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물가가 또 오르고 있다. 주로 다소비 품목에서 가격이 오르고 있는데 더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재료값 인상 폭의 수십 배로 제품 가격이 오르거나 심지어는 재료값이 내려도 제품값이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단체에서는 가격 인상 시기, 인상률, 가격도 거의 차이가 없어 시장지배력이 강한 소수의 업체들이 과점 시장에서 암묵적인 담합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소비자단체가 실시한 2013년도 생활필수품 가격조사 결과, 고추장, 우유, 두부, 밀가루 등 다소비 품목에서 가격 인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동일품목에 대한 브랜드별 가격차이도 거의 없어서 가격만으로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하기 어렵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는 최근 서울시 25개구의 300개 유통업체에서 생활필수품 과 가공식품 31개 품목에 대해 가격조사를 한 결과, 제조업체들이 부당하게 가격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체 31개 품목 중 16개 품목이 연초 대비 연말 평균 소비자가격이 상승한 반면, 15개 품목은 가격이 하락해, 평균 가격인상률은 0.7%로 나타났지만 다소비 품목에서의 가격 인상이 두드러지고 있어 서민들의 체감 물가는 부담스럽다.
다소비 품목 가격 인상 집중
인상률 상위 8개 제품 중 우유제품이 무려 3개나 포함됐다. 제품별로 가격 변동률을 분석한 결과, 원유가격연동제 시행으로 지난해 우유 품목의 가격 변동이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월 대비 12월 매일우유(1L), 서울우유(1L), ‘맛있는 우유GT’(1L)가 각각 10.4%, 9.5%, 8.2% 가격이 인상됐다.
고추장은 ‘청정원 태양초 찰고추장’(대상, 1kg) 10.2%, ‘해찬들 태양초 고추장’(CJ제일제당, 1kg)이 9.1% 인상됐다. 두부는 풀무원 ‘국산콩 부침두부’(300g)가 5.0% 인상된 반면, CJ 제일제당 ‘행복한 콩 국산콩 부침두부’(300g)는 무려 12.2%가 인상돼 가장 높은 인상률을 보였다.
가격 인상이 두드러진 다소비 품목들은 동일 제품군, 비슷한 시기, 인상률,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어렵다. 식용유 제품은 최고가와 최저가의 차이가 고작 100원도 안 되는 98원에 불과했다. 제조업체들은 특정 제품군에 대해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수준으로 가격 인상을 발표하고 있다.
초코파이(오리온)와 카스타드(롯데제과) 제품의 경우 지난 한 해 동안 각각 1.3%, 1.4% 가격이 인상됐다. 인상률 차이가 0.1%에 불과했다. 가격 인상 시기 또한 9월과 10월로 불과 한 달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밀가루(CJ제일제당, 대한제분, 삼양사, 동아원)와 장류(CJ제일제당, 대상, 샘표식품)는 1~2월, 우유(유업계 전체)는 8~9월 제조회사의 가격 인상이 발표됐고, 인상률 역시 비슷했다.
최근 LG생활건강의 ‘코카콜라’와 롯데칠성음료의 ‘펩시콜라’가 올해 1~2월내 각각 6.5%, 6.6%로 거의 동일하게 가격이 인상됐다. 동일 제품군 내에서는 가격대도 비슷하게 형성하고 있어, 식용유(1.8L)의 경우 제조 3사(오뚜기, CJ제일제당, 사조해표)의 주요 제품에 대한 최고가와 최저가가 98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고, 밀가루(1kg)와 고추장(1kg)의 경우 판매순위 1, 2위 간의 지난해 평균가격 차이가 각각 65원, 165원에 불과했다.
왜 다소비 품목만 가격이 오르고 있을까?
최근 가격 인상을 단행한 기업들의 상당수가 높은 영업이익률을 유지하고 있거나,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어서 소비 빈도가 높은 제품의 가격인상을 통해 손쉽게 소비자가격으로 회사의 이익을 유지해 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칠성사이다, 펩시콜라, 칸타타, 게토레이 등 14개 제품이, ㈜농심의 경우 새우깡, 양파링, 자갈치, 수미칩, 바나나킥, 꿀꽈배기, 조청유과 등 15개 제품이, ㈜삼립식품의 경우 빵류 제품 703종 중 무려 175종 등의 가격이 인상됐다. 더욱이 2012년, 2013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각각 2.2%, 1.3%였음을 감안한다면 인건비, 물류비 상승을 가격 인상 요인으로 밝힌 기업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반면 식품 가격을 인상한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어 제품값 인상의 직접적인 이유는 영업이익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제품가격을 인상한 롯데칠성음료㈜의 경우, 2012년 영업이익률은 7.7%, 2013년 3분기 영업이익률은 8.9%로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펩시콜라는 2010년 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평균 소비자가격이 74.1%가 올라 가격이 급등했고, 코카콜라음료㈜의 경우도 2012년 영업이익률은 8.9%, 2013년 3분기 영업이익률은 9.3%로 높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2010년 1월부터 2014년 1월까지 평균 소비자가격이 48.9%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와 같이 영업이익률이 높은 이유는 소비자가격을 계속 올렸기 때문이다.
