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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공 사업가로 변신, 재한중국동포 이동욱 대표

혈혈단신으로 한국을 찾아...


서빙, 배달 등 힘든 일부터 시작

2001년 한국에 처음 입국했다. 입국하기 전 8년간 중국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지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입국했다. 하지만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시련이 찾아왔다. 1년간 제대로된 직장도 못구했다. 나름대로 한국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직장도 제대로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데, 대학 졸업자 아니면 안된다고 거절하였다. 실력보다 학력이 더 중요하다는 느낌도 받았다. 식당 서빙, 한식 배달 등 안해본 일이없다. 중국에서 입국전에 듣던 내용과는 너무 달랐다.

더 어려웠던건 사람을 배타적으로 대하는 것이었다. 물론 중국동포들도 중국에서 다른 민족에 대해 배타적인 면이 없지않다. 북한주민이 탈북해서 중국으로 가면 그 사람들을 배타적으로 대하기도 한다. 한국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점이 힘들었다. 한국인과 지낸지 20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그런 생각은 아직도 바뀌지 않고 있다. 

처음 입국할 때, 중국에서 말하기를 2년간 체류자격을 보장해주고 월급도 150만원 정도 받게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입국해서 처음 간 곳이 전라도에 있는 샤시공장이었는데, 월급 50만원을 받았다. 중국에서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쓴 돈을 다 갚으려면 2년간 한푼도 안쓰고 일해도 못 갚는 돈이었다. 할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걸 알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다보니 취직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받아주는 곳도 없었다. 할 수 없이 구로시장에 있던 캬바레에서 웨이터 일도 했다. 식당 서빙, 배달 일도 했다.

당시 중국 운전면허는 있었지만 한국운전면허가 없었다. 운전은 할 줄 알지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운좋게 중화요리 식당 주차요원으로 취직을 하게되었다. 열심히 하다보니 주차요원 홀서빙으로 보직이 바뀌었다. 더 열심히 했더니 대리지배인으로 진급도 하였다. 대리지배인 월급이 170만원이었다. 그러다 정식으로 지배인이 되어 월급 250만원을 받고 4년간 일했다.

그렇게 어느정도 자리잡고 일하고 있는데 한 지인이 장례일 배워볼 것을 권유했다. 급여없이 배우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막상 배우려고 들어가니 음식나르고 청소하는 일 외에 배우는 게 없었다. 그렇다고 한번 나온 직장에 다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 악물고 열심히 배웠다. 음식 나르고 청소하는 일도 열심히 했다. 그렇게 3개월을 했더니 무보수 계약이었지만 돈도 조금 받았다. 그렇게 그곳에서 7개월정도 일하면서 어깨너머로 조금씩 장례일을 배웠다. 그런데 장례일이라는 것이 상례사를 하기 위함인데, 상례사 자리가 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 다른 상조회사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 1~2위를 다투는 규모의 상조회사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약 3년간 장례업무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었다.

중국동포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상조회사를 만들어

그렇게 장례일을 배우다보니 불합리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합리한 점은 고객으로부터 폭리를 취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동포들이 상을 당하면 부담이 그만큼 가중되는데, 그런 점도 마음에 걸렸다. 효은상조는 동포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했다. 한국에 체류하는 동포들 중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번 상을 당하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한다. 상조회사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보니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동포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는 방법도 배웠다. 상조 서비스는 고난이도의 기술보다는 소통과 유대감이 필요한 서비스 산업이다.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서비스산업인 만큼 회사의 규모보다는 일하는 사람이 중요하다. 그만큼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동포 유가족은 행정절차를 몰라 어려워한다
동포가 한국에서 사망하면 행정수속을 밟아야한다. 명동 중국영사관 주변에 있는 여행사에서 대행업무도 하고 있다. 사실  복잡한 일은 아니지만 처음 해보는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 영사관 직원조차 이 절차를 모르는 경우를 보면 더욱 그렇다. 영사관에서조차 불필요한 서류를 요청하기도 한다.

상을 당한 사람들은 경황이 없어 어려움이 더하다. 시간도 많이 걸리고 이중 삼중 걸음도 하게마련이다. 그렇다고 영사관에서 만들어놓은 안내문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애매하게 되어있어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대행업체는 요금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자주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보니 비용에 대한 표준도 없고 부르는게 값이다.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배워야한다

한국에서 성공하려면 한국의 문화를 배워야 한다. 중국은 지금 빠른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과 중국은 차이가 많다. 중국사람의 의식이 좀 뒤쳐져 있다고 봐야한다.

중국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던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 자부심이라는 게 좋은 의미보다 안좋은 의미로 작용할 때가 많다. 특히 누구에게도 지지않으려는 사람이 많다. 자부심의 역효과이자 불필요한 자존심이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문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도 말이다. 그만큼 배워야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중 한국에 온 90%의 사람들은 농사짓던 사람들이다. 아무래도 많이 배우지 못해 그만큼 생각이 짧을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람들과 생활하면서 충돌하고 갈등하게 된다. 그럼에도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한국의 좋은 점을 알면 배우려고 해야하는데, 무조건 내 생각만 맞다고 고집하는 경향이 많다. 그리고 동포들은 대부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무조건 직설화법을 구사한다. 그점은 고쳐야 한다. 상대방과의 대화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행해야 한다. 무조건 나만 맞다고 하는건 잘못된 거다. 상조회사에는 한국인 직원 5명이 있다. 만약 그런식으로 직원을 대했다면 아무도 남아있지 못했을거다. 그만큼 상대방을 배려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근검절약해서 돈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지만 돈만 가지고 신분을 올릴 수는 없다. 다양한 노력과 배움을 통해 자신을 업그레이드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도 ‘콴시’가 중요하다

흔히 한국사람이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콴시’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한국말로 ‘관계’를 일컫는다. 그런데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걸 사업을 하면서 느꼈다. 한국도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다.

