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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현대음악에 동양적 ‘여음과 쉼’ 불어넣다

양지선 작곡가의 작은 도전들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대중음악의 거센 바람 앞에 현대음악의 설 땅은 점점 축소되고 있으나 현대음악 작곡가들과 연주자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향이 12년간 계속해오던 현대음악제인 ‘아르스 노바’가 지난 10월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가 뿌린 씨앗일지도 모를 청년 작곡가들이 기나긴 혹한의 겨울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고 있다. 청년 작곡가들 중에서도 가장 힘찬 활동을 펼치고 양지선 작곡가의 음악적 실험들이 시선을 끌고 있다. 그녀를 만났다.

 

양지선 씨는 올해 들어서만 해도 <아르케_바로크로부터>라는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 및 감독하고, <돈키호테: 바로크 그리고 오늘>, <생황과 오르간을 위한 파이프 음악회> <최현정 바이올린 독주회> 등에 창작곡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난해하다는 이유로 청중들의 발길이 뜸한 현대음악을 우리는 왜 들어야할까. 무릇 생명을 가진 존재는 과거만 반추해서는 멸종되는 게 자연의 법칙이다. 새로운 것은 ‘과거’를 희생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탄생할 수 없다. 한국 음악계에 ‘현대음악’의 창작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면 지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고전 낭만 음악과 뮤지컬, 대중음악조차도 생명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현대음악 창작곡과 실험‘들이 꺼지지 않도록 따뜻하게 보살피고 양육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양지선 작곡가는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에서 석사를 하고 영국 요크대에서 ‘소리의 사라짐’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양지선 씨는 네덜란드 Gaudeamus Music Week에 2007년부터 세 차례 초청되는 등 거의 해마다 세계 음악제에서 작품을 초청받고 있다. 본지 인터뷰를 위해 두 번 만났는데, 검은 안경테 속에 감춰진 눈빛에서 음악에 대한 의지와 재능,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Q. 지난 11월 5일 최현정 독주회에서 선보인 ‘솔로 바이올린을 위한 뷔자데’를 작곡했습니다. 제목이 ‘데자뷔’를 ‘뷔자데’로 거꾸로 표기한 것이라고 연주회에서 설명했는데, 우리의 전통 음악 가락인 ‘시나위’를 현대적 해석으로 작곡한 것이라고요?

 

우리에게 익숙한 국악의 가락을 익숙하지 않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서양 고악기인 바로크 바이올린으로 전통 선율 뒤에 그림자를 넣는 등 현대적 작곡 기법을 응용했습니다. 옛날의 것을 현대적 시각으로 바라봤다고 할까요, 옛날과 현대를 넘나들면서 우리들에게 친숙한 가락과 낯선 음들을 콜라주 해봤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국악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난해한 현대음악을 덜 불편하게 만들어 보았습니다.

 

현대음악 작곡가로서 어떤 것을 추구하나요?

 

저는 소리의 존재와 부재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을 켤 때 소리가 나지 않습니까, 저는 그 소리의 뒤에 점점 사라지는 여음(餘音)과 쉼에 주목해왔습니다. 보통 소리만 관심을 두는데, 소리가 사라지는 여음의 시간, 파장, 그리고 쉼(파우제)을 얼마나 둘지를 악보에 옮겼습니다. 여음과 쉼에 따라 전체적 곡의 느낌은 많이 다르거든요. 서양 음악가 중에서 존 케이지, 머튼 펠트만 등 같은 현대음악 작곡가들이 쉼(파우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책도 냈습니다만 저는 거기서 더 나아가 여음과 쉼을 더욱 정교하게 변화를 줬습니다. 그럼으로써 상상의 세계, 뿐만 아니라 청중들이 저의 음악을 듣고 스스로를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죠. 현대음악은 음이 꽉 짜여 있어서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잖아요.

