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토의 7%를 차지하고 있는 국립공원은 살아있는 생태 보고이자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고귀한 자연 유산이다. 현재 국내에는 24개의 국립공원이 있고 인접해 있는 시군구만 해도 71개나 된다. 하지만 인근 지역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면서 그 피해를 인근 지역민들이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문제를 짚고자 전문가들이 지난달 28일 국회에 모였다. ‘국립공원과 지방자치단체의 상생협력 방안’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국립공원을 새로운 산업·문화 자산 창출이 가능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며 “지휘자와 같이 각 지역 자원의 고유 재능을 살리면서 균형과 조화를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자본 순환 잠재력 있으나 협치 거버넌스 부족해
유기준 상지대학교 명예교수(前 국립공원공단 상임감사)는 발제에서 "국립공원은 기후 위기·지역소멸·사회·심리적 질병 등 현대적 위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민 삶의 질 유지에 기여하는 공동체 기반 자산으로 의미가 확대되고 있다"며 "연간 4,400만 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국민의 약 79%가 방문권을 형성하며 지역의 자본 순환 잠재력도 보여준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어 “국립공원 방문객의 약 34%가 사찰 방문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 국립공원 내 종교·문화자원의 영향력도 크다”며 생태계서비스(공급·조절·지원·문화 등)와 조절 서비스(대기정화·탄소흡수 등)는 전체 가치의 약 34%라고 설명했다.
국립공원 대부분이 농어촌, 산간 등 저밀도 1차 산업 중심 지역에 위치해 지역소멸, 고령화, 산업기반 취약성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한다고 분석한 그는, 배후 지역의 핵심 기능으로 △생태적 완충 기능 △환경 질 조절 기능 △사회경제적 순환 기능 △문화적 연결 기능 △ 공원 관리 파트너 기능 △개발 압력 흡수 등을 꼽았다.
배후 지역의 문제와 지역발전 한계에 대해선 “공원구역 및 생태 보전 등의 이유로 지역의 생활권과 개발권이 제약되고, 대규모 산업·제조업 유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환경부·공단·지자체 간 역할 분담이 명확하지 않아 협치 거버넌스가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주민과 지역단체가 공원 관리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흡해 관광객 지출의 약 60%가 외부 자본으로 유출된다”고 봤다. 방문객 지출의 지역 내 재순환 비율을 높이려면, 지역 특화 서비스·소규모 생태관광·지역 상생형 숙박 모델 구축, 공원-마을 연계 교통·동선 개선 등을 통해 지역 소비를 유도하고 청년 정착형 생태 비즈니스 발굴과 공원 기반의 일자리 창출 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유 명예교수는 “생태 보전과 지역발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갈등과 정체가 지속되고 있는 현행 구조를 생태계서비스 기반의 공공 가치와 지역 경제 순환을 통합하는 상생 모델 구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 이분법적인 방법으론 복잡한 지역 문제 해결할 수 없어
국립공원 개발 및 보전의 찬반처럼 이분법적인 공청회 방식으로는 복잡한 지역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오수길 고려사이버대학교 교수(생태전환지원재단 이사장)는 “4차 산업혁명기에는 기술 변화가 기존 직업군의 생존을 위협했던 것과 같이 사회·경제적 충격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오 교수는 “지금은 인구감소·고령화·청년 일자리 부족 등 구조적 난제를 단일 정책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시대"라며 "과거 정부의 최저임금 정책처럼 선의의 정책도 단일 해법으로 접근할 경우 부작용이 커질 수 있으므로 ‘다중 이해관계자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정 그룹의 문제라도 관점을 달리해 함께 검토해야 새로운 아이디어와 균형 잡힌 해법을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협력적 거버넌스는 ‘한 번의 큰 성공’이 아니라 다수의 작은 성공을 축적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영암의 국립공원 박람회 사례는 다양한 파트너, 자율성, 문제 중심 접근, 학습·평가 과정 등을 통해 좋은 거버넌스의 요소를 갖춘 사례라고 분석했다.
오 교수는 “국립공원은 산림을 담당하는 부서만이 아니라, 문화·교육·사회·도시계획 부서의 무형 자원과 연결돼야 한다”며 “지역이 어떤 목표와 정책 등을 어떻게 사용할 지를 ‘요리사의 관점’으로 접근해 함께 조정하고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화순군의 청년 임대주택처럼 단일부서 접근으로는 지속 가능한 해결이 어렵다는 사례가 존재하고, 광명동굴처럼 기존 자원을 다른 관점에서 연결할 때 새로운 산업·문화 자산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도 존재한다”며 “지휘자와 같이 지역의 자원마다 고유 재능을 살리면서 균형과 조화를 맞추는 구조가 거버넌스의 핵심”이라고 부연했다.
◇ ‘내 도시가 국립공원이라면?’
