으면 행실이 저절로 온전해지고, 그릇된 것을 따르지 않으면 사악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관자)
 

“도덕과 인의는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백성을 교화 하고 풍속을 바로잡는 것도 예가 아니면 갖추어지지 않는다. 임금과 신하, 윗사람과 아랫사람, 부자와 형제의 관계도 예가 아니면 안정되지 않는다. 스승을 섬기는 것도 예가 아니면 친밀해지지 못한다. 법을 시행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위엄이 서지 않는다. 기도하고 제사하는 것도 예가 아니면 정성스럽지 않고 엄숙하지 않다.”(예기, 곡례상)

 

“법제로 이끌고 형벌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해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리면 부끄러워할 뿐만 아니라 바르게 된다.” (공자)
 

“남과 나란히 앉았을 때에는 팔을 옆으로 벌리지 말아야 하며 서 있는 이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꿇어앉아서 주지 않으며, 앉은 자에게 무엇을 줄 때에는 서서 주지 않는다”(예기, 곡례)
 

“군자의 낯빛은 느긋하고 침착해야 한다. 존경하는 분을 뵐 때는 삼가고 공손해야 한다. 발걸음은 묵직하게, 손놀림은 공손하게, 눈 모습은 단정하게, 입 모양은 지긋이 다물고, 목소리는 조용하게, 머리를 곧게, 기상은 엄숙하게, 서있는 자세는 덕스럽게, 얼굴은 장중하게, 앉아서는 한가롭게, 말은 부드러워야 한다.” (예기, 옥조)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논어)

 

“예는 오고가는 것을 숭상한다.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 것은 예가 아니다. 오기만 하고 가지 않는 것도 예가 아니다. 사람이 예를 갖추면 편안하지만, 예가 없으면 위태롭다. 무릇 예 는 자기는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다. 부귀하면서도 예를 좋 아하면 교만하고 음탕하게 되지 않으며, 가난하고 천하더라 도 예를 좋아하면 뜻을 꺾을 수 없다.”(예기, 곡례상)

 

 

예 정신이 예제·예법이 되면서 지키기 어려워진 듯
 

중국의 예 관련 글을 보면 주자가례가 나오기 전에는 예 정신을 지키기 어렵지 않았는데, 주자가례가 나와서 조문화해 ‘강제성’을 띠고 그것이 조선에 와서 더욱 그런 경향이 강화 된 듯하다.  앞서 예란 차별에 근거를 둔다고 했는데, 이런 점은 자연히 실행하는 과정에서 지역마다 가문마다 혼란이 오기 마련이다. 이런 번잡과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예학이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17세기에 활동했던 사계 김장생이 이런 복잡함을 개선하려는 취지로 조선 예학을 정리했다. 김장생은 말년에 「주자가례」를 비롯해 정자, 장자, 이황, 이이 등의 예설을 참고해 상례와 제례에 관한 문답서인 「의례문해」를 썼다. 이 책을 보면 나라에서 3대 제사를 지내라 했는데 4대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았으며 양반들의 첩과 서얼도 많아 관혼상 제 죄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가난한 백성들이 실제로 주자가례를 따르기는 어려웠을 터,  형편이 넉넉한 양반들은 가례의 본질보다 가세와 가풍을 과 시하는 방향으로 흘러, 칭송 받았던 예 정신이 어느덧 형식 화, 허례허식으로 변질됐다. 형식화, 허례허식화가 본질과 형식이 불일치되는 현상을 고착시킨 것이다.

 

1970~8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 제례를 놓고 친족 간에 다툼이 있을 정도로 예를 따졌다. 부모는 당연히 모시는 것으로 여겼는데, 오늘날에 그와 같은 효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최초의 시점에서 멀어질수록 초기의 정신은 부패해지고 껍데기만 남는 것은 인간의 태생적인 연약함이자 약점이다. 본질과 형식의 불일치 현상은 고대 사회나 오늘날이나 전혀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이들이 옛 사람들과 사회의 타락을 너무 야멸차게 비난할 자격은 없다고 할 수 있다. 현대 학자들이나 저술가들 중에 간혹 조선조 예 정신의 타락을 격하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역사적·심리학적 이해가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모름지기 인류가 창조한 거룩한 종교와 사상은 한결같이 후대로 내려 가면서 제창자의 뜻에서 이탈해왔다. 인류의 역사란 고찰해 보면 종교와 사상과 제도와 도덕윤리, 뭇 규정들이 인간들의 욕망으로 인해 철저히 타락하는 기록일 뿐이다. 우리는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될 일이지 선조들을 혹독하게 비판할 자격은 없다.
 

