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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4월 1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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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주의,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영국 국민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크게 착각하고 있다.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의회 의원을 선출하는 순간뿐이며, 일단 선출이 끝나면 그들은 노예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다”라고 말했다. 30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대한민국 헌법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지만, 현실에서 국민은 헌법을 고칠 수도, 법을 만들 수도 없다. 입법권은 오직 국회에만 있고(헌법 제40조), 국민은 투표로 대표를 뽑는 것 외에는 정치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정치학자들은 이를 대의민주주의의 태생적 한계라고 부른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착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핵심을 ‘선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고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추첨을 통해 작동했다. 아테네의 500인 평의회는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1년 임기로 교대하며 국정을 운영했다. 왜 선거가 아니라 추첨이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거는 귀족정의 원리이고, 추첨은 민주정의 원리”라고 명확히 구분했다. 선거는 필연적으로 엘리트를 선출하지만, 추첨은 평범한 시민 누구나 권력을 행사할 기회를 준다.

 

이 책은 추첨제가 중세까지 이어졌으나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 과정에서 선거제로 대체된 역사를 추적한다. 특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왜 추첨제를 거부하고 선거제를 택했는지 그 숨겨진 이유를 밝힌다. 제임스 매디슨은 “재산 없는 다수로부터 재산을 지키는 것”이 헌법의 목적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선거제는 처음부터 엘리트 지배를 위해 설계된 제도였다.

 

◇ 21세기, 시민의회가 돌아왔다

 

2004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현대적 의미의 시민의회가 처음 등장한 이후,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시민의회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들이 수개월 동안 전문가 의견을 듣고, 토론하고, 숙의한 끝에 정책 권고안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아일랜드는 시민의회를 통해 낙태 합법화와 동성혼 허용이라는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국민투표로 해결했다. 프랑스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150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기후시민의회’를 운영했고, 그 권고안의 상당 부분이 법제화되었다. 벨기에 독일어공동체는 세계 최초로 상설 시민의회를 설치해 정기적으로 입법 과정에 시민을 참여시키고 있다.

 

12·3 내란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거대 양당의 대결 구도,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는 정치권 스스로 개혁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되었다. 1987년 이후 한 번도 바뀌지 않은 헌법, 번번이 무산되는 선거제도 개혁은 ‘제 머리조차 깎지 못하는’ 국회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 책은 시민의회야말로 이런 난제를 풀 수 있는 강력한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일반 시민들이 충분한 정보와 숙의를 거쳐 내린 결정은 정당성과 수용성이 높다. 실제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보았듯이, 시민들은 전문가 못지않은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시민의회,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 책의 포인트는 제3부에 있다. 단순히 이론과 사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민의회를 실제로 어떻게 설계하고 운영할 것인지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다. 시민을 어떻게 선발할 것인가(층화추출 방식), 얼마나 오래 운영할 것인가(3~12개월), 어떤 방식으로 숙의할 것인가(전문가 청취, 소그룹 토론, 온라인 참여) 등 실무적 가이드라인을 상세히 다룬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착각』은 헌법개정 시민의회에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22대 국회에는 이미 4개의 개헌절차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제7공화국을 여는 개헌이 기득권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의 참여와 숙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의 성공 사례뿐 아니라 스위스와 칠레의 실패 사례도 함께 분석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이 책은 시민의회가 단순히 참여의 확대가 아니라 권력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선거로 뽑힌 대표가 독점하던 입법권을 추첨으로 선발된 시민과 공유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혁명적 전환이다. 정당과 이익집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오직 공공선을 추구하는 시민들의 집단지성이야말로 진정한 ‘일반의지’를 구현할 수 있다.

 

저자는 시민의회가 국가 차원뿐 아니라 지역 단위에서도 활발히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읍면동 주민의회, 지역 현안 시민의회 등 풀뿌리 민주주의 차원에서의 적용 가능성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또한 청소년 시민의회를 통해 미래 세대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는 방안도 논의한다.

 

◇국민이 진짜 주인인 나라를 향하여

 

『국민이 주인이라는 착각』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실질적 해법을 제시하는 실천적 안내서다. 시민의회의 역사적 기원부터 해외 사례, 제도 설계 방안까지 포괄적으로 다루면서도, 한국적 맥락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한다.

 

촛불혁명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선언했지만, 아직 제도는 그 선언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투표일 하루만 주인이고 나머지 날들은 방관자로 전락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시민의회와 같은 제도적 혁신이 절실하다. 이 책은 시민의회라는 혁신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12.3내란과 청산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허약함과 부실함을 그대로 보고 있다. 정치, 사법, 언론 등 기득권들의 행태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들은 무력함을 느껴왔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 혁신적 민주주의에 대한 필요를 절감하고 있다. 시민의회는 혁신적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기에 정치개혁, 사회혁신에 관심있는 이들은 일독해 볼 만하다. 한국사회가 혁신의 기회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위기는 다시 도둑처럼 찾아올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시민의회 제도 도입을 적극 모색하고, 시민사회도 다양한 시민의회 실험을 추진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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