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폴란드가 추진 중인 ‘오르카(Orka)’ 잠수함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력 보강을 넘어 국가 안보와 유럽 방위 질서를 재편할 전략적 사업으로 꼽힌다. 총 8조 원 규모로 평가되는 이 사업은 3,000톤급 신형 잠수함 3척 도입을 통해 노후 전력을 대체하고, 발트해에서의 억지·타격·정보수집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목표다. 수년간 지연됐던 절차가 정부 간 협상 단계로 접어들며 본격 추진에 속도가 붙었고, 국방비 대폭 증액 선언으로 사업 가속화 가능성도 커졌다.
이 프로젝트는 군사적 의미를 넘어 산업적 파급력도 크다. 최소 45% 이상을 현지에서 집행해야 하는 조건 탓에 기술 이전과 조선소 협력이 관건이 됐고, 한국·독일·프랑스·스웨덴 등 주요 조선 강국들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수주전에 뛰어든 한화오션은 성능, 가격, 납기에서 강점을 내세우고 있으며, 수주에 성공할 경우 폴란드뿐 아니라 유럽 방산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할 기회를 잡게 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업이 기업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정부 차원의 외교적 지원과 절충교역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폴란드, 국방비 대폭 증액 추진… ‘오르카 잠수함’ 올해 발주 유력
폴란드 해군의 핵심 현대화 사업인 ‘오르카(Orka)’ 잠수함 프로젝트가 수년간의 지연을 마무리하고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이번 사업은 3,000톤급 신형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대규모 계획으로, 유지·보수(MRO) 비용까지 포함하면 총 규모가 약 8조원(약 56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폴란드 해양 전문지 가제타 모르스카(Gazeta Morska)는 지난 7월 “오르카 사업이 국회 차원에서 질의가 이어질 정도로 지연됐지만, 국방부가 ‘시장 협의는 이미 종료됐고 현재 정부 간 협상(G2G)이 진행 중’이라고 답했다”고 보도했다. 이로써 지지부진했던 사업이 본격 추진 국면에 들어섰다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지난달 15일에 있었던 폴란드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계기로 더욱 분명해졌다.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이날 행사에서 “폴란드의 안보를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로 배정하는 결정을 요구하겠다”고 천명했다.

또한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부총리 겸 국방장관은 “폴란드군은 이미 나토 내에서 세 번째 규모를 보유하고 있으나, 향후 5년 안에 작전 능력 면에서 선두권에 올라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한 핵심 과제로 전차 생산 재개, F-16 최신 버전 계약 체결, 동부 국경 방어를 위한 ‘동부 방패(Eastern Shield)’ 구축을 제시하며 “오르카 잠수함 프로그램 또한 반드시 완수돼야 하며 정부는 잠수함 구매와 발주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폴란드 해군이 보유한 유일한 현역 잠수함은 1980년대 소련제 킬로급(프로젝트 877E) 잠수함 ORP 오젤(Orzeł) 한 척뿐이다. 이 잠수함은 노후화로 기술적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으며, 진행 중인 개량도 부분적 보수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결과 폴란드 해군은 현재 작전 순환 능력뿐만 아니라 향후 승조원을 위한 전용 훈련 플랫폼조차 없는 상태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발트해에서 러시아 해군 활동이 증대되는 상황에서, 현대식 잠수함 부재는 폴란드의 나토 내 위상과 지역 억지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폴란드 언론들은 오르카 프로젝트가 올해 안에 구체적인 발주 절차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고 있다.
◇ 유럽 해양 방위력 높이는 ‘오르카 사업’… 韓·독일·프랑스 경쟁 치열
폴란드의 안보·방산 분석 전문매체 ‘디버그라이즈(Debuglies)’는 오르카 사업을 “발트해에서 억지, 타격, 정보수집 능력을 동시에 끌어올리는 전략적 분수령”으로 규정했다. 폴란드는 AIP(공기불요추진) 기반 디젤-전기 잠수함 최소 3척을 목표로 하며 완전운용능력(FOC)을 2032년으로 잡고 있다. 폴란드 정부가 계약 집행의 최소 45% 이상을 국내에서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지 생산, 기술이전, 조선소 협력이 수주 경쟁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경쟁 구도는 한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스웨덴으로 압축되고 있다. 특히 한화오션과 함께 수주 가능성이 높이 평가되는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시스템즈(TKMS)는 212CD형을 제안하며 발트해 작전 최적화 AIP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나토 표준과의 높은 합치성을 강조한다. 다만 독일과 폴란드 간 정치적 갈등이 변수로 지적되고 있다.
프랑스 나발그룹은 스콜펜급으로 인도, 브라질, 칠레 등 운용 실적을 기반 삼으며, 폴란드와의 순항미사일 공동개발 의향서 체결을 계기로 장거리 타격 능력 연계를 강조한다. 스웨덴 사브는 A26급을 앞세워 모듈형 설계와 특수작전 최적화로 평가받지만, 생산 능력과 납기에서 제약이 있다는 평가다.

