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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회어 탐구생활_ 상사에게 보고할 때


결재 받으러 갈 때마다 간이 해바라기씨 만해진다. 기분 좋을 때는 너그러운 동네 형님 같다가, 기분 한번 틀어지면 검찰 실에서 심문하는 검사와 같다.

자기 자식에겐 팥죽 주고 의붓자식에겐 콩죽 준다고, 과장님이 결재 요청하면 쉽사리 해주다가도 내가 들어가면 사사건건 시비다. 윗사람의 말 한마디에 어제까지 공들인 프로젝트를 생선 뒤집듯 뒤집고, 복도 지나면서 임원이 스치듯 내뱉은 아이디어 하나가 업무 진행 순서를 헤집어 놓는다.

어느 장단에 박자를 맞춰야 하는 건지 눈 돌아가다가 입도 돌아가게 생겼다. 사비를 털어서라도 CC카메라와 녹음기를 사무실 곳곳에 설치하고 싶을 지경이다. 최소 예산으로 하라고 불호령을 내리기에 기껏 업체 바꾸고 종이 재질 바꿨건만 오늘은 또 왜 이렇게 허접 하냐고 난리다. 대충이라도 일정을 맞춰야 한다고 보채기에 대략 잡아왔건만 이걸 갖고 어떻게 임원 보고를 하냐고 펄펄 뛴다.

알아서 해보래 길래 알아서 해가면 ‘누가 이렇게까지 하라고 했어? 이 사람이 회사가 땅 파서 사업하는 줄 알아?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먼’하며 삿대질을 해댄다. 신상품 아이디어 기획해 보라고 붕붕 띄울 때는 언제고, 이제는 ‘이게 상품성이 있겠느냐? 사업성이 있어 보이느냐? 다른 회사 중 도입한 데가 있느냐?’라며 구석구석 태클이다. 하루에도 열두 번 기분이 널뛰는 상사도 버겁고 그 타이밍에 결재 받으러 들어간 내 팔자도 버겁다. 결국 뭔 말이라도 해야겠기에 ‘지난번에 그렇게 하라고 하셨잖아요. 시키신 대로 했는데요’라고 말했다. 물론 미간에 잔뜩 주름을 잡고 너무 죄송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직장에서 오래 버티다 보면 느는 것은 연기력 뿐, 이러다 위염과 불면증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할 판이다.


1. 노예 대신 주인
‘쇼생크의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면 모건 프리먼이 연기하는 ‘레드’라는 죄수가 나온다. 감옥생활 40년 만에 가석방 된 레드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가게에서 사장에게 화장실에 가도 되냐고 묻는다. 사장은 짜증스럽게 “매번 나한테 묻지 말고 가고 싶을 때 오줌 누러 가”라고 한다. “40년 동안 허락 받고 오줌 누러 갔다. 허락 안 받으면 한 방울도 쌀 수 없었다. 그것이 내가 직면한 현실이었다. 나는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레드의 독백이 나온다.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죄의식과 죄인으로서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어렵다. 노예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노예 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나치게 상사의 명령에만 매이면 일의 효과를 분별하는 판단력이 사라진다.

원칙대로 하면 책임은 내가 지는 게 아니라 원칙이 지기 때문에 오히려 일이 더 쉬워질 수 있다. 명령은 답답하고 귀찮지만 사고하고 분별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업무를 할 때는 시키는 대로만 해서는 안 된다. 상황과 상대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융통성 있게 분별해야 한다.

비용을 아껴야 하지만 행사의 목적을 고려하여 효과성을 놓치지 않는 범위를 찾아야 하고, 기획서를 빠르게 써야 하지만 이 기획서가 누구에게 어떤 용도로 보고되는지를 감안하여 써야 한다. 상대가 누구인지, 상황이 어떠한지 판단하고 알아채는 능력, 불안과 분노를 걷어내고 상황을 입체적으로 해석해내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상사가 경제성을 외치며 조여 올 때 담당자는 효과성을 고려하며 조율해야 한다. 무조건 싸우기 싫다고 피하거나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안 된다. 비용을 적게 들이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까지 줄이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하고, 빠르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 까지 하면 결과가 염려스럽다고 설득하자. 상사가 엑셀을 밟을 때 땅 사정을 고려하여 브레이크를 밟아줄 줄 아는 것이 담당자의 역할이다.


2. 수단 대신 목적
유대인 학살 실무 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전범 재판 때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해 자신은 히틀러와 나치의 명령을 따른 것일 뿐,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독일 철학가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명을 바로 ‘생각 없음’으로 판명했다.

주어진 명령이 잘못되었는지 생각하지 않은 죄, 잘못되었다고 판단하지 않은 죄, 잘못된 것을 상사에게 말하지 않은 죄인 것이다. 내가 한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유죄다. 아이히만은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하는 도구적 이성밖에 없었다.

직장에서도 도구적 이성만으로는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How만 찾지 말고 Why를 물어야 한다. 목적을 알아야 방법이 찾아지고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를 알아야 다양한 대안이 나온다. 자동차의 히터 성능을 어떻게 하면 올릴까보다 자동차 히터가 왜 존재하는가를 생각하면 창의적인 대안이 나온다.

