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가 끝나고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때, 필자의 칼럼 제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릴 독자들이 계실 거다. "지방선거 논평, 이란 전쟁, 종전 협상, 에볼라 바이러스의 공포...”등 굵직한 뉴스들이 연일 쏟아지는 시급한 때에, 왜 하필 '돼지' 이야기인가?" 하고 말이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의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의 현실을 들여다본다면, 이 질문이 절대 가볍지 않다. 국내 축산물품질평가원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도축되는 돼지는 하루 평균 약 5만 마리~5만 5천 마리 수준이다. 이는 연간 1,800만~1,900만 마리로 시간 단위로 쪼개어 보면 한 시간마다 약 2,100 ~ 2,300마리이고 1분당 약 35~38마리씩 도축하는 셈이다. 치킨, 삼계탕 등으로 소비량이 연간 10억 마리 이상 도축되는 닭은 초당 30마리이니 수치상으로 닭보다 적은 것 같다. 하지만 돼지는 닭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수명이 긴 포유류라는 점에서, ‘1분에 약 36마리’, 즉 ‘2초에 1마리 이상’씩 도축된다는 수치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이 엄청난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대규모 집단 사육과 공장식 축산 시스템이 가동될 수밖에 없는 것이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지도자들이 새롭게 선출될 때마다 그만그만한 수많은 공약이 지역마다 쏟아진다. 청년 일자리 확대, 기업 유치, 관광 개발, 출산 지원, 정주 인구 확대 등 그 내용도 대부분 비슷하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많은 국민은 이러한 정책만으로 지방소멸을 막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의 지방 위기는 단순한 인구 감소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역할과 삶의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 즉 미래에 대한 확신의 붕괴에서 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 지방을 떠나는 이유는 지방에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 살아도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는지,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지,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도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정치 지도자들이 아무리 좋은 공약을 내세운다 해도 4년 뒤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이미 체감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인공지능 시대가 가져오는 변화다. AI 기술은 인간이 하던 수많은 일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중국은 AI 요리사를 시작으로 일상생활에서 사람을 대체할 모든 인공지능 로봇을 선보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이가 들수록 선거에 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평생 수없이 많은 선거를 지켜보다 보니 비슷한 구호와 반복되는 장면들 속에서 어느새 기시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람 같다”라는 생각도 들곤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며 생기는 경험과 통찰 덕분에 예전처럼 뜨겁게 반응하지 않아도 사람과 정책을 조금 더 냉정하고 정확하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관심의 크기는 줄어들 수 있어도 판단의 깊이까지 얕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미국의 작가 로저 로젠블랫은 최근 노년에 관한 에세이에서 흥미로운 원칙들을 제시했다. 뉴욕 타임스는 오늘(27일)자 사설에서 그의 책에서 발췌한 우아하게 늙는 법, 11가지를 제시한다. “불멸을 추구하지 마세요”, “테두리만 보세요”, “타협하지 마세요”, “이걸 다시 해야 한다는 말이 들리면 도망치세요” 등 짧고 농담처럼 들리는 문장들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깊은 통찰이 숨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원칙들이 개인의 노년뿐 아니라 오늘의 지방선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방선거는 흔히 중앙정치의 ‘축소판’처럼 취급된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얼마 전 경기도 고양특례시 일산서구의 킨텍스에서 열린 제70회 MBC 건축박람회를 다녀왔다. 필자는 30년 넘게 여러 주택 박람회를 다녔지만, 이번 전시회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받았다. 화려하고 거대한 전원주택보다 10평 남짓한 작은 집들이 전시장의 주류인 듯 보였기 때문이다. 소형 한옥, 모듈러 주택, 컨테이너형 주택, 농막 체류형 쉼터, 바퀴 달린 트레일러 하우스, 우주선 캡슐 하우스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가격 역시 3천만 원대에서 6천9백만 원 선으로 현실적이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런 집들은 특별한 사람들의 취향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는 듯했다. 특히 농막과 체류형 쉼터 규제가 완화되면서 작은 집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새로운 주거 문화의 가능성으로까지 떠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전시장을 둘러보다 왜 건축회사들은 (수익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더 작은 집을 내놓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거에 가장 전문가들인 이들 회사가 100% 미래를 앞당겨 보여주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 회사는 아파트가 현금화하기 쉬운 재산이고 살기에 편하다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언젠가부터 서서히 전원형 작은 주택을