전 세계 인구의 70%가 2050년까지 도시에 거주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도시의 녹지 감소, 생태계 단절, 홍수 취약성, 열섬 현상 등 도시환경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박선영 남도자연생태연구소 대표는 “팬데믹 이후 도시 자연의 중요성(건강, 복지)과 생태안정성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며 “국제사회는 자연보전 네트워크 형성에서 도시와 자연을 통합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 속에서 4개의 대표적 글로벌 도시 이니셔티브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국립공원 최초 도시인 영국 런던의 사례를 든 박 대표는 “세계 최초 국립공원 도시 런던은 인구 800만의 초대형 도시임에도 전역에 녹지와 수 공간을 연결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그 비율이 49.7%까지 확대, 시민 수와 동일한 나무 식재를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3년 영국 런던의 시민과 활동가들은 ‘내 도시가 국립공원이라면?’이라는 상상 실험에서 출발해 2015년엔 시민재단(National Park City Foundation) 설립, 2019년에 세계 최초 국립공원 도시로 런던이 공식 지정됐다.
‘도시 전역을 공원처럼 지혜롭게 관리해 더 푸르고, 건강하고, 그리고 공평하며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시민 주도 도시 운동’으로, 기존의 보호지역 지정 제도와 달리, 도시를 ‘하나의 공원’으로 관리한다는 독창적 접근을 취했다. 여기에 공평성(Equity)·푸른 도시(Greener City)·건강과 복지(Healthier Living)·생물다양성 강화(Biodiversity)·문화·사회적 가치 창출을 핵심 가치로 6개 영역, 23개 기준으로 평가한다.
또 다른 해외 사례로는 네덜란드 브레다(Breda)다. EU 최초 국립공원 도시(2025)로 도시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추진한 대표적 협업형 모델이다.
2030년까지 ‘유럽에서 가장 자연이 풍부한 도시 중 하나’를 목표로 삼은 브레다는, 2022년 시 정부가 ‘공원 속 브레다(Breda in the Park)’ 재단을 설립하고, 반 고흐 국립공원 권역과의 연계 전략을 추진했다. 또 도심 28개소 녹지화 사업 발표(예산 약 1,600만 유로)와 2040 환경 비전 발표(회복력·탄력성 강화 도시 구현)로 국립공원 주변 도시들 간의 협력 생태계를 통해 광역 생태·문화 체계를 강화하는 전략을 세웠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순천·제주·인제·창녕(2018년), 서귀포시·고창·서천(2022년), 문경·김해가 람사르 습지 도시(2025년)로 인정돼 환경부의 후원을 받고 계속적으로 람사르습지도시 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시티즈위드네이처(Cities with Nature)는 서울 강동구·안양·연천군이 바이오필릭시티(Biophilic City,)에는 부산광역시(2024)가 국립공원도시(National Park City)는 공식 지정 도시는 없으나 서울·도쿄가 ‘잠재 도시’로 국제지도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또한 진도군은 다도해상국립공원과 연계한 전복 국제인증, 영암군은 월출산권 기반의 관광·생태 연결 전략, 강진군·구례군 등은 국립공원 생활권 기반 도시정책 논의 가능성 증대로 국내 국립공원·지자체의 도시형 생태전략 시도를 하고 있다.
박 대표는 "국립공원 도시 이니셔티브는 단순한 도시녹화 정책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상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정의하는 사회운동"이라며 "향후 국립공원 도시 운동을 도입해 도시의 생태적·문화적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고,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국립공원 지정과 지역발전 논쟁 한계 등에 대한 여러 의견도 나와
이어진 토론에서 김경원 남도자연생태연구소 소장(환경생태학박사)은 “정확한 경제적 가치 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순천시가 중앙정부로부터 확보한 직·간접적 지원 규모는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당시 순천은 생태·관광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지역이었다. 당시 지역사회에서는 갈대밭을 제거하고 지하 골재를 채취해 개발이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었고, 당시 예측된 개발이익은 17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순천시는 개발 대신 보전을 택했고, 생태도시 모델로 성장할 수 있었다.
김 소장은 “단기 개발이익에 의존하는 접근보다 생태 보전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 발전 방식이 더 큰 지역 경제적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며 “향후 30년, 50년의 관점에서 국립공원이 제공할 수 있는 미래 가치를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전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립공원 관리체계 역시 보전·이용을 넘어 지속 가능한 개발 관점에서 재편할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경구 국회지역균형발전포럼 사무처장은 “최근 발표된 여러 내용에서도 확인됐듯이 국립공원은 휴양·관광의 거점, 지역 경제·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며 “협력 구조 재정립이 필수적”이라고 짚었다.
◇ 영향권 내 지자체가 실질적 주체로서 역할 수행해야
김영중 영암군 기획예산실장은 “영암군이 선도적으로 국립공원 박람회 및 관련 협의체 조성을 추진하게 된 데에는 인구 소멸 지역에 속한 우리 지역이 지속 가능한 새로운 돌파구로 관광산업 육성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주 인구 유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영암군은 지난해 기준 약 300만 명의 생활 인구 유입을 기록했고, 월출산은 지역의 핵심 관광자원으로서 이를 전략적으로 관광상품화하고 전국적 인지도를 제고하는 것이 절실하다”며 “국립공원 보전과 지역발전의 조화를 위해 지자체 간 연대가 필요한 만큼, 중앙정부 정책 설계와 현장 간 연결고리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추진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이날 포럼은 이학영 국회부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서삼석·염태영·권향엽·박홍배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영암군이 주관했으며, 기후에너지환경부·국립공원공단이 후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