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경제에 경기순환 즉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20세기가 다 되어서야 벌어진 일이다. 불황을 일컫는 여러 영어 표현이 있지만 그 대부분 또한 19세기 말에 새로이 출현한 것들이다.
하지만 화폐 경제의 일상을 살아가면서 생존해야 하는 민초들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살기 힘든 자신들의 삶이 더더욱 피폐해지는 이러한 경기불황의 현실을 그 전부터 몰랐을 리 없다. 이들이 옛날부터 쓰던 더 오래된 ‘불황’의 영어표현 중에 ‘어려운시기(hard times)’라는 말이 있다. 내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표현이다.
내가 이 표현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경기 불황을 나타내는 다른 표현들은 대부분 물가, 실업률, 경제성장률 등의 가공의 경기지수들의 추이를 경험적 현실의 바탕으로 삼는다. 이런 것들은 물론 서로 연결되어 있고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그 중심에 있는 ‘생활세계’에서의 가장 살아있는 핵심은 사람들의 삶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수들은 그러한 핵심적인 진실의 일면을 나타낼 뿐, 그 핵심을 나타내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엉뚱한 주객의 전도가 벌어져서 사람들의 삶의 어려움은 그저 ‘주관적인’ 감정일 뿐, 실제의 ‘객관적’ 현실은 그 몇가지의 지수들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다.
이는 특히 경제에 대해 많이 배운 이들일수록 그러한 경향을 띤다. 일찍이 1850년대에 나온 찰스디킨스의 소설 [어려운시기(Hard Times)]가 바로 그러한 이야기를 전한다. 경제의 불황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루말로 형언할 수 없는 여러불행과 아픔을 겪고 있건만, ‘아담스미스’와 ‘맬서스’ 등을 제자로 거느린 합리적인 공리주의자 주인공은 이 모든 현실들을 다숫자와 평균치로 바꾸어서 이야기하며 그것이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전세계적으로 ‘어려운시기’가 또 닥쳐오고 있다는 불길한 조짐이 갈수록 현실화되고 있다. 벌써 전세계 수많은 도시에서 수많은 이들이 ‘99%’를 외치면서 길바닥을 점령하고 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의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들은 또다시 ‘어려운시기’를 몸으로 겪으며 뚫고 가겠지만, 막상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이들은 몇 가지 숫자와 도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서 또 이들은 몇가지 숫자를 들면서 갑론을박을 벌이고 이길이 맞다 저길은 틀리다 등등의 주장을 내놓을 것이다. 이러한 숫자와 개념과 주장이 오고 가는 가운데에도 삶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은 여러 가지 불행과 고통을 더 맛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러한 시기를 몸성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숫자와 개념과 주장에 너무 속지말고, 자신의 경제 생활을 스스로 돌보면서 스스로 필요하고 유의미한 정보를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 발나아가 경제 전체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알고 싶으면 옆에 있는 이웃들이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세심하게 살펴가며 자신의 삶과 비추어 볼 필요가 있다.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했던 지난 10개월간이 그러한 시기였고 나도 그러한 역할을 하는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 보고 싶었다. 청취자, 애독자들게 작별을 고해야겠지만, 우리 각자 어디에 가서 무얼하며 살더라도 서로가 어떻게 하루하루 경제생활을 꾸려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살피는 마음만은 함께 간직하자고 부탁드리고싶다. 다가오는 ‘어려운시기’, 우리모두 잘 이겨내기 위해서 함께 애쓰자.
글/ 홍기빈<손에잡히는경제> 진행자 |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MBC 이코노미 매거진 11월호 P.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