 

 

Q. 서양 작곡가들의 파우제 작곡과 양지선 씨의 여음과 쉼의 작곡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서양인은 수직적 사고를 하는 탓인지 악보가 블록화 돼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리들이 단절돼 있는 느낌을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휘자나 연주자는 악보에 나온 대로 정확하게 외우고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강박적일 정도로 신경을 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저는 그 ‘정확성’에 너무 치중하는 게 과연 ‘음악적’인 걸까 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저는 악보에 ‘Individual ritardando(각자 점점 느리게 연주하시오)’라고 표시하여 연주자와 지휘자에게 각자 자유로운 쉼의 공간을 줍니다. 물론 ritardando와 쉼의 시간은 표기합니다. 보통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주자와 지휘자는 매우 정확하게 연주해야 하기 때문에 자유로움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의 악보는 연주자가 다른 연주자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맞출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런 작업은 각 연주자와 지휘자에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과제’를 던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동양화에서 여백과 곡선이 아주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처럼 여음과 쉼으로 소리와 소리 사이에 상상의 그림을 그리고자 합니다. 이런 악보를 접한 연주자들은 처음엔 생소한 불편함을 나타내곤 했지만 결론은 모두 흡족해 하고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냅니다.

 

Q. 여음과 쉼의 작곡법으로 창작한 곡들을 소개해주세요.

 

저의 박사학위 논문을 뒷받침하기 위해 쓴 작품이 있습니다. ‘KAIROI(상대적 시간)’이란 곡인데요, 영국 런던심포니와 녹음을 했습니다. 그 곡을 약간 바꿔서 ‘KAIROI Ⅱ’를 올해 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창악회 연주회에서 공연했습니다. 그 공연 한 달 전, 4월 25일 아시아작곡가연맹이란 단체에서 연 국제음악제에서 ‘현악4중주를 위한 아코디언’이란 제목으로 발표한 곡도 동일한 방식으로 작곡한 것입니다.

 

Q. 양지선 씨의 모든 곡을 이런 작곡법으로 만드는 건가요?

 

아닙니다. 청중들이 이런 곡들을 들으면 힘들어 해요, 연주자나 지휘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아직은 초기이기 때문에 차츰 작곡의 주제를 넓혀나가면 이해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Q. 돈키호테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곡을 새로 작곡했더군요.

 

제목은 <Adventure to Baroque>로 현대 사회에서 모험을 떠나는 우리 시대의 돈키호테라고 할까요. 굉장히 바보 같지만 부조리한 현대 환경에서 하나만 믿고 돌진하는 돈키호테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이 작품을 쓰면서 돈키호테의 모습이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저 자신, 어쩌면 현대인의 삶과 비슷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 많은 것들을 담아보려고 애썼습니다. 소프라노, 하프시코드, 리코더, 바로크 바이올린, 바로크 첼로, 바로크 비올라 등이 참여했습니다. 35분 정도 됩니다.

 

Q. 작곡가로서 직접 음악회를 기획, 감독하신다고요?

 

작곡만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는 내가 기획하지 않고서는 하고 싶은 음악을 무대에 올릴 수 없었어요. 돈도 너무 많이 들고요. 그래서 나와 친한 연주자들과 함께 기획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악기를 가지고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음악회를 기획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시도가 처음인데요, 한국 청중들에게 현대음악을 바로크 악기로 들었을 때의 느낌, 감동을 선사하고 싶었습니다. 바로크 음악은 들었을지 몰라도 현대음악을 바로크 악기로 연주하는 경우는 지난 10월 공연이 처음일 겁니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음악 연주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새로운 음악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Q. 고악기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요?

 

제 개인적으로는 고악기, 특수 악기를 좋아하기도 하고 소수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세상이 너무 다수, 대중을 위해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수만을 위해 돌아가는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고요. 음악에서 소수를 위한, 소수가 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소수들이 얼마나 음악적 파워를 갖고 있고 깊은 감동을 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리코더와 하프시코드라는 고악기로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 현대 악기에서 느낄 수 없는 아름다움과 다양성, 음악적 가능성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소수 악기를 연주하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있습니다. 저의 기획은 저 자신을 위한 것도 있지만 이들 소수 악기 연주자들에게 연주 무대를 만들어주자는 의도도 있습니다.

