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으로 한강 하류에 군사분계선이 그어지기 전까지 서울은 항구도시였다. 전국의 고깃배와 여객선이 서해 밀물을 뒷심 삼아 한강 뱃길을 따라 마포, 용산까지 들어왔다. 1940년에 찍힌 한 장의 사진은 마포 부두에 수십 척의 고깃배들이 정박해 있고, 아래 위 흰옷을 입은 시민 수천 수백 명이 모여 어시장이 열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2017년, 해군에서 퇴역한 1,900톤급 서울함 등 3척의 함정 (艦艇)이 경인 아라뱃길을 통해 한강으로 진입했다. 서울함은 한강 바닥에 쌓인 퇴적물에 걸려 좌초될 위기를 넘기고 망원 한강공원에 접안(接岸)하는데 성공했다. 그런 서울은 그 옛날 항구의 흔적만 남긴 채 배 한 척도 얼씬거리지 않는 삭막한 아파트의 강변 도시가 되었다. 서해와 서울을 잇는 경인 아라뱃길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박의 왕래가 끊겼지만, 가끔 서울 항으로 배가 드나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항구도시의 낭만을 즐길 일이다. 100년 전의 행주 나루는 어땠을까? 옛사람들은 행주 나루 아래, 즉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교하(交河)에서부터는 바다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아마도 두 강 모두 서해의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었을 것이
“어라? 이분의 말투가 내 고향사람 같네” 하면서 들었던 유튜브 방송은 「짐킴홀딩스」의 김승호 회장의 자신이 미국 농장에서 깨달은 10가지 교훈이었다. 김 회장은 1987년 중앙대 3학년을 중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불가게, 지역 신문사, 증권·선물회사, 한국식품점, 컴퓨터조립사업, 건강식품점 등 7가지 사업을 차례로 벌였지만 사업을 시작한 족족 망했다. 그럴 때 보통 가정의 아내라면 ‘다른 일이나 찾아보라’며 말릴텐데, 자기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우는 그에게 아내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웨이트리스라도 할 테니 다시 도전해 봐요.” 그런 아내의 말에 용기를 얻은 그는 8번째 도전으로 슈퍼마켓의 한 구석에 김밥 집을 냈다. 2005년 텍사스 주 휴스턴에 「스노우 폭스」라는 김밥과 스시도시락을 파는 세계 최초의 「그랩&고 (Grap N Go)」 개념의 매장을 열었다. 고객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만들어 진열대에 얹어 놓으면 손님 스스로 골라 계산해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편의점과 식당의 중간 모델’로 전 세계에 1,200여 개의 매장이 있다. 은행 빚이 단 1원도 없는 4,000억 원 대의 알짜 부자, 그가 농장의 세계를 이솝우 화로 풀어내는
출산 장려금을 준다고 애를 낳는 것도 아니고, 농공단지 만들어도 일할 사람이 없는데 지방소멸을 막겠다며 예산을 쓴다고 될 일인가. 예산을 들였다면 이론상으로 인구가 늘어나야 하는데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누가 떠나겠는가? 오히려 사람들이 몰리고 젊은이들은 아이를 낳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시·군·구별로 선을 긋고 각자도생을 통해 지방소멸을 막으려고 할 게 아니라-웬만한 아이디어라는 아이디어는 다 나와 새로운 것도 없을 터인데-비록 좁은 땅 덩어리지만 대한민국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간주하는 「멋진 상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M이코노미 뉴스가 언론진흥기금을 지원 받아 앞으로 10회에 걸쳐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한 대한민국 지방경제의 미래희망을 큰 그림(Big Picture)으로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1편】 우리나라 골프산업의 메카 「골프시티」를 만드는 상상 미래의 먹거리 산업으로 등장한 골프산업 미국, 일본에 이어 골프시장 규모 세계 3위인 우리나라, 만약 그런 우리나라의 골프산업을 이끌어가는 메카, 즉 골프 시티를 만든다고 하면 어디가 좋을까? 현재 자치단체 기준으로 전국에서 가장
북극이 녹는다고 심각하게 말하면 ’그거 큰일이야‘ 하면서도 돌아서서 잊어버리면 된다. 영국과 유럽이 더위에 녹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도 그냥 덤덤한 표정을 짓기만 하면 된다. 코로나 펜데믹에 전 세계 70억 인구가 3년 이상 마스크를 쓰고 살아야 했고, 지금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데다 백신은 변이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그러니 어쩌겠어, 조심해야지. 그나마 백신을 만드는 의학기술은 대단해’라고 하다가, 세계 경제가 엉망이 되고, 기후 위기가 찾아오고, 빈익빈 부익부 앞에서 체념하거나 비관하게 만든다.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등 N포 시대가 된 지 오래다. 1814년 탄광에서 일하던 스티븐슨이 석탄운반용 증기기관차를 만들어 운행한 이래 세상의 모든 사물과 정보의 이동 속도는 인터넷상에서 빛의 속도까지 빨라지고 인공지능으로 진화 중이다. 이처럼 유사 이래 첨단과학 기술의 시대가 되었는데 어째서 우리의 행복은 진화하지 않는 것일까? 인생 자체가 그런 거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휴대폰을 아무리 들여다 봤자 행복은 거기에 있지 않은 듯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M이코노미뉴스 = 윤영무 본부장】 비료가 부족하다고? 