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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3월 27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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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재정지출 효율화 관점에서 본 농안기금 개편 방향


 

지난 3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임기근 기획예산처 장관 직무대행은 ‘2027년 국민주권정부 예산편성 방향’을 보고하며 국가 재정 운영의 근본적인 전환을 예고했다. 내년도 예산이 “현 정부가 처음으로 온전하게 예산편성 전 과정을 주관하는 진정한 국민 주권 예산”이라면서, 특히 성과에 기반한 선택과 집중, 그리고 5대 구조 개혁 중심의 재정 재설계를 통해 인공지능(AI) 대전환, 인구구조 변화, 탄소중립, 양극화, 지방소멸 대응 등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단순한 예산 편성 지침을 넘어선다. 모든 사업을 지출 구조 조정 대상으로 삼고, 재량 지출(15%), 의무 지출(10%) 절감이라는 전례 없는 감축 목표를 제시했으며, 이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해당 부처의 핵심 과제에 재투자하겠다고 했다. 사실상 ‘국가 재정의 전면 재설계’를 선언한 것이다.

 

◇ 농안기금의 본질

 

이러한 재정 개혁 기조는 특정 부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전체 재정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그렇다면 농림축산식품부 농산물가격안정기금(농안기금)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농안기금은 대표적인 민생 재정이자 반복 지출 성격이 강한 기금이라는 점에서, 이번 지출 구조 조정의 핵심 대상이 되어야 한다. 농안기금은 일반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가 수매하고, 가격이 상승하면 비축 물량을 방출함으로써 농산물의 가격 안정을 도모하는 장치로 이해된다. 그러나 법적으로 농안기금의 역할은 이보다 훨씬 크고 영향 범위도 넓다.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은 이 기금을 수급 조절과 비축뿐 아니라, 유통 구조 개선, 정산, 저장·가공, 유통 정보화까지 포괄하는 시장 안정장치로 규정하고 있다. 즉 이 기금은 본래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때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유통 구조 개선과 수급 조절을 통해 가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운용 구조를 들여다보면, 현재의 농안기금은 가격 충격 대응 기능에 집중되어 있다. 가격이 떨어지면 비축으로 대응하고 가격이 오르면 할인 지원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반복되며 사후 대응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예산만 낭비하는 대증요법

 

이러한 구조는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가격 불안정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면 동일한 문제가 반복된다. 비축 확대와 할인 지원은 매년 다시 필요해지고, 정부 재정도 지속적으로 투입될 수밖에 없다. 결국 농안기금은 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증상 완화 비용으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화된다.

 

이러한 문제는 그 예산 구조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2026년 농안기금 예산을 보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금융과 자금 공급이다. 산지 유통 종합자금 융자 약 3200억원, 도매 유통 활성화 융자 약 1460억원이 편성돼 있다. 구조 개혁과 직접 연결되는 예산은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규모에 머무르고 있다. 온라인 거래 활성화 약 300억원, 산지 유통 활성화 약 460억 원, 공영도매시장 시설 현대화 약 150억원이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인 지방도매시장 활성화, 경매 중심에서 벗어난 가격결정 시스템 다양화 등 유통 구조 개혁을 위한 예산은 없다.

 

 

농식품소비기반조성사업 약 1200억원 등 소비 지원 예산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유통개선사업이라는 이름의 예산은 상당 부분이 인건비와 운영비로 구성되어 있다. 유통개선사업 예산은 2025년 576억8900만원에서 2026년 562억4900만원으로 편성되었다. 소폭 감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건비(유통개선사업운영)를 동일 사업에서 분리해 별도로 신설하면서 2025년 0원에서 2026년 52억7900만원으로 책정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총지출이 확대된 구조다. 이 예산의 대부분은 여전히 인건비와 기관운영비로 구성되어 있다.

