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 매송면 송라1리는 ‘청정지역’으로 꼽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현재 60세대가 오손도손 정겹게 살아가고 있는 송라1리는 예로부터 ‘병실(丙室)마을‘이라고 불리어 왔다.
이 마을에는 수령이 700살(년)을 눈 앞에 둔 매송면 최고령 지정보호수인 아름드리 ’회화나무‘ 2그루가 병실마을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데 이 회화나무들은 왜구침략에 이어 일제수탈, 6.25동란까지 끄덕없이 견뎌낸 것.
지금도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빌면서 회화나무 밑에서 정성껏 준비한 음식으로 제를 올리고 있다.
‘병실(丙室)마을‘ 유래는 솟골 남쪽에 있는 마을로 집들이 앉자 있는 형태가 좌향(坐向)이어서 풍수지리상 병향(丙向)을 하고 있다 하여 선조들이 ’병실마을‘이라고 부른 것이다.
‘병실 마을’ 앞에는 일제치하에서 벗어나기 직전인 광복직전인 1944년에 개교한 ‘송라초등학교’가 82년째 지금도 그 자리를 우뚝 지키고 있다.
이같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에서 어머니와 고모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아 50대 아들로 이어지는 2대가 운영하는 전통 수제찹쌀떡 집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권명화 수제떡’업체가 시골마을에서 탄탄하게 터전을 잡고 성업중에 있는 것.
‘권명화 수제떡’집이 처음 문을 연건 199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찰쌀반죽과 반죽 안에 들어가는 달달한 팥속을 아들과 함께 만들고 있는 찹쌀떡 제조 달인인 권명화 명인(85.여)이 시누이인 이정분씨(74)와 함께 시작하면서부터다.
찹쌀을 찧고 직접 손으로 반죽과 팥속까지 모든 것을 오로지 수제로 만들어서 생계를 위해 시작한 찹쌀떡이 지금의 ‘권명화 수제떡’ 명인 집으로 안착한 것이다.
앞서 권명화 명인은 고향인 화성시 마도면에서 1964년도에, 작고한 남편 이범구씨와 ‘첫선’을 보는 자리에서 그 솜씨를 뽐냈다.
시아비지이신 이종옥옹(작고) 및 남편과 함께 첫 대면(맞선)을 하는 자리였는데 권명화 명인은 학교에서 배운 솜씨로 ‘찹쌀 떡’을 빚어 맞선 자리로 내었고 그 맛을 본 시아버지가 “이런 솜씨라면 대가족을 이끌 ’맞머리느 감‘으로 볼 것도 없다”며 그 자리에서 며느리로 인정했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던 것.
‘권명화 수제떡’이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이석균 대표(56)가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 들면서부터다.
‘권명화 수제떡’이라는 상표브랜드는 물론이고 업체내부에 대한 대폭적인 시설보강 등이 이뤄지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어 나가고 있다.
‘권명화 수제떡’업체에서는 찹쌀떡을 만들 때 분명하게 철학이 담겨져 있다.
찹쌀떡의 주재료인 ‘찹쌀’과 그 안에 들어가는 달달한 맛을 내는 ‘팥’을 사용할 때 반드시 지켜 나가는 것이 있다.
이석균 대표가 그동안 경기도와 경북, 충북과 강원도 및 전라도 등 전국 각지에서 여러 구입경로를 거친 재료 가운데에서도 엄선한 국내에서 맛이 가장 뛰어난 국산재료만을 오로지 ‘고집’하고 있는 것.
쫀득쫀득한 특유의 맛을 내는 찹쌀은 화성시 매송면 야목2리 들판에서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한 ‘백옥(白玉) 찹쌀’을 연중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계약재배를 통해 지역농가도 살리고 좋은 재료도 안정적으로 구입하는 ‘일거양득(一擧兩得)’의 효과를 살려 나가기 위해서다.
‘권명화 수제떡’ 이석균 대표는“야목리 들판은 지역특성상 아주 오래전부터 ‘뻘’로 이뤄졌던 논이라 이곳에서 생산된 ‘백옥 찹쌀’은 유난이 희고 찰지는 등 최고의 재료다”라고 말했다.
특히 찹쌀떡 속에 들어가는 중요 핵심재료인 ‘팥’또한 그냥 ‘팥’이 아니다.
그는 그동안 신품종 등 전국 각지에서 생산된 ‘팥’을 사용해 봤다.
