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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9월 2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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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통령이 던진 농산물 유통개혁의 길

백혜숙 한국공공식료사회연구소 소장


농림축산식품부에 던져진 질문


 

지난 9월 9일 국무회의. 농산물 유통 구조 개혁을 주제로 한 토론에서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농산물 가격 불안정과 높은 유통비용의 원인을 짚어 “가락시장 6개 도매법인의 장기 독점이 문제일 수 있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이에 맞춰 온라인 도매시장 확대, 유통비용 절감, 정가·수의매매 도입, 가격정보 앱 개발 등 개혁 청사진을 제시했다. 목표는 분명했다. 가격 변동 폭을 절반으로 줄이고, 유통비용을 11% 이상 낮추며, 거래의 절반을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강서도매시장의 시장도매인 제도가 도매법인 독점 문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송 장관은 곧바로 “시장도매인은 생산자 가격을 과도하게 깎는 문제가 있다”는 피상적 반론을 내놓았을 뿐, 제도의 장단점과 실제 운영 실태를 깊이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이에 대통령은 짧게 말했다. “연구를 좀 더 해보세요. 그다음에.” 이 한마디는 의미심장하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순한 주문이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가 시장도매인 제도에 대해 아직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축적하지 못했다는 우려의 뜻으로 읽힌다. 현장에서 이미 시행 중인 제도에 대해 장관이 원론적 우려만 반복하는 모습은, 국민과 대통령 모두에게 ‘농림축산식품부가 그간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준비해 왔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농산물 유통개혁의 성패는 단순히 온라인 플랫폼 구축에 좌우되지 않는다. 독점 구조를 어떻게 해체하고, 다양한 제도를 어떤 식으로 균형 있게 결합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농림축산식품부는 여전히 기존 구조에 매몰돼 있는 듯한 답변을 내놓았다. 대통령 앞에서 드러난 허점은 단순한 실수로 보이지 않는다. 정책 역량의 빈틈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유통개혁의 길을 묻다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하는 국민에게 확실한 답을 주기 위해서라도, 농산물 유통개혁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디지털 전환과 함께 제도 다양화, 공공성 강화, 경쟁 촉진이 종합적으로 추진될 때만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웃을 수 있다.

 

대통령의 “연구를 더 하라”는 지적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무엇을 더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생생한 경고였다. 그런 과제를 풀기 위해 열린 자리가 바로 9월 12일의 대만·일본·한국 농산물 도매시장 제도를 비교한 국제학술대회였다.

 

이 학술대회는 세 나라의 제도적 경험을 통해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만의 리황자오(李皇照) 교수는 농회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대만 도매시장의 공공성과 공동체적 성격을 강조하며, 다양한 거래제도를 통해 농민과 소비자를 동시에 보호하는 성과를 소개했다. 일본의 우지에 기요카즈(氏家淸和) 교수는 「도매시장법」 개정 과정을 분석하면서, 규제 완화와 민간 자율성 확대가 효율성을 높였지만, 가격 불투명성과 대기업 집중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했음을 지적했다.

 

한국법제연구원의 김윤정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도매시장이 소수 도매시장법인에 의해 독과점적으로 운영되며 수수료 담합 문제까지 드러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공모제 도입과 재지정 제도 개선, 농민단체 참여 확대 등 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학술대회는 세 나라의 제도적 맥락을 비교함으로써 한국의 개혁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특히 일본처럼 규제 완화만을 추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경계와 함께, 대만처럼 농민단체가 참여하는 공공성 강화 모델의 장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한국은 공공성과 경쟁 촉진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균형 잡힌 개혁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이번 논의는 향후 농산물 도매시장 제도 개선을 위한 국제적 시각과 정책적 대안을 확인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만과 일본의 사례


 

대만의 공영도매시장은 우리나라에 뚜렷한 시사점을 준다. 농회가 운영 주체가 되어 비영리적 공공성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으며, 경매뿐 아니라 정가·수의거래, 계약재배 등 다양한 거래제도를 병행하여 가격 안정성과 투명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거래 이익이 특정 농민이나 기업이 아닌 농업 공동체 전체로 환류되도록 설계됨으로써 농민에게는 안정적인 출하 기반을, 소비자에게는 합리적 가격과 안전한 농산물을 제공한다. 대만의 도매시장은 단순한 거래장을 넘어 사회적 안전망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가락시장 중심의 경매 일변도 체제를 개혁해야 하는 우리나라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 대만 사례는 농민과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려면 공공성을 제도적으로 내재화해야 하며, 시장의 효율성보다 공동체적 가치와 지속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함을 보여준다. 따라서 한국은 도매시장 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공공성 강화와 거래제도 다양화를 병행하여 농업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환류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농업의 안정성과 유통의 공정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길이다. 대만의 경험이 한국에 주는 중요한 교훈이다.

