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15주년, 숭실고등학교는 깊은 전통과 역사를 지닌 명문사학으로 통한다. 1897년 미국인 선교사 ‘베어드’(한국이름, 배위량)에 의해 선교를 목적으로 지금의 평양에 설립된 이 학교는 지금까지 주된 설립취지를 지켜가고 있다. 4명의 선교사가 교장을 역임할 정도로 선교에 강한 의지를 가졌지만 1936년 ‘맥퀸’(한국이름, 윤산온)이 ‘신사참배’를 거부하면서 강제 추방된 이후, 외국인 선교사 교장의 시대가 막 내리게 되었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학계에 진출한 사람들 중 이 학교 출신들이 유독 많은 것은 암울한 그 시대를 겪으면서도 민족사학의 이념을 퇴색시키지 않고 민족고취를 중점으로 한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부터 6.25사변까지, 한국 근, 현대사의 산실의 이 학교는 1836년부터 12여 년 간 강제 폐교를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1948년 9월 학교가 서울에서 다시 간판을 내걸었을 때 학생 수는 52명이었다. 2년 후 한국전쟁으로 문을 닫을 때 200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에게는 허기진 배움을 채우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자리로 이전한 1978년부터
1992년 개교한 이화외고는 121년 전인 1886년 미국인선교사였던 메리 스크랜튼(Mary Scranton)여사가 세운 한국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의 설립이념을 계승한다. 기독교 신앙의 바탕 위에 자유. 사랑. 평화의 이념을 세계와 역사 속에 구현할 여성 지도자를 육성한다는 것.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이 학교의 학생 수는 580명이다. 교육과정은 이화여고의 전통을 이어가며 특목고의 특징을 살린 인재양성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전통적인 분위기를 익힌다고 하지만 학생들에게 강요되는 억압은 없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생활한다. 모든 교육과정은 ‘인성교육’에 기초하고 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왕따도 이 학교에서는 걱정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소통하며 신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특정 프로그램을 인성을 맞춰서 교육시키지도 않는다. 학교생활을 함에 있어 입학초기부터 졸업하는 3년 동안 스스로 몸에 배이도록 한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비율이 조금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먼저 배우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 학교의 교육목표
서울여상은 1926년 구한말 참정대신 한규설 대감의 구국정신을 이어 자제분이었던 한양호 선생이 설립했다. 서울 견지동(종로구 소재)에 설립된 이 학교의 정식명칭은 경성여자상업학교였다. 당시만 해도 여성들이 배워서 사회활동을 한다는 것은 상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녀교육을 담당하는 여성들도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점점 형성되어 갔다. 그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교육기관은 설립됐다. 개교 후 전국에서 많은 여성들이 몰려들어 10년 후인 1936년에는 홍제동에 신식학교를 지어 이전도 했다. 평준화에 맞춰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하고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로 명칭도 바뀌었다. 민족수난기 한국 최초의 여성경제교육기관이었던 서울여상은 지금까지 85년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설립자의 정신 서울여상의 한상국 교장은 이 학교 설립자의 증손자가 된다.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팔도강산에서 유일하게 여성들이 다닐 수 있었던 이 학교엔 한복차림에 댕기를 한 여학생들이 꿈을 키웠다. 그런 정신은 사회가 변화된 지금도 사회의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명문학교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 학교의 교육방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선 취업 후 진학’정책은 어찌 보면 기술학교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해오고 있던 교육방법이다. 우리나라최초 교육부 인가를 받은 한국제과제빵학교도 이런 교육기관 중 하나다. 올해 40회째 졸업생을 배출한 이 학교는 설립초기인 70년대 초반만 해도 제과제빵을 배우려는 학생들로 6:1의 경쟁률을 보이며 사회의 이슈가 됐었다. 그러나 지금 이 학교는 1년 정규반 정원 50명을 채우지 못해 3층 건물이 대부분이 공실로 방치되어 있다. 기자가 취재차 학교를 갔을 때는 교실 3개에 30명 남짓한 학생들이 몇 명씩 팀을 이뤄 실습 중에 있었다. 과거에는 이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기술을 배워서 사회에 나가 기능인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었다고 한다. 기능인 최고의 자리인 제과제빵 명장을 8명이나 배출한 학교라는 자부심도 대단했었다고. 이런 선배들의 명성은 곧 학생들에게 큰 희망이 됐다.‘나도 열심히 배우면 선배들처럼 유명해질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구나’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화되고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이런 꿈들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말았다. 대형프랜차
