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돈 기입장을 써 본 적이 있으세요?”
아마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할 것이다. 어린 시절 누군가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매일 얼마를 썼는지 적었고, 또 누군가는 빈칸 투성이인 기입장을 부모님께 보여드리며 “이번 달은 조용히 지나가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용돈 기입장은 단순한 가계부가 아니라 경제 교육의 시작점이었다. 돌이켜보면 아이 들은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무엇에 써야 하고, 어디에 썼는지를 기록하며 돈에 대한 책임과 계획성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MZ세대에게도 여전히 용돈 기입장은 유효할까? 스마트폰과 간편결제가 일상이 된 시대, ‘지갑 없는 세대’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돈을 배우고 있을까? 더 나아가, 우리 교육은 이들에게 어떤 경제 감각을 가르쳐야 할까? 이는 단지 금융 지식의 문제가 아닌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종합적인 생활 감각이기도 하다.
◇'저축’ 중심에서 ‘소비’ 중심으로 바뀐 경제 감각
필자는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저축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1980~90 년대에는 학교에서 매주 저축하는 시간이 있었고, 학생들은 일정 금액을 학교에 가져가면 지역 우체국이나 농협직원이 학교를 방문하여 통장에 금액을 기입해 주었다. 이러한 활동은 학생들에게 저축의 중요성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었으며, 매주 빠짐없이 참여한 학생에게는 ‘저축상’이 수여되기도 했다. 당시 경제교육은 ‘절약’과 ‘저축’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겼으며, 가정과 학교,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경제 윤리 실천의 장이었다.
경제학에서 '시간 선호율(time preference)'이라는 개념은 현재의 소비보다 미래의 소비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정도를 뜻한다. 과거 경제교육이 강조했던 저축 중심의 태도는 낮은 형태의 시간 선호율을 키우는 방식이었으며, 이는 '현재 소비를 유예하고 미래를 준비하라'는 교육 철학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MZ세대, 특히 1995년 이후에 출생한 Z세대는 전혀 다른 소비 환경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송금, 결제, 이체가 가능하고, 간편결제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의 소비를 파악하고 조절할 수 있다. 또한 이 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더 많은 소비를 하며, 그 소비 과정도 데이터 분석, 알고리즘 추천 등에 의해 자동 화되어 있다. 즉, 이들은 '경제적 효율성(efficiency)'과 '편익 (utility)'을 실시간으로 추구하며 살아간다.
더욱이 이들은 단순한 소비자에 머물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직접 물건을 판매하거나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의류나 전자기기를 사고팔며, SNS 콘텐츠를 제작해 수익을 창출하는 등 ‘생산자이자 소비자(Prosumer)’의 역할을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경제교육은 단순한 절약의 중요성을 가르치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한다.
MZ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돈을 벌고, 쓰고, 나누고, 투자하는 모든 과정에 대한 통합적인 이해와 실천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경제학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기회비용 (opportunity cost)’ 개념은 중요한 교육 포인트가 된다. 제한된 자원으로 인해 어떤 선택을 할 때 다른 선택지를 포 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이 개념은,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소비 선택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용돈기입장의 진화 : 앱, 게임, 그리고 체험 중심의 학습
고전 우화인 ‘금화를 묻은 농부’ 이야기를 떠올려 보자. 농부는 금화를 땅에 묻어두고 자주 확인하러 갔지만 결국 도둑에게 금화를 도난당한다. 이는 자산을 단순히 보관만 하고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런 이익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이는 오늘날의 경제교육에도 시사점을 제공 한다. 단순히 ‘모으는 법’만을 강조해서는 실질적인 경제 감각을 길러줄 수 없다. 자산은 적극적으로 활용될 때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
최근에는 다양한 어린이 경제교육 앱이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핀크(FinC)’나 ‘아이엠머니(I’m Money)’ 같은 앱은 아 이들이 자신의 용돈을 디지털로 관리하고, 미션을 수행하며 경제 개념을 습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앱은 기존의 종이 기반 용돈 기입장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몰입도 높은 학습을 제공한다. 더불어 이러한 앱은 학부모와의 연계 기능도 강화되어 가정에서도 자연스럽게 금융 교육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다.
