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인공지능(AI) 기술이 자원과 인재의 한계를 돌파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고 있는 가운데, LG그룹이 자체 개발한 초거대 AI 모델 ‘엑사원(EXAONE)’이 언어, 멀티모달, 전문지식, 바이오·의료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입증하며 한국형 소버린 AI의 실체를 구체화하고 있다.
22일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공개된 엑사원 4.0은 언어 이해, 추론, 수학·과학·코딩 등 각종 벤치마크에서 글로벌 모델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국내 최초로 GPU 대신 국산 신경계처리장치(NPU) 기반 운영에 성공하며 인공지능 인프라 혁신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엑사원 패스 2.0’은 병리 이미지 분석 시간을 기존 2주에서 1분으로 단축시키며 의료 분야에서의 실질적 변화를 입증했다는 평가다.
정부의 ‘AI 3대 강국’ 전략에 실질적 동력을 더할 수 있는 사례로 주목받는 가운데, 엑사원을 중심으로 한 LG의 AI 생태계는 기술 자립을 넘어 산업 전반에 파급력을 갖춘 실용 AI로의 전환을 이끌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엑사원 4.0, 세계 최고 수준 하이브리드 AI 모델로 도약”
LG AI연구원이 자체 개발한 초거대 언어모델 ‘엑사원(EXAONE) 4.0’을 전격 공개하며 글로벌 하이브리드 AI 경쟁에서 기술적 존재감을 확고히 드러냈다. 언어 이해와 추론, 전문지식, 멀티모달 인식 등 주요 영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을 기록한 엑사원 4.0은 국내외 AI 기술 생태계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22일 ‘LG AI 토크 콘서트’에서 임우형 LG AI연구원 공동원장은 “엑사원은 글로벌 경쟁력과 범용·전문 AI의 균형을 동시에 확보한 파운데이션 모델”이라며 “AI 생태계 구축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했다.
엑사원 4.0은 AI 벤치마크 평가에서 ▲지식·문제해결력 92.3점 ▲수학 85.3점 ▲과학 75.4점 ▲코딩 66.7점을 기록하며, 앤스로픽의 ‘클로드’, 알리바바의 ‘큐원’, 메타의 ‘라마’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특히 전문가 모델인 ‘엑사원 4.0 32B’는 의사·치과의사·감정평가사 등 6개 국가공인 자격증 필기시험을 통과해, 고난도의 전문지식에 대한 이해와 논리적 활용 능력을 입증했다.
LG AI연구원은 엑사원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엔터프라이즈 솔루션도 소개했다. 최정규 AI에이전트그룹장은 LG 내부 검증을 마친 AI 에이전트 ‘챗엑사원(ChatEXAONE)’을 공개하며, “국가핵심기술 문서 활용을 위한 ISO 인증을 획득해 높은 보안성이 요구되는 기업 전용 서비스로 확장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교육용 라이선스 범위도 초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로 넓혀, 전 국민 AI 활용 기반 확대를 예고했다.
전문 분야 특화 모델 개발을 위한 핵심 인프라인 ‘엑사원 데이터 파운드리’도 주목된다. 이 플랫폼은 기존 대비 데이터 생산성을 최소 1,000배 향상시키고, 품질은 평균 20% 이상 개선했다. 예컨대 전문가 60명이 3개월 걸려야 할 고품질 데이터를 한 명이 하루 만에 생성할 수 있는 수준으로, 산업계에 실질적인 AI 적용 가속화를 도울 것으로 기대된다는 평가다.
