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3개 사 지난 24년 합산 매출 약 1조 5000억원
- 식자재마트, 법적·학술적 정의 부재...명확한 개념 정립 필수
- 정부, 유통산업 전체의 균형 있는 발전을 정책 목표로 제시
국내 식자재마트는 2000년대 초반 대형마트가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도매 기능의 일부를 흡수하며 등장했다. 이후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확산과 유통 규제 환경 변화 속에서 독자적인 유통 모델을 구축하며 빠르게 성장해 왔다. 대형 식자재마트 상위 3개사의 합산매출(2024년 기준)은 약 1조 5,000억원 규모다.
지난 10년간 매출은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 업체는 PB(자체 브랜드) 상품 매출만 2,000억 원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시장 영향력이 확대됐다. 이와 같이 대형마트와 맞먹는 수준임에도 '유통산업발전법' 등 기존 유통 규제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으면서 제도권 밖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국회토론회에서는 식자재마트가 현행 업태·면적 중심 규제 기준과 실제 매출·영업 행태 간 괴리가 크다는 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공정경쟁 질서 확립과 소상공인 보호, 중소유통산업 상생을 위한 제도권 편입 및 입법 방향 등이 논의됐다.
◇ 식자재마트 실태조사 결과 발표 “입법 위한 개념 정립 시급”
토론회 발제를 맡은 구진경 산업연구원 신산업전략연구실 실장은 2025년 식자재마트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식자재마트가 법적·학술적 정의는 없지만 도·소매 기능이 결합된 복합 유통 형태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슈퍼마켓과 유사한 운영 방식 속에서 대용량 판매, 저가 전략, 산지 직송 구조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고, 최근에는 농·축·수산물 중심에서 가전제품까지 취급하는 등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연구진 조사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국 식자재마트는 약 637개로 집계되고 있으나, 공식 통계가 없어 정확한 규모 파악에는 한계가 있다. 수도권과 경상권에 집중되고 평균 매장 면적은 약 873㎡로 대규모 점포 규제 기준(1,000㎡)에 근접해 규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식자재마트는 외식업 성장과 함께 소상공인들의 주요 식재료 조달 창구로 자리 잡으며 비용 절감과 유통 효율화에 기여해왔다. 동시에 도매 기능을 일부 대체하고 산지 직거래를 통해 가격 안정에 긍정적 역할도 한다. 하지만, 대규모 점포 규제 회피와 납품업체와의 불공정 거래 등 부작용도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구 실장은 "현주요 쟁점으로는 대규모 점포 규제 회피와 납품업체와의 불공정 거래 문제가 꼽히지만, 기존 대형마트에 적용되는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향후 정책 방향으로 △지자체 관리·감독 강화 △공정거래 모니터링 확대 △대·중소 유통 간 상생 방안 마련 △중소 유통업 경쟁력 강화 지원 등을 제시했다. 특히 규제 강화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해 균형 잡힌 접근을 주문했다.
◇ 식자재마트 정의 부재...입법 공백 해소 시급
식자재마트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어 입법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본부장은 "유통산업발전법상 식자재마트의 업태 구분조차 없어 정책 대상 설정이 불가능하다"며 "대규모 유통업 규제 강화와 완화가 동시에 추진되는 가운데 식자재마트 역시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국회에서 식자재마트를 규제 대상으로 포함하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공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그는 "일부에서는 소상공인의 성장 사다리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나 다수 의견은 ‘이미 대형화된 식자재마트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어 규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해외 사례에서도 식자재마트와 유사한 업태를 제도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미국은 ‘스몰 박스 디스카운트 리테일 스토어’ 개념을 통해 업태를 정의하고, 독일은 사업자 등록 거래처에만 판매를 허용하며 일반 소비자 대상 판매 시 대규모 소매점으로 분류해 규제를 적용한다. 또 영국은 지자체 권한을 통해 점포 규모와 성장 단계에 따라 차등 규제를 두고, 프랑스는 면적 기준을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해왔다. 일본은 건물 분할을 통한 규제 회피를 막기 위해 동일 건물이나 연결 구조를 하나의 점포로 간주하는 등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차 본부장은 "해외 주요국이 이미 식자재마트와 유사 업태를 제도권에서 관리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만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해결책으로 "유통산업발전법에 식자재마트 정의를 신설해 대규모·준대규모 점포 규제 체계에 편입시키고, 불공정 거래 방지와 공정거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국회의 입법 결단을 촉구했다.
◇ 식자재마트 확산에 도·소매 모두 피해...중소유통업계, 규제 필요성 호소
강현철 한국법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좌장을 맡아 진행된 지정 토론에서는 식자재마트 확산으로 인해 도매와 소매 유통업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는 현장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정연희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중소 유통업계의 어려움을 언급한 뒤 “현재 구조에서는 도매와 소매가 동시에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며 “식자재마트 출점 과정에서의 점포 쪼개기 방식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소유통 물류센터와 협동조합의 피해도 언급됐다. 지역 슈퍼마켓들이 조합을 통해 물품을 공급받던 구조가 식자재마트 출점으로 흔들리며 일부 점포가 더 저렴한 가격을 찾아 거래처를 변경하면서 장기적인 지역 상권 약화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정연희 회장은 “하나의 식자재마트가 들어서면 인근 슈퍼마켓은 물론 편의점 등 영세 유통업자들이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는다”며 “일부 식자재마트가 법인을 나눠 운영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회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식자재마트가 수백억 원 규모 자본을 가진 사업자와 소상공인을 동일한 개인사업자로 분류하는 현 제도가 현실과 맞지 않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대안으로는 △매출·면적·자본 규모 기준 마련 △준대규모점포 규제 적용 △의무휴업 등 상생 조치 도입 등의 제안과 함께, 식자재마트를 규제 대상에 포함하고 농협 하나로마트 등 대형 유통시설에 대해서 별도의 기준 마련을 요청했다.