최근 미국 정부와 글로벌 보안업계가 공개한 내용은 충격적이다. 중국과 연계된 것으로 지목된 해킹 조직들은 미국의 통신망과 전력·수도 시설, 항만, 공공기관, 기업 네트워크에 장기간 침투해 왔으며, 필요할 경우 핵심 인프라를 교란할 수 있는 수준까지 접근권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정부와 보안업계가 중국 연계 해킹 조직에 붙인 코드명인 ‘볼트 타이푼(Volt Typhoon)’과 ‘솔트 타이푼(Salt Typhoon)’이다. 미국 수사당국은 볼트 타이푼이 미국의 핵심 인프라 내부에 악성코드를 은밀히 심어두는 방식으로 유사시 전기·수도·통신 체계를 마비시킬 준비를 해왔다고 보고 있다. 솔트 타이푼은 미국 통신사 네트워크에 침투해 고위 공직자와 일반 시민들의 통신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정보 탈취 차원을 넘어 국가 기능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의 공격이다. 미국이 최근 사이버 안보를 국가안보의 핵심 의제로 격상시키고, 정부뿐 아니라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 같은 민간 플랫폼 기업들까지 총동원해 대응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이러한 위협이 결코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 최고 수
며칠 전 데이비드 애튼버러(1926년 5월 8일~ )가 100살을 맞았다. 우연히 BBC에서 그의 업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전 세계 사람들 중에 한 세기를 산 사람은 많지만 한 세기를 외길로 걸어온 사람은 드물 것이다. 더구나 그 길이 권력, 돈, 그리고 명예의 지름길도 아닌 ‘자연을 전하는 길’이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바로 그가 그런 사람이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클레어 칼리지(Clare College)에서 자연과학(생물학)을 공부하고 1952년 견습 프로듀서 및 TV프로듀서로 BBC에 입사했다. 이후 《Zoo Quest》 진행자와 제작자로 활동했으며 1969년에서 1972년까지 3년간, 프로그램 국장(Director of Programmes)을 지냈다. 그는 BBC 내부에서 최고 경영자 자리(사장)까지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사양했다. 사장은 재정과 조직, 정치와 타협을 하는 자리인데, 자신은 총리가 하는 일에 거의 관심이 없었고, 정치적인 역할은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후 현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에 전념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많은 이들이 높은 자리로 올라갈수록 성공이라
우리는 오랫동안 “세계는 평평해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왔다. 국경의 장벽은 낮아지고, 정보와 자본, 사람과 기술은 자유롭게 이동하며, 인류를 지구촌이란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은 상호 연결된 세상을 넘어 상호 의존적인 세상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HOW 사회연구소(The HOW Institute for Society)의 설립자인 도브 세이드먼(Dov Seidman)의 말처럼 세상은 “상호 연결된 세상”에서 “상호 의존적인 세상”으로, 또는 “평면적인 세상”에서 “융합된 세상”으로 변했다. “융합된 세상”에서는 어느 나라건 누구건 벗어날 수 없기에 모든 나라나 우리는 함께 번영하거나 함께 몰락하는 구조 속으로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평면적인 세계”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지거나 글로벌 질서에서 일정 부분 이탈할 수 있었다. 때로는 보호주의를 선택하고 지역 블록을 형성하며 독자 생존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러나 “융합된 세계”에서는 그런 선택이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다. 기후 위기, 팬데믹, 공급망 붕괴, 사이버 공격, 인공지능(AI)의 통제 문제 같은 도전들은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 국가의 실패는 곧 다른 국가의 위
지난 4일, 한국의 컨테이너 해운사인 HMM가 운영하는 파나마 선적(船籍)의 HMM Namu에서 폭발과 화재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발생했다. 한국 선박에서의 이 같은 사건이 일어난 것은 우발적이라기보다 전쟁으로 고착된 불안정성이 드러난 사례에 가깝다. 세계 원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이 좁은 수로는 오래전부터 국제 정치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지만, 최근의 양상은 과거와는 분명히 달라졌다. 군사 기술의 변화와 비대칭 전력의 확산이 기존 질서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대이란 공습을 통해 이란 내부 봉기나 정권의 붕괴를 기대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란은 외부 위협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호르무즈 해협이 전략적 지렛대임을 재확인했다. 이란은 이 해협을 통제하거나 위협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도 국제 사회, 특히 에너지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식했다. 특히 ‘무기의 민주화’는 결정적이었다. 과거에는 군사적 우위가 곧 경제력과 기술력의 함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값싸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무인기, 즉 드론이 그 공식을 깨고 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기관총이 전장의 판도를 바꿔놓았던 순간과도 유