◇ 신약 개발·주가 예측도 겨냥…의료·금융 넘어서는 LG AI의 진화
이날 체험부스에서는 초대형 AI 모델 ‘엑사원(EXAONE)’이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연이 이뤄졌다. 현미경으로 촬영한 폐암 환자의 조직 사진을 ‘엑사원 패스 2.0’에 입력하자, 단 30초 만에 유전자 변이 여부를 분석한 결과가 화면에 떴다. 1만 개 이상의 이미지로 조직을 나누고, 변이가 의심되는 부위를 붉은 점으로 표시해 세포 수준까지 구체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이 기술은 기존에 전문 기관에 사진을 보내고 분석 결과를 기다리는 데 2주 이상 걸리던 작업을 단 몇 초로 단축시켰다는 점에서 의료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엑사원 패스 2.0은 병리 인지 분석 주요 벤치마크에서 우수한 성능을 기록했고, 글로벌 GPU 플랫폼인 엔비디아를 통해 1만2천 회 이상 다운로드되며 의료 AI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홍락 LG AI연구원 공동 원장 겸 최고AI과학자(CSAI)는 “병리학적 진단 속도와 정밀도를 동시에 끌어올린 실질적 혁신”이라고 평가했다.
LG는 의료를 넘어 신약 개발에도 AI를 접목하고 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백민경 교수와 함께 개발 중인 ‘차세대 단백질 구조 예측 AI’는 단백질이 정지해 있을 때뿐 아니라 활동 중일 때의 구조까지 함께 예측할 수 있어, 기존 AI 기술보다 더 높은 정밀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백 교수는 “정밀한 단백질 분석을 통해 치료제 개발과 질병 원인 규명에 직접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며 “알파폴드를 넘어서는 기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분야에서도 LG AI연구원의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현재 LG는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과 함께 주가 예측용 AI 서비스를 공동 개발 중이다. AI는 상장 기업의 재무 구조, 거시경제 지표, 뉴스와 공시 등 정형·비정형 데이터를 분석해 투자 수익률을 점수화해 제공한다.

LSEG 아태지역 총괄 아르만 사호비치는 “정량 데이터뿐 아니라 뉴스 등 비정형 정보를 통합 분석해 보고서를 자동 생성하는 시스템을 구축 중”이라며 “향후 주식 외에도 채권, 원자재, 사모시장까지 서비스 영역을 넓힐 계획”이라고 전했다.
◇ LG-퓨리오사AI, GPU 대신 NPU로... “챗GPT 보다 10분의 1 저렴해”
이번 공개에서 특히 주목이 된 점은 인공지능 모델 구동의 핵심 장치로 그래픽처리장치(GPU) 대신 신경계처리장치(NPU)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는 것이다. LG AI연구원과 국내 AI 반도체 기업 퓨리오사AI는 상용화 수준의 NPU를 통해 대형 AI 서비스를 실제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구동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양사가 협업한 NPU는 퓨리오사AI의 2세대 추론용 칩인 ‘레니게이드’다. 이 칩은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AI 추론 영역에 최적화돼 있으며, 기존 GPU 대비 전력 효율이 2.3배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AI 서비스에서 가장 큰 비용 요소 중 하나로 꼽히는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절감해 챗GPT 대비 10분의 1 비용으로 사용이 가능하리란 예측이다.
협업 초기부터 NPU 기반 전환을 염두에 두고 설계된 이 시스템은 최근 공개된 엑사원 4.0 모델까지 안정적으로 구동하며, 실제 서비스 적용이 가능한 수준의 기술 완성도를 확보한 상태다.

LG AI연구원은 실제 테스트 결과, 엑사원 3.5와 최신 모델인 4.0 모두 레니게이드 NPU에서 원활하게 작동한다고 밝혔다. 전력 대비 성능이 탁월해 고객사들이 GPU 중심의 기존 인프라 외에도 새로운 옵션으로 NPU 서버를 적극 검토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퓨리오사AI 관계자는 AI산업에서 NPU 수요가능성에 대해 묻는 M이코노미뉴스 기자에 “AI는 앞으로 모든 분야에 적용이 될 것”이라면서 “고기능 GPU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고효율을 내는 NPU가 앞으로 많이 쓰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프라의 지속 가능성과 에너지 효율성이 중요해지는 가운데, 이번 LG와 퓨리오사AI의 협력은 GPU 중심 구조에서 탈피한 첫 실질적 사례로 주목된다. 특히 국산 기술로 개발된 NPU가 대형 AI 모델을 상용 환경에서 안정적으로 구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반도체 및 AI 산업 전반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