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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어째서 요즘 오이에선 향이 안 나는 거지?

[윤영무 기자가 간다] 생명을 살리는 흙의 건강 처방전 [제6편]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의 일부 텃밭과 같이 비료나 농약을 쓰지 않고 풀과 녹비작물만을 이용해 생산한 오이의 향과 맛 그리고 흙의 삼각관계 '나는 자연인이다’에 대리만족을 할 수 밖에 없는 몇 가지 이유

 

나는 주로 저녁 식사를 할 때 TV를 보는데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을 골라서 보는 편이다.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잘 나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웬만한 채널을 틀면 몇 년 전 것까지 나온다. 어떤 채널에서는 같은 콘텐츠를 4차까지 재방송까지 하는 듯하다. 여하간 그 덕분에 나는 프로그램 을 보고 또 보면서 ‘나는 자연인이다’ 의 주인공과 진행자의 멘트, 그리고 내용을 100%는 아닐지라도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바람을 타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마침 옆에 있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하면 “농사도 안지어 본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코웃음을 친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농사를 안지어 봤기 때문이 아니라, 내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우선 자연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는데다, 이주비용을 포함해 산속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금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둘 중의 하나만 충족되면 지금 당장이라도 나는 이곳을 떠나 산속에 들어가 산신령 수업을 받고 있을 것이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없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최근 지인 한 분으로부터 임진강가의 산 속에 들어와 같이 살자는 말을 들었다. 순간 마음이 흔들렸지만, 앞에 든 2가지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곤란하다고 말씀드렸다. 대신 ‘주말에 텐트를 치고 살아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으나 그 분의 표정이 떨떠름했다. 산속 생활을 캠핑 정도로 생각하느냐며 눈을 흘기는 듯했다. 그러니 나는 천상 TV 속에 나오는 자연인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시나리오는 대개 비슷한 듯하였다. 주인공인 자연인과 사회자와 우연히 만나고 이어 인사를 나눈 뒤, 자연인이 자연에서 얻은 식재료를 이용해 음식을 만들면 함께 먹으면서 산으로 들어온 사연을 듣는다. 그런 회상의 파도가 지나가면 주인공의 일상을 소개하고, 텃밭을 가꾸거나 약초를 캐러 산을 둘러보는 게 대개의 줄거리였다. 가끔 인공으로 만든 작은 연못에서 낚시를 하거나 시냇물에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아서 산중 매운탕을 끓여 내기도 한다. 

 

시나리오가 엇비슷하지만 자연인의 입산 동기가 저마다 달라서 그들의 사연을 듣다보면 지루하지 않고, 동시에 인생을 살아가는 게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등에 진 인생의 짐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행복이 찾아 온다는 진리의 평이함을 깨닫게 해 주기도 한다. 


너희가 풀과 함께 자란 진짜 부추 향을 알까? 그런 자연인들의 일상을 유심히 보면서 내 눈에 띄는 건,  그들의 식량보급원인 텃밭이었다. 기존 관행 농사에서 벗어나 내가 먹을 것이니 자연 농사를 지으려고 노력하는 듯하지만, 대개는 이런 저런 이유로 그렇지 못하고, 퇴비나 비료, 그리고 농약을 쓰지 않고 그야말로 자연 농사, 즉 풀만을 가지고 텃밭농사를 하는 자연인은 그다지 많지 않은 듯 했다.

 

그런데 한 자연인은 지금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데, 50대 중반 쯤 된 그 자연인은 풀로만 텃밭을 가꾸고 있었다. 그는 이 프로 그램 진행자를 풀이 수북한 자기 텃밭으로 안내했다. 그 자연인이 어디에 사는지 프로그램에서 알려주지 않으므로, 그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으니, 어느 산자락 아래에 있는 텃밭이라고 해 두자.

 

사회자는 풀이 수북하게 자란 것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어라? 이게 텃밭입니까? 풀밭입니까?”  

자연인이 웃으며 땅에 무릎을 대더니 한 손으로 풀 섶을 헤쳐 파란 부추를 한 움큼 쥐면서 말했다.  

“이게 부추라는 겁니다.” 
“저는 그게 풀인지 부추인지 구분이 잘 안 가네요”

자연인은 부추를 한 손으로 잡고, 작은 식칼을 대고 부추 밑둥에 대고 잘라 진행자의 코에 바짝 갖다 대며 말했다.  

“이 부추 냄새를 맡아 보세요.” 

