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하고 품위 있는 노부부들이 유서 깊은 고성들이 언덕 여기저기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강을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거나 코발트 빛 짙은 지중해에서 크루즈여행을 즐긴다. 노인들이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알프스의 휴양지에서 책을 읽으며 휴가를 즐기거나 아름드리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는 동네 공원에서 커다란 사냥개 골든리트리브를 데리고 산책을 한다. 80년대 영국유학과 독일 경제연구소 근무, 그리고 그 후 출장 등 이런 저런 일로 유럽을 여행할 때 자주 보아왔던 가장 부러웠던 풍경들 중 일부다. ‘정말 잘 사는 유럽이구나.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하고 나이 들어서 저렇게 여유 있는 노년을 보내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는 생각도 들었었다.
퇴직 전에는 또 어떻게 보내나. 일주일에 5일 하루 8시간 근무에 수요일은 반일 근무로 주당 36시간 근무다. 그것도 보통 아침 7시에 출근하여 회사 카페떼리아에서 간단한 브렉파스트를 먹고 점심시간엔 한 시간 씩 오수를 즐기는 시간들을 모두 포함한 시간이다. 대개 오후 3시면 퇴근하는 러시아워다. 그 후에는 운동도 하고 정원도 가꾸고 그림도 그리는 등 자기생활이다. 야근이 일상생활화되어 있던 한국인으로서는 너무도 부러운 근무환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1년에 대개 5~6주는 휴가다. 휴가 가기전 두세 달은 휴가 설계하느라고, 휴가 다녀와서는 휴가얘기로 다시 두세 달을 보내다 보면 다음 휴가 설계한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 ‘아! 유럽사람들은 일은 철저히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구나. 자아실현을 인생의 최우선 목표로 두고 또 그것이 가능하도록 사회구조가 설계되어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하는 속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으로서 섣부른 칭찬도 했었다.
60년대부터 압축성장을 하며 달려 온 끝에 70년대 한국은 악화된 분배문제와 열악한 노사문제로 근로자들이 연일 데모하고 심지어 분신도 하는 등 극심한 성장통을 앓고 있던 시대였다. 그 시기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필자는 자연히 분배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분배를 중시하는 유럽에서 정치경제학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보다는 유럽유학을 결심한 것이 장학금을 받은 영국유학이었다. 영국에서 당시 한국에서는 금기로 되어 있던 맑스의 자본론이나 리카도의 정치경제학을 공부하니 경제학의 새로운 경지를 만난 도취감에 맨체스터대학을 다니면서도 그 유명한 맨체스터유나이트 축구장 한번 안가보고 도서관과 기숙사만 왔다 갔다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무슨 유럽재정위기인가. 그처럼 세계 최고의 선진 사회제도와 풍요로은 삶을 구가하던 유럽이 재정위기로 휘청대다니 그 동안 보아오고 부러워하면서 한국에서 구현하는 것이 경제학도로서의 꿈이기도 했던 그런 모습들이 대부분 빚으로 즐기던 거짓 여유들이었든가. 유럽국가들, 특히 지금 유럽재정위기의 진앙지인 남유럽국가의 빚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리스 4000억 유로로 GDP의 165%, 이태리 1조 9000억 유로로 GDP의 120%, 아일랜드 1860억 유로로 GDP의 108%, 포루투갈 1680억 유로로 GDP의 108%, 프랑스 1조 7100억 유로로 GDP의 85%, 스페인 7100억 유로로 GDP의 69%다.
