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25일 열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한미동맹 현대화’라는 거대한 의제를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동맹 현대화는 단순한 군사적 조정에 그치지 않고, 국방비 증액·전시작전통제권 전환·주한미군 역할 확대 등 한국 안보 전반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정치권과 외교가에선 이번 회담이 향후 한미관계의 새로운 틀을 규정할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동맹 현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그 핵심은 두 가지로, 첫째는 한국의 국방비 부담 확대이고 둘째는 주한미군 역할 조정이다. 특히 미국은 주한미군의 임무를 기존의 북한 억제에서 나아가 중국 견제까지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8일 경기도 평택 주한미군사령부에서 한국 국방부 기자단과 만나 “주한미군 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역량이다. 한반도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유지하느냐가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동맹 현대화의 배경으로 중국의 부상과 북한·러시아 간 밀착 등 동북아 지정학적 변화를 지목하며, 주한미군이 역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휘말릴 위험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대만 해협이나 남중국해 유사시에 주한미군 자산이 개입할 경우 한국의 안보 환경은 훨씬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 美 요구에 ‘안보만으론 대응 불가’… 정부, '경제·공급망 동맹' 확장
이재명 정부는 안보 의제만으로는 미국의 요구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한미관계를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즉, 국방·안보 협력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경제, 공급망 협력까지 포괄하는 동맹 모델로 진화시키겠다는 것이다.
17일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미 동맹 현대화와 관련해 공동선언문에 기본 틀을 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며 “전략적 유연성 등 주한미군 조정 문제에 대해서도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원치 않는 분쟁 개입’에 대한 우려를 분명히 하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개입은 논의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에 동의하며 “그렇게 추진하겠다”고 못 박았다. 조 장관은 “우리는 한미관계를 미래형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했고, 미국도 이를 이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 방문에 앞서 일본을 먼저 찾는 것도 전략적 행보로 해석된다. 일본과의 공조를 통해 한미일 삼각 협력의 결속력을 강조하고, 미국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다.
조현 장관도 “우리와 입지가 유사한 일본과 대화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이번 방일을 통해 ‘셔틀 외교 완전 복원’을 선언하고,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한미일 안보 협력의 의미를 강화할 계획이다.
◇ “대만 유사시 후방 지원”… 韓, 동북아 전략적 시야 넓혀야
브런슨 사령관의 발언처럼, 미국이 주한미군의 절대적 숫자보다 전략자산 배치와 임무 확장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는 한국에 양날의 검이다. 한편으로는 미군의 핵심 전력이 한반도에 유연하게 투입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역외 분쟁에 휘말릴 위험이 커진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이에 대해 “중국의 핵 능력 증강과 지역 군사력 확대 속에서, 한국은 대만 유사시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미국에 대한 군수·후방 지원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M이코노미뉴스에 강조했다.
그는 “이는 단순히 한반도 중심 전략이 아니라 동북아 전체를 바라보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한국이 후방 지원 역할을 분명히 함으로써 동맹 신뢰를 유지하고, 동시에 한반도 문제는 스스로 관리하는 주도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영욱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장도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안보 전략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국, 북한,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글로벌 정세 변화를 고려할 때, 한미 방위·안보 협력은 보다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의존적 구조가 지속되면 한국 군 전력 활용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며 “한국 스스로 준비를 서두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 동맹 현대화, '국방력 강화' 기회이자 李 정부엔 '외교 시험대'
한미동맹 현대화 논의는 단순히 방위비 증액을 둘러싼 협상이 아니라, 한국 외교·안보의 장기적 좌표를 재설정하는 과정이다. 이 대통령은 동맹 현대화를 한국의 국방력 강화 기회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지만, 미국의 요구가 과도할 경우 국내 여론과 정치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결국 핵심은 한국이 어떤 선을 긋고, 어떤 부분을 수용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 후방 지원과 국방비 증액은 불가피한 현실일 수 있으나, 역외 분쟁 개입이나 과도한 재정 부담은 한국의 주권적 판단에 따라 조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보 전문가들의 지적과 같이 한국은 동맹 신뢰와 주도적 역할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한미동맹 현대화는 한국 안보의 새 틀을 짜는 기회이자,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시험대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