 

Q. 어떻게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요?

 

어릴 때 언니가 치던 피아노를 장난으로 무조건 쳤어요. 음악을 듣고 그대로 칠 수 있었습니다. 귀가 좋다고 그러기는 했는데, 음악이 너무 좋아서 친구들과 노는 것보다 피아노 치고 음악을 듣는 게 더 즐거웠어요. 피아노 선생님 없이 화성학 책을 보고 배웠어요. 예고가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서 이과를 공부하고 공부도 꽤 잘했는데 결국 대학 전공은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선택했습니다.

 

Q. 유학을 가면 보통 독일로 가거나 아니면 미국, 영국, 성악의 경우 이태리로 가던데,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을 갔네요. 별다른 이유가 있나요?

 

숙명대 은사님이 독일에서 공부하신 분인데 저에게 독일 가지 말고 헤이그로 가라고 하셨어요. 헤이그 왕립음악원에 좋은 선생님들도 많고 자유분방한 학풍이 너에겐 잘 맞을 것 같다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가게 됐는데, 정말 좋은 학교라는 걸 느끼고 많은 걸 배웠습니다. 대학원 1학년 때 학교에서 저에게 1500유로(약200만원)를 주면서 곡을 6분 정도 창작해서 그 곡으로 프로 연주자들과 연주회를 하는 게 과제였어요. 아무런 조건이 없었어요. 단지 본인이 창작하고 그 곡으로 프로들과 연주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저에게 진정 실전 같은 공부였습니다. 대학원 내내 이런 식으로 다른 학생들과 공동 작업을 하고 창작곡들을 실제 연주회를 가지는 공부를 했습니다. 자연히 네트워크도 형성되는 겁니다. 그런 교육은 졸업 후의 나의 작곡가로서 생활을 미리 연습하게 한 것이죠.

 

Q. 졸업하고 헤이그에서 작곡가로서 활동을 했습니까?

 

그럼요. 학생 음악회를 매일 가다시피 했습니다. 헤이그와 암스테르담을 기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매일 갔기 때문에 연주자와 음악단체 디렉터들이 저를 알아봤어요. 대개 디렉터들은 작곡가 출신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작곡을 위촉했습니다. 그들은 늘 새로운 음악을 찾으니까요. 저한테 작곡을 위촉하면 당연히 작곡료를 지급했습니다. 헤이그에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프리랜서로 작곡가 생활을 했어요. 네덜란드에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음악 지원들이 많이 끊겼다고는 합니다.

 

Q. 한국에서 작곡가로 살아가기가 어떻습니까?

 

한국에선 작곡가들이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순수음악계 전체가 지금 견뎌내기 어려운 환경에 살아가고 있는데, 연주자들은 그래도 어떤 형태로든 대가를 받는데, 작곡가들에겐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작곡료라는 게 책정되지 않고 그냥 무보수로 하는 게 당연시 돼 있어요. 그래서 음악단체를 만들어 디렉터를 하면서 작곡 활동을 병행하는 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단체에서는 작곡가들에게 작곡료를 주고 작곡을 의뢰하고 있습니다. 작곡가도 하나의 직업인데, 살아가기가 힘들어요. 하지만 저는 작곡가로서 당당히 살아가고 싶어요.

 

Q. 현대음악 연주회는 청중들이 많이 오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렇다고 보시는지요.

 

일반 청중들이 현대음악을 잘 모르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건 우리 음악가들의 잘못도 있습니다. 엄청난 홍보를 하는 대중음악과 뮤지컬에 비해 우리는 알리는 데 소홀히 했고 사실 그럴 형편도 안 되고요. 하지만 사람들이 몇 십만 원을 내고 대중음악을 보는데요, 그러면서 스트레스 푼다고 하는데 대중적인 음악만이 음악의 전부가 아니잖아요. 이와 같이 아름답고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정화시키고 위로를 주는 음악을 1-2만원만이면 들을 수 있는데 현대음악회에도 관심과 사랑을 주셨으면 합니다.

 

Q. 지난 10월 서울시향에서 12년간 계속되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가 중단된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국에선 그런 소중한 연주회가 왜 중단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워요. 무슨 일이든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나 고비를 만나는 것이죠, 그렇지만 힘들다고 해서 그만두면 그 전에 쌓아온 것들이 사라지잖아요. 우리나라에선 항상 뭘 하다가 멈추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됐던 계속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 힘들지만 끝까지 이 길을 걸어가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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