최근 미국 등 농업 선진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다량의 영양소를 함유한 오줌을 비료로 만들어 쓰자는 친환경 농업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오줌을 이용한 비료는 굳이 다른 나라를 거명할 것도 없이 50~60년 전까지 우리나라 농촌에서 집마다 오줌 항아리를 두고 항아리에 모은 오줌을 삭혀 비료로 사용해 왔기에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흙심을 살리고 맛은 물론 수확량을 늘려준다는 오줌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들의 오줌 예찬론이 남의 일 같지가 않다. (New York Times 2022년 6월 21일 자 참고) 집안에 둔 오줌통에 따로 볼일 보다 케이트 루시는 시내에서 오줌 순환 운운하는 어떤 것을 배울 사람을 초대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어째서 누군가가 소변을 본 오줌통을 수거하려고 하는데?” 그녀는 궁금했다. “그 아이디어 한 번 별스럽네.” 그녀는 설명회가 있는 날 저녁에 일할 게 있었다. 본인은 가지 못하고 호기심이 생겨서 자기 대신 남편인 존 셀러스를 보냈다. 남편은 오줌통과 깔때기를 집으로 가져왔다. 사람의 오줌에는, 셀러스가 7년 전 그날 저녁에 배웠던 것인데, 식물이 자랄 때
【M이코노미뉴스 = 윤영무 본부장】 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법이 도입 된지 70여 년. 1977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는 쌀의 자급자족을 달성해 해마다 쌀이 남아 돌고 있으나,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 쌀 생산량보다 많은 360여만 톤의 밀을 수입했다. 메뚜기, 우렁이가 사라지고 논으로 돌아가야 할 볏짚이 축산사료로 쓰이면서 우리나라 대부분의 논은 땅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밥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들려오고, 국제 곡류 가격 상승으로 인한 농업 인플레이션과 식량안보 위기가 동시에 밀어닥쳐도 속수무책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맛있는 쌀을 생산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 방안을 흙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논에 되돌려 준 볏짚, 땅심 회복으로 밥맛 좋아져 시간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쌀 수입이 허용되기 7~8년 전인 2006년으로 돌려보자.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수입쌀과 경쟁할 수 있는 품질 좋은 쌀을 만들어야 된다는 소리가 높았을 때였다. 당시 한 언론은 “경기미의 대표주자인 여주·이천 쌀보다 더 좋은 쌀이 나왔다”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이름하여 평택 ‘슈퍼오닝’ 쌀. 발음하기도 어려워 혀를 돌려야 되는 이 낯선 브랜드 쌀
【M이코노미뉴스 = 윤영무 본부장】 미국의 세계적인 친환경 아웃도어 기업 「파타고니아」는 마케팅의 천재? 아니면 수재일까? 아니면 바보 같은 기업일까? 철학 담당 임원까지 두면서 친환경 기업의 이미지를 말과 글로 다듬어온 이 기업의 광고 카피 문구 하나가 몇 년 전 세상에 회자됐다. “Don’t buy this jacket(우리 회사 재킷을 사시 마세요)” 결과는 정반대였다. 기업의 브랜드가 새겨진 옷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광고의 정석을 깨는 파타고니아 창업자 겸 등반가인 80대 후반의 「이본 쉬나드」의 마케팅 철학을 그의 자서전 『파타고니아-파도칠 때는 서핑을』 통해 알아 보자. 하루 광고 메시지 2천~4천개, 이 중에 기억하는 메시지 5~9개도 곧 잊어버려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나, 버스에서, 거리에서 혹은 야외 옥외 광고탑에서 눈에 많이 띄는 게 광고문구와 사진, 동영상이지만 그저 스쳐가거나 기억에 거의 남지 않는다. 하기야 광고 뿐이겠는가. 책도 읽고 나면 단어 몇 개 건지고,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나면 결정적인 한두 장면만 남는다. 만든 사람이야 몇날 며칠 날밤을 새워가며 골머리를 쓰고, 최종적으로 광고를 맡긴 기업의 오너에게 오케이 사인까지 받
【M이코노미뉴스 = 윤영무 본부장】 음식 맛을 표준화하고 있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은 어느 점포에 들어가나 음식 맛이 거기서 거기이다. 그런데도 어느 프랜차이즈점에 가보면 똑같은 프랜차이즈점이라도 손님 숫자에서 큰 차이가 난다. 음식 맛이 좋거나 목이 좋아서 그렇다고 하겠지만, 사실은 집주인의 입에 달려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장사의 고수들이 구사하는 말의 기술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손님들이 궁금해 하는 것 말해주기 오래전 미스코리아 뺨칠 정도의 미모를 가진 한 술집 카페 여주인이 있었다. 그녀는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과 말에 교양이 있었고 모든 손님에게 사근사근했다. 그런 여주인의 몸가짐과 맵시가 손님을 끌어당기는 측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손님을 끄는 진짜 원인이 따로 있는 듯 했다. 필자가 기억할 수 없는 연도의 어느 날 저녁, 그 카페의 한 자리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던 장면은 이랬다. 모처럼 손님이 뜸해 테이블이 비어 있는 그 카페에는 창가 테이블에 이집 단골인 듯한 3명의 남자가 앉아서 여주인과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30대 후반 언저리의 손님들인 듯했고, 다들 맞춤 정장 차림이
