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수준으로 늘어난 콩 재고로 농림축산식품부가 수급 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단순히 소비 감소로 인한 상황으로 이해하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산콩 생산량은 2021년 11만 톤에서 2024년 15만5000톤으로 약 1.4배 증가했다. 하지만 소비 비중은 같은 기간 34.3%에서 30.5%로 오히려 감소했다. 1인당 콩 소비량 역시 줄었고, 감소분 대부분이 국산콩에서 발생했다. 생산은 확대됐지만 산업으로의 투입은 늘지 않았다. 이 간극이 현재 콩 문제의 핵심이다.
◇ 국산콩이 설 자리는?
콩의 가격 구조는 이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산콩 가격은 수입콩 대비 약 두 배 수준으로 가격 격차가 크다. 2022~2023년 정부가 수입콩을 낮은 가격에 방출하면서 국내 시장 가격까지 동반 하락했고, 그 결과 국산콩의 경쟁력은 더 약화됐다. 가격으로 선택되는 식재료 시장에서 이 격차는 구조적으로 극복하기 어렵다. 홍보나 판촉을 통해 일시적으로 판매를 늘릴 수는 있지만, 산업 공정으로의 편입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제는 가격 수준이 아니라 시장의 성격이다. 식재료 시장에서는 더 싼 원료로 쉽게 대체되지만, 산업 시장에서는 일정 규격의 원료가 지속적으로 투입된다. 국내 콩 수요의 대부분은 착유·사료·가공 소재 분야에서 발생하고 식용 소비 비중은 제한적이다.
따라서 국산콩이 두부·장류 등 식탁 시장에만 머무르면, 생산이 늘어날수록 재고가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문제는 소비 감소가 아니라, 산업 수요와 연결되지 않는 구조에 있다.
최근 정부는 전략작물 제품화 패키지, 식물조직단백(TVP) 기술 개발, 푸드테크 연구지원센터 구축 등을 추진하며, 정책 방향을 소비 촉진에서 산업 활용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책은 여전히 상품 출시 지원의 성격이 강하다. 제품 개발과 판촉은 시장 진입에는 도움이 되지만 산업적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지는 못한다. 국산콩은 수입 단백 소재와 가격 경쟁이 어려워 일반 식품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사용되기 어렵다.
문제는 기술 부족이 아니다. 국내 대체식품 산업은 분리대두단백과 조직단백 등 핵심 소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중소기업은 대규모 소재 생산 설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원료가 산업 공정에 들어가지 못한 채 시장에서만 경쟁하면 사용 확산은커녕 지속가능성조차 기대할 수 없다.
◇원료 시장의 가능성
대체육을 개발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 단백질 강화 식품 제조업체, 밀키트·HMR(가정간편식) 브랜드, 프랜차이즈 소스 납품업체, 단체급식용 가공식품 기업 등은 국산 원료 전환의 필요성을 가장 먼저 느끼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중소기업으로, 분리단백·조직화 설비를 단독으로 구축할 규모도 되지 않고 자본도 부족하다.
반면, 대기업은 이미 안정적인 수입 원료 공급망을 활용하고 있어 생산 공정을 바꿀 유인이 작다. 즉 전환 의지는 중소기업에 있지만 전환 능력은 부족하고, 능력을 가진 대기업은 전환 유인이 없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따라서 국산콩 산업화는 개별 기업 지원으로 해결될 수 없다. 공동 활용이 가능한 공공 소재 인프라가 형성될 때 비로소 시장 전환이 가능해진다.
최근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국산 ‘대원콩’ 기반 식물조직단백 기술은 이를 방증한다. 글루텐 없이 고수분 조직단백 생산이 가능하고 물성도 검증되었다. 즉 기술적 조건은 이미 마련되어 있는데 부족한 것은 활용 구조다. 분리단백 생산과 조직화 공정을 공동 설비로 제공하고, 표준화와 계약재배를 결합해 원료 가격을 예측 가능하게 해야 한다.
기업은 설비 투자 없이 시장에 진입하고, 농가는 안정적 판로를 확보한다. 여기에 공공급식과 B2B 식재료 시장을 연결하면 상시 수요가 형성된다.
◇ 산업 수요 창출
결국 국산콩 정책의 핵심은 소비 확대가 아니라 산업 편입이다. 산업 공정에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순간, 수급은 가격 문제가 아니라 운영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산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는 새로운 제품을 더 만드는 정책이 아니라, 농산물이 사용되는 방식을 바꾸는 구조 전환 정책을 의미한다. 여기서 가장 먼저 작동해야 하는 단계는 기존 식단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학교·군·병원·교정시설 같은 공공급식에서 두부·순두부·콩물·분쇄콩은 조리 방식 변경 없이 활용이 가능하며, 대량 공급도 가능하다. 특히 군 급식처럼 동일 식단이 반복되는 채널에서는 단일 경로만으로도 대규모 수요가 형성된다. 외식과 가공 분야에서도 찌개 베이스, 밀키트 토핑, 완자 혼합재, 베이커리 원료 등의 대체로, 소비자가 의식하지 않아도 사용량이 증가한다.