한화오션은 3000톤급 잠수함 ‘장보고-III(KSS-III) 배치-II’로 승부를 띄웠다. 한화오션이 제안한 안은 잠수함뿐 아니라 임시전력 제공, 유지·보수 체계, 산업 협력까지 아우르는 종합 패키지로 구성됐다.
핵심은 KSS-III 배치-II 3척 공급이며 기존 KSS-I 잠수함을 제공해 조기 훈련을 지원하는 ‘브리징 솔루션’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KSS-III 배치-II는 공기불요추진(AIP) 체계와 리튬이온 배터리를 탑재하고, 10기의 수직발사관과 533mm 어뢰관을 갖춘 최신형으로 최대 3주 이상 잠항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약 1억 달러 규모 투자 계획, 폴란드 내 정비·유지·보수(MRO) 센터 구축, 3,000여 개 부품 카탈로그를 포함한 기술 이전, 그디니아·슈비노우이시치 조선소와 국영 방산 지주사 PGZ와의 협력 방안이 제시됐다. 연안경비함(OPV), 무인수상정(USV), 미사일 고속정 등 수상 플랫폼 협력과 금융 지원 방안도 포함돼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제안이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폴란드 해군 전력 보강과 산업 생태계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한화오션, 수주 가능성?... “정부 외교·절충교역 지원 필수”
'오르카 신형 잠수함' 도입 사업의 최종 발표가 올해 말께 나올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한화오션은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 납기 준수 능력을 내세우며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정부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여부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 비즈니스·투자 전문 매체 에인베스트 뉴스(Ainvest News)는 한화오션이 계약을 따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지난 6월 분석기사에서 한화오션의 제안에 대해 “단순한 무기 판매가 아닌 장기적 산업 파트너십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평가했다.

특히 장보고급 잠수함 리스를 통한 조기 전력 보강과 유연한 분납 조건은 재정 부담이 큰 폴란드에 효과적인 해법으로 꼽힌다. 에인베스트 뉴스는 “한화오션이 계약을 따낼 경우 폴란드 방산 생태계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유럽에서 아시아 방산기업의 부상을 상징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폴란드의 안보·방산 분석 전문매체 디버글라이스(Debuglies)는 “한화오션의 제안이 현지 생산과 공동개발 측면에서 매력적이지만 나토 체계와의 상호운용성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풍부한 기술·산업 패키지가 강점이지만, 나토 표준 체계에 얼마나 신속히 적응할 수 있는지가 최종 수주를 좌우할 변수라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M이코노미뉴스에 “나토 표준 적응 문제는 본질적인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며 “우리가 이미 독일에서 잠수함 기술을 배운 경험도 있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성능과 가격, 납기에서 한화오션이 강점을 지니고 있는 만큼, 결국 열쇠는 절충교역 분야와 정부 지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문 교수는 또 “교육 시설이나 군수 지원 체계 구축, MRO 센터와 현지 공장 설립 등은 기업 단독이 아닌 정부와 협력해야 가능한 영역”이라며 “EU 내부에서는 역내 우선주의 기류가 강한 만큼 우리 정부가 외교력을 발휘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도 이 의견에 동의하며 “이번 사업은 기업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는 경쟁이 치열하지만, 최근 한국에 불리하게만 보이던 환경이 점차 균형을 찾고 있다”며 “특히 캐나다 사업과의 연계 효과, 나토 내 신뢰도 제고 등을 고려하면 한화오션이 충분히 도전할 만한 위치에 올라섰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