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신임 대통령이 6월 11일 오후 2시를 기해서 휴전선 일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명령했다. 이로부터 10시간 뒤인 6월 12일 0시, 휴전선 일대 북한의 대남 소음 공격이 중지됐다고 합참이 밝혔다. 북한의 소음 공격 중지로 접경 지역 주민들은 오랜만에 편안하게 잠을 잤다면서 환영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1년 동안 접경 지역 주민들은 북한이 보내는 기괴한 울음소리와 비행기 소리, 쇠긁는 소리 등에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이처럼 우리 주민들이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있었다는 점에 통탄하는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접경 지역 주민들이 소음 고통을 겪은 이유는 북한이 감행한 대남 방송이지만, 북한이 그렇게 한 배경에는 남쪽에서 먼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지난 2,3년의 상황을 돌아보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대북 전단 살포가 사실상 공공연하게 이뤄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북한이 획기적인 반격에 나선 것이 지난해 5월 오물풍선 날리기였다. 지난해 11월 말까지 약 6천개 정도의 오물풍선이 남쪽으로 날아들었는데, 쓰레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추접한 일이지만 쓰레기 대신 폭발물이나 화생방 물질이 포함돼 있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상황이 전개됐었다.
결국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초강경 조치를 채택했다. 6월에 남북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휴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이다. 이에 대한 북한 대응이 소음 공격이었다. 남에서는 대북 확성기를 통해 북한 김정은 수령에 대한 비난 공세와 최신 대중 가요 등을 틀어보냈고, 북한은 기괴한 소리를 보냄으로써 남쪽 주민의 심리를 거슬리는 방송을 지속했다. 그 결과 접경 지역 주민들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남과 북의 신경전에서 손해를 본 것은 접경 지역 국민들과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한 일반 국민이었다. 그러므로 이재명 대통령 결단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중단된 것에 대해 열렬한 환영을 보내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호랑이가 무섭다고 해도 악질 정치인이 통치하는 것보다는 덜 무섭다는 옛말이 있는데, 이번 일을 보면서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북 확성기를 방송하는 것이 누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제대로 분석도 하지 않고 북한을 비난하는 방송을 감행한 것에 대해 통탄할 정도의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외부의 적을 격퇴하기 위해 결연하게 투쟁하자고 외친 지도자가 수류탄을 자기 집 안방에 던진 격이다. 대북 확성기를 틀어야만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체면이 선다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대통령이 바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악질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비록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접경 지역 주민들이 불필요한 고통을 겪기는 했지만, 늦게라도 일이 제대로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만시지탄의 느낌을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대북 확성기 중단에 이어 북한이 대남 소음 공격을 중지했다는 것이 남북 관계가 대화와 협력 관계로 돌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북한도 남한과 다를 바 없이 국내 정치의 특성에서 초래되는 불가피한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대북 확성기 중단이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적극적인 만류 노력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긍정적으로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초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런 전략적 결단을 내린지 2년도 되지 않아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남한과 대화와 협력 관계로 돌아선다는 것은 스스로도 어색하다고 느낄 것이다.
대대적인 정책 기조 전환을 위해서는 북한 주민은 물론 자신의 충실한 충복인 고급 간부들도 납득할 수 있는 명분이나 핑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한 순간에 그런 명분이 북한 전체에 파급되기를 바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에서 올해 10월에 당 창건 80주년 기념 행사를 해야 하고, 연말이나 내년 초에 제9차 당대회 일정이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아마도 정책 기조를 크게 전환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대규모 도발적 조치를 감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할지 김정은 위원장 결정을 지켜봐야하겠지만, 북한이 감행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남북 관계가 원만한 경로를 거쳐서 개선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소음 공격을 중지했다고 해서 북한이 긍정적으로 호응했다고 판단한다면 앞으로 몇 주일 이내에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이처럼 북한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무조건 움츠리고 앉아서 북한 조치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또다른 오판에 이를 수 있다.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이재명 정부는 꾸준하게 북한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남북 간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처리하자는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북한이 긍정적으로 호응한다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이 이재명 정부의 진의를 시험하는 차원에서, 또는 북한 주민을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도발적 행위를 한다고 해도 제대로 혼내주겠다는 방식이나 정반대로 무조건 참는 것은 곤란하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범위에서 메시지 수위와 방향을 민감하게 조절해서 대응하는 현명함이 필요하다.
표준적이고 상식적인 대응 원칙을 준수하고, 방심하거나 교만하지 않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한 유연한 대응 구상이 존재한다면 내년 상반기 정도면 남북 관계는 적대적 관계와 더불어 평화적 공존을 기대할 수 있는 이중적 관계가 복원될 것이다. 그런 상황을 이룰 수 있다면 이재명 정부 5년 이내에 평화적 공존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전망이 과도한 희망은 아닐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