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에서 퇴출위기에 있던 우리의 전통주가 빈약해진 직장인들의 주머니사정을 덜어주고 있다. 세련된 문화를 찾던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우리 전통주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만들고 있는 것.
이런 상승세가 수출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어려운 경제에 단비 같은 생명을 불어넣고, 전통주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이틀간의 일정으로 양재동 at센터에서 조촐한 행사를 가졌다.
회원들이 자신이 빚어낸 전통주를 지인들에게 시음할 기회를 주는 행사인데 ‘술방사람들이 나누는 전통술향기’가 오늘 행사의 주제다.
앙증맞은 술병들마다 간단한 술에 대한 설명과 회원이름이 적혀있다. 그 어디에서도 마실 수 없는 전통주 맛을 보러 온 이들이 시음하고 간 흔적은 마시다 남은 술병이 대신했다.
“우리조상들은 고유한 맛과 향기를 간직한 가양주 문화를 가꾸어 오지 않았습니까? 술방사람들은오랜 기간 명맥이 끊기고 사라져 버린 수백 가지의 우리 전통 가양주에 대해서 연구하며, 그 양조법의 과학적인 우수성을 알리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자 끊임없는 연구를 하고 있는 진정한 술사랑 모임입니다. 1999년에 순수동아리로 만났는데 벌써 12년이 됐나 봐요.(웃음) 처음에는 몇 명이 모여서 우리 나름대로 무언가 의미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고 했던 건데 회원들이 하나 둘 모이다 보니까 지금은 30명이나 됐어요. 전국에 분포되어 우리회원들은 나름대로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직업도 모두 달라서 대학교수도 있고, 부동산전문가, 주류유통가, 목공, 음식전문가 등 다양해요. 음식전문가는 회원의 20%정도에요. 먹는 음식은 정말로 애착이 없으면 하기 힘들어요.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해보면서 실패도 해보고 성공도 해보면서 노하우를 익혀나가는 거거든요. 서로시간이 없다 보니까 만나는 것도 어렵고요. 그래도 정기적인 모임은 2달에 한번 정도 꼭 합니다. 평소 때는 온라인카페에서 서로의 안부도 주고받고 자기가 터득한 실패담과 성공담도 들려주면서 아주 끈끈한 정을 나누죠.”
우리 문화를 지키는 가교역할 하고파
술방사람들은 스스로가 명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분야에 명인이라고 하면 하나를 잘 한다는 거지만,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를 다 잘해내기 때문이라고. 우리 전통문화가 별 관심을 받지 못하던 지난 90년대, 우리 것을 지키자고 모인 이들이니 그 자체만으로도 명인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아무도 지켜내지 않으면 잊혀질지도 모르는 우리 전통주의 맥을 이어서 후세에 남겨주자고 만난 이들이 아닌가? 늘 어떤 것을 일깨워서 새로운 문화를 확산시키는 가교역할을 한 것은 국가의 거창한 정책이었다기 보다는 맥을 잇고자 하는 이들의 움직임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오랜 역사를 간직해온 우리의 음식문화는 외국에서도 관심이 높은 편이지만 정작 우리는 외면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한류문화니 한식문화니 구호는 그럴듯하면서도 행동은 너무나 다른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은 이들이 있기에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 보게 한다.
“숭고한 전통문화는 계승하여 발전시켜야 하고 새로운 가양주 문화를 일상생활로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은 그 누가 아니고 내가 되어야죠. 그래야 전통주 문화가 되살아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스스로가 찾아서 지키려는 노력이 없다면 우리 후세에 남겨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지 몰라요. 그나마 보존의 의미를 둔 상업적인 맥은 우리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잖아요.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전통주의 맥을 이어오고 있는 가운데 막걸리나 소수의 전통주가 직장인들의 관심을 받는 것은 너무나 보람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냈구나 하는 뿌듯함이 생기거든요. 누가 뭐래도 우린 지금까지 노력을 해왔고, 앞으로도 우리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이어갈 겁니다.”
관련기업에서도 행사장을 찾아
술방사람들의 온라인카페에는 준회원이 꽤나 많다. 술 담그는 방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재래식 하면 불편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건강과 연결시켜보면 불편한 게 아니라 배워가는 재미가 있어 행복하다고.
그래서 이들은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에게 전통주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어떤 방법으로 술을 담그면 어떤 맛이 나오고 누룩재료를 어떤 것을 써야 문헌 그대로의 맛을 되살릴 수 있는지는 그래서 늘 연구한다.
“요즘은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요. 그래선지 준회원들도 많이 늘었는데 대부분은 선배들의 노하우를 배우고자 하는 분들이에요. 어떻게 하면 술 맛을 잘 낼 수 있는지, 담글 때는 어떤 점에 주의해야 하는지 등등 물어보는 것들도 다양해요. 어지간하면 다 알려주려고 하죠. 우리 국민들 누구든지 집에서 술을 담가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은 게 우리 동아리의 목적이거든요. 요즘 쌀이 남아돌잖아요. 화학주가 아니라 순수하게 전통주를 만들어서 먹는 다면 건강도 지킬 수 있고, 특히나 남아도는 쌀을 소비해서 농촌수익증대에도 도움이 되고요. 일석이조 아닌가요? 정기적으로 일년에 한번씩 이런 행사를 하는 이유도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이번 행사에는 전문가들도 많이 찾았다. 한 교수는 전통주에 대한 논문을 쓰는데 자료를 찾다가 이런 행사가 있다고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왔다고 했다.