㈜삼립식품의 경우에는 영업이익률이 최근 3년간 증가 추세에 있으며, 2011년 4월부터 ㈜샤니와 ㈜호남샤니 제품의 대부분을 직접 판매하고 있어 2011년 대비 2012년 매출액이 27.6%, 영업이익이 68.8% 상승하는 등 성장성과 수익성이 개선된 것으로 판단된다. 영업이익률 또한 2011년 4.0%, 2012년 6.6%, 2013년 3분기 6.1%로 2011년 이후 계열사 판매처 통합으로 인한 수익성 개선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2012년 기준으로 주요 제조 3사 중 ㈜삼립식품 계열사가 매출액의 87%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독보적인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가격인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크라운제과도 2012년, 2013년 3분기 영업이익률이 각각 7.5%, 7.9%의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인상할만한 경영 악화 요인이 없는데도 가격을 올린 이유는 기업들이 지나치게 수익을 추구하는 탓이다.
재료값 내렸는데 식품값은 올랐다
최근 가공식품 제조사들은 원가 상승 등을 이유로 주요 제품의 가격을 인상한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근 3년간의 원재료 시세는 대체로 인하된 것으로 나타났다. 원재료의 최근 3년 물가 변동 추이를 확인한 결과 국제물가는 아몬드를 제외한 설탕, 원당, 팜스테아린, 버터, 원맥, 옥수수전분 등을 포함해 9개 품목에서 인하됐다.
국내 밀가루 가격과 설탕 가격은 원재료 추이와 달리 올라 제품 가격 인상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지만, 가공식품 제조에는 국내 생산 원재료보다 수입 원재료가 더욱 많이 사용되므로 대부분의 원재료 가격이 떨어진 상황에서 가공식품 가격 인상의 원인을 원재료가 상승 때문으로 볼 수는 없을 것으로 분석된다는 게 센터의 설명이다.
각 사별 대표제품의 가격인상 추이를 살펴보면, ‘초코파이’(12개, ㈜오리온)는 3년 전 제품 가격이 3,200원(2012년 8월 이전)에서 현재 4,800원(2014년 1월)으로 50% 인상됐지만, 동일 기간 원재료 가격은 불과 4.9%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추정 원재료가격이 25원 변동한 것에 비해 가격은 1,600원 변동해 무려 그 차이가 64배에 이른다는 사실은 놀랍다. ‘에이스’(해태제과식품㈜)와 ‘마가렛트’(롯데제과㈜)는 제품 가격이 각각 40.0%, 26.9% 인상되는 동안 원재료가는 불과 10.7%, 9.6% 인상돼 원재료 추정가격 인상분 대비 가격은 무려 33배, 6.3배 인상됐다. 더욱이 ‘코카콜라’(코카콜라음료㈜)의 경우에는 가격이 19.5% 오르는 동안 원재료가는 오히려 4.9% 인하돼 판매가격이 385원 인상된 반면 원자료가격은 오히려 14원 떨어졌다.
‘초코파이’를 생산하는 ㈜오리온의 2012년과 2013년의 손익을 비교한 결과 ‘매출액’ 대비 ‘원재료와 상품’의 비중은 각각 53.0%, 51.0%로 2012년에 비해 2013년에 오히려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마가렛트’를 생산하는 롯데제과㈜의 2012년과 2013년 손익분석도 ‘매출액’ 대비 ‘원재료와 상품’ 비율은 0.7%로 낮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국내 음료시장에서 과점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코카콜라음료㈜ 등과 ㈜롯데칠성음료의 2012년과 2013년 손익분석 결과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음료㈜와 최근 업소용 음료 5종의 가격 인상을 발표한 ㈜롯데칠성음료 모두 2012년 대비 2013년 영업이익률이 0.2%~0.5% 상승했다. 롯데칠성음료㈜는 9억 원 정도의 매출 감소와는 대조적으로 영업이익이 33억 원이 증가했다.
코카콜라음료(주) 등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405억 원, 81억 원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사의 영업이익률은 8~9%대로 높은 수익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전년 대비 영업이익 또한 증가하고 있어 손익분석 상에서도 가격 인상 요인은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제조업체들이 개별 원재료의 가격 추이를 알지 못하는 소비자의 약점을 이용해 손쉽게 제품가격을 인상시킴으로써 마진을 확대해 왔다는 얘기다.
제조업체들의 암묵적 담합 의심 된다
제품원가에서 차지하는 원재료가격은 비슷하다고 하더라도 시장규모가 다르고, 인건비, 광고비 등 제조사마다 지출하는 판매관리비의 차이가 존재하는데도 제품간 가격 차이가 100원 안팎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동일한 품목의 경우 브랜드별 가격 차이가 거의 없고 가격 인상 시기와 인상률 또한 거의 차이가 없어서 가격에 따른 소비자의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게 센터의 지적이다. 게다가 제조사별 제조원가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점시장이라는 점을 노리고 제조업체들이 부당 편승 가격 인상과 암묵적 담합을 해왔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