‘차에 탄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히터의 본래 목적에 집중하면 전열시트, 외부 바람막이, 무릎담요 등 다양한 대체방안이 있다. 창의성을 높이고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 목적 중심적으로 생각하자. 상사가 성냥을 찾더라도 “성냥이 없다”고 답변할 것이 아니라 왜 찾는지 생각해보면 다른 방도가 있다.

만약 식사 후 이를 쑤시려고 한다면 성냥 말고도 명함, 옷핀, 손톱 ,가글 등 대안은 많다. 생각은 목표를 얻기 위해 방법을 찾는 정신활동의 과정이다. 자꾸 다니는 곳이 길이 되고, 처음 간 오솔길이 대로가 되듯 생각하는 길을 열어두어야 생각의 속도가 빨라진다.
직장생활은 손발을 내어주고 월급을 받는 곳이 아니라 내 판단력과 분별력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곳이다. 상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하는 것은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다.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는 말은 ‘저는 아무 생각 없습니다. 저는 공밥을 먹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아무데도 들어갈 데가 없다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면 안 되듯이 뭐라 할 말이 없다고 자신의 무책임을 떠벌리는 것은 자폭행위이다. 나는 왜 그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시키는 대로 한 게 아니라 그때의 내 생각과 판단이 무엇이었는지를 설명하자. 그리고 골치 아프고 귀찮더라도 목적에 집중하며 다양한 대안을 생각하자. 우리 모두 생각이 너무 원대해서 실패하기 보다는 생각이 너무 보잘 것 없어서 실패한다.

3. 상사 눈치 보기 대신 상사의 눈으로
두 개의 눈을 통과해야 결재 받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기안서의 완성도가 상사의 첫 번째 눈을 만족시키고 담당자의 열정이 상사의 두 번째 눈을 만족시킨다. 기안서에 명확한 논증이 담겨야 하는 것처럼 기안하는 사람에겐 열정과 의지가 배어나야 한다.

기안을 한 담당자가 그 기안에 애정과 확신 없이 그저 업무 지시에 의해서 심부름만 하는 경우는 결재 받기도 어렵지만 결재하는 담당자에게도 마이너스다. 상사는 하나를 보고 열을 해석하기 때문에 다른 일들도 이처럼 처리할 것이라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차라리 스스로 확신이 없는 결재는 안 받는 게 낫다. 만약 스스로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까지 결재 받을 때 보고하자.

“이 부분이 좀 미심쩍기는 하지만 부장님께 보고 드리면 무언가 방법이 찾아지지 않을까 해서 일단 되는데 까지 해봤습니다. 부장님 생각은 어떠신지요?”라고 말이다. 스스로도 아닌 것 같으면서 그냥 지시대로 작성하여 결재를 올리면 여러 사람에게 마이너스다. 스스로 확신 없이 꼭두각시처럼 들러리 서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남 대신 결재 들이밀었다가 더 윗선에서 문제 터지면 누가 날 보호해 줄 것 같은가? 절대 그런 일은 없다. 오히려 대신 결재를 부탁했던 사람이 편승하여 내게 덤터기를 씌우는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스스로 확신이 없는 결재는 올리지 않는 게 좋다.

또, 보고 시에 어떤 모습을 연출하느냐에 따라 상사에게 안심을 주기도 하고 미심쩍은 의심을 사기도 한다. 윗사람은 보고받을 때 일부러 태클을 거는 습관이 있다. ‘내가 보기에 잘 안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라는 부정적 질문으로 담당자를 시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반대 급부적 측면에서 볼 때 이런 시각도 있지 않나요?’ 라고 의도적 태클을 걸기도 한다. 다양한 시각을 견지했는지 테스트하려는 속셈이다. 이때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라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지난번에 그렇게 하라고 하셔서…’라는 답변은 상사를 불안하게 만든다.

생각과 확신을 담아 쓴 기안서인지에 근원적 의심을 하게 만드는 반응이다. 이제 결재 받으러 들어가기 전에 자문자답부터 하자. 이 기안에 얼마나 열정과 확신이 있는지 스스로 납득하고 들어가자. 용기는 상사 눈을 똑바로 보고 대들 때 발휘하는 게 아니라 상사 눈으로 결재서류를 볼 때 발휘하는 것이다. 상사 눈을 공격하지 말고 상사 눈이 되어 공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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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점을 감안하여 ~~하게 추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판단했습니다. 제 생각엔 ~하는 점을 고려해야겠더라고요. 부장님은 어찌 보시는지요?
중요한 지적이시네요. 제가 그 부분을 놓쳤습니다. 다시 보완하여 작성하겠습니다.
제 판단엔 ~~한 점 때문이었습니다. 혹시 다른 부분을 생각해야 할 점이 있으면 보완해보겠습니다. 어떤 점을 보완하면 좋을까요??

지윤정
(주)월토피아 대표
월토피아 평생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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