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이 들어서면 늘 인사 스캔들로 소란이 일어난다. 어느 정권이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달 초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와 대통령실 비서관 사이에 오간 ‘인사청탁 문자’ 소동이 벌어졌다. 미수에 그쳤으니 다행인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 인사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놀랍다. 그런 자리는 그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지 정치권이 입김을 불어 넣을 곳은 아닌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선에 대해선 일단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대미협상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칭찬한 바 있는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한국 AI산업 위상을 착실히 다져가는 데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하정우 AI수석비서관 등이 눈에 띈다.
이 대통령의 발탁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가지고 있는 자리는 누구를 뽑든 그 사람이 성과를 내면 성공한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인사권이 없는 자리, 특히 공적인 성격의 기관과 기업의 고위직에 대통령과 정치권의 영향이 미쳐서는 곤란하다.
공적 성격의 기관과 기업의 예를 들면 은행지주사 등 금융기관, KT, 포스코 등이다. 이들 조직들은 해당 기업들이 요구하는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공적 성격의 조직인 까닭에 안팎으로 이해관계자들이 많아 노련한 리더십을 겸비하지 않으면 거대한 조직을 이끌어가는 것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다.
금융사의 경우, 이재명표 금융정책인 ‘생산적 금융’을 잘 실행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추진력 있는 현장 금융 리더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생산적 금융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실제로 구현되고 자금 수요처와 국민들의 피부에 정책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은 은행 현장이기 때문이다.
미국 관세와 중국의 저가 수출로 위기를 겪고 있는 철강산업도 특별한 리더십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철강업계의 맏형인 포스코는 글로벌 파고를 뛰어넘을 전략과 과감한 추진력이 요구된다. 일본제철은 지난 7월 온갖 악재를 뚫고 미국 US스틸을 인수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했다. 일본제철과 정부가 한 몸이 되어 1년 반에 걸친 피 말리는 협상을 마무리 지으며 난관을 극복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재명 정부의 산업정책의 성패가 달려 있는 AI산업도 기업의 현장 리더십이 중요하다. AI산업의 리더격인 KT의 새 CEO 선임이 임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KT의 새 CEO가 갖춰야 할 자질로 AI 및 디지털 혁신 추진,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 글로벌 도약을 이끌 ‘기술 리더십'을 꼽고 있다.
업계 전문가는 “KT는 국내 최대 유무선 네트워크를 보유한 만큼, 이 분야에서 정부 정책의
'첨병'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차기 CEO는 AI산업과 그 기반이 되는 ICT 및 융합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선견지명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이런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의 AI 및 디지털 경쟁력을 끌어올릴 실질적인 아이디어와 실행력을 보여줄 수 있는 리더여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KT는 또 과거 여러 차례 CEO 선임 과정에서 정치적 논란과 '주인 없는 회사'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현 정부는 대형 공익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 및 윤리 경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차기 CEO는 외부 입김에 휘둘리지 않고 주주 가치 극대화와 준법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독립성을 갖춰야 한다. 투명한 경영철학으로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공정하고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을 정착시켜 내부의 인재들도 등용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숙제가 주어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CEO 선임 과정에서 잡음 없이 유능한 인물이 선출되는 모범 사례를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통신산업은 내수에 안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통신산업에 뿌리를 둔 KT는 그간 사업 다각화에 노력한 바 있으나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진 못했다. AI산업은 KT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새로 선임되는 리더십은 국내 시장 안주에서 과감히 탈피해 글로벌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업계는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등 해외 통신 인프라 구축 사업이나, KT가 경쟁력을 갖춘 IT 솔루션 및 디지털 플랫폼을 수출하여 국내 ICT 산업의 영토를 넓힐 수 있는 인물이 선임되기를 바라고 있다. 한 마디로 KT가 AI와 ICT 산업에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와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수많은 국내 관련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에게 낙수효과를 주는 리더가 돼 달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공적 성격의 기업들은 현재 공모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외부 영향력에 노출돼 공모제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못하다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왔다. 이재명 정부는 이전 정권의 인사 관행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있는 줄로 알고 있다. 대통령실의 인사 영향력에 못지않게 내·외부 카르텔의 영향력이 더 문제일지 모른다.
아무튼 공모제의 핵심은 후보자에 대한 공정한 기회의 제공과 투명한 선별 과정이다. 이번 ’청탁 문자‘를 계기로 정치권과 카르텔의 영향이 배제된 투명한 인사 원칙이 세워지는 선례를 만들어 가기를 기대한다.
공모제는 참신한 젊은 인물에게 기회를 준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공모제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본다. 뛰어난 베테랑 전문가는 공모에 응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삼고초려 하듯 영입해야 한다. 공모제는 잘 운용되지 못하면 내·외부 영향력에 흔들리고 형식화될 염려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한 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인사는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고 어떤 정책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이며, 그런 정책 목표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동감이다. 우리 사회는 절차의 투명성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이 있다.
공적 기관의 인사철이 다가올 때마다 잡음이 일어나는데, 공모제의 투명성에 동의하면서도 정부 각료 인선하듯이 각 기업의 이사회나 인사위원회에서 필요한 인물을 영입하는 방식도 병행해 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미국 대기업의 CEO는 주로 영입을 하지 공모제로 뽑지는 않는다. 공적 성격의 기관과 기업은 사기업보다 훨씬 어려운 자리다. 사기업은 이익을 내면 되지만 공적 기업은 이윤도 창출하면서 사회적 가치도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철학은 짐작건대 '공정성'과 '실용성'의 조화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것을 인사 원칙에 녹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라의 장래를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난제인 듯하다. 인사가 성과를 내는 출발점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