20여 일 뒤에 있을 지방선거를 앞두고 언론에는 후보자들의 이력과 공약뿐 아니라 전과 기록을 둘러싼 보도가 적지 않게 등장하고 있다. 이를 두고 단순한 흥밋거리로 소비하거나, 반대로 일률적인 낙인으로 판단하는 태도 모두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적 권한을 행사할 사람이 살아온 이력과 도덕성은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문제라는 점은 분명하다. 조선의 정치사상가인 율곡 이이(1536~1584)은 정치의 근본을 제도나 법 이전에 ‘사람’에서 찾았다. 그는 「동호문답」과 「만언봉사」 등에서 정치의 핵심을 “政者正也。子帥以正,孰敢不正”이라 했다. “정치란 바르게 하는 것이며, 윗사람이 바르면 아랫사람 또한 바르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현실 정치를 비판하여 “今之為政者,不務修己,而務責人”이라 하였다. “오늘날 정치를 하는 자들은 스스로 닦는 데 힘쓰지 않고 남 탓만 한다”고 함으로써 정치의 핵심이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책임성에 있으며, 바른 사람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조선 중기와 거의 비슷한 시기인 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던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는 대표 저서 『군주론』에서 ‘정치란
정부의 강력한 통제와 안보를 명분으로 한 결속은 단기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삶과 자유를 외면한 권력은 결코 지속될 수 없다. 역사는 억압된 질서가 내부 균열로 무너진다는 사실을 증명하며, 현재 이란의 '버티기 전략' 또한 국민의 지지 없이는 결국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이란의 권력 구조는 이중적이다. 형식적으로는 선출된 정부와 협상파가 존재하지만, 실질적 힘은 혁명수비대와 같은 강경 세력에 상당 부분 집중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한 군사 조직을 넘어 이념과 신앙으로 결속된 집단이다. 이들은 체제 수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중요 국가 경제를 운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국가 전체의 이익보다 체제 유지 자체를 목적화할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협상의 주체가 불분명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사회는 대화를 시도하지만, 실제로 결정을 내리는 세력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다면 협상은 공회전할 수밖에 없다. 현재 이란의 버티기 전략은 외부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내부 결속을 강화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경제 제재와 군사적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강경 노선은 단기적으로는 체제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며칠 전 필자는 파주 임진강 변의 작은 밭에서 하루를 보냈다. 상추 모종과 오이 모종을 옮겨 심고, 강낭콩을 한 뼘씩 세줄 간격으로 묻었다. 상추씨는 흙과 개어 손으로 흩뿌렸다. 바람에 날리기 쉬운 씨앗을 붙잡기 위한 오랜 방식이다. 몸은 금세 반응했다. 허리와 어깨, 다리까지 삭신이 쑤셨고, 조로에 물을 여러 번 길어 나르다 보니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30평도 되지 않는 면적을 감당하면 되는 텃밭이 이럴진대... 농사란 인간의 노동과 자연의 시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됐다. 일을 마치고 찾은 파주의 한 유기농 식당은 또 다른 생각의 문을 열어주었다. ‘농산물은 흙이 아니라 미생물이 키운다’는 표어가 식당 안쪽 벽에 현수막으로 걸려 있다. 식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좌우는 유리로 지붕을 만든 밭에 밀과 여러 작물을 시범적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화학비료나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발효 퇴비를 중심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고랑마다 볏짚을 깔아 놓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냄새였다. 흔히 떠올리는 계분(鷄糞) 냄새가 아니라, 잘 발효된 퇴비 특유의 구수하고 깊은 향이 났다. 생명이 썩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냄새였다. 이 식당