사회자가 킁킁대면서 부추 향을 코로 들이키고 나자마자 곧 바로 탄성이 터졌다.  
“와~ 진짜 대단해요. 매운 향이 코로 확 들어오네요.”
“부추가 부드럽기까지 해요. 그게 풀과 함께 자라서 그렇습니다. 비료나 퇴비로 키운 부추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 이게 진짜 부추네요. 이런 냄새 처음 맡아봐요. 그런데 어떻게 풀이 우거졌는데도 부추가 자라지요? 풀이 영양분을 다 빨아 먹는 것 아닌가요?” 

 

“이 밭에는 비료, 퇴비를 일체 하지 않았어요. 밭에서 자란 풀을 베어서 낙엽과 함께 흙 위에 깔아준 것 뿐입니다. 그렇게 하다보면 내가 애쓰지 않아도 흙속의 미생물이 알아서 기름진 흙으로 만들어 주지요. 땅을 갈지도 않고요. 봄에 부추 씨를 뿌린 게 이 만큼 큰 거예요. 물론  처음에 풀이 부추 싹보다 먼저 자랄 때, 김을 매거나 해서 풀 관리를 하고, 높이 자란 풀은 베어서 흙에 덮어 주곤 하지요. 그러나 부추가 커서 풀이 자라는 것을 이길 때쯤 에는 그냥 풀과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이게 풀과의 상생이라는 거지요.”

 

 

풀로만 키운 오이의 향이 더 진하고 멀리 간다


자연인의 설명에 사회자는 신기하다는 듯이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연인은 부추 밭 옆에 키우는 다른 농작물도 구경시켰다. 이 밭도 부추를 심은 밭처럼 똑같이 풀과 낙엽으로 덮어 주었을 뿐이라면서, 사람의 허리 높이로 세운 지지대를 타고 줄기를 뻗어 자라는 오이, 고추, 방울토마토의 과실을 손으로 잡아보면서 말했다. 

 

“비료, 퇴비를 일체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잘 커요. 흙이 좋으니까요. 병충해도 없어요. 벌레가 생기면 천적이 등장해서 금방 처리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우리 밭에서는 농약을 칠 필요가 없어요. 농사가 어렵다고 하시는데, 농사를 지어 돈을 벌어야 하는 농업은 비료, 퇴비, 농약을 쳐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인력이 들어가니까 힘든 것이고요. 저처럼 자연 농사를 지으면 뭐 별로 할 일이 없어요. 보시는 것처럼 이렇게 편하잖아요. 알고 보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는 게 농사입니다.”

 

부추 밭과는 달리 과실 채소가 자라는 밭에는 풀이 거의 없었다. 자연인의 설명에 따르면,   풀은 대개 농작물 싹보다 먼저 자라 줄기를 먼저 위로 뻗는다. 풀이 더 웃자라면 농작물이 풀에 치어 제대로 자라지 못하므로 풀이 20cm정도로 자랐을 때 낫으로 베어서 흙 위에 깔아 주면 그만이다. 그렇게 해주면 농작물이 우세종이 되어 풀을 이겨내며 잘 자라게 되고, 흙 위에 덮은 풀이 햇빛을 차단하여 흙속에 있는 다른 풀씨가 싹을 트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풀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더구나 흙을 덮은 풀은 땅의 습도를 유지해 주고, 영양분을 담고 있는 토양 유실도 막아주고 있다.

 

이렇게 풀베기 작업을 3~4번 해서 땅에 깔아주면 흙속의 미생물 활동을 촉진하게 되어, 일반 관행 농업으로 키운 농작물과는 맛이 현격히 다르고, 영양 성분은 약성을 띄게 된다는 것이었다. 자연인이 탐스런 오이 한 개를 비틀어 따서 진행자에게 맛을 보시라고 내밀며 맛을 자신했다.  

 

“아마 시중에서 사 드시는 오이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겁니다.”

 

진행자가 입으로 베어 물고 나서 바로 진한 오이 향이 풍겼던지 “우아~ 대단해요. 오이 향이 입안에 가득 차요.” 자연인은 그 향을 자신도 맡을 수 있다면서 “아마 향이 10리 갈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다. 

 

북한산 백운대에서 퍼뜨린 오이 향으로 일어난 사건 


30여 년 전, 나는 주말마다 그런 오이를 서너 개씩 배낭에 넣어 북한산 백운대에 올랐다. 배낭에는 깨지지 않도록 휴지로 싼 와인 잔 2개도 넣었다. 그리고 등산로 입구에 있는 가게에서 주조에서 나온(기타 재제주(再製酒; 양조주나 증류주를 원료로 알코올, 당분, 향료 따위를 혼합하여 빚은 술) 포도주 를 샀다. 백운대에 올라와선 나는 배낭에 있는 와인 잔을 꺼내 가게에서 산 포도주를 좔좔 소리 내면서 따른다. 파란 하늘 아래 빨간 빛깔의 와인이 채워진 유리잔을 들고 동행과 건배한다.

