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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3) 다모클레스의 검(劍)

 

‘압축근대화’의 산물

 

<M이코노미 김상규 논설주간>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가 1세기에 걸쳐 이뤄낸 경제성장을 불과 20년 만에 달성한 ‘압축근대화’를 경험했다. 인구 세계 17위, 국토면적 세계 107위인 나라의 GDP가 세계 12위(IMF 명목 GDP, 2017년)라는 물리적 지표만 놓고 본다면 경제 규모는 자부할만하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성장의 성공담은 비경제적 문화의 가치를 중시하던 우리 사회의 생활양식을 크게 바꾸어버렸다. 교육, 결혼, 직업, 출산 등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양식들을 경제적인 기준으로 결정하는 상업주의가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20세기 중반에 우리나라는 뜨거운 근대화 시대를 보냈다. 높은 출산율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으므로 젊은 노동력은 풍부하였다. 국가에 의한 통제된 교육시스템은 충성심있는 노동자와 규율에 순응하는 노동문화를 만들어냈다. 전제주의에 가까울 정도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환경에서 국가 주도의 경제정책, 과학기술 체제 등은 효과적이었고 그래서 큰 문제 없이 대량생산이 가능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뜨거운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특성이 20세기 후반부터 붕괴하고 있다. 많은 기성세대들은 20세기 중반에 경험하였던 ‘성공’의 신화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합계출산율 0.97, 경제성장률 2%대라는 지표가 말해주듯이 뜨거운 공업사회는 이미 사양(斜陽)화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에서 최대의 공로자인 중화학공업은 입장이 바뀌어 환경오염, 노사갈등을 만들어내는 문제의 중심이 되어 있는 현실은, 과거의 성공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이 변했는가를 말해주는 단편적 사례에 불과하다. 단기간에 이룬 압축근대화의 후유증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교육까지도 그 증세에 걸려 있으며 심지어 아이덴티티의 근간이 되는 전통이라는 중요한 가치도 많이 변해 버렸다.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세대 간, 남녀 간의 협동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이겨왔던 오랜 역사에서 형성되어 왔던 문화는, 반세기도 되지 않는 기간에 와해되었다. 명절이나 기념일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인공으로 함께 참여하였던 지역사회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그 대신에 연예인의 입담과 가수의 노래에 손뼉이나 치는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1965년 10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을 3만 달러에 이르도록 하였으니 경제라는 체격은 실로 커졌다. 이러한 경제성장이 정치나 사회 문화에 마력(魔力)을 미친 탓인지는 모르지만 모든 문제를 경제적 관점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비경제적 접근법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어디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다. 경제라는 체격이 커졌지만, 정신적·문화적 소프트 파워인 체력은 여기에 따라가지 못하는 불일치가 여기저기에서 돌출하고 있는데 아직도 외견상 그럴듯하게 보이는 체격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비경제적 접근법

 

그런 연유인지 최근 정치나 정부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를 경제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국민도 국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져 정부 기능은 점점 더 확대 되어가고 있고 그 대상(代償)으로 국민을 구속하는 법률은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의 대공황에서 좌절에 빠진 국민을 뉴딜정책과 같은 경제정책으로 해결한 역사적 성공사례는 칭찬할 수 있지만, 과거와 너무 다르게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과정이 광범위하게 결합돼 만들어지는 사회문제를 경제 논리만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은 낡은 질서에 갇힌 레토릭(본래 의미는 자신의 의견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기술이지만 여기서는 형식에 갇힌 말을 의미)일 수 있다는 점이다.

 

경제 논리가 정책의 성공 요인은 아니라는 증거는 저출산 정책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간 막대한 돈을 쓰고도 갈수록 출산율은 추락하고 있다. 해외 사례를 보면 저출산 극복에 성공한 국가에는 프랑스와 스웨덴이 주로 등장한다. 프랑스는 1962년 출산율 2.89에서 1980년 1.85로 떨어지고 1994년 1.73으로 바닥을 찍은 후 2015년 2.01로 회복하였다. 스웨덴도 1991년 2.11명에서 1978년 1.6명으로 떨어진 후 1998년 1.5로 바닥을 쳤지만, 적극적인 출산율 회복정책으로 2015년 1.88명으로 회복하였다. “왜 아이를 낳지 않을까?”라는 원론적인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붙을 것이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 구조가 변하여 가족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거나 기대하지 않는 문화가 확산되었다느니, 아예 혼인을 하지 않거나 늦은 나이에 혼인을 하는 커플이 많아져 자녀를 다
산하기 어렵다느니, 교육비가 많이 들어 자녀 낳기를 꺼린다 느니, 실업 상태에 있거나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나 결혼을 못하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있다느니 등등이 있다. 산업화로 인한 도시의 형성과 도시 규모의 지속적인 확대, 이로 인한 가족구조의 변화가 출산율의 저하를 가져온 이유 중의 하나이기는 하다. 과거의 권위주의적 집단 가족구조에서 가족은 안전을 보장하는 기능을 하였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발달과 도시화, 그리고 시장화의 확대로 개개인에게 있어 안전보장수
단은 가족이 아니라 경제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 해결의 답을 저출산 경험이 있는 다른국가의 성공사례에서만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먼저 전제하고자 한다. 각 나라는 면적, 인구, 인구밀도, 문화, 다양성, 역사, 국가의 상황, 정치 등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양의 선진국들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이 4명 정도일 때인 1970년대부터 저출산이 고정화된 국가들이므로 사회시스템이나 고용구조도 저출산 사회에 맞추어져 있거나 안정적으로 적응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의문이 생기는 것은 저출산이 고정화되어 사회의 인식도 여기에 맞추어져 있을 법한 국가에서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는 저력이 생겼을까? 분명 문제 해결의 단서가 있을 것 같아 소개해본다.

