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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감옥으로부터 사색’ 출간 30주년, 우리시대 새로운 고전

-1988년 故 신영복 선생 서간집…30년 동안 스테디셀러 -20대와 60대까지 세대를 관통하는 울림 -조용한 ‘혁명적 글쓰기’로 세상을 바꿔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따뜻한 가부장제’라는 한계도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올해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출간 된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신영복 선생은 지난 2016년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그의 글을 살아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책이 처음으로 출간된 것은 1988년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1969년 1월부터 1988년 5월까지 감옥 속에서 쓰였다. 책 한 권이 품고 있는 시간은 50년이 되는 셈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고전(古典)이라 해 도 부족하지 않은 시간이다. 오랜 세월 동안 독자들이 사랑하고 읽었다 해서 곧바로 고전이 되는 것은 아니다. 30년이라는 시간 속에 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여전히 독자들에게 통찰과 울림을 준다. 지난 11월1일에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30주년을 맞아 기념 심포지엄이 열리기도 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신영복 선생의 글을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선생의 글이 뿜어내는 묵 향(墨香) 속에서 ‘새로운 고전’으로써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대를 관통하는 고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고전’(古典)의 의미를 “오랫 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도 고전이라 부를 만하다. 30년 동안 세대를 뛰어 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우리 문학의 대표적인 수필집으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왜’라는 질문이 남는다.

 

신영복 선생이 20년 동안 영어(囹圄)의 몸으로 써나간 글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그토록 독자들을 매료시켜왔을까. 지난 11월1일 열린 출간 30주년 심포지엄에서 오길영 충남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는 “모든 독서는 읽는 이의 조건을 반영한다”는 말로 이를 정리했다. 오 교수는 “30년 전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주의 깊게 읽었던 구절과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지금, 마음에 반향을 일으키는 구절이 조금 다르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고전의 힘’이라는 것이다. 30년 전 청년 시절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글 쓰는 ‘청년’ 신영복과 자신을 동일시했지만, 지금은 청년 신영복이 엽서를 보낸 부모의 시각에서 글을 보게 된다.

 

오 교수는 “좋은 작품은 그 작품을 읽는 독자의 조건에 각기 울림을 준다”며 “고전 은 20대에게는 거기에 맞는, 40대에게는 또 그 나이에 맞는, 60대에게도 거기에 맞는 무엇인가를 매번 새롭게 던져준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바로 그런 책”이 라고 강조했다. 오 교수는 “대부분 ‘베스트셀러’는 출간된지 1년이 지나면 잊히지만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울림을 주는 책이 바로 좋은 책”이라며 “30년이 지나도 그 울림을 간직하는 책은 ‘고전’이 라 불릴만하다. 신영복 선생의 책은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는 좀 더 구체적으로 독자들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받아들이는지를 살폈다. 천 교수는 신영복 선생이 연루됐던 통일혁명당 사건과 같은 차가운 이미지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속 따뜻한 이야기를 어떻게 함께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후자가 북한과 직접 연계된 좌익조직 사건의 연루자라는 것을 희석 또는 부각하고 ‘인간’이나 성찰을 더 느끼게 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1988년 책의 초판이 나왔을 때 당시 선생의 글을 실었던 ‘평화신문’ 편집자는 초판 서문에 독자들이 “가장 고통스러움 속에서 나오는 평화의 메시지”로 신영복 선생의 글을 읽었으며 “신문에 실린 편지를 읽고 울었다는 사람도 있고, 온몸으로 쓰는 글이기 때문에 심금에 와 닿는다고 하는 사람도, 신 선생을 위해 기도한다는 사람도, 주소를 묻는 사람도 있었다”고 적고 있다. 천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대중적인 스테디셀러가 되는 데에 이와 같은 비극에 대한 최초의 충격과 감동이 아닌 다른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하고, 또 그 요인들은 미묘하 게 갱신돼 왔을 것”이라고 했다. 천 교수는 또 2000년대 초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은 독자들이 인터넷 서점에 올린 독후감(리뷰) 일부를 소개했다.


1) 얼마 전 헤어진 여자 친구를 만났다. 아주 우연히 말이다.

그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 얼굴이 참 좋아 보이네 요. 안정돼 보이구요’ 언제나 강해 보이려고, 남에게 인정받기 위해 인위적인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던 나로서는 의아한 말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나의 얼굴이 좋아 보일까. 그건 바로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있 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그래,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서 때로는 찡한 감동을 때로는 알 수 없는 기쁨에 미소를 짓 곤 했다. 그리고 마음의 안정됨을 느꼈고, 살아있음의 행복 을 느끼곤 했다. 무기수로서 감옥에서 20년을 생활하신 신영복 선생님의 피로 씻어낸 듯한 엽서 글들... 너무도 진실된 글 이기에 마치 맑은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과 같은 글이었다. (2001.2.10)


2) 고등학교 때 읽다가 만 책으로, 얼마 전 어떤 수녀님이 서 른이 가까워오면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말고 하루에 하나씩만 읽고 그것에 대해 하루 종일 생각해 보라고 하셨어요. 고등학교 때는 나와 상관없는 수인의 삶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주옥같은 글 들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요즘 이 책을 읽으며, 정말 아껴서 읽고 성경책처럼 하루 종일 내용에 대해 묵상을 한답니다. (2002.4.28)


천 교수는 이런 일반 독자들의 독후감들을 통해 “가족이나 관계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비정치적이지만 다분히 보편 적인 ‘삶의 지혜’로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는다”고 했다.

