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도·비용·확장성에서 갈리는 에너지 전환...“같은 자원 놓고 경쟁 구조”
- 국내 “안정적 전력 위해 원전 필요” 반론...정책 선택 둘러싼 논쟁 본격화
미국 벤자민 K. 소바쿨 보스턴대 교수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기술적으로는 공존할 수 있지만, 실제 정책과 투자 구조에서는 동시에 확대되기 어려운 경쟁 관계”라며 “에너지 전환은 단순한 기술 선택이 아니라 자원, 투자, 인력, 제도 설계가 얽힌 정치·경제적 선택의 문제”라고 밝혔다.
30일 소바쿨 교수는 윤종오 의원이 주관하고, 국회기후위기탈탄소경제포럼과 신규핵발전소 저지 전국비상행동이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주최한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은 공존할 수 있는가’ 초청 강연에서 “결국 각 국가는 어느 한 방향으로 더 큰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이번 강연에서 문제의식은 ‘탈탄소’라는 동일한 목표 아래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병행하겠다는 최근 정책 흐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서 출발한다. 소바쿨 교수는 “정책 입안자들은 포트폴리오 전략, 즉 다양한 전원을 동시에 확대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며 “원전과 재생에너지는 동일한 자원과 정책 역량을 놓고 경쟁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둘 다 성공적으로 확대하는 사례는 드물다”는 진단을 내놨다.
◇ 속도·비용·확장성...원전 vs 재생에너지 구조적 격차
그가 제시한 첫 번째 근거는 ‘속도’다. 기후위기 대응은 시간과의 싸움인데, 원전은 이 시간표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그는 전 세계 40여 개국, 400개 이상의 에너지 프로젝트를 분석한 결과를 인용하며 “전체 에너지 프로젝트 평균 건설 기간은 6년 수준이지만, 원전은 그보다 훨씬 길고 지연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분석 대상 원전 프로젝트의 97%가 비용 초과를 겪었고, 절반 이상이 공기 지연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초기 계획 대비 비용이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나는 사례도 흔하다”며 “이러한 불확실성은 기후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빠른 전환’을 가로막는 요소”라고 평가했다.
경제성 문제도 지적됐다. 원전은 대규모 초기 투자와 장기간 회수 구조를 필요로 하는 반면, 재생에너지는 모듈형으로 분산 설치가 가능해 투자 회수 속도가 빠르고 비용 하락 속도도 가파르다는 것이다. 그는 “에너지 시스템은 결국 비용과 시간, 그리고 확장성의 함수”라며 “재생에너지는 반복 설치가 가능해 학습효과가 누적되지만, 원전은 개별 프로젝트마다 복잡성과 비용이 다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소바쿨 교수는 원전의 ‘저탄소’ 이미지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00여 건 이상의 기존 연구를 선별해 재분석한 결과를 제시하며 “원전은 발전 단계만 보면 탄소 배출이 낮지만, 우라늄 채굴, 농축, 연료 가공, 폐기물 처리 등 전체 생애주기를 고려하면 상당한 에너지와 배출이 수반된다”고 말했다.
안전성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국제 원자력 사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연구를 소개하며 “대형 사고의 발생 확률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비용과 사회적 충격이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쟁이나 테러와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결합될 경우 원전은 단순한 발전 설비가 아니라 전략적 취약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원전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는 흐름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에너지 역사에서는 ‘기술 낙관론’이 반복되어 왔다”며 “과거에는 원자력 르네상스, 이후에는 수소 경제, 그리고 지금은 AI 전력 수요가 같은 방식으로 정책을 정당화하는 서사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실제 에너지 전환은 기술이 아니라 비용, 사회적 수용성, 정책 실행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탈탄소는 ‘어떤 전원이 더 완벽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가’의 문제”라며 “재생에너지는 설치 속도와 비용 측면에서 명확한 우위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미 운영 중인 원전을 즉각 폐쇄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며, 안전성과 투명성이 확보된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 한국 현실론과의 충돌...‘병행’인가 ‘선택’인가
이날 강연에서는 국내 전문가들과의 시각차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부 참석자들은 “한국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고 산업 구조상 안정적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원전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특히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현재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론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소바쿨 교수는 “문제는 기술의 가능성이 아니라 정책 선택의 문제”라며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이 같은 논쟁은 최근 한국 에너지 정책 전반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원전 확대를 주장하는 측은 △기저전원으로서의 안정성 △전력요금 억제 효과 △수출 산업 경쟁력 유지를 근거로 내세우는 반면, 재생에너지 확대론은 △설치 속도 △비용 하락 △분산형 전원 전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런 양측 간 논쟁의 축은 단순한 전원 믹스를 넘어 전력시장 구조와 요금 체계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계통 투자 비용 부담, 송전망 확충 문제 등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라는 정치경제적 쟁점이 결합되면서 정책 선택의 난이도는 더욱 높아지는 상황이다.
결국 한국 역시 ‘병행 전략’의 현실 가능성보다는 어떤 전원을 중심으로 시스템을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강연은 그 선택이 기술 문제가 아닌 정책·시장·사회적 합의의 문제임을 다시 부각시킨 계기로 평가된다.
소바쿨 교수는 에너지 정책과 기술의 사회적 영향 분석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학자로 꼽힌다. 보스턴대 교수이자 글로벌 지속가능성 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며, 에너지 전환의 정치경제학, 기술 리스크, 에너지 정의(energy justice) 등을 주요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그는 국제 학술지에 400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원전과 재생에너지의 비용·리스크 비교, 에너지 시스템의 사회적 수용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왔다. 또한 정부·국제기구 자문과 정책 연구에도 참여하며, 에너지 전환을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닌 ‘사회 시스템 변화’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이날 강연에서 벤자민 소바쿨 교수가 주장하듯,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의 공존은 기술적·경제적 상충으로 인해 서로의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이번 강연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에너지 믹스의 방향이 단순한 '병행'이 아닌 '전환'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