◇납품업체 부담 전가...출점 과열
식자재마트 운영 과정에서 납품업체에 과도한 부담이 전가되고, 무분별한 출점이 이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손수호 한국콩나물숙주농업인협회 회장은 “식자재마트가 신규 오픈할 때 납품업체에 과도한 조건을 요구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면서 “행사 비용이나 할인 부담이 사실상 납품업체에 전가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한 “단기간 내 정산이 이뤄져야 함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수개월에서 최대 1년 가까이 지급이 지연되는 사례도 있다”며 “이는 납품업체의 자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식자재마트는) 전문적으로 매장 오픈만을 담당하는 조직이 존재해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점포를 확산시키고 있다"며 "그렇다보니 단기간 내 동일 상권에 다수의 식자재마트가 들어서면서 경쟁이 과열된다. 이러한 방식은 결국 지역 상권을 붕괴시키고, 중소 유통업자뿐 아니라 납품업체까지 피해를 입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국내 유통·공급 제도의 미비점을 해외 사례와 비교한 그는 "선진국은 특정 구역 내 업종이나 점포 수를 제한하는 등 체계적인 관리를 하는 반면, 국내는 기준 부족으로 무분별한 출점이 이루어지고 있다"며 "국내는 생산자와 납품업체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부재해 시장의 건전성이 훼손되고 있다.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코로나19 이후 지속되는 유통·소매 현장의 어려움과 시장 질서 왜곡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강종성 한국계란산업협회 회장은 과도한 할인 경쟁으로 인해 정상 가격 체계가 붕괴되고 있으며, 수입 농산물과의 가격 경쟁 심화로 국내 생산자들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식자재마트의 제도권 편입과 관련한 규제 도입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나, 실제 입법 과정에서 규제 대상의 정의와 기준 설정이 핵심 쟁점으로 부각되는 만큼 꼼꼼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소상공인·상생연구실 실장은 규제 도입 시 고려해야 할 요소로 △지역 상권 내 중소 유통기업 피해 발생 여부 △규제를 통한 피해 해결 가능성 △특정 집단이 아닌 공익적 목적 확보 △규제 대상의 명확성과 선의의 피해자 방지 등을 제시했다. 그는 "식자재마트가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지만, 이를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식자재마트 규제를 위한 정의 마련이 어려운 이유는 각 기준이 가진 현실적인 부작용 때문이다. 우선 매출액이나 품목, 업태(도·소매)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일부 사업자가 규제망을 빠져나가거나 식자재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기 어렵고 실제 거래 관행과 동떨어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상대적으로 명확한 점포 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방안도 논의되지만, 기준을 높게 잡으면 소수의 대형 점포만 규제 대상이 되어 실효성이 떨어지고, 반대로 낮게 잡으면 일반 중소 슈퍼마켓까지 규제에 포함되어 영세 상인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딜레마가 핵심이다.
정 실장은 “규제 도입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특정 소비자나 이용자에게 불이익이 전가되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면서 “규제와 함께 중소 유통·소상공인 육성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현행 제도는 중소 유통기업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기에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다. 따라서 단순한 규제를 넘어 별도의 지원 입법을 마련하거나, 기존 법체계 내의 지원 기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등 보다 공세적이고 촘촘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 정부, 공정 경쟁 질서 확립·중소 유통상인 보호·유통산업 균형 발전 등 목표 제시
조근상 산업통상자원부 유통물류과장은 유통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상생 생태계 조성을 최우선 목표로 종합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조 과장은 "단순한 규제보다는 대·중소 유통업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며 "중기부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해 중소 유통의 체질 개선과 공존 방안을 담은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정부는 식자재마트의 시장 영향력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쪼개기 영업'이나 불공정 거래 의혹에 대해서도 관계 기관과 함께 사실 여부를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며 "이번 검토 과정을 통해 위법 사항이 확인될 경우 엄정한 제재를 하고 향후에도 공정거래위원회 및 지방자치단체와 협조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간의 연구용역 결과와 현장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마련하고, 국회 및 관계 기관과의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대책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토론회는 유통 산업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대형 유통사와 중소 제조·유통업체가 공존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로, 국회의 입법 지원과 정부의 정교한 정책 실행이 맞물려 기울어진 유통 생태계를 바로잡고 건강한 상생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
한편, 이번 토론회는 국회소상공인민생포럼(대표의원 서영교)과 더불어민주당 전국소상공인위원회(위원장 오세희) 공동으로 주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