 

 

프랑스의 ‘시라크 3원칙’

 

프랑스의 저출산 극복 성공정책으로 시라크 대통령 시대에 도입한 ‘시라크 3원칙’을 드는 경우가 많다. 프랑스는 약 12년 사이에 합계출산율이 1.7에서 2.0까지 상승한 성공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시라크 3원칙’의 정책 성과로 알려져 있다. 이 원칙은 ▲아이를 가지는 것이 새로운 경제적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한다 ▲부부가 일을 하는 것을 전제로 하므로 무료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장소를 반드시 확보한다 ▲육아휴직 후 복직할 때에 기업은 휴직을 한 기간도 계속 근무한 것으로 인정해준다는 세 가지 정책인데 여기에 혼외자를 차별하지 않는 ‘PACS(민사연대계약)’가 포함되어 정책 패키지가 만들어졌다.

 

‘PACS(Pacte Civil de Solidarité)’는 1999년 민법 개정에 의해 인정된 것으로, ‘동성애 또는 다른 성을 가진 성인 두 사람에 의한 공동생활을 맺기 위하여 체결되는 계약’이다(프랑스 민법 제515-1조). 즉 다른 성 또는 동성 커플이 법적 권리를 향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족구조를 국가가 용인한 제도이다. 이 규정은 프랑스에서 제정된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 정책 패키지에 의해 프랑스 여성들은 출산, 육아, 취업에서 자기의 의지로 자유롭게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정비된 것이다.

 

여기서는 우리나라의 문화에서는 당연히 거부감이 생길 PACS보다는 ‘시라크 3원칙’이 생겨난 배경에 초점을 두고 소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시라크 3원칙’은 경제 논리라기보다는 프랑스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가 모아진 비경제적 요소가 강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파리에는 디즈니랜드가 생기고 대규모 영어학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에 프랑스인은 자국 아이덴 티티에 상당히 위기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프랑스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들이 마침내 생각해 낸 것이 모국어로 프랑스어를 말하는 인구를 늘리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출하였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많으면 프랑스 문화도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이처럼 ‘아이들은 프랑스 문화를 지키는 사회의 귀중한 보물이다’라는 인식이 시민들 사이에서 공유되었던 것이다. 종전에는 인근에서 어린이집 시설 공사가 있으면 시끄럽다고 건축에 반대하거나 설령 반대하는 고령자가 있다 하더라도 귀찮은 존재로 취급하였던 세대 간의 대립을 넘어 시민들이 납득하여 공유할 수 있는 공감대 하에서 ‘시라크 3원칙’은 아주 잘 기능하였다. 프랑스가 저출산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면에 내세운 ‘자국 문화 유지·발전’이라는 가치가 자국민들의 공감대를 얻는 데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프랑스의 성공사례는 경제적 지원만을 통하여 출산율을 회복하려고 하는 정부의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의 오답 노트

 

