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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빈곤 예방을 위해서도 보편복지가 중요하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엄마 박모(60)씨와 장녀 김모(35)씨, 차녀 김모(32)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번개탄을 이용하여 세 모녀가 동반 자살한 이날의 이 사건은 이후 우리 사회를 안타까움과 분노, 그리고 정쟁과 비판으로 들끓게 했다.


세 모녀가 민생불안과 생활고 끝에 자살한 이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3월 4일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이분들이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제도를 통해 여러 지원을 받았을 텐데, 그러지 못해 정말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박 대통령은 “있는 복지제도도 이렇게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이 말은 ‘절박한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제도는 갖추어져 있는데, 이런 사실이 잘 알려져 있지 않으므로 확실하게 이런 사실을 알릴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과제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박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의 생각과 달리 우리나라는 절박한 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복지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의 인식이다.


박 대통령이 말한 대로, 만약 세 모녀가 송파구청을 찾아가서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더라면 과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그들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신청을 했다 하더라도 수급자로 선정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고 단언한다.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말처럼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도 비관적이다. 구청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정부의 ‘긴급 복지지원’ 기준이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지원이 거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설사 ‘긴급 복지지원’이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이는 2~3개월짜리 단기 대책에 지나지 않으므로 본질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


긴급 복지제도 수급 기준 까다롭다


우리나라의 긴급 복지제도는 소득상실과 질병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생계비·의료비·주거비·교육비 등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이것의 수급 기준이 까다로워 지방정부들이 ‘부정수급 시비’를 우려하여 대상자 선정과 지원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2013년 긴급복지 예산은 971억 원이었지만 실제로 위기 가정에 지원된 금액은 536억 원에 그쳤다. 집행된 비율이 55.2%에 그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박 대통령의 위의 언급은 사실과 다를 개연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더 한심한 것은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상황을 알았더라면”이라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다.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에서 이런 상황을 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과 현장 공무원들의 공통된 견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관할 구청이나 주민센터의 잘못은 아니다.


이번 ‘세 모녀’의 경우는 본인들이 직접 지방정부에 선별적 복지를 신청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알아내기 어렵다. 아니면 사회복지 공무원이 선별적 복지 대상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내야 하는데, 이는 성격상 한계가 뚜렷할 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공무원의 수가 현저히 부족한 우리나라의 척박한 복지행정의 현실에서는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박 대통령은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절대빈곤에 처한 국민을 돕는 데 뚜렷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10년 155만 명에서 2013년 135만 명으로 크게 줄었다. 경제사회의 양극화와 인구의 고령화가 해가 갈수록 심화되었던 탓에 복지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는 오히려 크게 줄었던 것이다. 이는 다수의 극빈층이 빈곤탈출에 성공했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복지통합관리망’ 도입으로 인해 소득과 부양의무자 파악이 쉬워지면서 기초생활보장의 탈락자가 양산된 탓이다.


절대빈곤층도 지원 못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현재 우리나라의 절대빈곤율은 8% 정도로 추정된다. 그런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호하고 있는 인구는 2.8%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절대빈곤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은 16.5%에 이른다.


이들 상대빈곤층은 언제 절대빈곤 상태로 추락할지 모른다. ‘세 모녀’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가정은 엄마 박모(60)씨가 식당 일을 해서 월 150만 원 정도를 벌 때는 절대빈곤에 근접한 상대빈곤층이었다가 팔의 부상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으면서 순식간에 절대빈곤층으로 추락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작동하지 않았고, 이들은 국가로부터의 어떤 보호도 받지 못했다.


‘세 모녀 자살’과 같은 사건, 공공부조만으로는 못 막아


“있는 복지제도도 국민이 몰라서 이용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는 박 대통령의 지적에 자극을 받아서인지,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세 모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복지 공무원을 추가로 충원하고 국민에게 찾아가는 복지를 실현”하겠다고 했다. 서울시도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특별조사를 실시하고 ‘위기 가정 발굴 추진반’을 구성하여 상설조직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모두 나서서 복지 사각지대를 탐색함으로써 기초생활보장의 수혜 대상자를 적극 발굴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나는 정부의 이러한 조치를 적극 환영한다. 그렇다고 이런 조치가 좋은 성과를 낼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정부의 공공부조제도를 국민들에게 잘 홍보하고, 그래도 신청하지 않고 있는 사각지대의 극빈자들을 찾아내서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혜자로 전환시켜내는 일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추진되었던 것으로 전혀 새로운 접근 방법이 아니다. 그런데도 ‘세 모녀’ 자살 사건 같은 일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정부가 실패한 것이다. 나는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우리나라의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이런 빈곤 문제는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있는 복지제도’의 빈약함을 인정하자


