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윤 일병 사망 사건과 남경필 경기도지사 장남의 군대 내 성추행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진 가운데 군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 및 입법간담회가 20일 오후 국회에서 진행됐다.
새정치민주연합 전국여성위원회와 군 인권센터, 진성준 의원이 공동주최한 이날 행사에서 새정치 전국여성위원장인 남윤인순 의원은 인사말을 통해 윤 일병 사망 사건이나 남경필 도지사 장남 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땜질식 처방이 되지 않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국회여성가족위원장인 유승희 의원은 축사를 통해 "(자신이 새정치 전국위원장이던 올해 1월에) 아들을 군대에 보낸 어머니의 심정으로 군 인권센터에 실태조사를 의뢰해 3월에 조사를 마쳤지만 여러 상황으로 발표가 늦어졌다"며 "다시는 군대 내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금석(試金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군 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군 협조가 이뤄지지 않아 서울역과 용산역에서 휴가 나온 남성 병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조사했는데, 지난 이명박 정부 때와 달리 설문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져 설문조사가 쉽지 않았다"며 "여군의 경우 전체 8천명에 불과해 신분 노출을 꺼리는 탓에 어렵게 육군에 복무 중인 100명의 여군에게 설문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 소장은 "여군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가해자의 42.5%가 영관급이었고 장성급도 27.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때문에 장성 진급 시 반드시 성인지(性認知)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4대악 근절(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에 군대 내 성폭력도 포함시켜야 하며, ‘성군기 문란’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못하다"면서 "성적 괴롭힘이 발생하는 장소로는 행정사무실(35.2%), 야외 훈련장(18.9%), 숙소(3.3%) 등에서 일어나며, 성적 괴롭힘에 대응한 비율은 17%에 불과했고 80%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임 소장은 이같은 이유에 대해 성적 괴롭힘이 밝혀질 경우 피해자가 오히려 집단 따돌림(35.3%) 당하거나 가해자나 상관으로부터 보복(각각 23.5%), 피해자 전출(17.7%) 등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한 여군이 남성 장교로부터 강간을 당할 뻔 해 장성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야기 했다가 오히려 가해자는 놔두고 피해자인 자신의 딸을 전출시킨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임 소장은 "이 때문에 대응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47.4%, 오히려 불이익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44.7%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군대 내에 전담 재판부와 수사관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첫 번째 토론자로 나선 법무법인 원 이유정 변호사는 "성폭력은 권력의 우월관계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이기 때문에 계급이 존재하는 군대 내에서 성폭력이 쉽게 일어나는 것"이라며 "혈기왕성한 남자들이 폐쇄된 공간에서 성적 접촉이 차단돼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자신 보다 낮은 사람을 굴복시키기 위해 성적 수치심을 주는 문화가 개선되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민간전문가가 인권교육과 더불어 성폭력 예방교육을 시행하고 군 외부에서 민간이 운영하는 온라인 상담기관이 설치돼야 한다"며 해법을 제시했다.
새정치 진성준 의원은 "군의 특수성에 의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며 "상급자의 명령이 부당해도 “까라면 까”야 하는 봉건적 문화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진 의원은 "여군의 19%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응답한 것은 심각한 상황"이라며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가해자나 피해자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엘리트 군사교육을 받은 장성들이 가해자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성폭력 전담 군사법원을 따로 두기는 힘들 것이라며 오히려 군사법원을 폐지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내놓았다. 그 이유로 군 특수범죄 보다 일반 형사사건이 더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법원에서 재판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군사 옴부즈맨 제도가 반드시 도입되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마지막 토론자인 명지대 권인숙 교수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군의 특수성으로 인해 성폭력이 일어나기 쉽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포문을 연 뒤 "이번 조사에 있어 직업적 여군과 징병 남성 사병과 차이점이 고려되지 않은 점과 ‘성적 괴롭힘’이라는 표현이 성폭력을 대체할 수 있는 용어인지 그리고 응답자가 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도 중요하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권 교수는 "국방부가 왜 이를 자신의 명예 문제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며 "방어적 태도를 취하면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