서울산업정보학교는 일반계고등학교에서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위탁으로 직업교육을 시킨다. 이 학교에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 대부분은 국·영·수 과목에서는 뒤처졌어도 기술습득에서 만큼은 수업능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니던 학교에서 교과목적응이 어려워 위탁수업을 선택한 경우다. 최근에는 경제사정으로 인해 가정환경이 나빠져서 취직을 하기 위해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들이 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산업정보학교의 1년 위탁교육과정은 취업과 진학을 동시에 고려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학을 포기하고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들은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자기 할 바를 몰라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었던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학교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학교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위탁교육에 대해 알아보자. 위탁교육이란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2학년까지 다녔지만 수업에 관심이 없다보니 성적이 뒤처져서 대학진학이 힘든 학생들에게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대안직업교육이다. 이 학교에 와서 직업교육을 받는 학생들은 족적은 원래
서울시 영등포구에 자리한 장훈고등학교는 100년이 넘는 오랜 역사와 전통의 사학임에도 강남이나 목동지역에 비해 지역적 핸디캡을 안고 있어 지명도가 낮았다. 하지만 서울고·여의도고교장, 중앙대 겸임교수 등 교육현장과 서울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강남교육청 교육장, 교과부 교육현장지원단장 등의 교육행정 및 정책 부서의 업무를 두루 거친 이경복 교장이 부임하며 학교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먼저 자율형 사립고로 개편하고 장훈만의 알차고 특색 있는 교육프로그램으로 2011학년도 8개 학급(280명)을 모집했다. 올해 들어 거의 모든 자사고에서 지원자가 감소했음에도 장훈고는 오히려 학생 수가 320명으로 증가했고, 꾸준히 전입학생도 늘고 있다. 기숙사와 다목적강당 신축, 도서관, 특별실, 외벽, 복도창호, 학급 교실 내부 등 리모델링을 완료해 쾌적한 교육환경을 자랑한다. 학생들의 학력신장을 위해 정규수업을 강화하고 나아가 기존의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장훈비전 아카데미’ 및 주5일 수업제에 대비한 명품 ‘장훈토요아카데미’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학생 능력에 따른 수준별 수업 강화, 입학사정
서울 고등학교는 64년 역사를 간직한 인재배출의 교육현장이다. 1946년 개교해서 1회 졸업생을 배출 시킨 후 6.25동란으로 무기 휴고를 겪기도 했던 이 학교는 현재에 이르는 동안 62회 4만3천3백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냈다.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과학중점학교 자율학교로 지정된 이후 시대의 변화에 맞춰가며 일반고의 롤 모델이 되기 위한 다양한 체험학습으로 미래의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고 있다. 서울 고등학교 장천 교장은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계 현실은 일반고가 상당히 어려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면서 “특목고에서 중학교 내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빼가고 나면 다음에는 사립고에서 내신 50%이상의 학생들을 선지원 하도록 해서 데려가고 나면 그 나머지 학생들이 학교 선택 제에 의해서 일반고로 배정된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일반계 고등학교가 앞으로의 방향을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가져야 할 때가 지금이다. 서울고는 다른 일반고에 비해서는 상당히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 역사 속에서 많은 인재를 키워낸 교육 현장이라는 브랜드와 학생들이 누릴 있는 최상의 환경도 갖추고 있다. 그
1960년, 서울사대문 안에 학원처럼 만들어진 건물이 있었다. 국내최초의 국악예술학교가 세워진 것이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서 설립되었다지만 학교의 규모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서 각종학교의 형태였다. 그러다가 ‘한국국악예술학교-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로 바뀌면서 예술분야의 인재육성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이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한 울타리에서 공존하며 실질적으로는 행정직과 교장이 겸임체제를 이루고있다. 한 학년의 정원은 중학교가 60명, 고등학교가 180명이다. 교사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달랐다. 이 학교의 교과목들은 전통예술고등학교답게 대부분이 예술에 관련한 학과들이다. 고등교과목 4개 반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는 한국음악과(기악과)는 가장 전통적인 학과다. 각종악기를 이론부터 실습까지 배운다. 성악과는 판소리나 가야금, 가곡이나 가사, 여러 지역의 민요 등을 배우고, 연희학과는 탈춤 같은 것을 배운다. 춤을 추면서 노래도 하고, 대사를 하면서 음악반주도 연주한다. 음악학과는 뮤지컬을 연상할 수 있는 학과다. 교과목 중 어쩔 수 없이 서구화된 뮤지컬을 실습하고는 있지만 조금 더 한국적인 뮤지컬에 치중하기 위해
신진자동차고등학교의 태동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자동차가 생기기 이전인 60년대 중반, 자동차공업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신진자동차공업 주식회사의 故 김창현 이사장은 자동차산업분야의 인재육성을 위해 신진공업고등학교를 개교했다. 초기 자동차학과와 운수관리학과가 만들어졌었는데 졸업생들은 전원 신진자동차주식회사로 취직됐다. 당시 이슈가 됐을 만큼 전국에서는 이 학교에 입학하고자 몰려드는 학생들로 상당한 경쟁률을 보였다. 산업화가 시작되던 때라 선진화된 기술을 배워서 기술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 학교는 올해로 42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졸업생 수만 2만3천여 명. 자동차업계의 각 요소에서 핵심인력으로 자동차의 선진화시대를 이끌어 가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 이 학교의 출신들이다. 현대자동차기술연구소 신차개발팀만 해도 이 학교 출신들 40여 명이 핵심인재로 기술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 학교의 이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바뀌어왔다. 2004년 신진과학기술고등학교로 학교명이 바뀌면서 학과를 개편했던 이 학교는 당시 교육부장관으로부터 시대에 맞는 학과개편으로 표창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