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사는 동네는 서울 중심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면 도로 지역이다. 지상 10층 미만의 낮은 건물들과 사이사이에 빌라들이 혼재돼 있는 구시가다. 원룸들이 위치하 기에 딱 좋은 동네인 셈이다. 불과 50미터 이면 도로변에 원룸텔이 족히 10개는 된다.
원룸이 있는 건물의 1층에 주점이 2군데 있다. 바깥에서 주점 안이 훤히 보이는데 좌석이 다닥 다닥 붙어 있는 조그만 규모들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도 그 앞을 지나가다 보면 주로 30대 직장인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좌석을 꽉 채우고 있는 모습을 본다.
원룸 사람들과 주변 직장인들이다. 등산을 좋아해서 토요일 새벽 일찍 주점 앞을 지나면서 보면 어김없이 그때까지 남아 있는 손님들이 보인다. 열악한 주거 환경과 불규칙한 식사와 잦은 음주 습관에 젖어들기 쉬운 원룸생활은 아무리 젊다고 해도 코로나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다시 유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은 지금 흑인 사망사건에 항의한 인종차별 시위에다가 대선 운동까지 겹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유세장에는 마스크를 쓴 참 가자들을 보기 힘들다. 선거 유세장에 모여든 사람들이 무증상 감염자로 전 미국으로 퍼져나갈까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코로나 사망자가 많은 영국에선 해변으로 몰려든 인파 중에 마스크 쓴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브라질과 인도의 확진자는 오히려 폭증 기미마저 보이는 지경이다. 프랑스는 코로나 팬데믹 종식선언을 하고 수고한 의사들에 게 현금보상을 지급하겠다고 하는데 때아닌 시위를 벌였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것은 공공 의료 시설과 장비의 낙후, 의료인들의 처우와 지원 미흡 때문이라며 정부의 의료재정 확 충을 촉구하고 나섰다.
유럽 복지국가의 비극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모든 복지를 끌어안다 보니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이다. 서유럽 복지국가들이 당면한지 오래된 어두운 그림자다.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19 팬데믹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데 반해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마스크를 쓰는 것을 일상생활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도 거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차츰 뿌리내리고 있 는 중이다.
비대면 문화 정착시켜야
정부는 한국판 뉴딜정책에 비대면 산업 육성을 포함하고 있다. 비대면 산업의 육성에 앞서 먼저 ‘비대면 문화’를 정착시켜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대면 문화가 필요한 분야는 교육 기관과 종교 기관, 접대 업종, 전시 및 공연, 도서관 시설 등이다. 교육기관은 이미 이전부터 온라인 교육이 실시되고 있었기 때문에 업데이트된 프로그램과 최신 장비를 보급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정착할 수 있다고 본다.
종교기관도 오래 전부터 종교방송을 하고 있던 곳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프라에선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기도와 헌금 부문에서 교인들의 인식 변화만 따라준다면 온라인 종교 활동이 주요 기능으로 순조롭게 바뀔 것으 로 보인다. 전시공간과 공연장도 거리두기를 하면서 입장료를 좀 높게 책정하면 해결될 수 있으리라 본다.
가장 힘든 분야가 접대업종이다. 접대산업은 사람들과 직접 접촉하는 ‘대면’이 본질적 사업 성격이기 때문이다. 혼밥, 혼술과는 별개로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차 마시고, 밥 먹고 술잔 나누는 건 다른 수요이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에 투명 칸막이 설치한 것들도 등장하고 있다. 모두에 언급한 주점들처럼 테이블과 의자들 사이에 간격이 거의 없는 접대소들에 대한 당국의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지금 가장 방치되고 있는 곳은 국공립 도서관들이다. 국공 립도서관들은 문을 굳게 닫은 채 수개월째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의 경우 기존에 해오던 우편 복사 서비스만 하고 있는데, 너무 안이한 자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 장기화가 불가피해 보이는데, 그러면 계속 도서관 문을 닫아놓을 셈인지, 눈물겨울 정도로 필사적 노력을 하는 공연계 사람들은 보이지 않은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질병본부와 국민들의 합심으로 50명 미만 수준의 확진자 수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만 잘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인 미국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루속히 기행을 멈추고 세계 지도자로서 면모를 찾아주길 바란다. 한국 정부는 ‘위기가 기회’라는 각오와 함께 여야가 힘을 모아 그린 뉴딜 정책에 박차를 가할 것을 촉구한다.
MeCONOMY magazine Jul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