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석열 정부 3년간 이어진 감세 정책은 국내 세수 구조에 뚜렷한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해외자회사 수입배당금 비과세 제도와 법인세 인하가 맞물리며 국세 수입이 외환위기나 코로나19 때보다 급감했고, 사상 처음으로 근로소득세가 법인세를 앞서는 ‘세수 역전’ 현상까지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2025년 세제개편안’을 통해 법인세 전 구간을 1%포인트씩 인상하며 재정 건전성 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한 법인세 인상보다, 국내 설비 투자·고용 확대 없이 해외에서만 이익을 올리는 해외자회사에 대한 과세 강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세 구조의 근본적 개선 없이는 제조업 기반 약화와 자본 유출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막기 어렵다는 경고다.
◇ 尹정부 감세 3년… 국세수입 13.1%↓, 외환위기·코로나보다 심각
윤석열 정부가 2022년 도입한 ‘해외자회사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제도’를 포함한 감세 정책이 시행 3년 차에 접어든 가운데, 국내 법인세 수입이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국세 수입 구조에서 사상 처음으로 근로소득세가 법인세를 앞서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3년 세수 결손 규모는 56조4천억원, 2024년에는 30조8천억원에 달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2024년 발표한 자료에서도 1990년 이후 국세 수입 감소율을 비교한 결과,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이 시행된 직후인 2023년 국세 수입은 전년 대비 13.1% 감소했다. 이는 외환위기(-3.0%)나 코로나19 위기(-2.7%) 당시보다도 훨씬 큰 폭이다.
안도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 자료를 분석해 공개한 ‘2024년 세목별 세수 현황’에 따르면, 법인세는 2022년 103조6천억원에서 2024년 62조5천억원으로 약 41조원 줄었다.

정세은 충남대학교 교수는 M이코노미뉴스와의 통화에서 “최근 몇 년간 기업 법인세 수입이 급감한 것은 법인세율 인하뿐 아니라 해외 투자가 늘어났음에도 그에 대한 과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구조적 요인이 크다”며 “이에 대한 사회적·정책적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해외자회사 배당소득 비과세 혜택의 실효성을 문제 삼고 있다. 정부는 해외로 이전한 기업이 국내에 복귀하지 않는 상황에서, 해외에서 발생한 배당금이 국내로 들어오면 이를 투자와 경제 활성화로 연결시키겠다는 취지로 감세 혜택을 부여했다.
그러나 실제 배당금이 국내에 유입된 뒤 시설 투자나 고용 창출 등 실질적 경제 효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통계나 사후 점검은 전무한 실정이다.
◇ 해외 배당 100% 비과세… 핵심 산업 해외 유출 심화
이에 따라 2022년 도입한 ‘해외자회사 수입배당금 익금불산입 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국내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 제도는 해외 자회사에서 받은 배당금 중 일정 비율을 국내 과세소득에서 제외해 이중과세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출자비율이 10% 이상이면 배당금 전액을 비과세하는 구조가 사실상 ‘해외투자 장려책’이 됐다는 비판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 이후 다국적기업이 미국에 공장을 세워 벌어들이는 수익이 본국 세수로 돌아오지 않는 문제는 미국의 ‘영토주의(territorial)’ 과세체계 전환과 관련이 깊다”며 “한국도 OECD 주요국처럼 제도를 변경하면서 해외에서 번 자금을 국내로 송환할 때 과세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서 벌어들인 이익을 해외로 이전해도 세 부담이 거의 없다면 기업이 한국에 자본을 묶어둘 이유가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반도체·배터리·자동차 산업의 대규모 설비가 최근 몇 년간 미국으로 빠르게 이전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에 20조원대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며, 현대차·기아는 조지아주에서 전기차와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도 북미 주요 지역에서 합작 배터리 공장 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흐름이 하청·부품·서비스 산업을 포함한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와 숙련 인력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한국 세법이 미국과 유사하게 변하면서 해외에서 번 돈을 배당으로 들여오면 95%를 비과세한다”며 “국내 매출·설비·고용을 줄이고 해외 투자를 늘리고 싶은 유인이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독일·영국·일본도 같은 제도를 도입한 뒤 제조업 기반이 약화됐고, 독일 폭스바겐처럼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며 국내 설비가 폐쇄되는 사례가 속출했다”며 “한국은 경제 규모가 작고 소수 대기업에 산업이 집중돼 있어 피해가 더 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유 교수는 “이 구조에서는 해외 자회사 소재지에서는 돈을 벌지만 본국은 제조업이 쇠퇴하고 재정적자만 늘어난다”며 “해외 배당금 비과세 혜택은 대주주에게만 이익을 주고 국가 재정을 잠식시키는 제도”라며 조속한 제도 재검토를 촉구했다.
◇ 李 정부, 법인세 1% 인상... ‘한국 탈출’ 부추길 우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2025년 세제개편안’에서 법인세 4개 구간의 세율을 모두 1%포인트씩 올린다고 밝혔다.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인하분을 원상복귀시키는 조치다.
개편안이 시행되면 2026년부터는 법인세율이 ▲2억원 이하 10% ▲2억원 초과~200억원 이하 20% ▲200억원 초과~3000억원 이하 22% ▲3000억원 초과 25%로 강화된다.
여기에 지방소득세(법인세의 10%)를 포함하면 실질 세율은 10.1%에서 최대 27.5%에 달한다. 이번 인상으로 최고 법인세율은 OECD 평균(23.6%)을 넘어서고, 아시아 경쟁국인 싱가포르(17%)와 베트남(20%) 등과 비교해도 크게 높은 수준으로 오른다.

정부는 이번 법인세 인상이 재정 건전성 확보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하지만, 산업계에서는 ‘한국 탈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이 자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 기업에 대해 관세 면제를 공언하는 등 제조업 해외 이전에 강력한 유인책을 제공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투자 재원을 해외로 돌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유호림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법인세 명목 세율을 1% 올린다고 세수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며 “투자 구조와 세법 규제가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은 오히려 기업들의 해외 이전을 부추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해외 자회사 중 국내에서 설비 투자와 고용, 생산을 늘리는 기업에만 조세 혜택을 주고, 그렇지 않은 기업에 대해선 중과세하는 정책이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내 설비 투자와 고용, 생산을 확대하는 기업에 세제 우대를 주는 것처럼, 국내 설비 투자에 적극적인 기업만 지원하고 나머지는 중과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된 자금이 실물 투자로 이어지면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으로만 사용된다면 정책 목표 달성이 어렵다”며 “단순히 대주주 호주머니만 불린다는 기계적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실제 자금 사용처를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과도한 법인세 인상과 규제 강화가 국내 제조업 투자 위축과 해외 이전을 가속화할 경우, 반도체·자동차·배터리 등 핵심 산업의 경쟁력 약화와 지역 경제 침체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 확보와 복지 재원 마련에 나서는 것은 이해되나, 동시에 산업 경쟁력과 투자 유인을 높이는 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 등 실질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