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좋아하는 그림. 그러나 아무나 살 수 없는 그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그림과의 관계일 것이다.
미술품을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실제 그림을 구입해본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더 적다. 아이들 손을 잡고 시립미술관을 관람하고, 인사동 화랑거리를 지나쳐도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미술작품을 구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술품 가격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막연히 미술품은 비쌀 것이라는 선입견이 미술품을 좋아하면서도 구입을 망설이게 하는 가장 큰 벽이다.
언론을 통해 박수근 이중섭의 그림이 몇 십 억 원에 낙찰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죄짓듯 조심스레 화랑에서 그림 값을 물어보면 최소 단위가 몇 백만 원이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실제 미술품 가격은 그렇게 부담스러운 것만도 아니다. 미술품이 특수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접근이 꾸준히 시도되고, 미술품 거래 시장이 다양화되면서 가격 거품이 많이 꺼졌기 때문이다.
과거 미술시장은 화랑과 아트페어와 같은 오프라인 시장이 미술품 거래를 주도해왔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에 온라인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유통비용의 절감으로 같은 작가의 작품이 절반 이하에 거래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시장에 따라 유명 작가의 작품이 뜻밖의 급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있어 눈만 밝으면 횡재할 수도 있다.
미술품은 소비자가격이 정해진 공산품이 아니기 때문에 가격의 편차는 피할 수 없다. ‘누구 그림은 호당 얼마’ 라는 나름의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똑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품의 질이나, 소비자의 선호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난다. 옥션 낙찰가를 보면 동일 작가의 작품이라도 작은 그림이 큰 그림보다 높은 가격에 낙찰되는 경우가 심심찮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시장의 인식변화다. 그간에는 화가나 화랑에서 일방적으로 작품가격을 정하고, 마음에 들면 사고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면, 이젠 소비자(애호가) 입장을 배려한 적정한 가격정책을 펴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림이 시장에 나온 이상, 팔리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다. 화가들 중에는 팔리지도 않는 ‘자존심 가격’을 접고, 소비자 눈높이에 맞는 ‘시장 가격’으로 애호가들과의 간격을 좁히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는 10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작품도 많다. 대형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외국 유명화가의 모사품 가격이 20만~3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껌값’으로 액자 값에 불과한 가격이다.
10만 원대 그림은 주로 소품이기는 하지만, 인쇄된 그림과는 차원이 다르다. 화려한 액자 속에 루느아르나 클림트의 인쇄된 그림이 있는 것과 작가의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작품과는 격이 다르다. 작가가 직접 그린 물감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림은 예술품이 인간에게 주는 감흥의 깊이를 달리한다.
그렇다고 ‘상업 그림’과 혼돈하면 안 된다. 물감으로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모두 작품이 아니다. 시장에는 완성도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도 작품 하나하나에 혼을 부어넣은 창작품이 있는 반면에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기계적으로 찍어내듯 그린 상업 그림이 존재한다.
물감도 두툼하게 발려 있고, 작품 아래에는 작가 사인도 있다. 그러나 상업그림은 카페나 식당의 실내분위기를 살리는 인테리어용품에 불과하기에 작품은 아니다.
소비자들은 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애호가들 중에는 누구 그림인지를 따지지 않고, 그냥 그림이 예뻐서 샀다는 분들이 있다. 이는 말 그대로 애호가로 끝나는 것이다. 이런 분들은 나중에 그림을 잘못 샀다거나 돈이 되지 않는다거나 불평을 하면 안 된다.
돈을 들인 만큼 효과성을 고려하자
미술품을 투자적 시각에서 접근해보자. 돈을 들인 만큼 효과성을 한번쯤 고민해보는 사람이라면 상업적 그림과 작품과의 차이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모르면 후회한다. 알더라도 뒤늦게 알았다면 후회할 것이다. 투자를 생각하고 큰돈을 들여 미술품을 구입한 사람들 중에는 5년, 10년이 지난 뒤에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이유는 당연히 투자 손실 때문이다. 뜨는 작가라기에, 사두면 돈이 된다기에 몇 천 만원, 몇 억 원 어치를 사두었다가 나중에 팔려고 보니 반값은 고사하고 반에 반값에도 팔지 못해 가슴을 치는 것이다.
미술시장은 팔려는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감언이설에 혹해서 당한 사례들이다. 미술품 구입을 위해서는 처음부터 팔 것을 감안, 신뢰할 수 있는 객관적인 정보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냥 그림이 좋아 감상용으로 구입하는 사람이라도 좋다. 이왕이면 그렇게 부담 없이 사둔 그림이 나중에 폐기물 딱지를 붙여 내다버리는 것보다 몇 배 몇 십 배의 돈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면 그보다 기분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미술품은 돈이 된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그만큼 문화적 욕구도 강해지고 미술품 시장은 확대되게 마련이다. 해외 미술시장에 비해 우리나라 미술시장은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중국의 경우 수 백 억 원을 호가하는 작가와 작품들이 즐비하지만 우리는 45억2천만 원인 박수근의 ‘빨래터’가 최고가에 거래된 작품이다.
우리나라라고 수 백 억 원대의 그림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구나 그림을 구입할 수 있고, 그런 소비자들이 많아져야 이를 발판으로 작품을 그리는 화가들이 많이 늘어나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미술은 감상으로는 발전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그림을 구입해야 미술은 발전한다.
미술품이 투자가치가 있다는 얘기에 화랑가를 기웃거려보지만 주머니를 열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미술투자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미술품에 대한 부담감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접근해보자.
그림 한 점을 집안이나 사무실에 걸어두면 분위기부터 다르다. 집주인의 격이 달라 보인다. 그림을 통해 얻어지는 아이들의 정서적 효과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귀한 것이기도 하다.
다만 미술품 투자는 금액이 크든 적든 일단은 돈이 드는 일이다. 무엇보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고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좋은 작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지 ‘돈 되는 작품 고르기’는 중요하다.
다음 호부터는 시장논리를 중심으로 소비자 시각에서 보다 효과적인 미술품 투자 실전적 노하우를 알아보고자 한다.
글 / 박상용 (아트마켓 애널리스트, 오픈아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