전쟁의 얼굴은 시대마다 바뀌지만 그 본질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놓고선 늘 논쟁을 벌였다. 최근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이 오래된 질문을 다시 끌어올린다. 드론과 미사일, 사이버 공격과 심리전이 뒤섞인 충돌 양상은 분명 과거와 다르다. 전면전의 선포도, 명확한 전선도 없이 긴장이 고조되고 완화되기를 반복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전쟁’의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전쟁의 본질이 바뀌는 순간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표현 방식만 달라진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서양과 동양의 대표적인 전쟁 사상가를 동시에 호출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프로이센 출신의 군인이자 군사 이론가로 나폴레옹 전쟁을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론』을 집필한 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년), 그리고 중국 춘추시대 인물로, 오 나라에서 활동한 전략가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기원전 544~기원전 496년 추정)다. 일부 학자들은 『손자병법』이 손자 개인이 아니라 여러 시대의 사상이 축적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은 시대도, 문화도 다르지만, 여전히 오늘날까지 읽히는 정치 군사적 통찰을 남겼다. 만약 이들이
지방선거가 다가오면 익숙한 말들이 되풀이된다. “국비를 얼마 끌어오겠다.” “대형 개발사업을 유치하겠다.” “도로를 놓고 산업단지를 만들겠다.” 한때는 이런 약속이 통했다. 길이 나면 사람이 오고, 공장이 들어서면 도시가 커지던 시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구는 줄고, 청년은 떠나며, 빈집은 늘어난다. 아무리 화려한 건물을 세워도 그 안을 채울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개발과 성장 중심의 공식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 이제 지방 소멸과 인구 감소 대책은 시각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무엇을 지을 것인가’보다 ‘누가 와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앞으로 경쟁력 있는 지방정부는 예산을 많이 따오는 단체장이 아니라, 사람을 데려오는 단체장이 만들 것이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 현장을 아는 실무자, 새로운 감각을 가진 창의적 인재를 지역으로 끌어오는 도시가 살아남는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에서 성공한 요식업 창업자나 은퇴를 앞둔 외식 전문가를 설득해 지방에서 식당을 열도록 지원할 수 있다. 그 한 사람의 유입은 단순히 가게 하나 늘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역 식재료를 살리고,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 음식문화를 바
지난 2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런던 마라톤 남자 엘리트 레이스에서 케냐의 시웨(31살)가 1시간 59분 30초로 결승선 테이프를 끊었다. 인간 마라톤의 마지막 성역으로 여겼던 2시간의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 이는 단순한 스포츠 뉴스가 아니다. 42.195km의 두 시간 이내 주파는 오랫동안 인간 능력의 경계선처럼 여겨졌다. 불가능은 아니지만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이로써 과학자들이 계산한 이론적 한계치 1시간 57분 58초까지는 불과 2분여 남짓 남겨두고 있다. 세계적 기록 뒤에는 인간 의지와 현대 문명의 총력이 숨어 있다. 241km에 이르는 고강도 훈련, 당일 빵과 꿀 섭취 같은 정교한 영양 전략, 아디다스 초경량 레이싱 신발과 같은 기술 혁신과 재료공학, 데이터 분석이 한 데 모였다. 이제 스포츠는 과학과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과 로봇이 모든 분야에서 사람을 대신하게 된다는데 인간이 마라톤의 기록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산은 AI가 더 잘하고, 반복 노동은 로봇이 대신하며, 효율은 기계가 인간을 앞선다. 심지어 로봇 마라톤 대회도 열리고 있잖은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 인간은 굳이 땀을 흘리며 달리려 할까? 로봇에게 시키면 더 정확하고
며칠 전, 일간 신문을 넘겨보다 눈길이 가는 광고 하나를 보게 됐다. 한반도미래연구원(필자는 이 연구원을 누가 세웠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자세히 모른다)이 낸 광고였다. 요지는 간단했다. “지방소멸과 저출산 문제에 대책이 있는 후보만 출마하라”는 내용이었다. 정치권을 향한 주문치고는 직설적인 광고였는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이유는 여러분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지방은 사라지고 있고, 아이는 태어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오래 전부터 제기됐고, 대책도 수없이 많이 나왔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미미하다.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광고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이젠 그만 좀 하시라!’는 선언처럼 들렸다. 정치의 언어는 늘 장밋빛이다. “아이 낳기 좋은 나라”, “살기 좋은 지방”, “균형 발전” 익숙한 구호들이 선거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정책은 속도를 잃고, 예산은 흩어지며, 책임은 흐려진다. 결국 남는 것은 통계 뿐이다. 합계 출산율, 인구 감소율, 소멸 위험 지수. 숫자는 냉정하고, 현실은 더 냉혹하다. 한반도미래연구원의 광고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를 다시 설명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