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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상규 박사] 2019년의 회고와 2020년의 기대

 

◆ 2019년을 맞이하면서 ‘황금 돼지의 해’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언론에서는 휘황한 금색으로 빛날 것 같은 예감을 전했다.

 

하지만 예감과는 정반대로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국내를 강타해 축산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분열된 우리 사회도 열병을 앓은 한 해를 보냈다. 2019년 사자성어로 교수들은 ‘공명지조(共命之鳥)’를 뽑았다. 이 말이 두 개의 머리가 한 몸을 갖고 공유하는 운명공동체를 의미하듯이 서로 이기려고 하고 양보나 배려, 타협이 없는 정치계와 사회의 분열은 2019년의 모습이었다. 양분된 국민 사이의 단층선이 점점 더 두꺼워지는 ‘분열사회’ 그 자체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민주화·산업화의 경험으로 관록이 붙은 65세 이상 인구도 15.4%(2019년 11월 현재)나 되는데 빗나간 사회문제를 고민하고 앞장서서 해결하려는 기성세대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배웠다는 계층이 제도를 더 악용해 유리한 지위와 재산을 선점하는 후진국병이 만연한 해였다. 튼튼한 동아줄 때문에 능력에 맞지 않는 과분한 시대를 살아온 몇몇이 2020년에는 국회의원이 되어 입신출세하겠다고 한다.

 

언론이나 방송 등 미디어에서도 국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법조사회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특정 직업을 가진 자들이 정치, 사회, 사건 등의 평론과 행동의 선악기준 판단을 독점하는 편중이 생기고 있다. 방송은 연예인이 아니면 프로그램 편성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들만의 전성시대가 되어있으며 어느 채널을 돌려도 대동소이한 쾌락적 프로그램 편성은 늘어나고 있다.

 

몇십 분의 프로그램을 시청하기 위해 귀에 거슬리는 광고 방송을 몇십 분을 들어야 한다. 국민의 손발이 되고 희망의 대변자가 되어야 할 시민사회나 교육계도 자신들의 이익 지분이 늘어나는 곳에서는 국민이 안중에 없다. 전통과 가치관, 생활방식을 둘러싸고 세대 간, 남녀 간, 계층 간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이런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2020년에 희망을 가지는 것은 사치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 영국에서 제1차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45년 벤저민 디즈레일리(Benjamin Disraeli)는 잘사는 국민과 가난한 국민을 서로 공감도 없고 혹성에서 사는 것처럼 습성도 사고도 식사도 다른 두 개의 국민으로 묘사했다.

 

디즈레일리는 영국이 상류계급과 하류계급으로 분열되어 있는 현상을 비난하며 상류계급이 솔선해 사회계량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경제에 정치가 개입해 분열된 두 개의 국민을 해결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즉, 경제적으로 분열된 두개 국민의 통합을 그는 정치에서 찾았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거꾸로 정치가 두 개의 국민으로 분열시켜 놓았다.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희망과 기대의 좌표가 되어야 할 정치는 자신들이 하는 일의 딜레마에 빠져있다. 최악의 국회라는 평가를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365일 정쟁을 일삼으면서 정권획득에 도움이 되는 일에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과거 투쟁에 능했던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국회이므로 당연할 것이라는 사회 안의 하소연도 들린다. 사회가 양분되어 자신들의 이념성향을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에는 정치의 책임도 클 것이다.

 

 

‘광장정치’에 모인 사람들은 과격한 선전 문구가 쓰인 피켓을 손에 들고 민주주의를 외친다. 이를 두고 일부 위정자는 대의민주주의에 신뢰를 잃은 국민의 직접 민주주의 참여행동이라는 그럴듯한 해석을 하지만 꼭 그렇게만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의 발달역사가 긴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만의 정치문화를 가지고 직접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어딘지 어색해 보인다.

 

◆ 2019년 우리나라는 다양한 분야에서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연초에 발표한 2018년 합계출산율은 0.97명으로 슈퍼쇼크였고 같은 해 고령사회에도 진입했다.

 