아무래도 자료를 찾는 것보다는 직접 술을 담그는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도 듣고 실패담도 들어야 논문을 쓰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관련기업에서도 여럿이 찾아왔다.
요즘의 술 문화가 막걸리가 대세이다 보니 기업입장에서도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는 전통주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다 보니 이런 행사를 찾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들은 다양한 술의 종류와 시음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양조장을 둔 대량생산이 아니라 재래식 방법을 고수하다 보니 그 맛도 훌륭했다.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행사를 할 때면 매년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있다고 했다. 특별하게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술방사람들이 빚은 술 향기에 이끌려 오늘도 행사장을 찾았다는 한 손님은 늘 마시고 싶은 술 맛을 오늘에야 볼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술방사람들이 만든 술 맛은 뭔지 모를 묘한 맛이 있어요. 한번 마셨는데 어느 때 불현듯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날 때가 있거든요. 저는 지난해 시음장에서 처음 술맛을 봤는데요. 그 후 늘 다시 한번 그 술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어디서 마실 수가 있나요. 이런 행사장이 나와야 다시 맛보는 거죠. 판매라도 하면 사 마실 텐데 그렇지도 않고요.”
그러고 보니 오늘 선보인 회원개인의 라이선스를 달고 나온 상품들은 일회성이라고 했다. 행사의 목적이 판매를 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전통주의 맛을 알려 모두가 직접 담가먹도록 하자는 게 행사의 목적이라고. 그래서 시음은 할 수 있지만 사서 가져갈 수는 없다. 맘껏 마시는 것만 허용된다.
순수한 모임이다 보니 국가적인 지원을 받는 것도 어려워
“작년에는 인사동 갤러리를 빌려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임대비용이 400만원이나 되는 것을 회원들이 모두 각출해서 충당했거든요. 그만큼 우리 회원들은 전통주에 대해서 애착이 강해요. 전국에 흩어져 사는 회원들인데도 행사를 할 때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또 행사장에서 지인들에게 맛보일 자기만의 전통주를 빚는다고 정성을 들이죠.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정말로 전통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힘들어요. 우리 회원들의 이런 애착이 알려져서 요즘은 지자체 행사를 할 때 자리를 빛내달라며 참석해줄 것을 부탁하는 곳들이 많아요. 어지간하면 우린 참석하려고 해요. 우리 모임의 순수목적이 다름아닌 우리 전통주를 전국민에게 알리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편할 때 가고 몸이 피곤하다고 안 가면 그 의미가 퇴색되는 거죠.”
이렇게 순수한 모임이다 보니 국가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받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국가의 기금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단법인과 같은 단체를 설립해야 하는데 단체를 설립하는 등 외형을 키우다 보면 원래의 순수성은 퇴색되기 싶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는 것.
“회원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서 정부지원을 받으려고 노력을 했었죠. 그런데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어요. 순수 동아리모임이라고 했더니 한옥마을이라든지 이런 곳이 아니니까 돈을 못 빌려준다고 하더라고요. 참 실망스러웠죠. 국가가 앞장서서 알려야 하는 것을 우리가 사비를 내서 맥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데 겉으로 보이는 규모만 따지니 한심하죠. 그래서 그만뒀어요. 사실 음식은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들다 보니까 기금이 필요해요. 회원들이 다 사비를 내서 충당하잖아요. 그래서 내년부터는 홍보도 하고 기금도 마련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회원들이 연구에만 신경 쓸 수 있도록 해야죠.”
술방사람들은 늘 술 담그는 방법을 공부한다. 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는 사람도 있고 연구소를 차려서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도 있다. 누룩이 중요하기에 각 지역을 돌면서 품질이 좋은 재료를 찾고 옛 것이 있는 곳은 어디든 찾아간다.
꼭 전통주가 아니더라도 우리문화를 찾는 것에는 이렇듯 관심이 많다. 그래야 후세들에게 우리 것을 알려줄 수 있고 선배로서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울 것 같기 때문이다. 12년의 노력으로 대기업이 점차적으로 우리 전통주, 일부분이 지만 막걸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들의 자부심이다.
“앞으로 우리 회원들이 한 사람 한 사람자기가 만든 라이선스를 가지고 상품화를 만들었으면 해요. 순전히 재래식으로 정성과 자연을 담아서 상품화하는 거죠. 현재 롯데백화점에 상품을 내 놓은 회원이 있는데 전통주 500mm 한 병이 8000원이에요. 상당히 비싼편이죠. 그런데 만드는 과정이나 재료를 보면 비싼게 아니에요. 한 회원은 시골폐교를 사서 전통주 체험장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의미가 있죠. 찾는 사람들도 많아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고요. 단지 젊은회원들이 거의 없고 중년 이상이라는 점은 우려스럽죠. 앞으로 젊은 회원들이 들어와서 전통주의 매력에 푹 빠졌으면 해요.”
그 시대의 문헌을 방식 그대로 연구해서 어떻게 하면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지를 찾아가는 이들이 가장 어려운 것은, 기후, 토양, 물맛이 달라 당시의 맛을 살리는 것이라고.
그렇지만 최적의 술 맛이 날 수 있도록 연구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맛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있다고 했다. 순수 동아리에서 전통주의 명인이 되기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은 이들의 열정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MBC 이코노미 매거진 11월호 P.0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