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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유엔 손길 잊지 않는 보은 정신(1)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38)

오늘날 대한민국은 경제와 과학기술, K-한류 등에서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고 세계 는 우리나라를 배우려고 하고 있다. 이런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유엔의 품속에서 태어나고 곧이어 터진 6·25전쟁 중에 유엔의 많은 나라가 전해준 구호품으로 생명을 얻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유엔과 한국」을 저술한 최동주 숙명여대 교수는 “한국과 유엔은 같은 해인 1945년에 사실상 나란히 출범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어 대한민국은 유엔으로부터 나라 세우기, 전쟁 구호, 경제 재건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지원을 받는 첫 수혜국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래 내용은 「유엔과 한국 1945-1973」을 참고삼아 서술했다. 식민지 한국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았지만 남과 북은 각각 미군과 소련군의 군정 아래서 통일된 나라를 세우려고 미-소 공동위원회를 설치하며 논의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신생 대한민국의 건국 문제는 결국 유엔으로 넘겨졌다. 1947년 11월 14일 유엔총회의 결의에 따라 결성된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UNTCOK)이 1948년 1월 7일 입국했다. 임시위원단 참가국은 호주, 캐나다, 중국(오늘날 대만), 엘 살바도르, 프랑스, 인도, 필리핀,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9 개국이었다. 당시 소련은 남북한에서의 유엔 활동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주장을 펴서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우크라이나는 불참했다.

 

임시위원단은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감독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은 1948년 12월 12일 유엔총회의 결의로 공식적으로 승인 받았다.

 

대한민국은 정부가 수립되자 즉시 유엔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비록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옵저버 자격밖에 얻지 못했지만, 유엔 산하 기관에 적극 가입했다. 1949년 세계보건기구(WHO),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이 사회(ESCAP), 식량농업기구(FAO)에 회원국, 또는 준회원국으로 가입했다.

 

1950년 전쟁 직전인 3월에는 유엔아동기금(UNICEF)과 기본협정을 맺었고, 전쟁을 며칠 앞둔 시점에 유엔교육과 학문화기구(UNESCO)에 가입했다. 마치 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안듯 유엔 산하기관에 가입함으로써 전쟁 발발 후에 유엔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신속히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최동주 교수는 평가했다.

 

임시위원단은 1948년 12월 ‘임시’라는 단어를 빼고 유엔 한국위원단(UNCOK)으로 대체되어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았다. 참가국은 호주와 중국(대만), 엘살바도르, 프랑스, 인도, 필리핀, 터키 등 7개국이다. 유엔 한국위원단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38선에서 벌어지는 남북한 간의 군사적 대립상황을 조사하여 보고하는 일이었다.

 

한국위원단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유엔에 보고했고 이로 인해 유엔군 참전이 신속히 이뤄지는 데 기여했다.

 

한국전쟁 중에 유엔의 민간구제 활동은 유엔사령부 (UNC) 산하의 유엔 한국 민사지원사령부(UNCACK)에서, 전쟁 후에는 유엔한국재건단(UNKRA)에게 주로 맡겨졌다. 유엔한국통일재건위원회(UNCURK)도 민간구제 활동을 보조적으로 수행했다.

 

유엔한국민사지원사령부에 구호물자를 지원한 나라는 30개국이고, 국제단체는 국제 난민기구, 유엔아동기금, 세계보건기구, 유네스코, 케어(CARE),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 등 17개이다.

 

유엔한국민사지원사령부의 공중보건 전문가들이 한국에 도착한 것은 1950년 9월이었다. 전쟁 개시 3개월 만에 24만 명의 성인과 어린이들이 질병과 기아로 사망한 상태였다. 대부분은 피난민들이었는데, 전염병 확산이 가장 우려 되던 시기였다.

 

전염병 중에서 발진티푸스, 장티푸스, 콜레라, 천연두 예방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나 백신과 DDT 등이 긴급 공급됐고 공중보건품과 구호품이 서울과 경기도에 공중투하됐다. 이처럼 신속한 조치로 그해 11월 전염병 확산을 저지하는 데는 성공한 것으로 보고됐다.

 

당시 의료인력을 파견했던 나라들은 노르웨이, 네덜란드, 덴마크, 영국, 캐나다, 멕시코, 페루, 미국, 프랑스, 시리아, 중국(대만), 태국 등이었다. 이듬해인 1951년 9월 한국인의 70% 이상이 앞서 든 4개 전염병의 백신을 접종했다. 유엔의 공중보건 위생 분야 실적은 기적이라고 말할 정도로 많은 인명을 구해냈다.

 

1950년 9월 대구 인근에 피난민은 30만 명이었다. 유엔 보건복지파견대는 이들을 대상으로 긴급히 식량을 보급했다. 한국전쟁 중 피난민은 298만 명으로 내국인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유엔의 식량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엔군 병사들은 피난민들에게 자신의 전투식량을 건네준 경우도 많았다고 전한다.

 

1951년 10월 5일 서울 시청 앞에서 있었던 식량 배급 첫날 수많은 사람이 구호품을 받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파괴된 주거지를 복구하기 위해 1951년 1만 호의 주택건설이 추진됐고, 5천 개의 텐트가 긴급 공급됐다. 또 식량 증산을 위해 비료도 수입해 농촌에 공급했다. 이어서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4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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