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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0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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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기후] ‘좋은 쌀을 위한 모임’을 위하여

 

최근 《비어 헌터 이기중의 유럽맥주 견문록》을 읽던 중 영국에서 1971년 4명이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는 문구에 눈길이 갔다. 이들 4명이 유통과 관리가 힘들어 쇠퇴하는 에일맥주를 지키고 싶다는 사적인 취향과 문제의식으로 CAMRA(Campaign for Real Ale)를 만들었는데 지금 회원 수가 8만 명을 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들은 맛있는 캐스크 비어(Cask Beer, 공장에서 완성된 맥주가 아니라 펍 안에서 마지막 숙성이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맥주’. 탄산을 인위적으로 주입하지 않아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맛을 특징으로 한다)를 판매하는 펍을 소개하는 《The Good Beer Guide》를 발행하고, 매년 8월 런던에서 영국 맥주 대축제를 연다.

 

이들로 인해 에일 맥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라, 지역성과 지속 가능한 생산, 느린 소비를 상징하는 영국의 문화가 되었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CAMRA가 거대한 기후 담론이나 정책 캠페인으로 출발하지 않았음이다.

 

“좋은 맥주를 지키자!”는 취향과 정체성의 공유가 먼저였다. 그 공감이 관계를 만들었고, 관계는 공동체가 되었으며, 공동체는 산업과 문화를 움직이고 기후와 지속가능성으로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필자 역시 기후 칼럼에서 기후 위기와 흙의 중요성을 설득하기보다, 에일 맥주 모임처럼 농산물을 살리는 모임을 권장하고 소개하면서 기후 위기와 흙의 중요성을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 실마리는 의외로 가까운, 우리가 매일 먹는 밥, 쌀 하나로 충분할 듯싶다.

 

50년 전까지 우리나라의 논-답(畓)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중국 한자에 없는 글자로 우리나라에서 만들어 사용했다-은 물과 탄소를 품는 생태계로 품종과 재배 방식 또한, 지역의 기후와 문화,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농약으로 인해 개구리, 미꾸라지, 메뚜기 등이 사라진 척박한 흙에서 인공 비료에 의한 생산량 위주의 재배 방식이 엇비슷한 지금은 지역 고유의 밥맛과 향이 사라졌다.

 

오죽했으면 어느 실내인테리어 전문가가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인테리어에 투자할 돈이 있으면 밥맛에 투자하라”고 조언했다는 말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됐을까 싶지만, 밥맛은 쌀에 함유된 단백질의 양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질소비료 등을 많이 쓰면 많아지는 단백질 함유량은 많으면 많을수록 밥맛이 떨어진다. 적어도 단백질 함유량이 6% 이하인 쌀이어야 구수하고 맛있는 밥이 되어 반찬 없어도 먹을 수 있는 수준이 된다. 일반인 대부분이 생각하는 품종, 도정, 밥 짓는 요령도 밥맛을 좌우하기는 하지만 단백질 함유량만큼 영향이 크지 않다.

 

그렇다면 에일 맥주를 위한 모임처럼, 어느 지역, 어떤 논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재배했는지, 밥맛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지 이야기하는 모임이 생기면 어떨까? 그 모임에서는 ‘내가 어떤 소비자인지, 어떤 쌀을 생산하는 농민을 지지하는지, 어떤 미래를 선택하고 싶은 사람인지’가 드러날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임은 식탁에서 시작해 지역과 산업, 나아가 세계의 쌀 생산자와 쌀 요리전문가가 참여하는 ‘쌀 올림픽’을 개최하는 주최자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쌀은 상품을 넘어 문화가 되고, 기후 위기는 추상적이 아니라 밥 한 공기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현실이 된다.

 

어디 쌀뿐이랴! 흙에서 길러진 모든 식재료를 매개로 한 작은 모임 하나하나가 우리의 건강한 미래를 떠받칠 수 있다.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 좋은 음식을 앞에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늘어난다면, 세상의 큰일도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는 말처럼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길을 우리 모두 함께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비록 나만의 상상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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