학교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가상 화폐’를 활용한 수업, ‘경제 마켓 체험활동’ 등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학생들이 직접 가상의 회사나 상점을 운영하며 제품을 기획하고 가격을 설정하고 거래를 경험하는 활동은 단순한 이론 중심 교육을 넘어서 실천적 감각을 길러준다. 이러한 체험 중심 경제교육은 학생들로 하여금 경제적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해 더 깊은 책임 의식을 갖게 한다. 즉, 오늘날의 아이들은 단지 정보를 전달받는 학습자가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참여형 경제 주체로 길러져야 한다.

◇가치소비와 윤리적 소비 : ‘왜 사는가’를 가르치는 경제교육
경제학의 소비자 이론에 따르면, 소비자는 주어진 예산 제약 내에서 효용(utility)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 그러나 현대의 소비자는 단지 개인의 만족만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에 대한 책임을 고려하는 ‘확장된 효용’을 추구한다. 이를 대표하는 개념이 바로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다.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파괴 여부,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을 고려하며 소비하는 MZ세 대의 모습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내부화(internalization)’ 의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이 발생시키는 외부효과를 인식하고 이를 자신의 소비 선택에 반영하는 행동은, 전통적 경제 모델을 넘어선 새로운 경제 주체의 모습이다.
예를 들어,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 의류, 공정무역 인증을 받은 커피와 초콜릿 등은 MZ세대의 윤리적 소비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소비 선택에 그치지 않고, 사회와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소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있다. 윤리적 소비는 더 나아가 소비를 통한 사회적 연대와 책임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경제교육도 이에 발맞춰야 한다. ‘어떻게 돈을 쓰는 가’ 라는 질문을 넘어서, ‘왜 이제품을 선택하는가’, ‘내 소비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모색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단지 개인의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서, 공동체와 지구적 차원의 책임 있는 소비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교육은 지속 가능발전교육(ESD) 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미래형 경제교육 : ‘경제적 시민’을 키우는 교육
현대의 경제는 단순한 수치나 그래프로 설명되지 않는다. 글로벌 공급망, 기후 위기, 정치적 불안정성, 디지털 경제 등은 모두 경제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복합 적인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경제적 판단이나 사회 참여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러한 구조를 체계적으로 배우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제교육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경제적 시민(Economic Citizen)'은 단 순한 경제활동 참여자를 넘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공공선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개인을 뜻한다. 이는 공공재(public goods)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경제교육은 개인의 부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질을 높이고 공동체적 문제해결을 위한 기반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세금의 구조와 공공 서비스의 관계, 부동산 가격과 지역 불균형, 청년 실업과 노동 구조의 변화 등은 단순한 지식의 영역을 넘어서 삶의 문제로 직결된다. 이를 교실 안에서 비판적으로 탐색하고, 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학생들이 ‘경제적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는 외부효과(externalities)나 정보 비 대칭성과 같은 시장 실패 개념과도 연결된다. 즉, 시장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낳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 공동체를 위한 제도적 대응과 윤리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점을 교육하는 것이다. 경제교육은 이제 단순히 개인의 가계관리나 주식 투자와 같은 테크닉을 넘어서야 한다. 학생들이 자신과 공동체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 하고, 공공 문제에 참여하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함께 만 들어 나갈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 이어야 한다.
◇MZ세대,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 주체
과거의 경제교육은 종이와 펜으로 대표되는 ‘기록 중심’ 교육이었다. 용돈 기입장은 지출을 기록하고 절약을 독려 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변했다. 학생들은 디지털 교과서로 배우고, 유튜브와 SNS에서 정보를 접하며, 앱으로 금융 활동을 관리한다. 따라서 오늘날의 용돈 기입장은 종이 노트가 아닐 수 있다. 그것은 스마트폰 속 앱 일 수도 있고, 가상 상점 운영 체험일 수도 있으며, 윤리적 소비 캠페인을 기획하는 프로젝트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 은 형식이 아니라, 경제를 대하는 태도와 관점의 전환이다.
이러한 교육적 접근은 경제학 이론의 현대적 확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은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며, 작은 ‘넛지(nudge)’를 통해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고 본다. 즉, 다양한 형태의 경제교육은 더 나은 선택을 위 한 발판이 될 수 있다. 학생들은 이제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경제 주체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재무 계획이 아니라, 보다 넓은 사회와 세계를 함께 이해하고 바꾸어 나가는 참여의 시작이기도 하다.
글 현재균(교육학박사, 쓰쿠바대학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