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을 덮친 물난리가 글로벌 기업 등 산업계에도 많은 피해를 입히고 있다. 일본 동북지방 쓰나미에 이어 태국 홍수를 겪으면서 전 세계가 하나로 묶인 경제의 글로벌화를 실감하고 있다. 태국이 물에 잠기면서 자동차와 컴퓨터제조업체들의 피해가 특히나 크다.
도요타자동차는 태국 내 공장 문을 모두 닫았고 부품부족으로 인해 일본 내 생산도 줄이기 시작했다. 혼다자동차도 태국 공장의 설비들이 완전히 침수되어 6개월 정도는 가동이 어려운 상황이다.
닛산이나 마쓰다자동차도 현재 공장가동을 중단했다. 이뿐만 아니라 컴퓨터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수출 세계 2위인 태국의 홍수가 현지 관련기업들의 피해로 이어지면서 전세계 컴퓨터 제조 공급망이 붕괴된 상태다. 태국 중앙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4.6%에서 2.6%로 대폭 하향 조정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비용절감 등을 위해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소위 글로벌 소싱을 하는 기업들이 많다.
하지만 자연재해가 날 때마다 피해가 커지면서 글로벌 소싱 자체에 큰 결함이 드러나고 있다. 로컬 소싱 만으로는 원가와 품질을 맞출 수 없기 때문에 글로벌 소싱은 불가피한 흐름이지만, 그만큼 위험의 범위도 글로벌 차원으로 확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간단한 예로 우리들의 밥상만 봐도 호주산 쇠고기에 노르웨이산 연어, 칠레산 포도, 미국산 콩으로 만든 음식 등 글로벌 소싱이다. 글로벌 소싱은 가격과 품질 면에서 경쟁력이 있지만 거기에 따르는 문제점 또한 많다.
그럼에도 전 세계에서 조달하는 식재료 중 일부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식재료 수입 자체를 중단할 수는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식재료가 전 세계적 차원에서 조달되기 때문에 이에 맞는 위생기준은 필요해 보인다.
비상상황 대처능력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달라져
태국의 경우는 주로 일본 업체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우리 기업들도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우리기업들도 부품조달과 생산이 글로벌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중국도 지진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가 자주 일어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많이 진출한 지역에 문제가 생긴다면 기업의 존립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홍수피해를 통해 우리가 산업정책 측면에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들이 있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사업의 지리적 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위험에 노출된다는 의미도 된다.
나심 탈레브가 얘기한 ''블랙 스완'', 즉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사건이 벌어져 세상을 뒤흔드는 것인데, 후쿠시마 원전을 덮친 일본의 지진이나 금번 태국 홍수처럼 수백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 요즘은 몇 년에 한 번씩 일어난다.
이런 환경에서 "위험을 회피하려고만 들지 말고 평상시부터 관리하는 ''지능화된 위험 관리(risk intelligence management)'' 가 필요해 보인다.
예를들어 중국에 진출한 우리나라 제조업체가 수백 년에 한 번씩 발생할 수 있는 빈도의 대홍수를 전제로 평상시 위험 관리를 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99.9% 예상 가능한 상황에서의 위험보다 0.1%의 확률로 발생하는 위험이 더 파괴력이 크다.
위험관리의 차원을 2가지로 나누어서 관리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면 피해를 줄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평상시 관리해야 할 위험과 블랙스완식의 예기치 않은 위험을 나누어서 관리하고, 평상시 위험은 정교한 시스템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한편, 블랙 스완(일단 가능성을 열어두고)이 생기는 비상상황까지 대비하여 대응매뉴얼을 만들고 백업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의 9.11테러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의 테러였다. 비상상황 대처능력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달라진 사례도 있다.
글 / 김경준 딜로이트컨설팅 대표
<MBC 이코노미 매거진 12월호 P.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