국가부채가 GDP의 60%를 넘으면 위험수위라고 하여 원래 유로존 합류조건인 수렴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최근 합의를 본 유럽신재정협약에서도 60%를 넘어면 벌금을 유럽연합에 내도록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재 남유럽의 국가부채수준이 얼마나 많은가를 알 수 있다. 일단 이 정도가 되면 세수로는 이자를 내기도 힘들어 이자를 내기 위해 다시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악순환인 ‘부채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이정도만 되어도 다행이다. 지금 남유럽은 이자지급이나 만기가 돌아오는 국채의 차환을 위해 국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국가신용도가 떨어져 국채가 팔리지 않아서 발행자체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도에 대한 보험료인 신용부도스왑(CDS)프레미엄이 5월 23일 현재 그리스 28,610bp, 포루투갈 1,223bp, 아일랜드 708bp, 스페인 428bp, 이태리 490bp, 프랑스 220bp에 이르고 있다. 2008년 10월 한국이 외화유동성 위기로 한미통화스왑협정을 체결하였던 당시 신용부도스왑 프레미엄이 380bp 수준이었던 점을 생각해 보면 이 수준이 얼마나 위기수준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국가빚이 많아지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투입과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 재정정책으로 재정지출은 증가한 반면 마이너스 성장으로 세수는 오히려 줄어들어 국가부채가 크게 늘기도 했다. 그리고 남유럽은 독일 등 북유럽에 비하여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낮은데도 통화통합으로 같은 환율이 적용됨으로써 수출경쟁력이 약화되었다는 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재정수입보다도 재정지출이 많았기 때문에 국가부채가 증가하였고 그 과도한 재정지출 중에는 과도한 복지지출이 문제였다는 점이 남유럽 국가부채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그리스를 보자. 그리스의 비극은 얼마전 물러난 사회당의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수상의 아버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수상이 집권(1981-89)하면서 비릇되었다. 복지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군부독재를 종식시키면서 권력을 잡은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는 “국민이 원하면 다해 주어라”라는 식의 파격적인 복지제도 시행으로 집권하던 1981년에 26.7%였던 국가부채/GDP 비율이 1989년에 벌써 60%에 도달하여 위기를 예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 담보장치도 없이 임금수준이 높은 최종 5년간 평균임금의 95%를 공무원 연금으로 지급하고 대학까지 전면 무상교육을 시행하는 등 퍼주기식 과잉복지를 지속한 나머지 국가부채가 급증하여 국가부채/GDP 비율이 2000년에 100%를 넘고 2001년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할 때 벌써 104%로 유로존 수렴조건(60%)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기관 구제 등 재정지출은 증가하였는데 성장률은 마이너스로 세수가 감소하여 국가부채가 급증하여 국가부채/GDP 비율이 2008년에 113%가 되고 다시 2009년 129%, 2010년 145%, 2011년 165%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국고는 바닥이 나고 국채발행도 안되어 유럽연합 등 외부의 구제금융이 없이는 한달도 버티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 오늘날 그리스의 형국이다. 자기나라 재정도 빠뜻한데 독일 등 돈을 주는 입장에서는 그리스가 더 이상 방만한 재정지출을 하지 않도록 긴축과 구조조정을 요구할 수 밖에 없고, 긴축과 구조조정을 하자니 연속되는 마이너스 성장으로 실업률이 16%, 청년실업률이 43%로 신음하고 있는 그리스 일반국민들로서는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구제금융은 받으면서도 긴축과 구조조정은 안하도록 하겠다는 선동적인 공약을 내건 급진좌파연합정당이 급부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약속한 긴축과 구조조정을 하지 않는다면 국고와 외환이 바닥이 난 그리스는 당장 부도가 나고 그렇게 되면 원유수입도 안되고 국영병원 학교 등도 운영이 어려워지는 등 국가경제는 파탄에 직면하게 된다. 이를 타개하는 방법은 우선 급한대로 자국통화를 발행하여 공급하는 길 밖에 없는데 이는 바로 유로존 탈퇴다. 그러나 그리스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탈퇴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채와 민간부채를 포함한 외채가 약 60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유로존을 탈퇴하여 옛날 그리스 통화인 드라크마화로 돌아가는 순간 외환보유액이 없는 그리스는 외환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1997년 한국에서 경험하였듯이 환율은 두 배로 올라서 드라크마화 표시 외채상환 부담이 급증하여 그리스 기업들은 파산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1997년 금융위기 시 1인당 국민소득이 1996년 12,518달러에서 1998년 7,607달러로 39% 감소했다. 한국은 경쟁력 있는 수출기업이 있는데도 그랬다. 그리스는 관광업과 해운업 외에는 수출산업이 별로 없기 때문에 소득이 절반 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구제금융을 받자니 긴축과 구조조정을 해야되고 긴축과 구조조정을 안하자니 부도와 유로존 탈퇴로 소득이 절반이상 감소할 전망이다. 이래 저래 사면초가 신세다. 1980-2010년대 30여년 동안 조상들이 유유자적 빚을 내어 과잉복지를 즐겨 온 결과 지금 후손들은 그 빚더미에 눌려서 진퇴양난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다른 남유럽국가들도 별단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도 지난 총선 때 선동적인 복지공약이 남유럽 못지 않았다. 다가오는 대선도 만만치 않을 전망이라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남유럽사태에서 우선 달콤한 과잉복지는 후손들이 짊어질 수도 없는 엄청난 빚과 고통만 남긴다는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배워야 한다. 한심한 정치인들이 배우지 못하면 국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 진정한 복지는 투자와 성장을 증진시켜서 어려운 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이라는 점을 깊이 명심하고 이를 위해 실현가능한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는 정당을 현명한 혜안으로 선택하는 길이 국가를 살리고 사랑하는 후손들을 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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