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체육 대통령을 뽑는 대한 체육회장 선거가 2달 앞으로 다가왔다.
유승민 전 탁구협회 회장, 강신욱 단국대 명예교수, 강태선 블랙야크 회장 등이 후보로 출마 선언을 했지만, 현재로선 이기흥 현 체육회장의 3선이 유력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유일한 대항마가 단일화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 이유다. 하지만 단일화를 할 수 있는 뾰족한 창구가 없기 때문에 난립한 후보들을 정리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기흥 현 회장은 각종 비위에 노출돼 있다. 문체부 및 정무 감사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 됐다. 하지만 3선 가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에게는 어떤 문제들이 있고 그럼에도 당선 확률이 높은 것은 무엇 때문이며, 대항마들이 선택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짚어보며 체육회장 선거를 미리 들여다 보자.
◇3선 첫 관문 통과한 이기흥 회장
대한체육회 스포츠공정위원회는 1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회관 13층 대회의실에서 전체 회의를 열고 이기흥 회장의 3번째 임기 도전 신청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은 내년 1월 14일 열리는 제42대 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됐다. 현행 체육회 정관상 체육회장을 포함한 임원은 임기를 한 차례 연임할 수 있고 세 번째 연임을 위해선 스포츠공정위 심의를 거쳐야 한다.
공정위 평가 기준에서는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를 50대 50 비율로 구성하고 있다. 정량평가에서는 국제기구 임원 진출(10점), 재정 기여도(10점) 및 단체 운영 건전성(10점) 등 공통 지표(50점)로 나뉘어 있다.
위원들이 자체 평가하는 정성평가에서는 △국제기구 임원 당선을 위한 노력 및 가능성(20점) △종목·지역체육 발전 비전 제시(10점) △재임 기간 중 공헌(10점) △임원으로서의 윤리성, 청렴도 제고 방안(10점) 등이 배정 돼 있다.
앞서 지난 4일 열린 소위원회 1차 심사에서 이 회장은 이미 연임 승인 자체 평가 기준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심의는 요식 행위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이 회장이 내년 12월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정년(70세)에 도달하는 데다, 최근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공직복무점검단이 이 회장의 비위 혐의에 대해 수사 기관에 수사 의뢰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회장에 대한 '직무 정지'를 통보하면서 승인 불허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점쳐졌다.
그럼에도 스포츠공정위원회는 결국 이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공정위원회가 원래부터 이 회장의 사람들로 구성돼 있었고, 정부의 통보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3선 도전은 이미 승인을 받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 공정위는 지난 2019년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대표 자격으로 IOC 위원으로 뽑힌 이 회장이 국제 무대에서 활동해야 하는 점과 파리 올림픽에서의 기대 이상 성적을 올린 것 등을 고려해 결국 연임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체육 대통령? 비리 대통령?
이 회장은 최근 각종 비리 혐의를 받으며 경찰에 수사 의뢰된 상태다.
정부는 10일 대한체육회 이기흥 회장을 비롯한 간부와 직원 등 8명의 비위 혐의를 다수 발견했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공직복무점검단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체육회 직원 부정채용(업무방해), 물품 후원 요구(금품 등 수수), 후원 물품의 사적 사용(횡령), 예산 낭비(배임) 등의 비위 혐의 확인 결과를 발표했다.
점검단에 따르면, 우선 이 회장은 국가대표선수촌 훈련 관리 담당 직원으로 자기 딸의 대학 친구인 A씨를 부당 채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대표선수촌 훈련 관리 담당 직원은 국가대표 경력과 2급 전문스포츠지도자 자격 등이 필요하지만 이 회장 딸의 친구는 이 자격을 충족 시키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회장은 선수촌 고위 간부에게 이력서를 전달하고 자격 요건 완화를 여러 차례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장은 자격 요건 완화 시 연봉 하향 조정이 필요하다는 내부 보고를 묵살했고 요건 완화를 반대하는 채용 부서장을 교체하기도 했다. 결국 A씨는 32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최종 채용됐다.
선수촌의 한 고위 간부는 이 회장의 승인하에 일부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제공할 물품 비용을 특정 종목 단체 B 회장에게 대납해달라고 요구했다. B 회장은 이 회장과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로, 올해 초 이 회장에게 파리올림픽 관련 주요 직위를 맡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B 회장은 실제로 희망했던 직위를 맡았고 물품 구매 비용으로 약 8000만원을 대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회장은 체육회 마케팅 수익 물품 중 휴대전화 20대를 포함한 약 6천300만원의 물품을 회장실로 배당받아 배부 대장 등에 기록하지 않고 지인 등에게 무단으로 제공한 혐의도 받는다.
다른 부서에 배정된 3500만원 상당의 신발·선글라스 후원 물품도 일방적으로 회장실로 가져와 1600만원어치의 물품을 자신이 직접 사용하거나 방문객들에게 임의 제공한 혐의도 있다.
이 밖에 체육회가 입장권을 선구매하고, 이후 필요 없게 된 입장권의 환불 조처를 하지 않는 등 체육회의 예산 부적정 관리와 낭비 실태도 드러났다.
선수촌의 한 고위 간부는 후원사에 직접 연락해 4705만원의 침구 세트 등을 후원받아 선수촌에 별도 보관하며 자의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 욕설과 갑질 문제도 드러나
이 회장의 욕설과 갑질 문제도 드러났다. 국조실 서영석 공직복무관리관은 "다수의 체육회 직원은 체육회장이 상습적으로 욕설과 폭언을 해왔다고 진술했다"며 "부당한 지시에 대한 시정 필요성을 보고하는 과정에서 크게 화를 내며 1시간가량 욕설과 폭언을 반복해 공포스러웠다고 진술한 직원도 있었다"고 전했다.