 

예의 근본인 효심, 현대 한국 문화에서 되살릴 수 있을까

예는 천지와 선조의 근본을 잊지 않고 그 본지를 따르는 것 이라고 할 때 효가 가장 근원적 덕목임을 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전통 문화는 충보다 효를 더 중히 여겼다. 앞서 밝힌 대로 건강한 예와 효 정신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인간의 욕망에 의해 형식화돼 건강성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런데 모든 허물을 인간의 욕망과 시류의 퇴색으로만 돌리는 것이 마땅한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예와 효를 강제성을 띤 법과 의례로 만들면서 본래의 정신이 무거운 족쇄로 변질돼 간 건 아닐까. 아무리 좋은, 아름다운 정신과 사상, 철학도 조문화돼 위에서 아래로 내리 누르면 반 발심이 싹트게 된다. 더 나아가 그런 것들이 실생활과 맞지 않게 되는 가운데 관행화, 관습화로 굳어지면 반발심은 확산 돼 불평불만의 표적이 되고 만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효’가 ‘문전박대’의 직전 상황에까지 이른 게 이와 같은 경위에서 비롯된 것 같다.
 

좋은 ‘정신’의 선양은 제도화보다는 포상과 기념식, 축제화가 효과적인 듯 

 

근래에 포상제 중에서 관민 가릴 것 없이 가장 성공한 것이 ‘LG 의인상’인 것 같다. 2015년에 첫 수상자를 낸 이래 주로 언론에 보도된 의인들을 선정해 포상해오고 있다. 착하고 의로운 행위가 따끈따끈하게 알려질 때 즉시 포상하는 타이밍도 포상의 효과를 높이고 있다.

 

선진국은 기념식과 축제, 각종 포상제가 매우 발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의 왕실 행사, 미국의 전사자 및 유공자 장례식, 로마 교황청 행사, 유대인 절기 행사 등은 ‘장엄’ ‘경건’ ‘희 생’의 감정선을 한껏 고조시킨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각종 기념식은 거의 형식화돼 버린 것 같다.

 

기념식은 주최 측이 억지로 하면 안 된다. 주최 측과 참가자 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기념식의 정신을 되새길 때 감정선이 울려서 응어리가 풀리고 뇌리와 유전자에 각인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21일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국 제공항에서 독립유공자 유해 송환식을 직접 주관한 것은 잘 한 일이다. 애국정신이란 이와 같이 진정성 있는 행사를 통해 전수되는 것이다.

 

안중근의 의거를 그린 뮤지컬 ‘영웅’과 같이 뛰어난 예술작품도 정신 선양에 효과적이다. 우리나라의 축제를 보면 그저 먹거리와 시끌벅적한 술 놀이판만 있고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뿐만 아니라 지역축제의 제목만 다를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우리나라 축제는 정신은 없고 육체만 있다고 할까. 기억에 남는게 없으니 다시 올 생각이 안난다. 정신이라고 해서 꼭 고상한 것을 말하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의 특징을 잡아 그것이 충분히 표현돼 발산되도록 해야 한다.
 

마이크 소리는 요란하나 감동의 울림 없는 우리나라 축제 아쉬워
 

우리나라의 축제는 마이크 소리는 요란한데, 감동의 울림이 없다. 3류 무대의 천편일률성이 특징이면 특징이랄까. 세금 낭비의 현장이라고 혹평을 받아 마땅하다.

 

그 원인이 뭘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단체장의 선거용, 행사 예산의 나눠먹기에 혐의가 간다. 무엇보다도 축제 행사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이 큰 문제다. 지역 축제는 지자체장이 예산을 쥐고 있다고 해서 주도해선 안된다. 어디까지나 민간 전문가가 주도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예 정신 선양을 아직까지는 중국과 일본도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한국만이 할 수 있는 정신이다. 정조의 예 정신을 잘 살리는 축제는 세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텐데 지역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 같다. 정조능행차에 효 정신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됐으면 한다. 조선 중후기에 예를 실천한 선조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을 발굴해 울림이 있는 행사로 발전시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MeCONOMY magazine Jun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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