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테슬라의 차세대 AI 반도체 ‘AI6’ 수주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 지형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2나노미터 초미세 공정으로 미국 텍사스 현지에서 직접 생산하는 이번 계약은, TSMC가 장악해온 파운드리 시장에 대한 삼성의 본격적인 반격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반도체 관세 압박과 중국에 대한 수출 통제 강화 속에서, 삼성전자의 테슬라 수주는 단순한 공급 계약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전략적 전환점'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시에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제약이 심화되면서, SK하이닉스를 비롯한 한국 반도체 업계 전반에도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 TSMC 독주 흔드나… 삼성전자, 테슬라 AI6 수주로 '반격' 시작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 오스틴 반도체 공장에서 테슬라의 차세대 인공지능(AI) 반도체 칩 ‘AI6’을 위탁 생산하는 대규모 계약을 따내며 파운드리 사업의 전환점을 맞고 있다. 계약 규모는 총 165억 달러(약 22조 8,000억 원)로, 삼성전자가 2나노미터(1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초미세 공정에서 처음으로 빅테크 고객을 확보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수주에 포함된 ‘AI6’ 칩은 1초에 5,000~6,000번의 연산이 가능한 초고성능 반도체로, 일론 머스크가 주도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및 AI 데이터센터에 탑재될 예정인 핵심 부품이다. 테슬라는 기존의 AI4 칩은 삼성에, AI5 칩은 TSMC에 맡겼지만, AI6에서는 다시 삼성의 손을 잡았다.
전문가들은 테슬라가 삼성전자를 다시 선택한 배경으로 ▲2나노 공정 수율 개선 ▲TSMC 의존도 분산 필요성 ▲가격 경쟁력 등을 꼽는다. 현재 삼성전자의 2나노 공정 수율은 약 55~60% 수준이며, 연말까지 TSMC와 유사한 7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이는 향후 고객사 다변화와 생산 안정성 확보의 핵심 지표로 평가된다.
이와 관련해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는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번 테슬라 수주는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고객 확보에 있어 ‘가장 큰 일’을 해낸 것”이라며 “그동안 고객이 안 잡혀 공장 가동도 어려웠던 구조에서 벗어나는 첫 단추가 꿰어진 셈”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이번 테슬라 수주를 기반으로 퀄컴, 엔비디아, 브로드컴 등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퀄컴의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 브로드컴의 AI 칩 물량 확보를 위한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 삼성전자가 다양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로부터 추가 수주를 받기 위해 노력 중이며 반응은 긍정적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안기현 전무는 “고객사가 확정이 되면 기술력이 올라가고 기술이 안정되면 다른 고객 확보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퀄컴, 엔비디아, 브로드컴도 테슬라 사례를 보고 삼성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고 추가 수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미 반도체 관세 압박 속 ‘반격의 실마리’… 삼성전자, 미국 생산으로 활로 연다
미국이 반도체 품목에 대한 고율 관세를 예고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체결한 AI 반도체 수주 계약과 미국 내 생산 계획은 관세위기 속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27일(현지시간) “반도체 품목에 대한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관세를 2주 내에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법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품목에 고율의 수입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성능 메모리를 중심으로 미국 내 데이터센터와 인공지능(AI) 인프라에 핵심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생산 원가 상승 및 공급가격 인상 압박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일각에선 자동차 산업과 달리 반도체 분야는 한국 기업들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대체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가 테슬라의 AI6 반도체를 미국 텍사스 테일러시에 위치한 반도체 공장에서 직접 생산한다는 점은 관세 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핵심 전략으로 주목된다. 테슬라가 미국 내 생산 부품을 구매함으로써 관세 회피가 가능하고, 이는 추후 애플이나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과의 추가 수주로 이어질 수 있는 긍정적 선순환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한국, 반사이익 넘어 전략 기회 될까
미국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단속하면서 한국 반도체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미국 정부는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 기업인 케이던스가 자사 제품을 중국 인민해방군 산하 대학에 불법 수출한 사실을 적발하고, 1억4천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하며 수출 통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기업 제재를 넘어, AI와 반도체 등 전략 기술의 군사 활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미국의 공급망 통제 전략으로 평가된다. 설계 소프트웨어와 같은 핵심 기술의 통제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에 직접적인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로 중국 메모리 기업 CXMT는 미국 제재로 장비 확보에 차질을 빚으며 생산능력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당초 연말까지 월 30만장 생산체제를 목표로 했지만, 실제로는 25만장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변화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기업은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기술 신뢰와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어, CXMT가 차지하던 수요를 일부 흡수할 수 있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CXMT의 생산 차질은 한국 기업에 긍정적인 요소”라고 평가했다.
안기현 전무도 “미국의 중국 견제로 국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얻는 환경이 형성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부문에서도 미국 텍사스 공장 증설과 테슬라·퀄컴과의 협력 등을 통해 대만 중심의 위탁생산 시장에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업계는 이번 상황을 일시적인 수혜에 그치지 않고, 공급망 안정화와 기술 경쟁력 강화로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중 간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한국 반도체 산업도 중장기 전략적 대응이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