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사회환원의 현주소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외국계 기업들이 자국에 돈을 퍼 나르다시피 하면서 국내 산업 기여도는 물론 사회 환원에 인색하다는 것은 줄곧 지적돼온 일이다. 하지만 통계가 나올 때마다 드러나는 얌체행태는 더 이상 두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그동안 재계를 중심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한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쟁은 꾸준히 제기되었다. 기업은 이익집단이지 사회 봉사단체가 아니라는 독선적 반론에서부터 사회 환원은 대기업처럼 든든한 돈줄이라도 쥐고 있다면야 모르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급한 불부터 꺼야 할 판에 꿈만 같은 이야기라고 말하는 중소기업은 ‘규모에 따른 책임론’을 말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반 기업 정서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최소한의 성의표시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을 언급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특히 외국계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 기업 정서는 매우 강하다. 외국계 기업이라는 특수성에 맞물려 정서적 반감을 기본적으로 내재하고 있으며 국내에 미치는 경제적 기여가 낮으면서 국내 시장을 잠식하는데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표된 지난 국세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법인세를 낸 1420개 외국 기업이 한국에서 기부한 금액은 총 36억7100만원. 업체당 평균치로 봤을 때 고작 250만원 남짓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접대비 총액은 기부금의 약 17배 수준인 622억원이 훌쩍 넘어 수단을 안 가리고 돈벌이에만 혈안이 됐을 뿐 재투자나 기부를 통해 한국 사회에 뿌리를 내리려는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국내기업 내 사회 환원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다. 사회환원에 있어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들도 기업의 사회 환원은 돈을 벌고 나서야 할 수도 있는 선택적 사항이 아닌, 기업 스스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 하는 조건으로 보면서 각종 사회 환원 사업에 뛰어들거나 사업기획 시 애초에 사회환원을 반영하기도 한다. 이는 ‘바람직하다’라는 선택사황이 아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지한 까닭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문화의 조류가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는 와중에 외국계 기업의 동참율은 여전히 저조하다. 특히 한국인의 과시욕 덕에 불경기를 뚫고 매년 떼돈을 벌어가는 외국계 명품 업체들의 기부율은 참담할 정도의 수준이다. 외국 명품업체 상위 15곳은 2010년 매출 3조8727억원, 순이익 2364억원으로 6년간 평균 3배가 늘었고 무려 10배가량 성장한 곳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한국에서 긁어간 돈은 그 회사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배당금으로 쓰였고 한국 내 기부금은 전체 순이익의 0.32%에 불과했다. 심지어 프라다, 스와치, 불가리 등의 기업은 6년간 한 푼도 기부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회사나 수입자동차 업체에서도 다를 바 없이 나타났다. 씨티 외환 SC제일은행 등 3개 외국계 은행의 지난 사회공헌 실적은 총 396억원으로 1조6000억원을 넘는 당기순이익의 2.4%에 불과하다. 가계부채 제한이나 중소기업 대출 확대 등 시장 안정을 위한 금융감독 당국 지침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제 잇속 챙기는 데만 급급했다는 뜻이다. 과거 기업들에 있어 ‘사회 환원’은 자기 방어적이고 수세적 위치에서 경제적 이익분에 대한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한 최근 시민의식의 확장으로 ‘균형과 분배’ 그리고 ‘공정성’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사회 전반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사회환원이 전반적인 사회 패러다임의 잣대로 기업에까지 전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외국계 기업의 반응속도는 더디고 더디다.
아우디폭스바겐 코리아가 벤츠에 이어 매출 1조원 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연간 수백억원대의 순익을 내면서 기부금은 수천만원에 불과해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지난해 2010년보다 각각 22.5%, 30.6% 늘어난 1만2436대, 1만345대를 팔면서 매출이 1조원을 돌파했다. 환율 등에 따른 금융비용이 크게 증가하면서 영업이익은 5.2% 줄어든 328억 원을 기록했고, 당기순이익은 219억 원을 달성해 그야말로 국내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상황, 그러나 국내 소비자들의 압도적인 지지에 비해 국내에서 벌어들일 수익을 나누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는 매우 낮다.
특히 프리미엄을 표방하는 외국계 자동사 기업들의 격을 논하자면 차라리 뻔해 보이는 상술에 가깝다. 국내 소비자의 성원으로 1조원이 넘는 수입을 거둬드린 아우디폭스바겐 코리아의 기부금 고작 5000만원,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문화권의 기업태생과 전통성과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 가치관에 대한 격과 자부심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
아우디폭스바겐 코리아는 그 동안 연간 수백억원대의 순익을 내면서도 연간 기부금은 2009년 6312만원, 2010년 4200만원, 지난해 5000만원에 그쳤다. 그야 말로 생색내기인 것이다.
같은 해 벤츠코리아와 BMW코리아는 각각 4억5000만원, 8억8000만원을 기부했다. 아우디폭스바켄코리아에 비해 양호한 편이지만 벤츠도 작년만 해도 기부금 규모가 3056만원으로 수모를 당한 바 있다. 유럽권 기업, 특히 벤츠 같은 기업이라면 좀 더 고상하고 공정할 거라 무작정 신뢰했던 상상이 무참히 깨어지는 수치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지난해만 해도 1만9534대를 판매해 전년대비 21.2%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벤츠의 전 세계 시장 중 한국은 15위 권 안, 고급 세단인 E클래스와 S클래스 부문에서는 세계 5위권이다. 매출액이 무려 1조3000억원이 넘는다. 지난 2월 1일 벤츠코리아의 신임 대표이사로 취임한 우르바흐 사장은 올 하반기 독일에서 열리는 이사회에서 한국이 주요한 의제로 다뤄질 것이라며 한국 시장을 높게 평가했다. 그가 말하는 한국의 비중이 단순히 외제차 과시욕에 찌든 한국 자화상에 대한 씁쓸한 투영이 아니길 바란다.
<MBC 이코노미 매거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