 

일본 「도매시장법」의 변화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은 1923년 ‘쌀 소동’을 계기로 강력한 공권력 개입을 통해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보했지만, 이후 대형 유통업체 성장과 소비 패턴 변화에 맞춰 점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였다. 1999년 이후 경매 원칙과 위탁집하 원칙을 폐지하고 상대거래, 산지 직거래, 상물 분리 유통을 허용하면서 효율성과 유연성을 강화했으나, 결과적으로 가격 형성의 불투명성, 대기업 정보 우위, 농민 협상력 약화라는 문제를 낳았다.

 

최근 빚어진 ‘쌀 소동’에서 보듯 시장 상황이 불안정할 때는 실시간으로 공정하고 투명한 가격 지표의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었다. 이는 공공적 인프라로서 도매시장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가락시장 중심의 경매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제도 다양화와 공공성 강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일본 사례는 규제 완화만으로는 농민과 소비자를 보호할 수 없으며, 효율성과 유연성 속에서도 ‘가격 투명성’과 ‘공정한 협상 구조’라는 최소한의 공공적 안전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따라서 한국은 공영도매시장 제도 개혁을 추진할 때, 사기업인 도매시장법인의 자율에 맡기기보다는 생산비 기반 기준가격 공개, 계약재배 확대, 거래정보 실시간 제공 등 공공성 장치를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일본이 경험한 시행착오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며, 한국 농업과 유통개혁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핵심 과제다.

 


유통개혁의 길을 찾다


 

현행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은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의 권한을 엄격히 분리해 자유로운 경쟁을 제약하고 있다. 도매시장법인은 산지수집과 상장·경매 권한을 독점하며, 중도매인은 상장된 농산물만 매수할 수 있다. 그 결과 산지수집 주체와 소비지분산 주체가 인위적으로 분할되어 경쟁이 제한된다.

 

가락시장에서는 소수 도매시장법인이 거래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독과점적 이윤 구조가 형성되었고, 실제 위탁수수료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 과징금이 부과된 사례도 있다. 경매 중심 구조는 가격 급등락, 소규모 농민 소외, 소비자 가격 상승 등 부작용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일본처럼 업역 제한을 폐지해 산지와 소비지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현행 「농안법」의 경직된 규제는 시장 분할적 성격을 띠어 공정거래법상 경쟁 제한적 요소로 지적될 수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유통의 비효율성을 심화시킨다.

 

둘째, 도매시장법인 지정 방식을 공모제로 전환하고, 평가 부진 시 퇴출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나아가 대만처럼 농민단체가 도매시장 운영에 참여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나라 도매시장 개혁은 단지 거래 방식을 전환하는 게 아니라, 독과점 구조 해소·공공성 강화·경쟁 촉진을 균형 있게 달성하는 구조적 개편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는 한국 농업의 미래와 민생경제의 안정을 동시에 지켜낼 국가적 과제다.

 

대통령의 지적과 국제학술대회의 논의는 한국이 공공성과 경쟁 촉진을 동시에 달성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함을 보여주었다. 이를 실현하려면 범부처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농산물 유통개혁은 농림축산식품부만의 과제가 아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세제, 산업통상자원부의 물류·유통 인프라, 환경부의 탄소감축·순환경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데이터·AI 기술, 교육부의 인재양성, 외교부의 무역·수출까지 함께 맞물려야 한다.

 

국무총리 직속의 ‘국가 유통혁신위원회(가칭)’를 설치해 관계 부처와 농민·소비자·청년이 함께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유통개혁이 한 부처의 과제를 넘어 국가적 어젠다로 승격될 수 있다. 지난 9월 15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유통구조 개선 방안은 걸음의 시작일 뿐이다. 그것이 윤석열 정부 시절의 단순한 미봉책을 답습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진

 

정한 개혁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추가적인 정책 보완과 과감한 제도 개편이 뒤따를 때만 농산물 유통개혁은 민생경제 안정과 미래산업 혁신을 동시에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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