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긴장은 고조되고, 지방은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은 분명하다. 바로 자치분권형 국가다. 인구 900만, 면적 41,285㎢에 불과한 스위스는 자치와 협치만으로 1인당 국민소득 10만 달러에 육박하는 고성장을 이뤘다. 그 중심엔 자치분권이 있다. 우리가 통일 이후를 준비하고, 수도권 일극 구조를 극복하며, 세계 속 강소국가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국가가 바로 스위스다.
자치분권국가의 힘이 얼마나 센지 스위스 사례를 토대로 내일의 대한민국을 그려보면 어떨까! 자치분권은 통일을 준비하고, 연방제 수준의 국가로 나가는데 유의미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스위스와 우리를 비교분석해 보고 어떤 시사점이 있는지 살펴보자.
먼저, 자치분권의 제도 구조를 비교해 보자. 스위스는 26개의 칸톤(주정부)과 약 2,150개의 기초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칸톤은 헌법에 의해 독자적인 자치권을 보장받고 있다. 기초지자체는 평균 인구 약 4천 명 수준의 소규모 단위이나, 세율 자율 결정권, 자체 입법권, 행정권을 모두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자치 주체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 기초자치단체로 구성되어 있으나, 지방자치의 법적 근거가 헌법이 아닌 법률에 국한되어 있으며, 정책결정권 및 재정자율성이 크게 제한되어 있다. 특히 기초지자체의 평균 인구는 약 23만 명에 달하여 규모는 크지만 기능은 제한적인 행정집행기관의 성격을 가진다. 과세권 또한 국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자율성과 재량권이 취약한 구조이다.
스위스는 모든 칸톤에 입법·과세·행정의 3권분립 수준의 자치권을 부여하며, 기초지자체(Gemeinden)는 주민 투표로 예산, 정책, 인프라까지 결정한다. 반면 한국은 자치권의 70% 이상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고, 기초자치단체는 지출 권한만 있는 ‘행정 하청기관’에 가까운 수준이다.
두 번째, ‘작지만 강한’나라 스위스와 우리를 수치로 비교해 보자. 2024년 기준 스위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9만 7천 달러로 세계 최고 수준에 해당하며, 국제경쟁력지수(IMD)에서는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부패인식지수(CPI)는 84점으로 세계 7위에 해당하며,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약 72%에 이른다. 이는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참여 기반의 거버넌스가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반면,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약 3만 5천 달러 수준이며, 경쟁력지수는 20위권 중반에 위치하고 있다.
부패인식지수는 63점으로 세계 31위이며, 정부 신뢰도는 35% 수준으로 스위스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또한, 전체 조세 중 지방세 비중은 스위스가 약 45%인 반면, 한국은 약 23%로 절반 수준에 그친다. 이는 자치의 구조와 국가 경쟁력 간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스위스는 지역의 분권과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국민이 정치와 행정의 주인이 되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그 결과 정치 안정도, 경제 경쟁력, 사회 신뢰도 모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통일을 위해 ‘자치분권’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통일 이후 한국은 1억 명에 가까운 인구, 광대한 지역 격차, 제도 이질성, 정치사회적 충돌을 마주하게 된다. 이 문제를 중앙정부가 모두 조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위스처럼 “지역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만, 통일 이후 국가 통합도 가능하다. 연방제가 해법이다.
통일 이후 국가 통합은 단순한 제도 통합을 넘어, 지역 간 정체성과 제도적 차이를 조화시키는 과정을 포함한다. 중앙집중형 통치체제는 정책 결정 속도는 빠르나 일률적이며, 지역별 여건이나 사회문화적 이질성을 고려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는 통일 이후 갈등과 혼란을 유발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반면, 분권형 체제는 각 지역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제도적 유연성을 보장함으로써, 갈등 완화와 단계적 통합에 유리한 구조이다. 스위스와 같은 분권형 국가는 지역 단위의 정책설계와 자율적 운영을 가능하게 하여 통일비용의 분산과 효율적 재건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
한국형 자치분권 기반 정책 대안은 어떤 것일까. 현행 대한민국 헌법은 지방자치권을 명문화하지 않고 있으며, 지방세 비중은 전체 조세의 약 23%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기초자치단체는 복지사업의 단순 집행기관 역할에 머무르고 있으며, 인사권과 입법권 등 자율적 운영 권한은 미미하다.
주민참여 제도 또한 형식적으로 존재하나, 실제 주민투표나 주민발안의 실행률은 전체 기초 및 광역단체 기준 약 3%에 불과한 수준이다. 수도권의 인구 집중도는 전체 인구의 51%를 초과하고 있으며, 이는 지역 간 격차와 행정 비효율성을 구조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스위스는 수도를 특정 도시에 집중시키지 않고, 정치·경제·교육 등 국가 기능을 여러 도시에 분산시켜 다핵형 국토 구조를 실현하고 있다. 이는 각 지역의 균형적 성장과 자치운영의 실질화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 분권 모델이다.
스위스는 수도 없는 국가다. 국가 기능이 취리히·제네바·베른 등 여러 도시에 분산되어 있고, 그 구조가 ‘모두의 중심’이 아니라 ‘모두의 자치’를 가능케 했다. 한국도 수도권 집중을 넘어서기 위해 지역 중심 기능 분산 전략이 필요하다.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은 자치분권이 해법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강한 국가다. 하지만 ‘작지만 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선 정치적·제도적 구조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이 스스로 기획하고 예산을 짜고, 주민과 함께 결정하는 시스템, 정치적 논리보다 생활 속 불편을 해결하는 행정, 통일 이후를 대비한 자율 통치 구조의 실험, 그것이 가능해질 때, 우리는 인구와 국토의 크기를 넘어서는 강소국가, 지속가능한 통일국가, 다핵 분권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혹자들은 ‘자치 역량’에 대해 걱정하고 우려한다. 민주공화국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았지만, 세계 으뜸가는 민주공화국가로 성장해 왔다. 역량이란 실패라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열매와 같다. 역량을 염려하는 많은 중앙집권주의세력들이 지방을 애정을 가지고 염려한다. ‘중앙이 조정하고 통제해야 역량이 없는 지역을 보호할 수 있다.’ 기우에 불과하다. 누구라도 권한이 생기면 스스로 잘 살기 위한 행위와 노력을 하게 된다. 권한이 없으면 핑계가 많아진다.
자치분권의 철학이 희망이 있는 나라로 만들 수 있다. 한국은 지금 분기점에 서 있다. 자치분권은 선택이 아니라 통일국가와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위한 필수 인프라다. 스위스는 작은 나라지만, 분권과 자치의 철학으로 모든 구성원이 주인이 되는 체제를 만들었고,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와 경쟁력을 달성했다. 우리가 ‘스위스처럼’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제도 개편이 아니다. “국가란 국민의 삶을 위한 틀이어야 한다”는 철학의 전환이다.
자치가 바로 민주주의의 시작이고, 자치가 바로 통일의 준비이며, 자치가 바로 강한 나라의 조건이다. 곧 자치분권국가가 희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