【M이코노미뉴스 = 윤영무 본부장】지난 호에서는 안양천을 흐르는 물은 하늘에서 내린 빗물이 아니라고 했다. 안양천과 지천은 오염된 물조차 말라버려 안양하수처리장의 방류수 중 일부를 소독한 다음 상류 하천으로 퍼 올리고 있다고 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난 반세기 도시화가 진행돼 안양천 유역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땅바닥을 덮어 빗물이 흙으로 스며들지 못하고 도로 등의 배수구를 따라 흘러가 버렸다. 이 때문에 빗물이 안양천 유역의 지하수를 채울 수 없게 되자, 자연히 안양천 일대(一帶)의 지하수위(地下水位)는 낮아졌다. 여기에다 70여 년 이상 안양천에 내다 버린 오염물질과 토사가 하천바닥에 쌓여, 그 퇴적층의 높이가 지하수위보다 높아짐으로써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은 지하수위보다 높아진 하천바닥을 통과해 지하수위까지 빠져나가 버리니까 당연히 하천바닥이 마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빗물의 순환 사이클이 깨져 ‘시시포스의 바위’처럼 상류로 물을 퍼 올리고 올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안양천에서 자연스럽게 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게 될 것인가. 치산치수(治山治水)의 관점에서 안양천의 미래를 다시
인류의 숙명인가! 전염병, 전쟁...그리고 굶주림에 대하여... 1만6천여 년 전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극복하려고 애써온 전염병, 전쟁, 그리고 굶주림은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인류가 생존하는 한 그럴 것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는 없고, 바이러스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며, 지금도 세계에서 3천만 명이 하루 세끼를 못 먹어서 굶어죽거나 영양실조로 고통을 받고 있으니까.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 과연 인류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최근 뉴욕 타임스는 한 사설에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의 3가지 문제 외에 인플레이션을 하나 더 추가했다. 내용인 즉 인플레이션은 한 나라의 힘으로 막을 수 없고 여러 나라가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였다. 그러나 식량안보는 국가 간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 인플레이션은 ‘미친 거품’이 원인인가 뉴욕타임스 칼럼리스트인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1953~ ,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은 최근 「값싼 돈의 시대가 갑자기 멈추게 될 것인가, Is the era of cheap money coming to a screeching halt?」라는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출간한 ‘2014년 경기도 도시 텃밭 대상 수상 작품집’에 들어있는 ‘외국의 도시농업사례(경기농림진흥재단 박영주 도농교류부 부장)’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외국의 텃밭 공동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2편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런던 스파힐 얼라트먼트 스파힐 얼라트먼트는 런던 남쪽에서 가장 큰 얼라트먼트 중 한 곳이다. 전체 면적은 121.4ha(36만 7천235평). 1구획당 면적은 약 76평, 연회비는 70~80파운드(11만 원~12만 6천 원) 이다. 이 얼라트먼트에서 1km 안에 거주하는 사람이 최우선 이용권을 가지며, 2km, 3km 순이다. 관리하지 못하면 편지를 2번 보내고 그래도 안 되면 강제 탈퇴시킨다. 모든 회원에게 출입 열쇠를 줘서 본인이 원하는 때 언제든 텃밭에 들어 갈 수 있다. 쓰레기를 엄격하게 처리해야 하고 특히 두꺼운 나무는 따로 모아 갈아서 거름으로 사용한다. 2~3구획마다 공동수도시설이 있고 사용량 측정기가 있어 물을 많이 사용하면 그만큼 비용을 더 내야 한다. 자원봉사자가 활동하는데 주로 쓰레기 처리, 퇴비 만들기, 울타리 관리, 공동 통로 정비 등 공동관리 활동에 도움을 주고 있다. 다만 친
(1편) http://www.m-economynews.com/news/article.html?no=33869-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경기농림진흥재단에서 출간한 ‘2014년 경기도 도시 텃밭 대상 수상 작품집’에 들어있는 ‘외국의 도시농업사례(경기농림진흥재단 박영주 도농교류부 부장)’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외국의 텃밭 공동체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알아보자. 일본 도쿄 아다치구 도시농업공원 아다치구 도시농업공원은 연간 25만 명이 찾는 곳이다. 사람들은 멀리 가지 않고 농촌을 체험하고 공원도 겸하고 있는 이곳으로 가족 단위나 단체 방문을 한다. 1982년 농업시험장이었던 것을 농업이 쇠퇴하던 1995년 지금의 농업 테마공원으로 바꿨다. 아다치구가 직접 관리를 해오다가 2013년 부터 민간단체에 경영을 위탁했다. 공원에서는 산책과 식사, 미니 도서관, 꽃 축제, 유리온실 등 공원 역할을 하는 장소가 많고 농촌박물관, 생태체험장, 염색과 허브 공예, 떡 만들기 등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다양하다. 굳이 주말농장에 가지 않아도 도시농업을 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재배하는 작물은 벼를 비롯해 고구마, 감자, 배추, 당근, 파, 시금치, 마늘, 피망, 오이, 가지 등
