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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


4.19정신 살리지 못한 정치문화(2)

한국 정신문화를 찾아서(40)

-  타협과 민주적 거버넌스 부족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에 대한 민심 이반의 표심은 뜻밖에도 조봉암 후보의 선전에서 나타났다. 조봉암은 216만 표를 획득해 이승만의 504만 표에 많이 미치지는 못하지만, 절반에 가까운 지지력을 증명했다. 당시 자유당이 자행한 관권과 금권 선거를 감안한다면 놀라운 득표였다. 이것은 자유당과 민주당 등 보수당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줬다.

 

 

조봉암은 3년 뒤인 1959년 간첩 혐의가 씌워져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되는 비운을 맞게 된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의 염증은 1958년 5월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나타났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압승하여 79석을 얻었다. 자유당의 126석에 비하면 아직 멀었지만 정권 교체의 가능성 이 한층 밝아진 셈이었다.

 

제4대 국회 때부터 양당 정치 시작

 

한국 정당 정치사를 논할 때 한민당과 민국당 등 초기 당의 역할이 지나치게 과도하게 서술된 측면이 크다. 제헌 국회의 의석을 보면, 무소속이 85석으로서 전체 득표율의 40.3%를 차지했다. 그 다음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55석, 한민당 29석, 대동청년단 12석, 조선민족청년단 6석 순이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신탁통치를 반대하자는 취지로 이승만과 김구, 김규식 등이 연합해 결성한 모임이다. 김구와 김규식은 이승만의 단독정부에 반대해 탈퇴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는 제헌 국회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냈으나 소속 의원들은 대한국민당과 민국당, 일민구락부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 당시 독립 촉성 국민회가 오늘날 의미하는 정당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정치에 뜻을 같이하는 느슨한 단체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도 정당을 가지고 정치를 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제2대 국회 선거에서는 무소속 의원이 더욱 늘어나 전체 득표율 62.3%로 126석을 차지했다. 그리고는 제1당과 제2당 격인 대한국민당 24석, 민국당 24석 동수를 얻었고 국민회 14석, 대한 청년당 10석이었다.

 

초대와 2대 국회 시대는 아직 정당이 뿌리내리지 못해 민주주의 맹아기였음을 보여준다.

 

대한국민당은 1948년 11월 신익희, 윤치영이 창당한 조직으로서 초기엔 이승만을 지지하는 여당 성격을 띠었으나 신익희가 민국당에 합류하게 되면서 힘을 잃게 된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는 명실공히 여당인 자유당이 투표 캠페인에 나서 압도적인 의석수인 114석을 얻었다,

 

그 다음 무소속 68석, 제1야당인 민국당은 15석에 머물렀다. 제3대 국회도 결코 정상적인 민주 정당 체제가 정착되지 못하고 자유당의 일방적 정국 운영이 예고된 바나 다름없었다. 1958년 5월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가서야 자유당 126석, 야당인 민주당 79석, 무소속 27석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무소속이 많긴 하지만 야당이 여당을 견제할 만한 의석을 가지게 된 최초의 민주주의 정치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3·5 부정 선거에 이르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이승만 대통령이 4사5입 개헌을 통해 3선 대통령까지는 했다고 하더라도 자유당 내에서 유력한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들이 존재하고 공정한 경선이 이뤄졌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자유당은 이승만을 위해 만들어진 당이었고, 그의 비서 출신인 이기붕이 부통령 후보로서 두 번씩 출마할 정도 당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당내 민주화는 애초부터 성립하기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1960년 4대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조병옥이 투표를 한 달 앞두고 미국에서 신병 치료 중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이제는 부통령 선거 대결로 초점이 모아졌는데, 자유당에 대한 민심은 바닥을 친 상황에서 민주당의 장면 후보에 비해 여러모로 열세인 이기붕 후보는 갖은 부정 선거를 동원해 당선하고자 했다. 그 결 과 4·19혁명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4·19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은 부정 선거였지만 근원적인 원인은 자유당의 비민주적 운영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4·19 혁명은 민주주의 체제의 근간인 선거 규칙을 계속 흔들었던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 체제를 정상화한 점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다.

 

4·19혁명 이후 민주당도 타협 정치와 효과적인 행정 거버넌스 보여주지 못해

 

그러나 4·19혁명 이후 정권을 인수한 민주당이 정상화된 민주주의 체제를 실질적으로 정상 운영하는 데까지는 역량이 부족했다. 가장 큰 문제는 민주당 내 구파와 신파의 갈등이었다. 구파는 한민당과 민국당의 계보를 잇는 세력을 말하고, 신파 는 4사5입 파동 이후에 새로 들어온 파벌을 말한다. 구파의 영수는 윤보선이었고 신파의 영수는 장면이었다. 이들은 끝내 갈라서 구파는 4·19혁명이 일어난 지 5개월 만에 신민당을 창당했다.

 

문제는 그 이후 신파의 민주당만이라도 단결하여 정책 정당으로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또다시 당내 파벌로 갈려 당권 싸움을 벌였다. 4·19혁명 후 13개월 만에 박정희 장군이 주도한 5·16 쿠데타 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민주 정치제도 도입 76년, 타협하고 합의하는 정치 보여주지 못해

 

집권 여당이 국민에게 정상적인 국정 운영을 보여주기엔 너무나 짧았고 민주정치의 경험과 능력도 부족했다. 대한민국에 민주 정치제도가 도입된 지 76년이 됐지만, 타협하고 합의하는 정치문화는 여전히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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