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 국회의원 선거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교육감선거와 서울시장선거 승리에 도취된 야권지도부는 권력이 손안에 떨어진 것처럼 기세등등했다. 위축된 여권은 100석도 못 건질 것이라는 비관 속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당명까지 바꾸었다.
선거결과는 여권이 152석으로 과반을 간신히 넘었다. 절묘한 숫자다. 과반은 넘되 방심할 수 없는 숫자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졌고 정당별 투표에서도 뒤지고 있어 향후 대선을 낙관할 수 없게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좌우견제에 뛰어난 국민의 승리다. 모든 예상을 뒤엎고 여야 좌우 누구도 방심할 수 없게 하는 투표결과! 우리 국민은 위대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첫째로 이번 선거결과는 교육감선거와 서울시장선거에 연승하면서 오만과 독선에 빠진 야권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꾸짖음이다. 국민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다수당이 되면 한미FTA를 폐기한다고 했다가, 문제가 되자 MB한미FTA는 문제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내세우면서 재협상하겠다고 말바꾸기하고, 중국과 북한의 무력증강이 한반도와 서해에 먹구름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서도 안보는 안중에도 없이 해군기지 건설을 무산시키겠다고 하고, 재벌을 개혁하겠다거나 심지어 재벌을 수백개의 기업으로 쪼개겠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급진세력과 연대하는 등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주장들을 서슴없이 내놓으면서 이를 위해 투쟁할 운동권출신 인사들을 대거 포진하는 야권에 많은 국민들은 불안감을 느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재원대책도 없는 무상보육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무상시리즈 복지 주장들을 보면서 그 허구성과 파멸성을 보았을 것이다.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막말을 하고도 용서를 구하기는 커녕 더욱 오만한 퍼포먼스를 서울 한 복판에서 해대고, 일부 후보자의 종북전력이 과거 동료들에 의해 지적되고, 국민경선 부정이 드러나도 아랑곳 없이 그대로 밀고 나가는 오만함에서 많은 국민들은 불쾌감도 느꼈을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객관적인 사실과 합리적인 논리보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주장이 선이라는 진영논리에 빠져 민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주장을 국민의 소리라고 호도해 온 야권의 오만과 독선에서 비릇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때마침 찾아온 글로벌 경제위기와 그에 따라 심화된 양극화와 가중된 서민생활고라는 야권에게는 절대적인 호재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승리를 거머쥐는데 실패한 것이다.
둘째로 이번 선거결과는 오만과 독선에 빠진 야권을 꾸짖는다고 해서 일자리 창출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무능한 여권을 일방적으로 밀어준 것도 아니다. 과반에서 한 석 많은 152석, 이 얼마나 절묘한 국민들의 선택인가. 여권이 잘해서 표를 준 것이 아닌 것이다. 야권의 급격한 좌클릭에 미래를 맡기기에는 너무도 불안하다는 국민들의 걱정이 양극화 속에서 하루 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그래도 조금은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대안들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여권에 표를 준 것이다. 아슬아슬한 과반은 여권이 그동안 해온 실적이나 제시하고 있는 대안들이 국민들이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이 하고 있다. 여권도 오만해져 민심을 외면하고 자기중심적으로 빠져서 자신들의 주장을 국민의 소리 운운하는 독선에 빠지면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결국 여야를 불문하고 높아진 국민들의 정치의식을 외면하고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누구도 승리할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자신들의 신념이나 주장을 국민의 소리라고 더 이상 아전인수식으로 주장하는 독선으로는 설 땅을 잃을 것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정책인지, 무엇이 국민들을 현혹하는 사탕발림인지 트위트를 못 날리고 페이스북이 무엇인지 모르는 말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번 선거가 보여준 것은 지난 1998년부터 지속된 중성장으로 인한 일자리부족으로 약 850만명 정도가 비정규직 일용직 계약직이고 자영업자 중에도 약 300만명이 월수입이 100만원도 안되는 생활고를 겪어 오고 있으면서도 극좌적인 주장에는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야권에서도 너무 좌클릭된 야권연대가 오히려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한 회의가 나오고 있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은 재벌의 독점적 횡포와 같은 문제점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결코 극좌적인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중도적인 성향이 많은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현재 백중세에 있는 여야 좌우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들 중도적인 표심을 어떻게 포용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선거로 국회는 여러 사안에서 적지 않은 충돌이 예상된다. 70-80년대 학생운동가, 종북주사파였다고 지적받고 있는 사상운동가, 전교조활동을 하였던 교육운동가, 노동인권운동가, 재벌개혁론자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이 국회에 입성했다. 따라서 대선을 앞두고 복지 재벌개혁 안보 대북문제 등 여러 면에서 과잉이념 과잉투쟁의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에도 대선이 있었던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해에 대선과 그에 따른 과도한 정쟁이 없었다면 한국이 한국보다는 한참 후발개도국인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와 같이 위기를 겪었을까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도 유로존 위기가 지속되고 있고 미국경제 회복세도 완만하고 중국경제 성장률도 떨어지고 있는 등 세계경제가 여전히 불확실한 가운데 과도한 정쟁은 그 때와 같은 금융위기를 불러 올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자중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SNS 댓글을 날리고 연예성 이벤트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한 마음으로 진정으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경청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일이다. 사안에 따라서는 서양의 타운홀미팅과 같은 지역별 대화모임을 개최하는 등 국민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번 선거결과는 그러한 정당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자신들의 신념이나 주장, 그것도 70-80년대의 철지난 이념투쟁시대의 주장들을 국민들의 소리라고 견강부회식으로 주장하는 독선적인 정당이나 정치인은 더 이상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우리 국민들의 정치의식은 이미 정치인들의 의식수준을 앞지르고 있다. 이것이 암울함 속에서 보여준 한줄기 빛 같은 희망이다.
글 / 오정근 교수 <고려대학교 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