 

◇ 재정 지출의 비효율성

 

결국 재정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농가 수취 개선이나 소비자 가격 안정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설계되어 있지 않다. 이런 점에서 지출 효율성이 낮은 전형적인 예산 낭비로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구조 개혁을 위한 예산으로 전환되지 않는 한 유통 문제는 개선이 아니라 관리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은 재정 건전성 문제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공개한 기금운용 자료를 보면, 농안기금의 재정 상태가 빠르게 악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현금성 잔액은 2016년 4829억원에서 2022년 412억원으로 급감했으며, 2023년에는 322억원으로 더욱 줄어들었다. 불과 몇 년 사이 기금의 유동성이 크게 약화 되었음을 보여준다. 이 수치들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현재의 농안기금 운용은 효율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지속 가능하지도 않은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을 재정지출 효율화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제의 본질은 더욱 분명해진다.

 

재정지출 효율화의 핵심은 단순한 예산 삭감이 아니다. 핵심은 지출의 성격을 바꾸는 데 있다. 시장 구조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가격 변동은 반복되고, 그때마다 동일한 방식의 재정 소모만 되풀이되고 있다. 즉 지출은 계속되지만, 정책 효과는 누적되지 않는다. 이는 재정지출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다. 반면 구조 개혁 투자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다. 초기에는 일정 규모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지만, 이후에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던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통단계를 축소하고 거래 구조를 개선하면, 물류비 및 제반 유통비용이 감소하고, 가격 변동성 자체가 완화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가 형성되면 비축이나 할인과 같은 사후 대응 비용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결국 재정 효율성은 지출 규모가 아니라 지출 구조에서 결정된다. 반복적으로 소모되는 비용에 재정을 투입하는 것과, 반복 비용을 줄이는 구조에 투자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개편의 방향은 명확하다. 사후 대응 중심의 지출 구조를 구조 설계 중심의 투자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기금 내부에 유통구조 개혁을 위한 별도 계정을 신설하는 것이다. 현재처럼 비축과 유통 개선이 동일한 계정에서 운영되면 규모가 큰 비축 사업이 항상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구조 개혁 사업에 안정적으로 재정을 배분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계정이 필요하다.

 

공공도매법인 구축, 공공 정산 시스템 도입, 온라인 거래 플랫폼 확대, 공동물류체계 구축, 가격정보 시스템 정비 등은 시장 구조를 바꾸는 핵심 투자 영역이다. 여기에 공공수요를 결합하면 효과는 더욱 커진다. 학교급식, 공공기관, 복지시설 등 안정적인 수요를 하나로 묶어 산지와 연결하면, 농산물 가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는 사후 대응 비용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재정을 투입하면 반복 비용은 줄어들고 정책 효과는 누적된다. 다시 말해 도매와 소매를 공공 유통으로 연결해야 한다. 기존의 할인쿠폰·보조금 중심의 사후적 재정지출 구조를, 유통비용 자체를 낮추는 사전적 구조 개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매년 반복적으로 투입되던 재정을 일회성 인프라 투자로 대체하고, 이후에는 시장 내부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재정 운용 방식의 전환을 말한다.

 

이는 특히 도매–소매 간 단절로 발생하던 중복 마진과 정보 비대칭을 제거함으로써, 동일한 재정 투입 없이도 소비자 가격 안정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출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결국 정책의 방향은 재정을 투입해 가격을 일시적으로 낮추는 방식에서 벗어나 재정 투입 없이도 가격이 안정적으로 형성되는 시장 구조를 만드는 방식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예산 집행 방식의 변화를 도모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공공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구조적 혁신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이다. 반복적인 재정 낭비를 줄이고, 가격 안정 효과를 상시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지금 농안기금의 문제는 재원이 부족한 데 있지 않다. 재정이 사후적 가격 대응, 즉 할인·보조 중심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이제는 가격을 억누르는 데 돈을 쓰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지방도매시장 활성화, 거래구조·유통구조·정산 체계를 새롭게 설계하고 이를 실현하는 데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가격이 안정되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재정을 투입해야 민생 안정과 시장 효율, 그리고 재정 건전성이 동시에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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