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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1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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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

김병도 칼럼

 

“빵과 서커스(panem et circenses)”는 고대 로마시대 권력자가 민중의 불만을 달래고 정치적 관심을 분산시키기 위해 실시한 대표적 통치 수단으로 알려져 있다. 식량과 검투사 경기 등 대중오락을 무상으로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의 굶주림과 불만을 잠재우고,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풍자시인 유베날리스(Juvenalis)는 “로마 시민은 이제 빵과 서커스만을 원한다”고 풍자하기도 했는데, 이 표현은 이 정책이 단순 복지가 아닌 통제와 회유의 수단이었다는 해석이다.

 

이면에는 다른 시각도 존재한다. 당시 로마 사회는 농민 몰락과 대지주 중심의 라티푼디움(latifundium) 확대, 노예 노동 중심 체제 등으로 인해 중소 농민들이 쇠퇴하고 빈곤층이 도시로 밀려들었다. 도시 빈민들은 일자리 없이 굶주림에 내몰렸고, 사회적 갈등은 점점 커졌다.

이런 맥락 속에서 식량 배급은 단순한 정치적 술책이 아니라 최저 생계 보장 장치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즉, “빵”은 체제 안정과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이었다. 그리고 “서커스”는 그 보장을 수용하게 만드는 회유적 요소였다.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부정적 측면과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공존했다는 것이다.

 

◇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정책 넘어 사회정책의 중심 축

 

오늘날 우리는 로마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빠른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자동화는 과거 어느 기술혁신보다도 노동시장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단순노동은 물론 사무직, 전문직 일부 분야까지 알고리즘과 로봇이 대체하기 시작했고, 기술 격차는 계층 간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다”는 과거 방식의 사회적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에서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정책을 넘어서 사회정책의 중심 축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정기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최저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다. 복지 수혜 여부를 선별적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 기존 체계와는 달리, 기본소득은 보편성과 무조건성을 중시한다. 현재까지 전 세계 어떤 국가도 완전한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파일럿과 보장(소득)형 실험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현 상황을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여유가 없다. 생각보다 빠르게 오래된 미래는 현실이 되고 있다. AI와 자동화가 빠르게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는 시대다. 국민 다수가 일자리 불안과 소득 감소에 직면할 것이다. “시장 중심에 맡겨라, 기술 발전이 또 다른 일자리를 만들 것이다”라는 논리는 점점 허망해질 것이다. 더구나 지금 우리는 고령화·저출산·양극화라는 동시다발적 구조 위기가 복지 재정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에 놓여있다. 기본소득은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국가 지속성의 핵심 과제가 된 것이다.

 

단계적이고 현실 가능한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일부 지역 또는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파일럿 기본소득을 실험해야 한다. 예컨대 농업·어업인, 청년층, 경력 단절 여성 등 구조적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할 수 있다. 이 실험을 통해 실제 수혜자의 소비 패턴, 노동 변화, 재정 부담 등을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그다음 단계는 지역 단위의 보편적 지급으로 확대하고, 최종적으로는 전국 단위의 기본소득 체제로 이행해 나가야 한다.

 

◇ 제도 도입의 핵심은 재원 확보

 

우리처럼 토지·부동산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토지보유세 강화,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가 우선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디지털세·플랫폼세 도입 등이 유력한 조세 수단이 될 수 있다. AI자본이 만들어내는 초과이윤을 공공이 환수하고 국민에게 공유하는 구조도 중요한 과제다. 학계에서는 AI 자본이 일정 수준의 수익을 내면 이를 기본소득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모델도 제안되고 있다.

 

기본소득은 로마시대 ‘빵과 서커스’와 같은 단순히 식량과 오락을 제공하자는 것이 아니다. 기본소득은 국민이 위기에 처했을 때 최소한의 생계를 지켜주고, 변화한 환경 속에서 재도약할 기회를 줄 수 있는 제도다. 로마는 ‘체제 안정을 위해’ 식량과 오락을 제공했지만 현대 국가는 ‘시민의 존엄과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기본소득 정책을 바라봐야 한다.

 

“기본소득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언제, 어떻게 출발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21세기의 경제패러다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AI시대가 만들어내는 격변 앞에 우리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혼란은 ‘민주주의’도, ‘효율’도 기대할 수 없다. AI시대에 기본소득은 국가가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사회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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