이 단계의 목적은 소비 촉진이 아니라 재고 흡수다. 공공급식과 B2B 원료 공급이 동시에 작동하면 단기 수급은 빠르게 안정된다. 그러나 식탁 중심 수요만으로는 재고를 소진할 수 없다. 식탁 수요는 경기와 기호에 따라 흔들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단계는 콩을 식품이 아니라 소재로 사용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분리단백과 조직단백, 대체육 원료, 단백 강화 소재는 톤 단위 소비가 발생하는 영역이다. 이 시장이 형성되면 생산량이 늘어도 가격이 급락하지 않는 완충 장치가 만들어진다. 물론 여기에는 원료 규격화가 필요하다. 식용·가공용·저등급을 구분해 공급하고, 두부 공장과 급식, 가공업체가 계약 기반으로 거래하면 농산물 시장이 아니라 하나의 원료 시장이 형성된다.
◇ 다층적 정책 입안
그렇다면 실제 정책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전환은 하나의 정책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간에 따라 다른 정책 도구가 작동해야 한다. 먼저 단기 단계의 목표는 판매 확대가 아니라 재고를 산업 수요로 이동시키는 것이다. 비축 콩을 단순 방출하는 방식은 가격 하락만 유도할 뿐, 원료 시장을 만들지 못한다.
대신 착유용·가공용 수요와 연동한 할인 계약 방식으로 공급한다. 그렇게 해서 특정 산업 공정으로 직접 투입되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공공급식 부문에서는 국산콩 사용 품목의 표준 규격과 공급 계약을 결합해 상시 수요를 형성해야 한다.
중기 단계에서는 산지 건조·저장·선별의 표준화와 분쇄·단백·유지 가공 투자를 결합해 국산콩을 연중 공급 가능한 규격 원료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는 농가별 품질 편차와 계절 출하 구조 때문에 기업이 이를 생산계획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규격이 통일되고 저장성이 확보되면 비로소 식품기업은 레시피와 제품 설계에 국산콩을 반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협동조합과 중소기업 컨소시엄 구조가 필요하다. 개별 농가와 개별 기업은 물량은 적고 위험 부담은 커서 장기 전환 결정을 내리기 어렵지만, 생산을 묶은 협동조합과 수요를 묶은 기업 집단이 공동 가공 설비를 활용하면, 가동률이 확보되고 단가가 낮아진다. 즉 보조금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가 원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동시에 다년 계약재배 방식을 도입하면 기업은 원료 단절 위험 없이 제품을 설계할 수 있고, 농가는 가격 변동 위험 없이 생산을 계획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콩은 더 이상 수확 후 판매되는 농산물이 아니라, 생산 이전에 수요가 확정되는 원료가 된다.
장기 단계의 목표는 수급 정책 자체가 필요 없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Non-GMO 국산콩을 하나의 원료 자산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력 추적·표시·인증 체계를 통해 산업에서 신뢰받는 소재로 고정하고, 식용 채널과 산업 채널을 구분해 운영한다. 식용 등급은 두부·장류로, 가공 등급은 단백 소재로, 저등급은 발효·사료로 이동하는, 다층 구조를 만들면 모든 생산물에 출구가 생긴다.
이 구조가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생산과 수요의 시간 차이를 줄여야 한다. 지금까지는 농가가 가격을 보고 파종하고, 기업은 수확 이후 원료를 선택하며, 정부는 결과에 대응해 왔다. 이렇게 분리된 의사결정 구조가 반복적으로 수급 불안을 야기한다. 인공지능 기반 수급 체계는 생산 이전에 예상 수요와 생산량을 함께 계산해 파종 이전 계약을 가능하게 하고, 용도별 품질에 따라 원료를 산업별로 배정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다. 수급 정책이 사후 개입에서 사전 운영으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결국 국산콩 정책의 목표는 재고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재고가 생기지 않는 구조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비 확대 정책은 상황에 따라 반복되지만, 산업 공정에 안정적으로 편입되는 구조가 형성되면, 가격 문제는 정책 대응 대상에서 관리 영역으로 이동한다.
즉 국산콩 산업화는 더 많이 판매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다. 생산-가공-제조-공공수요를 하나의 체계로 연결해 농산물을 계획 가능한 원재료로 전환하는 게 핵심이다. 정책 운용은 그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다. 그 결과 수급 정책도 사후 대응이 아닌 상시 운영 체계로 바뀌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