효은상조에서는 의전대행 업무도 하고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상조회사의 업무를 받아야 한다. 한국에 상조회사가 350개 정도 되는데, 직영을 하는 곳은 2%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전부 대행회사에 맡긴다. 상조회사는 대부분 영업만 하고 있다. 그만큼 대행회사간 영업전선이 치열하다. 경쟁이 심한만큼 영업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관계가 없으면 영업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서비스와 업무능력은 둘째 문제이다. 처음 한국에서 사업을 할 때는 그런 상황을 모르고 시작했다. 더군다나 중국동포기 때문에 아무리 찾아가도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본토음식 전파를 위해 식당을 창업

상조일을 시작하기 전 중화요리 식당에서 몇 년간 쌓은 경력이 식당 창업의 원동력이었다. 한국에는 중화요리집은 많은데 중국본토 음식점은 거의 없었다. 중화요리는 본토요리와는 다르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화교들이 개발한 요리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본토 음식점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게 눈에 띄었다. 물론, 대림동을 비롯한 중국인 밀집지역에는 오래전부터 생겨났지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본토음식점은 별로 없었다. 그만큼 과거에는 중국음식을 못먹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음식점이 생긴다는 것은 본토음식도 한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반증이었다. 결국 식당에서 일한 경험과 본토음식을 제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 그대로 식당을 오픈하게 되었다.

孝가 으뜸이기에 효은상조로 명명

사람은 무엇보다 효를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것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한 것이 늘 마음 아팠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일들이 생각나면서 장례사업과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효은상조라고 지었다. 

얼마전 오픈한 식당이름은 하얼빈에 있는 도일처라는 만두가게를 본딴 이름이다. 도일처(都一處)는 하얼빈 시내에서 유명한 프랜차이즈 만두전문점이다. 도시에서 유일하다는 의미로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다 생각해낸게 독일처(獨一處)이다. 都보다 獨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이름을 짓게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식당이라는 뜻이다.

외국인 밀집지역 환경이 변해야

중국동포나 외국인 밀집거주지역인 대림동, 구로동, 안산 등은 치안이 안좋은 동네로 알려져있다. 물론 치안상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문제를 그냥 외국인이나 동포들이 산다는 이유로 방치하거나 의례 그런 것으로 치부하는 건 더 큰 문제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관할 지자체 등 관에서 어느 정도 지원을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히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확성기 차량의 캠페인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찰인력을 배치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경찰을 많이 배치한다고 범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10분에 한번씩 순찰을 돌수는 없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개인적인 소견이지만 환경을 변화시키는게 근본적인 처방이라고 생각한다. 얼마전 오픈한 식당건물 외벽 인테리어를 보고 사람들이 이 주변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만큼 식당의 외관도 중요했지만, 이 일대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바꾸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남의 건물에 왜 돈을 투자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더 중요했다. 중국동포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기에 고급스럽지는 않더라고 깨끗함이 필요했다.

물론, 건물 하나 변한다고 전반적인 분위기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전반적인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예를들어 인사동의 차없는 거리처럼 대림동 일대도 차없는 거리로 바꾼다던지 하는 것이다. 이 일은 관할 지자체에서 나서야 할 일이다. 단속은 사후 처방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사람들은 분위기에 따라 행동거지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을 때와 허름한 동네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하는 행동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만큼 조심스럽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쓰레기가 많은 길에서는 자연스럽게 쓰레기를 버리지만 깨끗한 길에서는 함부로 쓰레기도 못 버린다. 사람 심리가 다 그렇지 않은가. 그만큼 강압적인 방법보다는 환경조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배타적인 의식도 변해야 한다. 얼마전 대림동을 차이나타운으로 조성하려다가 무산된 일이 있다고 한다. 무산된 이유가 한국주민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떠도는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얘기가 나돈다는 것은 사실여부를 떠나 그만한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그건 상호간에 마찬가지며 동포들도 한국인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대림동 시장에 가보면 한국 상인들은 동포 없으면 장사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대림동 일대는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고령동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한국에 있는 중국동포들 중 부모님만 중국에 남겨두고 자녀들은 전부 한국에 체류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경우 중국에 계신 부모님을 한국에서 모시고 싶어한다. 우리 집도 그런 상황이 있었다. 아내의 외할아버지가 몇 년 전 3개월 비자를 받고 한국에 왔는데, 그기간에 몸이 많이 안좋아지셨다. 중국에는 마땅히 간병을 해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한국에서 우리가 모실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3개월짜리 비자였기에 체류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병원 진단기록 등 준비할 수 있는 서류를 모아 출입국에 연장을 요청했다. 사정도 해보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체류연장허가가 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중국으로 가셨는데, 6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자식들은 다 한국에 있는데 홀로 중국에서 돌아가셨기에 그만큼 마음이 아팠다. 고령동포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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