먼저, 우리나라의 공공부조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지나치게 빈약하다는 사실부터 논의해보자. 지난 3월 4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세 모녀’ 자살 사건과 관련하여 언급했던 ‘있는 복지제도’라는 것은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절대빈곤 인구는 전체 인구의 8%에 이르는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보호하고 있는 인구는 2.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장인구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 시급하다는 결론이 쉽게 도출된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 모두가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양산하는 걸림돌을 제거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를 위해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다음의 두 가지 공약을 제시했었다. 첫째, 부양의무자에 대한 소득인정액 기준을 상향 조정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재산의 소득환산제를 합리적으로 개선해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를 축소한다. 둘째, 현행 기초생활보장의 통합급여체계를 ‘맞춤형 급여체계’로 확대 개편한다. 당시에 박 대통령의 이러한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선공약은 야당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만큼 수사적으로 깔끔했고 사회적 요구를 대부분 담아냈던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집권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러한 대선공약을 전혀 실천하지 않고 있다. 이들 공약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현재 2.8%에 불과한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혜자가 크게 확대될 것이고, 그만큼 정부의 공공부조 예산 비중도 커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대선공약을 어느 정도라도 지키려면 현재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예산보다 최소한 30~50% 정도는 관련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 그런데 현 정부는 이러한 공공부조 예산의 ‘획기적인 증액 없이’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틀을 개편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개별급여로의 전환은 제도개악


박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세 모녀’ 자살 사건을 언급하면서 정부여당이 발의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야당이 조속하게 처리해줄 것을 압박하고 나섰다. 정부여당은 마치 이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세 모녀’ 자살 사건 같은 불행한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만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것처럼 여론에 호소하고 있다. 이 법률 개정안은 현재 7가지 급여를 한꺼번에 지급하고 있는 ‘통합급여’ 방식에서 생계·의료·주거·교육 급여로 나눠 지급하는 ‘개별급여’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인데, 이는 앞서 언급했던 박 대통령의 국민기초생활보장 관련 대선공약 중 두 번째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발의한 이 법률 개정안은 ‘세 모녀’를 구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급여 대상과 보장 수준의 기준이 모호해지는 개악이라는 비판을 관계 전문가들과 시민사회로부터 거세게 받고 있다. 희한하게도 ‘세 모녀’의 경우를 구제하겠다는 명분으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제도 개편 방안이 오히려 ‘세 모녀’의 경우를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 시민사회와 야권의 우려인 것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 관련 예산은 늘리지 않은 채 급여 방식만 개편하여 개별 급여의 대상자만 확대했을 때 선별적 복지가 부실해지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이러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을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며 비판하고 있다.


다음으로 이런 빈곤 문제는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논의해보자.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나라는 절대빈곤에 처한 사람들 중의 일부만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혜자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공공부조의 수혜자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은 올바른 정책일까? 나는 지금의 2.8%는 너무나 넓은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확대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렇다고 공공부조 대상자를 무한정 확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선별적 복지를 지금보다 더 확충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기에만 의존하는 것은 올바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편주의 결여된 사회보험


‘세 모녀’ 자살 사건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엄마 박모씨의 오른팔 부상이었다. 식당에서 월 150만 원 정도를 벌었는데, 부상으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득이 단절되었던 것이다. 4대 사회보험의 하나인 고용보험(실업보험)은 복지국가라면 어디에나 다 있는 ‘보편적 복지’ 제도이다. 우리나라에도 고용보험이 있다. 하지만 보편주의 원칙이 결여되어 있다.


자영업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다. 자본-임노동 관계에 속해 있는 근로자들도 비정규직이거나 저임금인 경우에는 고용보험 가입률이 매우 낮다. 결국, 우리나라는 일하는 사람들(근로자) 중 거의 절반이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고용보험이 ‘보편적 복지’의 원칙을 잘 제도화하고 있었다면, 이번 ‘세 모녀’ 사건에서 엄마 박모씨의 오른팔 부상으로 인한 문제가 절대빈곤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초생계에 충분할 만큼의 실업급여가 나오기 때문이다.


4대 사회보험의 다른 하나인 산재보험도 제대로 된 복지국가라면 당연히 보편주의 원칙이 적용된다. 만약, 엄마 박모씨가 이들 복지국가나 대규모 사업장에서 일을 하다가 다쳤다면 산재보험이 적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의 영세업체나 자영업 종사자들은 산재보험에 가입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세 모녀’ 사건에서 엄마 박모씨의 소득단절과 결과적인 자살은 ‘보편적 복지’의 부재 또는 부실이 불러온 참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장녀 김모씨는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고 있었는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녀는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마다 본인부담금을 내야한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제도가 공공부조 대상자를 제외한 전체 국민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에 외형상으로는 ‘보편적 복지’에 해당한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63%에 불과하기 때문에 의료이용 시점에서 환자가 감당해야 할 의료비 부담이 매우 크다.