 


혁명적 글쓰기로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문학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학과 교수는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을 자기 감열의 산물이라고 했다. 이는 교도소 감시자의 검열 때문에 어조를 낮춘 ‘강제된 낮은 언어’가 아닌 ‘의도적인 낮은 언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신영복 선생 이 감옥에서 얻은 가장 값진 경험 중에 하나는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정치적 글쓰기로는 냉전 문화가 지배적인 한국사회에서 진정한 혁명적인 이야기나 사상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이라며 “그렇게 해서는 한국 사회를 바꾸는 운동은 실패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분이 경험했던 가장 큰 교훈”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 교훈 때문에 다시는 통혁당 조직원으로서의 글쓰기를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만약 안 그랬다면 이분은 출소한 다음 민주화된 국면에서 정치경 제학자로서 정치 평론을 하거나 정치를 하셨을 분이다. 그렇지 않고 계속 낮은 어조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갔다”고 했다. 김 교수는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금지된 것이고, 그렇지만 동시에 그 금지된 것은 또 사실은 우리 시대 모든 사람들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라며 “이것들을 정치적 프로파 간다로 말해버리면 문화적 장애, 정서적 장애, 정치적 장애, 사법적 장애에 부딪친다.

 

신영복 선생은 그렇게 하지 않고 세상을 바꾸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신영복 선생은 대신 굉장히 우회적으로, 힘들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작업을 했다”며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훨씬 더 쉽고 간단하게, 전부 일상의 언어, 낮은 목소리로 삶의 영역으로 치환시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영복 선생의 존재론적 세계관에서 관계론적 세계관으로, ‘화동(和同)의 세계’ 등은 따지고 보면 전부 혁명사상이다”라며 “결국 여기 신영복 선생 글을 즐겨 읽는 사람들은 모두 잠재적인 혁명가들”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마치 넓은 수조에 잉크 방울 하나 떨어뜨려서 천천히 퍼지는 것처럼 작업 하는 사람은 신영복 선생 밖에 없다”며 “신영복 선생은 자기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고난을 통해 사유와 삶을 일치시켰다” 고 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보이는 ‘따뜻한 가부장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면서 독자들 의 공감을 이끌어냈지만 ‘젠더적인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 한계를 보인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작가 은유는 “저 스스로도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끝없는 강박, 좋은 엄마는 아이한테 짜증을 내면 안 되고, 어떤 힘든 일도 참아야 된다는 모성 신화를 스스로 내면화해왔다”며 “이것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했을 때, 제가 남성 작가들이 쓴 책을 너무 많이 읽은 탓이 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신영복 선생의 책도 있었다”고 말했다.

 

은유 작가는 “가부장적 멘탈리티를 계속 재생산하는 장치로 한국문학이 많이 작동했다는 연구도 있다”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면 (선생의) 동생이 배우자감을 고르고 결혼한다고 할 때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 등 긍정적 미래로 열려있 는 여자인가. 현재 속에 닫혀있는 여자인가를 살펴야 한다’고 충고한다. 1975년에 쓴 글인데 여성을 모두 역할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이 본래적 자아를 찾는다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은유 작가는 “계수님한테 쓴 편지에서는 ‘일을 갖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며 “가정에서도 물론 가사라는 이름의 상당한 일거리가 없지 않지만 그것은 대부분 미화된 소비행위일 뿐이다. 능력과 가치를 창조하는 생산 그 자체와는 구별된다고 믿는다. 얼마 전에 읽어본 ‘여성해방의 이론과 실천’을 추천한다고 적고 있다”고 했다.

 

은유 작가는 “또 신영복 선생과 동질감을 느낀 것은 날씨가 화창하면 주부의 감각은 ‘오늘 빨래 잘 마르겠다’고 생각하는데 신영복 선생의 글에도 ‘오늘은 빨래가 잘 마르는 날씨’ 라는 표현이 나온다”며 “이런 면은 감옥에서 (신영복 선생이) 하나의 살림을 영위하는 주체로 생활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언어다. 보통 계수에게 편지 쓰는 남자도 없지만 날씨가 좋을 때 ‘빨래 잘 마르는 날씨’라고 말하는 남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은유 작가는 “요즘 페미니즘 시대의 관점에서 봤을 때 신영복 선생의 문체는 따뜻한 가부장의 문체가 아닌가 한 다”고 했다.

 


더불어 사는 세상


알려진 것처럼 신영복 선생은 현역 장교 신분으로 육군사관 학교와 숙명여대 등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다 1968년 ‘통일혁 명당 사건’으로 기나긴 수형 생활을 시작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20년 동안 감옥에서 만난 수많은 재소자들을 통해 젊은 지식인이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편지라는 형식 속에서 담담히 적은 글이다.

 

일례로 신영복 선생은 1985년 8월 계수에게 보내는 글에서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 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 다”라고 했다.

 

신영복 선생의 ‘관계’에 대한 관점을 엿볼 수 있 는 대목이다. 신영복 선생은 밑바닥 삶을 재소자들과 직접 체험하면서 다시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과 진실을 자신의 몸과 일상생활에 새겼던 것이다. 신영복 선생의 사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감명 받은 많은 사람들이 2016년 선생의 뜻과 삶의 자세를 이어가기 위해 ‘더불어숲’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들은 창립선언문에 서 “양심을 기반으로 한 만남과 소통의 자세를 통해 우리 사 회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 가고자 한다”며 “마을공동체와 협동조합, 시민운동의 각 영역에서 관계론적 인식을 통해 더 넓고 풍성한 관계의 망을 확산시켜 나가겠다”고 했다. ‘감옥 으로부터의 사색’은 우리시대의 새로운 ‘고전’으로서 제 역할 을 계속 해 나가고 있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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