2016년 출생아 수는 2004년 대비 14%가 줄어든 40만6,000명이었다. 통계청의 추계에서는 2017년 출생아 수가 41만명을 넘을 것으로 보았는데 실제 출생아 수는 36만명에 밑돌았다. 통계청은 연간 출생아 수가 40만명이 깨지는 시점을 2032년으로 보았는데 15년이나 앞선 것이다. 2018년 출생아 수도 32만5,000명 수준으로 전년도에 비하여 3만명 이상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출생아 수는 혼인 건수와 관련이 깊은데 10년 전인 2007년 34만건을 넘었던 혼인 건수가 2016년에 28만건으로 6만건이나 줄어들었다. 출생아의 성비도 남자가 여자에 비하여 약 1.5% 정도 많으므로 향후 혼인 건수와 출생률의 증가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국가가 과거에 추진하였던 정책은 그 이후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전의 정책은 후속 정책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산아제한 정책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960년 6.0명, 1966년에 5.0명, 1974년 4.0명, 1977년 3.0명, 1984년 2.0명, 그리고 서울올림픽이 있었던 1988년 1.5명 아래로 주저앉았다. 합계출산율이 한명 감소할 때마다 7~8년이 걸렸다. 인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데 필요한 출산율인 인구치환수준(2.1명 정도)도 1984년에 이미 깨졌다. 그런데 지금의 저출산 문제는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오로지 출산 억제 계몽에만 매달린 정부와 몇 년 앞의 추세조차 예측하지 못한 인구정책 전문가들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나라 정부가 인구치환수준이 무너진 1984년 직전에 추진한 정책을 당시 언론 보도를 통해 들여다보자. 1981년 11월 정부는 인구증가 억제책의 일환으로 현재 민간법인인 가족계획협회가 주관하고 있는 가족계획사업을 범국가 사업으로 전환, 강력히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인구 억제 정책이 국가의 중요한 행정계획이 된 것이다. 다음 해에는 내무부가 지방의 행정력을 총동원하여 가족계획 추진을 강화하기로 하고 유관 기관장 등을 중심으로 지역별 대책위원회를 구성 하였다. 효율적인 인구증가 억제를 위해 일선 행정기관의 행·재정력을 우선적으로 활용하여 가족계획 사업에 대한 계몽과 행정지도를 대대적으로 폈다. 인구치환수준이 깨진 직전 연도인 1983년에는 대통령이 산부인과 원장 등 가족계획 유공의사 40명을 청와대에 초청하여 오찬을 베풀고 격려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정부가 앞장서서 아이를 낳지 말라고 계몽을 한 1980년대 초는 합계출산율이 큰 폭으로 떨어지던 때였다. 1979년 2.9명에서 1983년에는 2.06명으로 떨어져 인구구조에 위기가 닥쳐있는데 계몽을 하고 상도 주고 얘 더 낳지 말게 하는 일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앞장선 것이다. 그리고 덩달아 인구정책 전문가들은 자녀를 적게 낳는 것을 ‘여성의 미학’으로까지 승화시키면서 출산 억제에 앞장섰다. 정부는 계몽에서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문구까지 사용하며 출산을 억제하고자 하였다.

 

18세기 후반 칸트는 ‘인간이 미성년의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며, 미성년의 상태란 ‘다른 사람의 지시가 없으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수 없는 것’으로 ‘인간이 미성년의 상태에 있는 것은 타인의 지시가 없으면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결의도 용기도 가지지 않는 것’을 계몽이라고 하였는데, 정부와 인구전문가는 인간으로서 여성의 권리를 무시하면서까지 계몽을 하였던 것이다.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 미학이라는 정부의 계몽은 불과 30년 전의 일이다. 지금 결혼적령기 또는 가임기에 있는 여성들은 어린 시절에 아이를 출산하지 않는 것이 여성의 미학이라는 국가의 계몽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국민의 자기 결정권인 출산 행동을 무서울 정도로 규제한 정부의 출산 억제 정책은 1995년경부터 폐지 수순을 밟았지만 때늦은 정부 정책의 방향 선회였다. 이미 출산율은 1.6명이 깨지고 1.5명도 위태로운 시기였기 때문이다.

 

정책과정의 구조적 취약성

 

글로벌화로 인하여 서서히 침투되고 있는 개인주의, 소비주의, 탈중심주의는 우리나라의 뜨거운 근대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던 고정적 아이덴티티를 근간으로 하는 충성심에 균열을 생성하고 있다. 사회에 공명하는 파열음은 계층, 남녀, 세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생기고 있다. 고정된 아이덴티티에 의해 무장된 국민국가가 국제관계에서는 실제성이 저하되고 있는 반면, 국가 내부에서는 국민국가의 영속성을 내세워 규제영역을 더 확대해가는 이중적인 측면도 적지 않다. 이 처럼 과거의 질서와 새로운 질서가 교잡하는 복잡한 시대일수록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제도의 설계를 위해서는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인간이 태어나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사회제도가 교육인데 장기적 관점에서 교육정책을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한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우리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핀란드는 1963년까지만 해도 10세 단계에서 각각 다른 학교로 분별하는 분기형 교육시스템이었다. 1963년 11월 종합제 교육제도를 도입하는 법안이 의회에서 가결되었다. 종합제 교육제도란 모든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서 같은 커리큘럼으로 9년간 교육을 한 후 15~16세가 된 시점에서 김나지움(대학입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 또는 직업전문학교에 진학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사립학교도 이 제도에 포함하여 운영자금을 정부가 지원하고 사립학교가 수업료를 징수하거나 학생을 능력에 따라 선발하는 등 경제적, 사회적, 학문적 선택권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제도에 가깝다. 즉 교육제도에서 평등이라는 가치를 선택한 것이다. 이러한 평등주의 교육제도에 의해 핀란드의 학생들이 골고루 학력을 겸비하여 PISA에서 높은 성과를 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러나 핀란드의 경험이 우리에게 시사를 주는 것은 1963년 교육법안이 몇 개월 또는 1~2년의 구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법안 통과 16년 전에 의회의 초당파 위원회에서 200회가 넘는 회의를 거치는 등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였다. 16년간 충돌과 논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합의에 이르렀지만, 종합학교로 전환할 경우 여러 가지 폐해를 우려한 대학, 대학진학을 위한 예비교육을 실시하는 그래머스쿨 교원단체 등의 강력한 저항과 비판도 있었다.