2019년에 발표된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7명(2018년)으로 한 마디로 슈퍼쇼크였다. 일부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세계 최하위 출생률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출생아 수는 33만 명에도 미달해 불과 4년 만에 연간 출생아가 10만명이나 감소했다. 2019년에 들어서서도 출산율이 매월 7% 이상 감소하고 있으며 여성인구, 혼인율, 다자녀 출산 등의 지표가 모두 감소 추세이므로 당분간 출산율 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지금 이러한 사회 모습을 만드는데 일조한 반성해야 할 과거가 한두 가지 아니다. 1980년 중반 합계출산율 2.4명으로 출생아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던 때에 통찰력이 부족한 일부 전문가의 ‘인구과잉론’과 근시안적 정책이 현재의 모습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30년도 지난 지금 정부는 올바르고 냉철하고 미래지향적인 판단을 하고 있는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통찰하고 사회변화를 조망하면서 신중하게 만들어 추진해야 할 정책이 몇몇 위정자의 생각에 따라 조변석개하는 일들이 심심찮게 생기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 실시하는 2018년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가 2019년 12월3일에 발표되었다. 기초적인 데이터조차 OECD의 발표와 다르고 발표내용도 성과에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참가국 중에서 몇 등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PISA 평가에서 성적이 높은 국가는 국민의 동질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다문화 학생, 이민가정을 PISA 평가에 참여시켜 그들의 교육상태를 알고자 하는 미국이나 일부 유럽국가와 순위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평가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어떤 문제에 약점을 가지고 있는지, 가정배경이 학업성취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국민들은 더 관심이 있을 것이다.

 

◆ 20세기 중반보다 국민들의 교육받은 기간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나고 정보과학기술의 발달로 보다 편리한 시대가 되었지만 문화 수준은 역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중반, 1990년대 중반, 2000년대 중반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진학률이 정점에 도달했다. 국민이 교육받는 기간은 짧은 기간에 크게 늘어나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 국민의 평균 교육기간은 14년 정도 될 것이다. 1960~70년대에 교육을 받는 60대 이상의 평균 교육기간이 8~9년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교육을 받는 기간은 두배 가량 늘어났다. 그런데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은 학교교육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가 아니라 몇등을 했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학교교육이 지위 선점을 위한 준비단계가 되어 버리고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는 학교력은 다른 나라에서는 유례가 없을 정도의 대학 서열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고등교육의 보편화가 이루어진 사회의 문화 수준은 보잘 것 없다. 일류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많은 정치계 수준, 제도 악용, 사회 분열, 교통 무질서, 생명경시 풍토 등과 같은 현상이 고학력자가 많은 국가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교육받는 기간은 늘어나지만 문화수준은 그와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스럽다.

 

우리나라는 아직 자연과학부문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 주변국인 일본은 20개 이상을 받았고 중국이나 대만인도 받았는데 좋은 머리를 가진 우리나라 국민은 왜 받지 못할까?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서 비판능력을 기르는 교육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이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9 국가경쟁력지수 세부항목 중 ‘비판능력을 키우는 교육’은 전체 141개국 중 82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다른 하나는 학문의 원리를 무시하고 주먹구구식으로 사물을 해석하는 습관이다. 서울 도심에서 수시로 하는 집회에 모인 사람들이 수십만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수백만이 되는 기이한 계산법이 정당화되는 사회에서 학문의 기본원리는 무너지기 쉽다.

 

◆ 19세기 중반 영국 작가 디켄스는 교육에서 인간성 중심의 요소가 배제되고 생활이나 직업에 도움이 되는 사실을 암기하는 것을 교육의 본질로 하는 것을 통렬히 비판했다.

 

디켄스의 비판이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것 같다. 대학교육은 교양과 시민정신보다는 한정된 지위를 더 빨리 선점하기 위한 ‘취업까지의 경쟁’에 열을 올리는 특수한 환경이 되어있다. 유명대학을 나오면 안정된 생활과 돈과 명예가 보장되는 학벌사회에서 ‘수능까지의 경쟁’은 암기 위주의 교육을 조장해 창의력 있고 도전정신을 가진 끈기 있는 청년들을 점점 더 줄어들게 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한 미래를 향해 도전하기보다는 인기 많고 돈을 많이 벌고 안정된 직업을 찾는다.

 

청소년들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과 2000년대 후반에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미래에 회의를 갖게 한 큰 사건들이 있었다. IMF 외환위기와 세계적인 경기침체(리만쇼크)이다. 특히 리만쇼크 이후 미국 금융모델의 붕괴, 이산화탄소 환경문제, 원전 및 원유 에너지 정책의 전환, 중국의 약진, 사물인터넷(IoT)에 의한 정보전달 혁명 등은 세계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 두 번의 큰 사건은 도전적이고 모험심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는 고통을 주었고(반대로 엄청난 부를 거둔 극히 일부의 글로벌 기업도 있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노동의 반대급부가 주어지는 직업은 온존했다. 교원단체, 공무원단체, 노동조합 등의 사회에 대한 발언권과 기득권 보호 본능은 강해져 갔지만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정신으로 실험실과 연구실에서 자신과 싸우며 미래를 설계했던 젊은이들은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각 가정의 자녀 인생관이 바뀌고 아이들의 미래관도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아이들의 으뜸 희망은 과학자였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적이며 모험심 강하고 낙관적이었고 배려심도 높았다.