또 이 회장은 총 98명으로 구성된 파리올림픽 참관단에 체육계와 관련 없는 지인 5명을 포함하도록 추천했으며 이들이 애초 계획에 없었던 관광 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특혜를 제공했다.
서 공직복무관은 "체육회 일부 임직원의 비협조와 방해로 조사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 회장의 대면 조사 회피와 체육회의 업무용 PC 하드디스크 무단 제거, 병원 입원과 무단 연가, 자료 제출 거부 등을 지적했다.
이날 점검단 발표에 체육회는 입장문을 내고 "조사 결과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어 "파리 올림픽 이후 3개월에 걸쳐 감사를 동시다발적으로 받아왔고, 반복해서 조사받다 보니 국무조정실 자료 제출 요구에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면서 "지적한 비위 혐의 모두에 대해 더욱 엄정하게 재조사해 달라고 요청하며 향후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한다"고 덧붙였다.
◇"X 묻은 개가 X 묻은 개를 탓하나"
각종 비리 혐의가 드러나고 형사 고발까지 당했지만 이 회장의 입지엔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지난 8년 임기 동안 다져 놓은 텃밭이 워낙 공고하기 때문이다.
모 대학 스포츠팀 감독은 "이 회장은 임기 동안 밑바닥 다지기를 대단히 잘했다. 외부 평가가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동안 이 회장의 체육회 운영으로 덕을 본 사람들이 많다. 그들 사이에선 리더십 있는 지도자였다고 할 수 있다. 선거 인단의 최소 40% 정도는 확고하고 흔들림 없이 이 회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워낙 지지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로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의 발표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현 정부조차 국민들의 신임을 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정부가 조사한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짜깁기 수준일 수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모 실업팀 스포츠단 감독은 "X 묻은 개가 X 묻은 개를 탓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현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에서 그런 정부가 조사한 발표 내용도 신뢰를 하기 어렵다. 회장직을 수행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넘어선 안될 선을 넘을 때도 있다고 본다. 스포츠공정위원회가 이 회장의 3선 도전을 허용한 것도 같은 연장 선상에서 나온 결정이라고 본다. 정부 조사를 신뢰하기 보다는 이 회장을 더 믿을만 하다고 생각한 것 아니겠는가. 정부 발표 이후에도 이 회장을 지지한다는 선거 인단이 대단히 많다. 흔들림이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다자 구도에선 특히 이 회장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엄중한 방침도 별반 걸림돌이 되지 못하고 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의 스포츠공정위원회를 하루 앞둔 11일 밤 이기흥 회장에 대해 전격 직무 정지를 통보했다. 문체부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기흥 회장 비위 혐의에 대해 수사 기관에 수사 의뢰 및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고 이 회장 직무를 정지했다"고 설명했다.
유인촌 문체부 장관은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해 "국무조정실 점검단 등의 결과를 아직 공식적으로 받아보지 못했다"며 "그걸 받으면 저희한테 징계 요구를 할 텐데, 대한체육회장을 직무 정지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회장 측은 이에 반발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또한 직무 정지와 3선 도전은 별개라는 입장도 밝혔다. 이에 대해서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체육회 내부의 분위기다.

◇후보 단일화만이 유일한 방법, 그러나...
이대로 선거가 치러진다면 이 회장의 3선이 대단히 유력하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회장의 지지층이 확실하고 상대적으로 도전하는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선 판세를 뒤집기 어렵다는 것이다.
모 체육회 관계자는 "이 회장의 지지층이 선거인단의 40%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과반들 넘기기는 어렵겠지만 어차피 상대 후보들이 난립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당장 선거가 치러진다면 선거 자체가 요식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후보들의 단일화 만이 이 회장과 승부에서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떠오르고 있다.
체육회 관계자는 "회장에 도전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나쁘지 않다. 다들 훌륭한 분들이 나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들 뭔가 조금씩 부족한 부분들을 갖고 있다. 때문에 힘을 합해야 한다. 아무리 득표 활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지금 시작해서 40%가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어느 후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뜻을 모으는 수 밖에 없다. 후보 단일화를 통해 단일 대오로 이 회장과 맞서야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후보 단일화는 충분 조건이 아닌 절대 조건"이라고 풀이했다.

문제는 단일화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는 관심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선거권이 없어 선거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에서 활용하기 어렵다. 누가 더 낫고 안 낫고를 가리기 어렵기 때문에 방법론에 있어서 단일화가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여러 후보들이 만나 뜻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데 다들 이제 막 출발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러기도 쉽지 않다.
한 원로 체육인은 "강신욱 교수나 강태선 회장 처럼 경륜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앞장 서고 유승민 처럼 젊은 피가 뒤를 받히는 모양새가 된다면 보기도 좋고 의미도 있는 구성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단일화를 해야만이 이기흥이라는 큰 산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속 뜻을 밝혔다.
이어 "모두가 욕심이 많이 나겠지만 지금처럼 너나 할 것 없이 다 앞장만 서서는 절대 판도를 뒤집을 수 없을 것이다. 뜻을 하나로 모으는 것 만이 살 길이다. 무엇이 대한민국 체육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다. 외부에서 볼 떄는 비리 백화점 처럼 보이는 이기흥 회장이 다시 회장이 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선거인단의 구성이나 분위기를 봤을 땐 그런 이상한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저마다 욕심을 조금씩 덜어 내고 큰 틀에서 뭉쳐야 한다. 이 회장의 폭주를 막기 위해선 단일화 만이 방법이다.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