 

“쨍그랑~” 유리잔이 부딪칠 때 나오는 금속성 음파가 백운대 사방으로 퍼지면서 비스듬한 바위 위에 앉아 점심을 먹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우리를 쳐다본다. 나는 우리를 향한 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미소를 짓고, 잔을 들어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라는 몸짓을 하면서 와인 잔을 비우고 가져온 오이를 반으로 잘라 안주 삼아 먹었다. 그날도 시산제 의식처럼 포도주를 마시고 오이를 안주 삼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앞에 불쑥 40대 중반쯤 되는 점잖게 생긴 남성이 반쯤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딱한 사정을 호소하는 거였다. 

 

“저희들은 학교 선생들인데 여러 명이 아무 준비도 없이 북한산에 올라 왔다가, 마실 물도 가져오지 않는 바람에 갈증을 참으면서 저 아래에서 쉬고 있었지요. 막 내려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산 위에서 바람을 타고 진한 오이 향이 날라 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선생님들을 대표해 혹시 남은 오이가 있으면 얻어 볼까 하고 염치 불구하고 올라와 봤습니다.”

 

마침 그날은 오이를 평소보다 몇 개 더 넣어가지고 왔기에 다행이었다. 배낭에 남은 오이 4개를 전부 집어 주면서 “부족하시겠지만 이걸로 갈증부터 푸시라”고 했다. 남자 선생님은 나에게 연신 고개를 흔들며 고맙다면서, 산 아래로 내려가면 꼭 사례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사양했는데 그가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오이 향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구나, 그렇다면 최고의 오이를 만들어 오이향수나 비누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상상을 백운대 정상에서 했었던 기억이 났다.  등산 중 잠시 쉴 때 갈증을 풀기 위해 물 대신 먹었던 오이였지만, 요즘은 더 좋은 건강 음료가 개발되고, 오이 못지 않은 수분을 함유한데다 맛까지 좋은 과일이 많아진 탓에 오이를 배낭에 챙겨오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사실은 오이 가 품고 있던 풍미와 향이 없어지자 오이가 뒤 순위로 밀려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등산을 하면서 과거처럼 등산객들이 오이를 먹을 때 풍겨오던 그 시원하면서도 알코올 냄새 같은 특유한 향의 맛을 볼 기회가 없고, 어쩌다 집에서 오이 냉채 만들어 먹어봐도 옛날 맛은 커녕 진짜 오이 냉채 맞아? 하는 소리가 나올 만큼 맛이 밋밋했다. 그래서 나는 그 자연인처럼 풀을 흙에 되돌려 줌으로써 건강한 흙을 만든 다음, 오이를 키우는 사람(농가)이 없는지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의 한 회원이 자연인처럼 풀이나 녹비작물만 가지고 밭농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 조상의 김매기, 밭매기는 
풀과 상생하는 자연 농업 농산물 고유한 맛을 지켜


천 여 평의 밭에서 자란 풀을 흙으로 되돌려 주는 방식으로 밭농사를 짓는 그는 10월 중순까지 노지에서 기르는 조선오이를 걷지 않고 있었다. 보통 오이라면 9월 중에 줄기를 걷어 내고 다른 작물을 심지만, 그는 서리를 맞은 오이가 맛이 더 좋다면서 그대로 살려 두고, 오이 줄기 사이에, 김장 배추와 무 사이에 호밀 씨를 뿌림으로써 12월에 김장 채소를 수확하고 나서도 호밀이 밭에서 계속 자라 겨울을 나도록 만들었다. 

 

호밀은 뿌리가 땅속으로 2미터까지 내려가고 키가 1.5미터 이상으로 자라는데, 그런 호밀을 이듬해 6월 하순쯤, 낫으로 베어 밭 위에 그대로 깔아 준 뒤, 밭을 갈지 않고 호밀 대 위에 각종 씨앗을 뿌려 밭농사를 짓는 것이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몇 해를 계속 밭의 흙심을 키웠는데 지금은 비료나 퇴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병충해도 없이 그러니까 농약을 사용할 필요가 없이 모든 작물을 건강하고 맛있게 생산하고 있었던 거였다. 오직 그에게 필요한 장비는 풀을 베는 낫과 농작물의 싹보다 풀씨가 먼저 자랄 때, 김매기용으로 필요한 호미가 전부였다. 