 

그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기대해도 좋을 만큼 장래를 위해 오늘의 고통을 참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장래관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 도전적인 직업보다는 인기를 많이 얻고 안정적이고 무난한 직업이 우선순위가 되어있으며 인간의 형성을 목표로 하는 학교에서는 교양과 시민정신보다는 동료와의 경쟁에서 이겨 사회 지위를 선점하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미래관을 살펴보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긴다.

 

▲ 지금 아이들이 희망하는 직업들은 미래에도 계속 남아 있을까

▲ 그 직업들이 남아있다면 미래에도 지금처럼 안정적일까

▲ 왜 아이들은 모험심보다는 안정된 생활을 그토록 열망하고 있을까

▲ 아이들이 더 폭넓은 관점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도록 하는 방법은 없을까

 

스밀(Vaclav Smil)의 말을 빌리자면 산업혁명 후 200년간 일어난 변화는 유사 이래 5,000년간 인류가 경험했던 것 중에서 가장 대규모이며 급격한 변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서기 원년에 1억명이었던 인구가 두 배로 늘어나는 데에는 1,000년이 걸렸다. 그런데 20세기에 접어들어 인구 10억명이 늘어나는 기간이 50년, 10년으로 점차 짧아지고 있다. 국제연합의 추계로는 2024년에 80억명을 넘어서고 2038년에는 90억명, 2056년에는 100억명에 달한다. 공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가족구조가 바뀌었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계층의 사회적역할도 달라졌다.

 

한 대륙에서는 저출산이 문제가 되어있지만 다른 대륙에서는 인구 폭증이 문제가 되어 있다. 글로벌 사회라고 국가 간의 담장이 낮아진 것만은 아니다. 글로벌 사회의 공통성이 통제할 수 없는 일들도 너무 많다. 산업혁명은 일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는데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근무하고 이틀을 쉬고 다시 그 이상을 반복하는 기계적인 일상이 되었다. 증기기관이라는 새로운 에너지가 공장에 일거에 보급된 혁명의 결과이지만 컴퓨터의 데이터 처리능력을 새로운 에너지로 하는 과학기술이 디지털화, 네트워크화의 물결을 타고 또 다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에는 안정적 일, 돈 많이 버는 일, 인기 있는 일이라는 고정적이고 획일적인 가치가 점점 더 불확실하게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 미래의 주인공인 이 시대의 아이들이 자기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선택을 결단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총체적으로 힘을 모으는 2020년이 되어야 한다.

 

공업화시대에서는 물질적인 면, 기술적인 면, 경제적인 면에서 과거를 미래와 단순한 연장선상에 두고 예측하고 예상문제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지만 21세기는 연속성과 계속성을 전제로 사회를 이야기할 수 없다. 이처럼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기성세대가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미래의 키워드를 제공하여 어둠을 비추는 반딧불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2020년은 육십 간지로 경자(庚子)년이다. 2020년에 태어날 경자(가상의 주인공)는 2040년경에 대학을 졸업하고 2050년에는 만30세로 사회의 핵심인재가 되어 우리나라의 미래를 가꾸어나갈 것이다. 불과 30년 후에 다가올 미래에 대해 우리는 잘 대비하고 있는가? 아쉽게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고층빌딩은 늘어가고 도로, 터널, 교량 등 사회 인프라는 기하급수적이라 할 정도로 많아지고 있다. 정치인이나 지방의 행정책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아 표시는 나지 않는 사회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곳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국민의 세금을 자신들의 치적으로 내세우면서 눈에 보이는 표시 나는 사업에 경쟁적으로 재정을 쏟아붓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100년이 걸린 산업화를 2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었다. 다만 20년이라는 수치를 신앙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인이 있지만 중요한 사실은 노동력이 기반이 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이미 저출산 사회에 진입해 있는 선진국보다 높은 출산율로 잉여노동력이 있었기 때문에 짧은 기간에 산업화를 이루었다는 점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 2065년이 되면 경제활동인구(15~64세)는 2015년의 3,744만명이 2,062만명으로 거의 반이 줄어든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2015년 654만명에서 2065년에는 1,827만명이 된다.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곤란한 것들이 많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금만 발상을 바꾼다면 최고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적기일 수도 있다. 정부가 꽉 쥐고 만들어온 공공성을 민간에게 개방해 사회가 총체적으로 공공성을 만들어가는 새로운 발상도 하나의 대안이다.

 

◀김상규

도호쿠대학 대학원(석사과정)에서 공공법 정책을, 와세다대학 대학원(박사과정)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저서로 『민족교육: 일본의 외국인 교육정책과 재일 한국인의 교육적 지위』(2017년), 교육의 대화(2017년)가 있으며, 재일본대한민국민단문화상(2011년)과 한국교육학회 운주논문상(2016년)을 수상했다.

 

MeCONOMY magazine Januar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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