 

1959년에 제출된 종합학교 이행을 권고하는 보고서는 정당 간의 합의를 얻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수많은 논쟁과 토론의 결과 당시 학생들이 받고 있는 교육보다 더 높은 수준의 교육을 전 국민이 받아야 한다는 점에 다수의 정치가가 납득하여 찬성 163표, 반대 68표로 통과하였다. 그런데 이 법안이 핀란드 전체에 실시된 시기도 16년이 지난 1979년이 되어서였다. 1947년에 구상한 법안이 실제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교육제도로 실현된 것은 32년 후인 1979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였으면 한다. 우리나라도 2014년에 중요한 법을 만들었는데 학교 등 교육기관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하는 공교육정상화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인지적 능력이 발달하는 시기인 청소년기의 지적 활동을 국가가 법으로 금지하는 이 법은 발의에서 국회 통과에 이르기까지 수개월도 걸리지 않았으며 국회에서 별다른 논의조차 없었다. 우리나라 정책과정의 구조적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낸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다모클레스의 검

 

“오늘날, 지구의 모든 주인은 지금 살고 있는 이 행성이 이미 살기에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남녀, 아이들 모두가 사고나 광기에 의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어 핵이라는 다모클레스의검 아래에서 살고 있다.”


위 글은 1961년 9월 25일에 미국 제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가 유엔에서 한 유명한 연설의 한 부분이다. 케네디는 당시 핵무기 개발 경쟁이 격화하고 사고나 광기에 의해 지구의 생명이 파멸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시대적 상황을 ‘다모클레스의 검’에 비유하여 세계에 경종을 울렸다. 다모클레스의 검에 대해서는 부연이 필요할 것 같다. 기원전 4세기 초 고대 그리스 문화권이었던 시칠리아를 지배하며 번영을 구가한 식민도시 시라쿠사에서의 이야기이다. 시칠리아 전체를 통치하던 군주 디오니시오스 2세에게는 젊은 신하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이 다모클레스였다. 다모클레스는 군주의 권력과 영광을 늘 부러워했다.

 

이를 안 군주는 호화로운향연에 다모클레스를 초대하고 왕좌에 앉아보도록 권하였다. 다모클레스는 군주의 청을 받아들여 왕좌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니 머리 위에는 자신을 노리고 있는 것 같은 한 자루의 칼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았다. 칼은 천장에서 당장이라도 자신의 머리로 떨어질 것 같이 가느다란 말꼬리털 한 가닥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다모클레스는 소스라치게 놀라 왕좌에서 뛰쳐나왔다. 디오니시오스 2세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군주라는 지위가 얼마나 생명의 위험에 노출되어 위험한지를 다모클레스에게 알게 해주고자 한 것이다.


지금 우리 머리 위에는 달랑달랑 걸려 떨어질 것 같은 수많은 다모클레스의 검이 위협적으로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지금은 자기 이익화된 환경에서 이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주인공이 될 가까운 장래에는 분명 위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존경받지 못하는 교육자와 이를 불신하는 피교육자와의 긴장 관계가 사회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고, 자기 이익에 어두워 국민의 신뢰와 기대를 어김없이 저버리는 사회 지도층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가치관에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지위와 권리를 법적· 제도적으로 더 견고하게 해 가면서 입으로는 청년실업, 사회 양극화의 부당함을 외치는 기득권층은 우리 사회의 ‘다모클레스의 검’처럼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우리 사회를 향한 언설은 희망의 좌표가 아니라 자기들의 보호막을 더 튼튼하게 하기 위한 레토릭일 것이라는 느낌도 부인할 수 없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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