 

김매기란 논이나 밭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풀(잡초) -이것을 ‘기음’이라고 한다- 를 손 혹은 호미와 같은 연장을 이용해 뽑거나 흙에 묻는다는 뜻이다. 밭의 김매기를 밭매기 라고 하는데 그는 밭매기를 서너 번 하고, 풀이 자라면 베어 흙으로 되돌려주는 과정을 여러 해 반복한 것이었다. 풀매기를 하면 풀을 흙으로 돌려주기도 하지만 마르고 굳은 밭 표면의 흙을 부수어 수분과 공기를 통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그는 풀을 제초제를 써서 없애거나, 비닐 멀칭을 해서 아예 생존 자체를 못하도록 하는 소멸의 대상이 아니라, 농작물과 상생하는 퇴비로 활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그의 밭 흙은 미생물이 활동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되어 지렁이가 엄청나게 많이 서식하는데다 크기가 새끼손가락만 해서 흡사 작은 뱀 같다고 했으며 자기 밭에서 나는 모든 농산물은 언제나 최고의 맛과 향을 유지하고 있으니, 없어서 못 판다는 거였다. 


“풀로 흙심을 키운 우리 밭에서 난 농작물을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은 다른 것을 못 먹겠더래요,” 


그는 풀이란 “사랑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워할 수도 없는 존재이고 잡초라는 것은 원래 없으며, 모든 식물은 다 같은 생명이고 상부상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상들은 김매기를 마치면 더 이상 호미를 쓸 일이 없으므로 -풀에 더 신경을 쓸 필 요가 없으므로- 호미를 씻어 걸어두게 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놀며 하루를 보낸다. 이를 호미씻이 혹은 호미걸이라고 했다.

 

그 역시 “풀을 몇 번 관리해 주면 더 이 상 할 일이 없어진다”면서 농사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콩과 콩 사이에 호밀 대를 깔아 준 그의 밭 에서는 신가하게 풀이 자라지 않고 있었다.  

 

베트남은 어떻게 거름을 주지 않고 2모작으로 쌀을 생산할까?

 

나는 10여 년 전에 베트남에 갔다가 논에 거름을 주지도 않고, 농약을 치지도 않으면서 2모작을 한다는 소리를 듣고 의아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벼 이삭만 수확하고, 이삭을 제외한 나머지 볏집, 볏잎, 뿌리 등을 전부 논에다 되돌려주고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수천 년 간 지속적으로 논에 유기물을 투입하고, 흙의 미생물이 이것을  무 기 영양소로 바꾸게 함으로써, 늘 품질이 일정한 쌀을 수확 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고 있었다. 

 

자연 생태 시스템에 따라서 농사를 짓다 보니 병충해가 발생해도 천적이 생겨 자연적으로 퇴치 되니까, 풀만 가지고 밭농 사를 짓는 그 자연인이나 인천의 한 생태농가처럼 농약을 칠 필요가 없고, 농약을 치지 않으니, 농약으로 인해 흙 속의 미생물이 죽는 일도 발생하지 않으니, 그야말로 지속 가능한 농업을 할 수가 있었다. 


7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논농사가 대부분 그러했다. 하지만 비료와 농약을 쓰는 관행농업이 시작되면서 우리나라의 논은 베트남과 상황과 정 반대가 되어 가고 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소의 사료(여물)로 쓰기 위해 볏짚을 공룡 알 처럼 비닐로 둥글게 말아놓은 걸 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원래는 그런 볏짚은 논으로 다시 돌아가야 마땅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유기물 볏짚 대신 비료와 농약을 논에 투여하는 비슷한 조건으로 재배를 함으로써, 어느 지역 쌀을 가지고 밥을 해 봐도 밥맛이 예전 같지 않은 거였다.   

 

10리가는 향을 가진 오이 고추장 보리밥


내가 어렸을 때는 바람이 잘 통하는 부엌 천장에 보리밥이 쉬지 않도록 바구니에 담아 고무줄로 매달아놓았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천장에 매달아 놓은 바구니를 당겨 보리밥을 푼 다음, 밭에 가서 따온 오이를 대충 썰어 넣고 고추장으로 비벼 먹었다. 입 안에서 겉도는 보리밥이야 불편하지만, 입 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며 향기를 풍기는 오이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맛이었다. 그런 오이를 구하기 어려운 요즘에도 풀만 가지고 흙심을 살려 진짜 오이를 기르고 있는 분 들을 보면 부럽기 한이 없다. 하나를 먹어도 좋으니, 예전에 먹던 오이처럼 향과 맛이 좋은 오이를 구해 보리밥에 고추장 과 함께 비벼 먹어 보고 싶어진다.

 

MeCONOMY magazine June 2022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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