장녀 김모씨의 경우에는 이러한 경제적 장벽을 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적절한 의료이용을 포기하고 질병의 합병증을 키웠을 개연성이 높다. 이것도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실질적 보편주의’의 원칙에 부합하지 못했기 때문에 초래된 비극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차녀 김모씨는 만화가로 성공하고 싶었지만 현실의 벽에 막혀 만화가로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보편적 복지’의 핵심은 고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복지국가를 설계했던 베버리지는 완전고용을 위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고용은 빈곤 없는 사회를 위한 필수조건이다. 고용이 없으면 소득이 없고, 소득이 없으면 보편주의 원칙의 4대 사회보험(보편적 복지)도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완전고용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정부의 고용을 위한 이런 노력을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라고 부른다. 나는 차녀 김모씨가 직업훈련, 직업알선, 취업지원 같은 정부의 고용서비스를 받았다면 그렇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만능주의 논리에 입각한 ‘고용의 보편성(보편적 복지)에 대한 손쉬운 포기’야말로 우리 사회의 야만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복지에서 ‘보편과 선별’의 올바른 조합은?


복지 프로그램은 그것의 ‘원래 성격’에 부합되도록 설계되어야 한다는 큰 원칙을 지켜야한다. 고용보험이나 국민연금과 같은 ‘소득보장을 위한 사회보험’은 대상자 모두를 포괄할 뿐만 아니라 소득대체율도 낮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즉, ‘실질적 보편주의’가 관철되도록 ‘보편적 복지’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출산, 보육, 교육, 의료, 요양과 같은 사회서비스도 보편주의 원칙(보편적 복지)을 견지해야 한다.
또, 아동수당이나 장애인수당 같은 사회수당도 보편주의를 원칙(보편적 복지)으로 만들어진 제도들이다.
이렇게 보편적 복지가 촘촘히 제도화되면 누구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호주머니에서 돈 떨어질 날이 거의 없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사회서비스에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 복지국가들에서 이런 유형의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고 있다. 그런데 이들 복지국가들에서 최근까지의 큰 흐름은 보편적 복지의 원칙을 견지하되 급여의 수준은 다소 낮추고 있다. 즉, 과거에 비해서는 보편적 복지인 4대 사회보험의 소득대체율을 다소 낮추고 있고, 사회서비스의 본인부담을 조금씩 높이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들 복지국가들에서도 보편적 복지 원칙을 견지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늘 일부의 사람들은 추가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가령, 집도 없고, 모아 놓은 돈도 없고, 더 이상 일을 하지도 못하는데, 만성적으로 몸이 아픈 경우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이때는 소득조사를 통해 기초생활을 영위하는 데 부족한 부분을 정부가 지원해주는 공공부조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이것이 ‘선별적 복지’이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의 이러한 관계를 나는 바람직한 ‘전략적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불편한 시각


앞서 언급된 ‘세 모녀’의 경우, 우리나라의 4대 사회보험에서 보편적 복지가 ‘보편적 적용’과 ‘적절한 소득대체율’이라는 두 가지 원칙이 잘 견지되도록 적용되고 있었다면, 그리고 고용복지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서 보편주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적용되고 있었다면, 이들 세 모녀는 자살하는 것 대신에 지금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죽음의 순간까지 타인에게 빚을 지지 않으려는 이들의 마지막 행동으로 미루어볼 때, 이들이 빈곤의 늪에 빠졌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천박하게도 사회 연대적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을 높이려는 ‘보편적 복지’를 여전히 불온시하거나 불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다.


나는 단언컨대 ‘선별적 복지’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선의를 믿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빈곤에 빠져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무너지고, 그래서 수치심의 낙인(stigma)을 받아들인 공공부조 수급자들에게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것만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시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러한 자유 시장은 반드시 실패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 지점에 도달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보편주의 복지야말로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위한 토대가 된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보편적 복지’는 인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안정적으로 제고함으로써 혁신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보장해준다. 이제 보편적 복지는 사회투자이자 역동적 경제성장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또, 보편적 복지는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고용창출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선별적 복지’가 복지의 본령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선별적 복지라야 자유 시장의 원리에 적합하므로 경제성장에도 유리하다는 오래된 착각에 빠져있다. 그리고 중도 자유주의 진영의 일부에서는 ‘재원의 한정’으로 인해 처음에는 선별적 복지로 시작했다가 차츰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거의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이것 또한 보편적 복지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착각에 다름 아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복지는 해당 프로그램마다 자신의 원래 성격이 있다. 4대 사회보험의 경우처럼 보편주의가 원칙이면 그렇게 하면 된다. 사회서비스와 사회수당도 마찬가지이다.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느 사회에서나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는 늘 필요하게 마련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보편적 복지와 경제성장의 유기적 통합구조가 잘 작동하게 되면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의 대상자가 크게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즉, 보편적 복지야말로 선별적 복지인 공공부조의 부담을 구조적으로 줄여준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경우, ‘세 모녀’ 자살 사건 같은 불행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April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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