사용해본 결과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재배해온 경북 영주에서 재배 생산된 ‘토종 팥’이 유독 단맛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아냈으며 이후 영주산 ‘토종 팥’만을 고집하고 있는 것.
경북 영주는 고산지대가 많은 지역이어서 이곳에서 생산된 ‘팥’또한 기온차가 많은 지역특성을 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토종 팥’또한 경북 영주지역 농민들과 계약재배를 통해 생산하고, 이를 전량 구입해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권명화 수제떡’업체가 영업을 시작하는 시간은 남들이 곤하게 잠 들어 있는 새벽 2시부터 환하게 불을 밝힌채 분주하다.
이석균 대표를 비롯한 10여 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준비해논 찹쌀과 팥을 재료로 사용해 직접 손으로 빚는 ‘수제 찹쌀떡’을 새벽시간에 매일매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을 마치는 시간은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인 오전 9시가 퇴근시간인데 밤과 낮을 바꾸어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산활동이 끝나면 영업장 내부에는 찹쌀가루 한올, 물한방울 남아 있지 않을만큼 바닥이 백옥찹쌀처럼 하얀 빛이날 정도로 권명화 명인의 철학처럼 위생청결또한 엄격하다.
찰쌀떡 직접 판매와 택배판매, 그리고 배달판매는 주간 근무자들이 맡아서 처리하기 때문에 일반 가게처럼 주간에 운영한다.
‘권명화 수제찹쌀떡’업체는 여느 가게처럼 기계를 이용해 ‘반죽과 겉 피’를 만들고 속재료에 들어가는 ‘팥 앙금’을 만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질 않고 있다.
권명화 명인이 오래전부터 고집해온 그대로, 반죽은 반수동과 손을 거쳐서 쫀득쫀득한 찹쌀떡 겉피를 만든다.
찹쌀떡 속에 들어가는 ‘통 팥’또한 삶는 과정이후에 손으로 일일이 볶는 힘든 과정을 거친 이후에만 재료로 사용하고 있는 것.
통팥을 과하게 삶으면 부스러지거나 또 과하게 볶으면 통팥이 딱딱해져 소비자들에게 팔수 없는 ‘불량 찹쌀떡’이 되기 때문에 수제 조리과정에서 더욱더 신경을 써야만 한다.
이처럼 고달프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겉은 쫀득쫀득하고 속은 달달한 ‘통팥 향’이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흰 찹쌀떡 ▲쑥 ▲흙미 ▲단호박 ▲견과류(예약)가 들어간 4종류의 수제 찹쌀떡이 탄생하고 있는 것.
그래서인지 ‘권명화 수제 찹쌀떡’은 먹어본 사람들이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고 있다.
이같은 땀의 결실로 만들어진 수제 찹쌀떡은 추석과 설 명절 등 최대 성수기에는 몇일씩 밤과 낮을 꼬박 새워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고 있을 정도다.
‘권명화 수제찹쌀떡’업체의 또 하나의 ‘고집’은 판매전략에도 녹아 있다. ‘당일에 만들어 당일 판매’를 경영 철칙으로 삼고 있다.
권명화 명인은 “장사라는 것은 만들어서 팔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업에 임하면 안된다”며“내 집안 식구들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찹쌀떡 하나하나에 철학을 담는 신념이 담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석균 대표와 어머니인 권명화 명인은 현재 ‘권명화 수제떡’업체가 있는 ‘병실 마을’에서 수백년째 살아온 여주 이씨 후손이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이같이 조상대대로 살아온 터전에서 ‘권명화 수제떡’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석균 대표는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업가는 물론이고 동네 어르신들에 대한 예의까지 갖춰 주민들로부터도 ‘칭찬’이 자자하다.
‘병실(丙室)마을‘에서 24대째 이어가며 지금도 병실마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여주 이씨 30대후손인 이광희씨(66.남)는 “이석균 대표의 가문은 할아버지때부터도 엄격하고 올바르기로 소문난 집안이었다”며“그런 피를 이어 받아서인지 이석균 대표또한 근면 성실하고 예의바른 ’올곧‘은 동네의 큰 일꾼’이라고 말했다.
이석균 대표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어머니가 이뤄논 찹쌀떡 명성에 조금이라도 누가 가지 않도록 매사에 임하고 있다“며”앞으로도 찰쌉떡을 만드는데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권명화 수제떡“은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진 ’입소문‘을 타고 자체 업소판매와 전국 택배배달, 직접배달(수도권지역. 일정규모 이상) 등을 통해 한해 매출액이 20억 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