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주택 층간소음 문제가 개인 간 갈등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인식된 지 오래지만,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대책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 다수가 층간소음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일부는 강력·살인 사건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지난 4월 ‘공동주거시설 층간소음 관리법’ 제정 입법청원을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했다. 층간소음을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최초의 법안으로, 사실상 특별법 성격을 띤다.
경실련은 지금까지 정부와 국회가 층간소음 관련 단일 법률조차 마련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법적 근거가 없어 경찰 역시 현장에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법조계도 신속한 분쟁 해결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분쟁 발생 시 당사자가 즉각 체감할 수 있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층간소음 관련 규정은 주택법, 건축법, 공동주택관리법, 환경정책기본법, 소음·진동관리법, 민법 등에 흩어져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제도 접근성이 지나치게 낮다는 평가다.
◇ 경찰 출동에도 반복되는 비극
지난 4일 충남 천안 서북구의 한 아파트에서는 층간소음 갈등 끝에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40대 A씨가 윗집에 찾아가 70대 B씨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B씨가 경비실로 피신하자 차량으로 경비실을 들이받은 뒤 재차 공격했다.
사건 이전 두 차례 112 신고가 접수된 사실도 드러났다. 경찰은 문 두드림 등 행위에 대해 경고하고, 관리사무소 직원과 함께 화해를 권고하는 수준의 조치만 취한 뒤 현장을 떠났다. 두 번째 신고 이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현행 제도상 경찰이 할 수 있는 조치는 경고와 중재에 그친다. 신고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히 구분하고 실질적인 제재가 가능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에 위치한 지은 지 30년 된 한 빌라에 거주하는 C씨도 12월 층간소음 문제를 겪었다. 아랫집 D씨가 쿵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밤낮없이 수시로 들렸다. 한 번은 D씨가 물이 샌다며 문을 두드리는 일도 있었다. 전문업체까지 불러 누수 문제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또 D씨가 오디오 우퍼를 너무 크게 틀어 빌라 전체에 소음을 유발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112 신고가 이뤄진 사건이 발생했다. 한밤중 아랫집에서 굉음에 가까운 타격음이 들렸다. 마치 콘크리트를 부술 때 사용하는 공구를 사용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결국 D씨 아랫집에서 경찰에 신고했다.
그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D씨는 망치로 물이 흘러내리는 자국을 제거한다며 자신의 집 베란다 외벽을 망치로 세게 치기도 했다. 또 D씨는 C씨의 집 문을 두드리며 누수로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다며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당시 C씨 아내가 집에 혼자 있는 상태였다. 위협을 느낀 C씨는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CCTV 설치를 권고하고, 문 두드림과 우퍼 사용 중지를 요청했으나 법적 조치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여태까지 신고된 내용을 경찰 기록에 남기겠다고도 했다.
일부 화해가 이뤄졌지만 소음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빌라 관리인이 안내문까지 게시했으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층간소음 당사자들이 일상 속 불안을 호소하는 이유다.
◇ 법 기반 국가·지자체가 층간소음을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층간소음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법적 기반 마련을 꼽는다. 현행 형법상 공용부를 반복적으로 훼손하면 처벌이 가능하고, 고의적 보복 소음은 스토킹처벌법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하다. 그러나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수집해야 하고, 절차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한계가 있다. 피해자들은 무엇보다 즉각적인 해결을 원한다.
경실련의 입법청원안은 시공사 책임 강화를 핵심으로 한다. 신축 공동주거시설 전 세대에 대한 층간소음 전수조사와 국가 공인기관의 실측을 의무화하고, 바닥충격음 기준 미달 시 준공검사 승인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층간소음 관리대상 확대 △국가·지자체 관리·감독 의무 명시 △소음 측정 비협조 시 과태료 부과 등을 포함했다. 구축 주택의 경우, 소음이 지속되면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소음 유발자’에게 이사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사 비용은 소음 유발자가 부담하도록 명시했다.
구축 주택의 경우, 소음이 지속되면 전문가 의견을 근거로 ‘소음 유발자’에게 이사를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사 비용은 소음 유발자가 부담하도록 명시했다. 층간소음으로 인해 고의적 보복 행위(우퍼 등 음향기기로 소음 보복, 협박 등)을 해서는 안 된다.
박영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 이사는 “지속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은 법 부재”라며 “정부·지자체·경찰·시공사 모두 법을 근거로 움직이기 때문에 관리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안영진 법무법인 정윤 변호사도 “현행 규정은 강제성이 없는 노력의무에 불과하다”며 “기준을 초과해도 직접적인 처벌이나 제재가 없어 피해가 누적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분쟁 해결에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리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편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