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김현준 한국산업은행 노조위원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단순한 노조 지도부 재신임을 넘어,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정책금융기관’을 지키겠다는 기조가 다시 한 번 조합원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로 읽힌다.
산업은행 노조는 그간 정권 공약과 정치적 판단에 기반한 정책 추진에 공개적으로 반대하며 집회와 법적 대응을 병행해왔다. 김 위원장의 연임은 이러한 노선이 내부적으로 여전히 힘을 얻고 있음을 보여준다.
◇ 부산 이전 논란...정책이었나, 정치였나
갈등의 출발점은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이었다. 강석훈 전 회장은 2022년 6월 취임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부산 이전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 경제정책 실무와 정책특보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노조는 이를 ‘국가균형발전 정책’이 아닌 ‘정권 공약 이행 사업’으로 규정했다. 정책금융기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정치적 상징 사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국토교통부는 2023년 5월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대상 공공기관으로 지정했고, 부산시는 2024년 2월까지 행정 절차를 마무리했다. 주거·교육·세제 등 29개 지원책도 제시됐다.
그러나 노조는 “산업은행법 개정 없이는 이전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김 위원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법 개정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전을 약속하는 것은 정치적 접근”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금융위원회와 국회, 대통령실 앞 집회까지 이어진 반발은 단순한 노사 갈등을 넘어 정책금융기관의 독립성을 둘러싼 제도적 충돌로 확산됐다.
◇ 박상진 체제, 이번엔 ‘수석 인사’와 150조 정책금융이 핵심
2025년 9월 15일 박상진 회장 체제가 출범했지만 노사 갈등은 봉합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수석부행장 인사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말 임원 인사를 발표했지만 수석부행장과 혁신성장금융부문장(부행장) 인사를 확정하지 못했다. 당초 이봉희 기업금융부문 부행장과 김사남 벤처금융본부장이 거론됐으나 최종 명단에서 김 본부장은 제외됐다.
노조는 해당 인사들이 부산 이전 추진 과정에 관여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여의도 본점 로비에서 이어진 천막 농성도 이와 맞물려 있다. 노조는 코드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정책금융기관의 독립성이 구조적으로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갈등은 정책금융 운용 문제로까지 번졌다. 정부가 2024년 하반기 발표한 ‘150조원 규모 첨단전략산업 금융공급 프로그램’이 또 다른 논쟁 지점이다. 이는 산업은행이 향후 반도체·이차전지·AI 등 국가 전략산업에 공급할 정책금융 총량이다.
노조는 “관련 인력이 50명 남짓한 상황에서 150조원 규모의 금융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느냐”고 지적한다. 산업은행이 정권 산업정책의 집행 창구로 기능하는 구조에 대한 우려다.
◇ 김현준 위원장 “수석 인사, 장기화 조짐 보인다”
김 위원장의 연임은 노조 노선의 지속을 의미한다. 산업은행 노사 갈등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라 국책은행의 독립성과 정책금융의 방향성을 둘러싼 구조적 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향후 수석부행장 인선이 갈등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김현준 위원장은 이봉희 부행장의 수석부행장 인선과 관련해 “이미 단식까지 진행했던 사안”이라며 “당초 지난해 12월 인사를 마무리하려 했지만 확정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하게 밀어붙일 사안이었다면 이미 결정됐을 것”이라며 임명 지연에 의미를 부여했다.
김 위원장은 수석부행장 공석 장기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그는 “김복규 수석부행장의 임기가 오는 3월까지인 만큼 이후로 임명이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며 “단기간에 결론이 나기보다는 장기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사남 본부장 인선 철회와 관련해서는 “천막 농성과 단식 투쟁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했다. 또 향후 대응과 관련해서는 “현재도 천막 농성을 유지하며 대외적으로 메시지를 계속 내고 있다”며 “사태가 장기화되더라도 산업은행을 꼭 지킬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국산업은행은 노조의 강력한 투쟁으로 당초 내정했던 부행장 등의 임명을 일단 보류한 상태다. 사측은 "인사권이 회장의 고유 권한"이라는 점을 강조하나, 노조는 "책임 있는 인사가 임명될 때까지 출근 저지 등 강도 높은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당분간 조직 운영의 파행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