지난해 10월쯤, 필자는 내 고향(부여군)을 포함한 전국 229개 기초 자치단체 가운데 39%인 89곳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한다는 행정안전부의 발표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 내 고향이 거론되었다는데 놀랐다. 정부가 연간 1조 원 규모의 지방소멸대응기금을 투입 하겠다고 했지만, 마을 소멸 위기를 탈출할 묘수가 없다는데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들도 지방 소멸의 근본 원인인 ‘수도권 집중’ 문제를 해결할 처방은 내놓지 않고 정책발표만 한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라고 무슨 딱 부러진 방법이 있겠는가. 100평과 소형 전원주택 임대료, 월 50만 원. 자연 농사를 짓는 텃밭 공동체 그 소식을 듣고 하루 뒤 문득 필자의 머리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전국 인구 소멸 마을의 전답 100평을 도시민 혹은 희망자에게 임대하는 ‘한국형 텃밭 공동체’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다. 텃밭 공동체는 이미 유럽과 일본 등 농업선진국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도시농업의 한 형태이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부 지자체나 공무원연금공단 같은 기관에서 은퇴자 마을 등의 이름으로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제한적이고 입주비용이 부담되는 등 쉽사리 접근하기 어렵다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일부 텃밭과 같이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풀과 녹비작물만을 이용해 생산한 오이의 향과 맛 그리고 흙의 삼각관계 '나는 자연인이다’에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 나는 주로 저녁 식사를 할 때 TV를 보는데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골라서 보는 편이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잘 나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웬만한 채널을 틀면 몇 년 전 것까지 나온다. 어떤 채널에서는 같은 콘텐츠를 4차까지 재방송까지 하는 듯하다. 여하간 그 덕분에 나는 프로그램 을 보고 또 보면서 ‘나는 자연인이다’ 의 주인공과 진행자의 멘트, 그리고 내용을 100%는 아닐지라도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바람을 타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마침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하면 “농사도 안지어 본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농사를 안지어 봤기 때문이 아니라, 내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자연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데다, 이주비용을 포함해 산속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 중의 하나만 충족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M이코노미뉴스 = 윤영무 본부장】 인류의 3대 발명품 중 하나로 꼽는 네비(navigator)의 정확한 안내를 듣다 보면 인류가 인공위성을 띄워 이런 장비까지 만들어내니, 참으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목적지를 쉽게 찾아주는 걸 보고 세상 참 편리해졌다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오로지 출발과 도착이란 이동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차창 밖 경치를 보면서 복잡했던 머릿속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도 떠올리던 시절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 그렇다면 네비가 없던 시절, 늘 다니던 길을 벗어나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네비처럼 지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지도를 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자. 한강 경치를 보려면 올림픽대로보다 강변북로 수십 년 전, 서울 강서구 H동 고관의 집에 살면서 집안 정원 가꾸기와 청소 등 허드렛일을 해주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 젊은이의 일과 중에 가장 큰 임무는 요즘 거의 사라진 개인 주택의 연탄보일러의 물을 덥히는 여러 장의 연탄을 시간 맞춰 갈아 주고, 집안의 잔심부름 하는 것이었다. 그 집에는 여러 손님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중 한 분은 거의 매일 전용 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들러 집주인을 보고, 자기 집이 있는 천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